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六 / [3]

화엄행 2009. 3. 27. 03:43

2008/04/13 오후 10:24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六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2. 緣十義

     1) 引例總明

     2) 開章別釋

      ① 依時



      ② 依處


第二는 依處者라 夫智窮眞際에 能所兩忘이니

假說依眞而非國土니라

  第二는 處에 의지하는 것이다. 대저 지혜가 眞際

를 窮究함에 能과 所를 둘 다 잊었나니, '眞에 의지

하나 국토는 아니다'라고 假說하였다.
 


第二는 說經處라 疏文有四하니 第一은 總彰大意요

第二는 敍昔順違요 第三은 句數圓融이요 第四는 別

明處異라

初中에 有三하니 初는 拂迹顯實이요 二는 融通顯圓

이요 三은 依義建立이라

今初에 至而非國土는 卽拂迹顯實이니 謂旣亡能所

인댄 何有能依之佛과 所依之處리오

普賢三昧品에 云普賢身相如虛空하야 依眞而住非國

土라하니 猶是假說이니 以眞無能所하야 無可依故

니라


  第二는 經을 설한 곳이다. 疏文에 四가 있으니, 第一은

총히 대의를 드러냄이요, 第二는 과거의 順違을 서술함

이요, 第三은 句數로 圓融함이요, 第四는 처소가 다름을

따로 밝힘이다. 初 가운데에 三이 있으니, 初는 자취를

떨쳐서 實을 나타냄이고, 二는 融通하여 원만함을 나타

냄이고, 三은 뜻에 의지하여 건립함이다.

이제 初에 '그러나 국토는 아니다'까지는 곧 자취를 떨쳐

서 實을 나타냄이다. 이미 能과 所가 없거늘, 어찌 能依

의 佛과 所依의 處所가 있겠는가?

普賢三昧品에 이르길,

   "普賢의 身相이 허공과 같아서  
    眞에 의지하여 머무니 국토가 아니네"

라고 하였으나 이는 假로 說함이니, 眞은 能과 所가 없어

서 의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況刹塵이 卽入하며 染淨이 參融하니 圓滿敎

之普周를 難以分其處別아

  하물며 刹과 塵이 卽入하며, 染과 淨이 섞여 융합

하니, 圓滿敎가 널리 두루함을 그 처소를 나누어 구

별하기 어려움이겠는가?



況刹塵卽入下는 第二에 融通顯圓이라 無能所依는

尙通實頓二敎하니 實敎頓敎도 尙離處所어든 況於

圓敎耶아 刹塵卽入은 卽下通局交徹二四句요 染淨

參融은 卽下淨穢無碍二四句요 圓滿敎下는 總結難

思라

 '況刹塵卽入'아래는 第二의 融通하여 원만함을 나타냄

이다. 能依와 所依가 없음은 오히려 實과 頓의 二敎에 통

하니, 實敎와 頓敎도 오히려 처소를 여의었는데, 하물며

 圓敎에 있어서랴? 刹과 塵이 '相卽相入'함은 곧 아래

'通局交徹'의 二四句이고, '染淨參融'은 곧 아래 '淨穢無

碍'의 二四句이다. '圓滿敎'아래는 총히 생각하기 어렵다

고 맺음이다.





然이나 眞非事外라 不壞所依니 以上無時之時

로 遍此非處之處니라

  그러나 眞은 事의 밖이 아니기에 의지할 바를 무

너뜨리지 않으니, 위의 無時의 時로써 이 處 아

닌 處에 두루함이다.



然眞非下는 第三에 依義建立이니 不壞相故로 不妨

立時라 然이나 旨歸엔 約處先已有라 依此說經하고

後辨其時어니와 疏家는 欲順六成就之次第일새 故

先明時耳니라

  '然眞非'아래는 第三에 뜻에 의지하여 건립함이니, 서

로 무너뜨리지 않는 까닭으로 時를 세움을 방해하지 않

는다. 그러나 『旨歸』에서는 處를 잡음이 먼저 이미 있

었고, 이에 의지하여 경을 설하고 뒤에 時를 밝혔다.

