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七 / [2]

화엄행 2009. 3. 27. 03:51

2008/08/11 오후 7:16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七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2. 緣十義

     1) 引例總明

     2) 開章別釋

      ③ 依主
       
       (가) 總彰大意

       (나) 假問徵起


今說此經佛이 爲眞爲應가 爲一爲多아 

  이제 이 경을 설하신 佛이 眞身인가 應身인가? 一

身인가 多身인가?



 今說此經下는 第二에 假問徵起라 於中에 二니 先

은 問起요 後는 若言眞者下는 徵難이라 今初는 但

有兩對하니 已含前後諸義하니라



  '今說此經'아래는 第二에 물음을 빌어 질문을 일으킴이

다. 그 중에 둘이 있으니, 先은  질문을 일으킴이요, 後에

'만약 眞身이라고 한다면'아래는 따져서 물음이다. 이제

初에는 다만 兩對가 있으니 이미전후의 모든 뜻을 포함

한다.




 

若言眞者인댄 何名釋迦가 居娑婆界에 人天同

見이며 若云應者인댄 那言遮那가 處蓮華藏에

大菩薩見으로 見佛法身가

  만약 眞身이라 말한다면 어찌 釋迦가 사바세계에

머무르심에 人과 天이 한가지로 본다고 이름하며,

만약 應이라 말한다면 어찌 遮那가 연화장에 處하

심에 대보살이 보는 것으로 부처님의 法身을 본다

고 말하는가?



 徵難中에 二니 先難眞應이요 後難一多라 初中에

有三하니 一은 約名이요 二는 約處요 三은 約機라


 
따져 묻는 중에 두 가지가 있다. 先은 眞과 應을 물음이

요, 後는 一과 多를 물음이다. 初중에 三이 있으니, 一은

이름을 잡은 것이고, 二는 처소를 잡은 것이고, 三은 根

機를 잡은 것이다.




若云一者인댄 何以多處別現이며 若云異者인

댄 何以復言而不分身가

  만약 하나라고 말한다면 어찌 많은 처소에서 따로

나타내며, 만약 다르다고  말한다면 어찌 다시 말하

되 '몸을 나누지 않는다'고 하는가?

 


 若云一者下는 二에 難一多라 言多處別現者는 如光

明覺品에 云호대 如此處에 見佛世尊이 坐蓮華藏師

子之座어시든 十佛刹微塵數菩薩이 所共圍?뺤옄인달하

야 彼一一世界中에 皆有百億閻浮提百億如來도 亦

如是坐等이라함이 是也니라

又云호대 如於此處見佛坐하야 一切塵中悉如是라

佛身無去亦無來로대 所有國土皆明現等이라하니라

何以復言而不分身者는 出現品에 云호대 譬如梵王

이 住自宮하야 普現三千諸梵處하니 一切人天咸得

見이나 實不分身向於彼라 諸佛現身도 亦如是하야

一切十方無不遍하시니 其身無數不可稱이나 亦不分

身不分別이라 하니라
 


  '若云一者'아래는 二에 一과 多를 물음이다. '多處別

現'이라 말한 것은 『光明覺品』에 이르길, "이곳에 佛世

尊께서 연화장사자의 자리에 앉아 계시는데 십불찰미진

수보살이  함께 둘러 싸여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저

낱낱 세계 가운데에 다 백억염부제에 계신 백억여래께서

도 또한 이와같이 앉아 계신다. …"는 등이라 함이 이것

이다.

또 이르길, "이 곳에 부처님께서 앉아 계심을 보는 것과

같이, 일체의 티끌 가운데도 다 이와 같도다. 부처님 몸

은 감도 없고 또한 옴도 없으나, 있는 바 국토에 다 분명

히 나투신다. …"는 등이라 하였다.

'何以復言而不分身'이라는 것은 「如來出現品」에 이르

길, "비유컨대 저 梵天王(하느님)이 자기 궁전에 머물며

널리 삼천의 모든 梵處(하늘세계)에 나투니, 모든 人과

天이 다 볼 수 있으나 실은 몸을 나누지 않으면서 저기에

향한 것이라네. 모든 부처님께서 몸을 나투시는 것도 또

한 이와 같아서 일체시방에 두루 하지 않음이 없네. 그

몸이 無數하여  일컬을 수 없으나, 또한 몸을 나누지도

않고 分別하지도 않네."라고 하였다.

