<♣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二 / [1]

화엄행 2009. 3. 27. 02:31

2006/03/11 오후 3:56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二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五. 言該本末


雖空空絶迹이나 而義天之星象이 燦然이요 湛

湛亡言이나 而敎海之波瀾이 浩瀚이로다 若乃

千門潛注라서 與衆典爲洪源이요 萬德交歸라

서 攝群經爲眷屬이로다


비록 空하고 空하여 자취가 끊어졌으나 義天의 星

象이 燦然하고 湛湛히 말이 없으나 敎海의 波瀾이

浩瀚함이로다. 만약 이에 千門이 潛注하기에 衆典

과 더불어 洪源이 되고, 萬德이 交歸하기에 群經

을 섭수하여 眷屬을 삼음이로다.



     

     1. 理事相望


第五에 雖空空絶迹下는 言該本末也라 文有兩意

하니 一은 理事相望이요 二는 諸敎相望이니 今

初也라

亦是遮於伏難이니 恐有離言호대 夫大象은 無形

이요 大音은 無聲이라 希微絶朕하야 難思之境

이니 豈有形言者哉아 則心絶動搖하고 言亡戱論

하야사 自入眞趣어늘 何用廣陳言相하야 飜欲擾

人고할새

故今釋云호대 非言이면 何以知乎無言이며 非相

이면 何以顯乎無相이리오



第五에 '雖空空絶迹'아래는 말이 本末을 갖추고 있

음이다. 文에는 두가지 뜻이 있으니 一은 理와 事가

相望함이요, 二는 諸敎가 相望함이다. 이제 처음이

다. 또한 伏難(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따지고 비

난하는 것)
을 막음이니, 어떤 사람이 힐난하여 말하

길, "대저 大象은 形狀이 없고 大音은 소리가 없고,

希微하여 조짐마저 끊어져서 생각하기 어려운 境界

이니, 어찌 形狀과 言語가 있겠는가? 곧 마음은 動

搖함이 끊어지고 말은 戱論이 없어야 스스로 眞趣

에 들어가거늘, 무슨 所用으로 言相을 널리 진술하

여 도리어 사람을 어지럽게 하는가?"라 할까 두렵

나니, 

그러므로 이제 해석하여 이르길, "말이 아니면 무엇

으로 말 없음을 알며 相이 아니면 무엇으로써 相이

없음을 나타내리오?"라고 한다.



十忍品에 云了法不在言하야 善入無言際나 而能

示言說하야 如響遍世間이라하니 斯則以言顯無

言也요

又云佛以法爲身하사 淸淨如虛空이라 所現衆色

形으로 令入此法中이라하니 斯則以相顯無相也



又云色身非是佛이며 音聲亦復然이어니와 亦不

離色聲코 見佛神通力이라하니 具上二也니라



「十忍品」에 이르길, "法은 말에 있지 않음을 요달

하여야 無言의 際에 잘 들어갈 수 있으나 능히 언설

을 보임은 마치 메아리가 세간에 두루한 것과 같

다"고 하였다. 이는 곧 말로써 말없음을 나타냄이

다.

또 이르길, "부처님께서는 法으로써 몸을 삼으시어

청정함이 허공과 같아서 나타낸 여러 色形으로 이

법 가운데에 들어가게 한다"고 하였다. 이는 곧 相

으로써 無相을 나타냄이다.

또 이르길, "色身은 부처님이 아니며 음성도 또한

그러하나, 또한 色과 聲을 떠나서 부처님의 神通力

을 보지못한다" 고 하니, 위의 두가지를 갖춘 것이

다.




法華에 亦云하되 諸法寂滅相은 不可以言宣이로

되 以方便力故로 爲五比丘說이라하니 斯亦以言

顯無言也요

金剛經에 云若見諸相非相하면 則見如來도 亦以

相顯無相也요

淨名에 云夫說法者는 無說無示나 不言不說일새

故로 云當如法說이라하고 又云無離文字코 說解

脫也라하며 又云雖知諸法不生不滅이나 而以相

好로 莊嚴其身하며 雖知諸佛國과 及以衆生空이

나 而常修淨土하며 敎化諸群生等이라하니 皆是

言與無言과 相與無相이 不相離也니라


『법화경』에 또한 이르길, "諸法의 寂滅相은 말로

써는 펼수 없으나, 方便力으로써 다섯 比丘를 위하

여 설한다"고 하였다. 이 또한 말로써 無言을 나타

냄이다.

『금강경』에 이르길, 만약 諸相이 相이 아님을 보

면 곧 여래를 본다"고  하였으니, 또한 相으로써 無

相을 나타냄이다.

淨名(『維摩經』의 維摩居士를 말함) 이르길, "대저 법

을 설한다는 것은 說할 것도 없고 보일 것도 없으나

설하지 아니함(不說)을 말한 것은 아니기에, 그러므

로 마땅히 如法하게(법 답게) 說해야 함을 말한다"고

하였다. 또 이르길, "文字를 떠나서 해탈을 說할수

없다"고 하며, 또 이르길 "비록 모든 法이 不生不滅

함을 아시나 相好(부처님의 功德相인 32相80種好를 의미)

써 그 몸을 장엄하며, 비록 모든 佛國土와 중생이

공한 줄을 아시나 항상 淨土를 닦으며 모든 群生 등

을 교화한다" 고 하였다. 다 이는 言과 無言, 相과

無相이 서로 떠나지 않은 것이다.




十住品에 云欲以寂靜一妙音으로 普應十方隨類

演이라 如是皆令淨明了일새 菩薩이 以此初發心

이로다 一切衆生語言法을 一言演說無不盡이라

悉欲了知其自性할새 菩薩이 以此初發心이로다

世間言辭靡不作하야 悉令其解悟寂滅하니 欲得

如是妙舌根하야 菩薩이 以此初發心이라하니 皆

卽言無言이라 其文非一이니라

今疏文中엔 但略明其無碍之義니 文有二對라 初

對는 無相이 不碍相이요 後對는 無言이 不碍言

이니 今初對也라



「十住品」에 이르길, "寂靜한 一妙音으로써 널리

十方에 응하야 類를 따라 연설하고자 하며, 이와 같

이 모두 淨明하게 요달하게 하니, 보살이 이로써 처

음 발심하였다. 일체 중생의 語言法을 一言으로 연

설하여 다함이 없다. 모두 그 自性을 了知하고자 하

니, 보살이 이로써 처음 발심하였다. 世間의 言辭로

짓지 않음이 없어서 모두 寂滅을 이해하고 깨닫게

하니, 이와 같은 妙舌根을 얻고자 하여 보살이 이로

써처음 발심하였다."고 하니, 모두 言에 卽한 無言

이고, 그 文이 하나가 아니다.

이제 疏文 중에서 다만 간략히 無碍의 뜻을 밝히나

니, 文에 두가지 對가 있다. 初對는 無相이 相을 장

애하지 않음이고, 後對는 無言이 言을 장애하지 않

음이다. 지금은 初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