疏家(청량국사 자신을 의미함.) 六成就의 차례를 따르고자

하므로, 먼저 時를 밝혔을 뿐이다.



然이나 有言此經이 在穢土說이니 居摩竭等♣(1)故라

하며 有云호대 處淨土說이니 在華藏故라하며 有云

호대 如實義者는 二種身土가 無定異處어든 卽於一

處에 見聞이 異故라하니

  그러나 어떤 사람이 말하길, "이 經은 穢土(五濁惡世인 衆

生世界를 상징한다.)
에 있으면서 설했으니, 마갈 등(摩竭 等)

에 거주하시기 때문이다."라 하며, 어떤 사람은 이르길,

"淨土(부처님의 常住處인, 眞의 佛國淨土를 의미함.)에 처하시어

설하신 것이니, 華藏世界에 계시기 때문이다."라고 하

고,  어떤 사람은 이르길, "實과 같은 義는 二種의 身土가

결코 다른 곳이 아니다. 즉 一處에서 보고 들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라 하였다.


♣(1) 摩竭等 ; 摩竭은 중인도에 있는 마갈타국을 말하며, 摩竭堤라고도 한다. 세존은 마갈타국의 니련선하 강가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시고, 이 나라의 임금은 세존을 위하여 죽림정사를 지어드리니, 이 곳에서 설법을 하시었다.
'等'이라 한 것은 세존께서 마갈타국 이외에서도 설법하시었기에,
'等'이라 한 것이다.


 

然有言下는 第二에 敍昔順違라 於中에 二니 先은

正敎요 後에 上之下는 決斷이라

前中에 第一師는 云호대 旣七處九會에 人三天四가

竝居娑婆欲界之中인댄 明是穢也라하며 第二師는

云호대 說此經時에 華藏世界가 六種震動이라하고

又言호대 其地堅固하야 金剛所成이요 娑婆는 土石

諸山이라하니 豈得將此爲穢리오하며 第三師는 但

合上無碍하니 謂感娑婆者는 對華藏而見裟婆하고

感華藏者는 對裟婆而見華藏이니 亦如♣(2)

所見自在天宮과 身子가 所見丘陵坑坎이라 華藏品

에 云호대 臂如見導師의 種種色差別이 隨衆生心行

하야 見諸刹亦然이라 하니라

  '然有言'아래는 第二에 옛적의 順과 違를 서술함이다.

그 중에 二니, 先은 바로 서술함이요, 後에 '上之'아래는

결단함이다. 

  前 가운데 第一師는 이르길, "이미 七處九會의 人三과

天四가 아울러 사바욕계 가운데에 거주한다고 하였다면 

穢土임을 밝힌 것이다.'라 하였다. 第二師는 이르길, "이

경을 설하실 때에 화장세계가 육종으로 진동하였다."고  

하고, 또 말하길, " '그 땅이 견고하여 금강으로 이루어진

바이다.'고 하고, '사바는 土石의 諸山이다'고 하였는데,

어찌 이를 가지고 穢土라 하겠는가?"라 하였다. 第三師

는 다만 (第一師와 第二師의 말)를 합하여 걸림이 없으니,

"사바세계를 感得하는 자는 화장세계를 대하여도 사바세

계로 보고, 화장세계를 감득하는 자는 사바세계를 대하

여도 화장세계로 보나니, 또한 마치 가 보는 자재

천궁과 身子가 보는 丘陵(언덕)坑坎(구덩이)  같다"고

한다. 「華藏品」에 이르길,

    "비유하면 導師(중생을 인도하는 스승)
     가지 가지의 色차별을 봄이
     중생의 心行을 따르는 것과 같이
     모든 刹을 봄도 또한 그러하네"

라고 하였다.