 




       (다) 總相會通

        ㄱ) 遮非 * 顯正 - 總相顯示


故說此經佛은 竝非前說이니 卽是法界無盡身

雲이라
 
 

 그러므로 이 경을 설하신 부처님은 아울러 앞에서

설명하지 아니하였으니, 곧 法界의 無盡身雲이시

다.



 故說此經下는三에 總相會通也라 於中에 二니 上은

卽遮非라 卽是法界無盡身雲이라 後는 卽是法界下

는 顯正이라 於中에 三이니 初는 總相顯示요 次는

對難會融이요 後는 結成難思라


  '故說此經'아래는 三에 總相으로 會通함이다. 그 중에

二니, 위는 그릇된 것을 막음이다. 後에 '卽是法界'아래

는 바른 것을 나타냄이다. 그 중에 三이니, 처음은 總相

을 나타내 보임이고, 다음은 힐난함에 대하여 圓融하게

會通함이요, 後는 思議하기 어려움을 結成함이다.





        ㄴ) 對難會融


眞應相融하사 一多無碍하시니

  眞身과 應身이 서로 원융하시어 一身과 多身이

걸림이 없으시니,



 眞應相融下는 第二에 對難會融이라 於中에 分二니

先에 此二句는 雙標라


  '眞應相融'아래는 第二에 힐난에 대하여 원융하게 회통

함이다. 그 중에 二로 나누니, 先에 이 二句는 쌍으로 표

함이다.


 

         ㉠ 先釋眞應


卽盧遮那가 是釋迦故며

 
곧 비로자나가 석가인 까닭이며,



 後卽盧遮那下는 雙釋이라 亦二니 先釋眞應이요 後

釋一多라 前中에 先此兩句는 唯釋眞應하야 通前約

名爲難이니 謂餘敎엔 遮那가 是眞이요 釋迦가 是應

이라

故로 經에 云호대 淸淨法身毘盧遮那佛이며 千百億

化身釋迦牟尼佛이라하니 今旣相卽인댄 明是眞應相

融이라 故로 名號品에 云호대 或名毘盧遮那며 或名

釋迦牟尼라하니 但名異耳니라 又華藏品中에 明第

十三重에 有世界하니 名娑婆요 其佛은 卽是毘盧遮

那라하니 故知相融也니라


  후에 '卽盧遮那'아래는 쌍으로 해석함이다. 또한 二니,

먼저 眞身과 應身을 해석함이요, 뒤에 一身과 多身을 해

석함이다. 前 중에 먼저 이 兩句는 오직 眞身과 應身을

해석하여 앞에서 이름을 잡아 힐난함을 통하게 함이니,

그밖에 가르침에서는 비로자나가 眞身이요 석가가 應身

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며 천백

억화신 석가모니불이라."고 하였으니, 지금 이미 서로

卽하였다면 분명한 것은 眞身과 應身이 서로 원융함이

다. 그러므로 「如來名號品」에 이르길, "혹 비로자나라

이름하며 혹 석가모니라 이름한다."라 하니, 다만 이름

만 다를 뿐이다. 또 「華藏世界品」중에 "第十三重(제13

겹째)의 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사바라 하고, 그 부처님은

즉 비로자나라이시다."라고 밝혔으니, 그러므로 서로 원

융하였음을 알아야 한다.





常在此處나 卽他處故며 遠在他方이나 恒住此

故라

 
항상 이 곳에 계시지만 다른 처소에 卽하기 때문

이며, 멀리 타방에 계시나 항상 여기에 머무시기 때

문이다.



 言常在此處等者는 二有二對는 正明眞應이며 兼顯

一多로대 而含有身土하야 對前約處爲難이라

初眞應者는 以約應故로 在此요 約眞故로 周遍法界

라 故로 經에 云호대 佛身充滿於法界하야 普現一切

衆生前이라 隨緣赴感靡不周호대 而恒處此菩提座라

하니라 初句는 卽眞이요 餘三은 皆應이며 第四句는

常在此處요 餘三句는 卽他處也니라

言兼顯一多者는 在此處는 卽一이요 在他處는 卽多

니 如不起一處코 遍一切處라 處此菩提座는 一也요

普現衆生前은 多也니라

言含土者는 此處는 卽娑婆요 他處는 卽兼華藏也니




  '常在此處' 等이라 말한 것은 二에 二對가 있는데, 眞身

과 應身을 바로 밝힘이며 겸하여 一身과 多身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身과 土를 포함하고 있어서 앞에서 處를

잡아 힐난하는 것을 상대함이다.