♣(2)(라계) ;  『淨明經(유마힐소설경)』의 「佛國品」가운데의 뜻으로, 梵語의 尸棄는 중국어로 寶頂, 寶, 螺라고 이름하는데, 즉 初禪天의 梵王(불교에서의 하느님을 의미한다.)이다. 自在天宮즉 제6欲天인 他化自在天宮이다.
(중략)... 묻기를, "범왕의 봄이 비록 욕계천과 같아도 오히려 穢土인데, 어떻게 淨義를 증명하곘는가?"라 하니, 답하길 "비록 淨이 아니더라도 단지 前은 根機를 따라 보는 바가 같지 않은 뜻을 증명함이다. 또 佛土는 참으로 淨하여 삼계를 초월하고 끊어졌으니, 어찌참으로 天宮世의 淨과 같은 뿐이리오? 이것은 대개 그 보는 바를 가지런히 말하였을 뿐이다."라 하였다. <『會玄記』新纂續藏經8. p.172中>




上之三義에 後一이 近宗이로다

  위의 세가지 뜻에 後一이 宗旨에 가깝다.



後는 決斷이라 言後一近宗者는 且知刹該淨穢니 卽

二四句中之一句라 未窮玄妙일새 故云近宗이니라

  後는 決斷함이다. '後一近宗'이라 한 것은 우선 刹이

淨과 穢를 해괄함을 아니, 곧 2종의 四句節 가운데 一句

이다. 현묘함을 아직 궁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러므

로 '宗旨에 가깝다(近宗)'라고 하였다.





然이나 說此經處- 淨穢無 하고 通局交徹하

니 各二四句니라

  그러나 이 경을 설한 곳이 淨土와 穢土에 걸림이

없고, 通과 局이 교철하니, 각각 두 가지 四句니

라.
 



然說此經處下는 第三에 句數圓融이라 於中에 有三

하니 一은 雙標요 二는 雙釋이요 三은 以?뺤옄例細니

初標는 可知라

  '然說此經處'아래는 第三에 句數로 원융함이다. 그 중

에 三이 있으니, 一은 쌍으로 標함이요, 二는 쌍으로 해

석함이요, 三은 거칠고 큰 것(?뺤옄 ; 거칠 추)으로써 미세하

고 작은 것()을 例함이다. 처음의 標는 알 수 있다.




初淨穢中에 謂或唯染이며 或唯淨이니 如前二

義요 或俱니 華藏內娑婆故요 或泯이니 染淨

相이 盡하야 同一法界故니라

  처음 淨과 穢 가운데에 혹은 '오직 染'이라 하며,

혹은 '오직 淨'이라 하니, 앞의 두 뜻과 같다. 혹 둘

다 있다(俱)고 하니, 華藏세계 內에 사바세계가 있

기 때문이다. 혹 둘 다 없다(泯)하니, 染과 淨의 相

이 다하여 同一한 法界이기 때문이다.+/6
 



初淨穢中下는 二에 雙釋이라 先釋染淨二四句니라

前一四句는 以本刹末刹로 相望하야 成四句라

華藏이 爲本刹이니 世尊修因하야 所嚴淨故요 刹種

所持世界가 爲末刹이니 應衆生有故라 然이나 末刹

則狹하고 本刹則寬하며 末通淨穢하고 本刹唯淨이

니라

若寬狹相望인댄 自屬通局이어니와 今論淨穢故로

但取末中染刹이니라 前二句는 可知라

  '初淨穢中'아래는 二에 쌍으로 해석함이다. 먼저 染과

淨의 두 四句를 해석함이다. 앞의 한 四句는 本刹과 末刹

로써 서로 바라보아서 四句를 이룬다. 華藏세계가 本刹

이 되니, 세존이 因을 닦아 嚴淨한 바이기 대문이요, 刹

種의 가지고 있는 세계는 末刹이 되니, 중생에 응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末刹은 즉 좁고 本刹은 즉 넓으며, 末

은 淨과 穢에 통하고, 本刹은 오직 淨일 뿐이다. 만약 넓

고 좁음으로 서로 바라보면 저절로 通과 局에 속하나, 이

제 淨과 穢를 논하는 까닭에 다만 末 중에서 染刹을 취했

을 뿐이다. 앞의 二句는 알 수 있다.




第三句는 雙明本末일새 故得稱俱니 不同前二의 說

華藏에 卽不言裟婆하고 說娑婆에 卽不論華藏이라

今要明華藏之內裟婆니 如一莊嚴城中에 擧一小室耳

라 上三은 皆約事明이니라

第四句는 唯約理說이니 若理事相望인댄 則前三句

가 皆末이요 第四句가 獨爲其本이라 故로 華藏品에

云호대 華藏世界海여 法界等無別이로다 莊嚴極淸

淨하야 安住於虛空等이라 하니라



 第三句는 쌍으로 本末을 밝힘이니, 그러므로 '둘 다 있

다(俱)'라고 칭한다. 前의 二句에 화장세계를 설함에 곧

사바세계를 말하지 않고, 사바세계를 설함에 화장세계

를 논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다. 지금은 반드시 華藏세계

內의 사바세계를 밝힘이니, 마치 한 莊嚴된 城 중에서

하나의 작은 방을 드는 것과 같다. 위의 三은 다 事를 잡

아서 밝힌 것이다.

第四句는 오직 理를 잡아 말함이니, 만약 理와 事가 서로

바라보면 곧 前의 三句가 다 末이 되고, 第四句만이 홀

로 그 本이 된다. 그러므로 「華藏品」에 이르길,

   "화장세계해여! 
    법계와 같아 차별이 없도다.
    장엄이 지극히 청정하여
    허공에 편안히 머무네..."

라고 하였다.




又或唯染이니 摩竭等이 覆淨相故요 或唯淨이

니 其地金剛이라 染相이 盡故요 或俱니 隱顯

無碍故요 或俱非니 各相形奪에 二相이 盡故

니라

  또 혹은 오직 染이니, 마갈 등이 淨相을 덮었기

때문이고, 혹은 오로지 淨이니, 그 땅이 금강이라서

染相(물든 모습)이 다하였기 때문이다. 혹은 둘 다

있으니(俱), 隱(숨음)과 顯(드러남)이 걸림이 없기

때문이고, 혹은 둘 다 없으니(俱非) 각기 서로 形相

을 빼앗음(奪)에 두 모습(二相)이 다하였기 때문이

다.



又或唯染下는 第二四句니 隨取一刹하야 卽有四句

라 不論本末染淨이니 今正約娑婆染刹上하야 論四

句也니 卽前三은 約淨穢虧盈이요 後一은 約相盡理

現이니라 若約機說者인댄 染은 就劣機見故요 淨은

就勝機見故요 俱는 約二人同見故니 刹體自在故요

俱非는 約頓機故니 亦唯約體故니라

  '又或唯染'아래는 第二의 四句니이다. 하나의 刹을 취

함에 따라서 곧 四句가 있다. 本末과 染淨을 논하지 않으

니, 지금은 바로 娑婆의 染刹土上을 잡아서 四句를 논함

이다. 즉 앞의 三은 깨끗하고 더러움과 이지러짐과 가득

함을 잡음이고, 後의 一은 相이 다하여 이치가 나타남을

잡은 것이다.

만약 機를 잡아 말한다면, 染은 下劣한 근기가 보는 것에
나아가기 때문이며, 淨은 수승한 근기가 보는 것에 나아

가기 때문이다. 俱(둘 다 있음)는 두 사람이 함께 보는 것

을 잡았기 때문이며, 刹體가 自在하기 때문이다. 俱非(둘

다 있지 않음)는 頓機를 잡았기 때문이며, 또한 오로

지 體만을 잡았기 때문이다.




次明通局交徹二四句者는

  다음은 通局이 交徹함의 두 四句를 밝힘이다.



次明通局二四句等者는 先標요 後釋이라

  '次明通局二四句 等'이라는 것은 先은 標함이요,

後는 해석함이다.
 



謂或局이니 此一界故요 或通이니 該十方故요 或俱

니 卽此卽遍故요 或泯이니 二相이 盡故라

  혹은 局執됨이니, 이 一界이기 때문이고, 혹 會通함이

니 시방(十方)을 해괄하기 때문이고, 혹 俱니(둘 다 있음)
곧 이 一界에 즉하고 遍(두루)에 즉하였기 때문이다. 혹

泯이니(둘 다 없음), 두 모습이 다하기 때문이다.