처음에 '眞身과 應身'이라는 것은 應身을 잡은 까닭에 여

기에 있음이요, 眞身을 잡은 까닭에 법계에 두루함이다.

그러므로 경에 이르길, "佛身이 법계에 가득 차서 모든

중생 앞에 널리 나타나시니라. 緣을 따라 感應하여 나아

감에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시되, 항상 이  보리좌에 居處

하시네."라고 하였다. 初句는 眞身이요 나머지 三句는

다 應身이다. 第四句는 항상 이 곳에 계심이요, 나머지

三句는 다른 곳에 卽함이다.

'兼顯一多'라고 말한 것은 이 곳에 계심은 곧 一身이고

다른 곳에 계심은 곧 多身이니,  一處에서 일어나지 않으

면서도 一切 處에 두루함과 같다. '이 보리좌에 居處하신

다'는 것은 一身이요, '널리 중생 앞에 나투신다'는 것은

多身이다.

'含土'라고 말한 것은 이 곳은 곧 사바요, 다른 곳은 곧

華藏世界를 겸한 것이다.





         ㉡ 後釋一多


身不分異요 亦非一故하며

  몸이 나뉘어 다르지 아니하고, 또한 하나가 아니

기 때문이며,




 身不分異下는 二에 釋一多也라 不分異故로 非多니

多不 一也요 亦非一故로 離一이니 一不碍多也니

라 上은 唯釋一多라


  '身不分異'아래는 二에 一과 多를 해석함이다. '나누어

다르지 아니하는'까닭에 多가 아니니, 多가 一에 걸리지

아니한다. 또한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를 여의었으

니, 一이  多에 걸리지 않는다. 위는 오직 一과 多를 해석

함이다.



同時異處에 一身圓滿하야 皆全現故며

  동시에 다른 곳에서 一身이 원만하여 다 온전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며,



 言同時異處等者는 二에 正釋一多하고 兼該眞應이

라 言一多者는 以一身이 全現故로 非一非多也요 一

身이 現多故로 一不碍多요 多現而常一故로 多不碍

一이니 如上已引一身爲無量이요 無量復爲一이라

了知諸世間하야 現形遍一切等이니라

又云호대 唯一堅密身이 一切塵中見等이라하며 出

現品에 云호대 如來가 於一成正覺身에 普現一切衆

生數等身하야 成正覺等이라하니라



  '同時異處' 등이라고 말한 것은 二에 一과 多를 바로 해

석하고 겸하여 眞과 應을 該括함이다. '一多'라고 말한

것은 一身이 온전하게 나타나기에  一도 아니고 多도 아

닌 것이고, 一身이 多身을 나타내기에 一이 多에 걸리지

아니하고, 多가 나타지만 항상 一이기 때문에 多가 一身

에 걸리지 아니하니, 위에서 이미 인용한 "一身이 無量

이 되고 무량이 다시 하나가 되니, 모든 세간을 분명하게

알아서 形相을 나타내어 일체에 두루하느니라"는 등과

같다.

또 이르길, "오직 한나의 堅密身이 일체 티끌 중에 나타

나니라"는 등이라 하며, 「如來出現品」이르길, "여래께

서 하나의 正覺身을 이루심에 널리 일체 중생의 숫자와

같은 몸을 나타내시어 정각을 이루시니라"는 등이라 하

였다.