後釋中에 前四句는 約一重平漫以論이요 後四句는

約重重相攝以說이라 又前四는 約以人望處하야 論

通局이요 後四는 唯約說處하야 論通局이니라


뒤에 해석하는 가운데 앞의 四句는 一重으로 고루 넘침

(平漫)을 잡아 논함이고, 뒤의 四句는 거듭거듭 서로 섭

수함을 잡아 설함이다.

또 앞의 四句는 사람이 處所를 바라봄을 잡아 通과 局을

논함이요, 뒤의 四句는 오직 설하는 처소만을 잡아서 通

과 局을 논함이다.


 

前中에 初二句는 唯約相說이니 一은 謂此界七處에

說經이요 二는 謂十方諸刹에 齊說이요 三은 以相隨

性故로 卽一能遍이니 如光明覺品이라 彼云호대 如

此處에 見佛世尊이 坐蓮華藏師子之座하야 十方一

切諸世界中에 各有百億閻浮提의 百億如來도 亦如

是坐라하니 此는 明一會가 卽遍一切라 非是彼處에

各別有佛이니라 四는 卽歸理平等이라



前 가운데에 初 二句는 오직 相만을 잡아 설함이니, 一은

이 世界의 七處에서 경을 설함을 말하고, 二는 시방의 모

든 刹에서 똑같이 설함을 말하며, 三은 相이 性을 따르는

까닭으로 곧 一이 능히 두루하니, 「光明覺品」과 같다.

저 品에 이르길, "이 곳에서 불세존이 연화장사자의 자리

에 앉아 계심을 보는 것과 같이, 시방의 일체 모든 세계

가운데에 각각 백억염부제의 백억여래도 또한 이와같이

앉아 계심을 본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一會가 곧 일체에 두루함을 밝힌 것이요, 그 처소

에 각각 다른 부처님이 계심을 밝힌 것은 아니다.

四는 즉 이치가 평등함에 돌아감이다.




又或局이니 此界가 攝一切故요 或通이니 此

가 入一切故요 或俱니 卽攝卽入故요 或泯이

니 形奪相盡故라

  또 혹은 局執됨이니 이 界(사바세계)가 일체를

섭수하기 때문이요, 혹 會通함이니 이것이 일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혹 俱(둘 다 있음)니 卽攝 卽入

하기 때문이다. 혹 泯(둘 다 없음)이니 형상을 빼앗

기고 모습이 다하였기 때문이다. 



後四句中에 初一은 約廣容門이니 事含於理하야 無

碍故로 令一界卽理하야 能攝一切라 二는 約普遍門

이니 事如理遍일새 令此一界로 隨所依理하야 入一

切刹이라 三은 廣容이 卽普遍故로 正攝之時에 便能

遍入이니 於此二門에 無異體故라 四는 泯同平等門

이니 法界之中에 俱不可得故니라

  後의 四句 중에 初一은 廣容門을 잡음이니, 事가 理를

含容하여 걸림이 없는 까닭으로 한 世界로 하여금 理에

즉하여 능히 일체를 섭하게 한다.

二는 普遍門을 잡음이니 事가 理에 두루하여 이 한 世界

로 하여금 의지한 바 이치를 따라서 일체의 刹에 들어가

게 한다.

三은 廣容(널리 함용함)이 곧 普遍(널리 두루함)하기 때

문에, 바로 섭수하는 때에 문득 능히 두루 들어갈 수 있

으니, 이 二門에 體가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四는 泯絶하여 平等門과 같으니, 法界의 가운데서 둘 다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又以一塵例刹에 亦有四句하니 可知니라

  또 一塵으로써 刹을 例함에 또한 四句가 있으니,

알 수 있다.



又以一塵下는 三에 以?뺤옄例細也니 引文은 如前依正

融通中說하니라

  '又以一塵'아래는 三에 크고 거친 것(?뺤옄)으로써 미세한

것을 例하함이다. 인용할 글은 앞에서 依報와 正報의 融

通한 가운데서 말한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