 而言同時異處者는 若異時異處인댄 容許一身이 次

第遍遊어니와 今明同時異處니 決是多身이요 而是

一身이 全現일새 故非多矣니라 其猶一月이 一刹那

中에 百川齊現이라 卽一卽多니라 又普現故로 非一

이요 一月故로 非多니 故로 智幢菩薩偈에 云호대

譬如淨滿月이 普現一切水에 影像雖無量이나 本月

未曾二가  是也니라 故로 下光明覺品疏中에 明有同

時同處見과 異時異處見과 同時異處見과 異時同處

見과 同異時處에 一人頓見等이니라

言兼該眞應者는 一身圓滿은 卽是眞身이요 皆全現

故는 卽是應身이니라 又言全現者는 非分現也니라

言分現者는 如一身中에 現多頭하고 頭中有佛하며

腰現仙人等이 卽分現也니라 今言全現者는 卽此佛

身이 卽一切身이며 卽諸類身이요 全菩薩身이 是佛

身等이니라


  그러나 '同時異處'라고 말한 것은 만약 다른 때에 다른

곳이라면 一身이 차례로 두루 노니는 것을 허용하겠지

만, 지금은 '同時의 異處임'을 밝혔으니 결정코 多身이

다. 그리고  이 一身이 온전히 나타나니, 그러므로 多身

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달이 한 찰나 중에  온갖 시냇

물에 가지런히 나타남과 같아서, 一에 卽하고 多에 卽함

이다. 또 널리 나타나는 까닭에 하나가 아니요, 하나의

달인 까닭에 多가 아니다.

그러므로 智幢菩薩偈에 이르길,  


  "비유컨대 밝고 둥근 달이 널리 모든 물에 나타남에, 
 
  영상이 비록 무량하나 본래의 달은 일찍이 둘이 아니어라."


라 한 것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아래의「光明覺品」疏

중에서 同時에 同處에서 봄과 異時에 異處에서 봄과 同

時에 異處에서 봄과 異時에 同處에서 봄과 同異時에 同

異處에서  한 사람이 몰록 보는 것 등이 있음을 밝혔다.

'兼該眞應'이라고 말한 것은 一身이 원만함은 즉 眞身이

고, 모두 온전히 나타나기 때문에  곧 應身이다. 또 '全

現'이라고 말한 것은 나누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分

現'이라고 말한 것은 一身중에 많은 머리를 나타내고, 머

리 가운데 부처님이 계시며, 허리에 仙人이 나타나는 등

과 같은 것이 즉 '分現'함이다. 이제 '全現'이라고 말한

것은 곧 이 부처님 몸이  곧 一切의 몸이고, 곧 모든 種類

의 몸이요, 온전한 보살의 몸이 佛身 등이다.




 

         ㄷ) 結難思


一切菩薩이 不能思故니라

  모든 보살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一切菩薩下는 結難思也니 兼對前約人爲難이니라

菩薩도 尙不能思어든 況人天能見也아 以離心緣相

故라 故로 二十二種功德中에 有無能測身하니라

第八十經에 云호대

如來淸淨妙法身이여 一切三界無倫匹이라

以出世間言語道하니 其性非有非無故로다

雖無所依無不住요 雖無不至而不去라

如空中畵夢所見하니 當於佛體如是觀이라하니

由非眞非應이며 非一非多일새 故로 不可作眞應一

多等思也니라

故로 光明覺品에 云호되 佛身無生超戱論하시니 非

是蘊聚差別法이라하니 故로 難思也로다 又云호대

無染無所著하며 無想無依止하야 體性不可量일새

見者咸稱歎이라하니 其文非一이니라 旣云호대 菩

薩이 不能思인댄 明唯佛境이로다


  '一切菩薩'아래는 생각하기 어려움을 결론함이니, 겸하

여 앞에서 사람을 잡아 힐난한 것에 대함이다. 보살도 오

히려 생각할 수 없는데 하물며 人과 天이 볼 수 있겠는

가? 마음의 반연하는 相을 여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二十二種 공덕 중에 측량할 수 없는  몸이 있다.

第八十經에 이르길,


  "여래의 청정묘법신이여! 

   일체 삼계에서 짝할 이 없음이라.

   세간을 벗어난 언어로 말씀하시니, 

   그 性品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기 때문이로다.

   비록 의지하는 곳 없지만 머물지 않음도 없고, 

   비록 이르지 않음이 없으나 가지도 않음이라.

   허공 속에 그림을 꿈에 보는 것처럼,

   마땅히 佛體를 이와 같이 觀하라."


라고 하였으니, 眞身도 아니고 應身도 아니며, 一身도 아

니고 多身도 아닌 연유로, 그러므로 眞身·應身·一身·多

身 등이라는 생각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光明覺品」에 이르길, "佛身은 生함이 없어

戱論을 초월하시니, 이것은 五蘊이 모인 差別法이 아니

니라."라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 이르길, "물듦이 없고 집착하는 것도 없으며, 想도 없

고 의지함도 없어서, 體性을 헤아릴 수 없으니, 보는 자

가 다 칭탄하도다."라고 하였으니, 그러한 글이 하나가

아니다. 이미 '菩薩이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면 오직

부처님만의 境界임을 밝힘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