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六 / [2]

화엄행 2009. 3. 27. 03:41

2008/02/14 오후 10:18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六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五에 收異類劫者는 謂長劫이 攝短劫等이라
○六에 以念攝劫者는 於一念中에 卽攝無邊同異類劫하고 念念이 皆爾라
○七에 劫念重收者는 此上念念所攝劫中에 各以念成하고 彼一一念도 亦各攝諸劫이니 是則念念이 旣其不盡이라 劫劫도 亦復無窮이니 如因陀羅網이 重重無盡也라 

  ○五에 '收異類劫'이라는 것은 長劫이 短劫을 섭수하는 등이다.
  ○六에 '以念攝劫'이라는 것은 一念 가운데에 곧 가이없는 同類劫과 異類劫을 섭수함이다. 念과 念이 다 그러하니라.
  ○七에 '劫念重收'라는 이 위의 念과 念이 섭수한 劫 가운데에 각각 念으로 이루어지고, 저 낱낱 念도 또한 각각 모든 劫을 섭수하니, 이것은 즉, 念과 念이 이미 다하지 않음이다. 劫과 劫도 또한 다시 다함이 없으니, 마치 인다라망이 거듭거듭하여 다함이 없는 것과 같다. 


○八에 異類界時者는 上之七重은 且約一類世界인댄 如今娑婆一類어니와 今辨樹形江河形等의 無邊異類之刹에 刹旣同處나 而有不同時며 亦同時而各別分齊하니 盡彼時分하야 常說此經이라
○九에 彼此相入者는 卽彼異類界의 所有時劫이 亦各別相收하며 或同異類界時가 互相攝入이라 若念若劫이 重重無盡하야 同前四五六七이니 於彼諸時에 常說此經이라


  ○八에 '異類界時'라는 것은 위의 七重이 우선 한 종류의 世界를 잡는다면 지금의 '娑婆' 한 종류와 같거니와, 이제 나무의 모양과 江과 河川의 모양 등의 가이없는 異類의 刹에 刹은 이미 處所가 같으나 時가 같지 않음이 있으며, 또한 時가 같으나 각기 分齊를 달리함을 분별하니, 그것의 時分을 다하도록 항상 이 경을 설하신다.
  ○九에 '彼此相入'이라는 것은 곧 저 異類界의 있는 바 時와 劫이 또한 각각 달리 서로 거두어들이며, 혹 同異類界時와 異類界時가 서로 섭수하여 들임이다. 저 念과 저 劫이 중중무진하여 前의 四(攝同類劫)·五(收異類劫)·(以念攝劫)·(劫念重收)과 같으니, 저 모든 때에 항상 이 경을 설한다. 


○謂以非劫爲劫者는 第十難見일새 故以此句로 釋之라 以非劫爲本인댄 劫卽爲末이니 言非劫者는 離分限故라 如華藏世界가 以非劫爲劫에 劫卽非劫이라 念等도 亦爾하니 以時無長短하야 離分限故며 以染時分으로 說彼劫故라 以時無別體하야 依法上立이니 法旣融通이라 時亦隨爾니라 故로 離世間品에 云호대 菩薩摩訶薩이 知一切劫이 卽是非劫하야 而眞實說一切劫數가 是爲第六無等住라하니 故로 云호대 非劫爲劫이니라

  ○'謂以非劫爲劫'이라는 것은 第十은 보기 어려우니, 그러므로 이 句로써 해석한다.
劫이 아닌 것으로써 本을 삼는다면 겁이 곧 末이니, '非劫'이라 말한 것은 分限을 여의였기 때문이다. 화장세계가 非劫으로써 劫을 삼음에, 劫이 곧 非劫인 것과 같다. 念 등도 또한 그러하니, 때에 길고 짧음이 없어서 分限을 여의였기 때문이며, 染時分으로써 저 劫을 설하기 때문이다. 때는 별도의 體가 없으므로 法上을 의지하여 세웠기에, 법이 이미 융통하니 때도 또한 따라서 그러하다. 그러므로 『離世間品』에 이르길, "보살마하살이 일체겁이 곧 劫이 아님을 아시어, 진실로 '일체의 劫數가 第六無等住다'라고 설하신다."라 하였다. 그러므로 '非劫으로 劫을 삼는다'고 하였다.



於前十時에 恒演此經이니라
  前의 十時에 항상 이 경을 설했나니라. 


三은 結이라 於此無量時劫에 常說華嚴이라
  三은 결함이다. 이 무량한 時와 劫에 항상 화엄을 설하신다.


又此十種이 隨一圓收니
  또 이 十種이 하나를 따라 원만히 거두니 



又此十種者는 此下는 第三에 融會也라 於中에 三이니 初에 又此二句는 正融會也라

  '又此十種'은 이 아래는 第三에 원융하여 會通함이다. 그 중에 三이니, 처음에 '又此 二句'는 바로 원융하여 會通함이다.


依此說時인댄 則無始終이언마는 亦隨見聞하야 說初成等이니 如前法爾中辨이니라

  이 설하는 때를 의지하면 始(처음)과 終(끝)이 없건마는, 또한 보고 들음에 따라서 처음 成道 등을 말하였으니, 앞에 '法이 그러하여'가운데서 밝힌 것과 같다. 


二에 依此說時下는 通妨難이라 此上은 牒疑情이니 旣無始終인댄 何有初成之始와 九會之終이리오

  二에 '依此說時'아래는 비방과 힐난을 통하게 함이다. 이 위는 疑情(의심하는 뜻)牒釋(文書的으로 해석하는 것.)함이니, 이미 처음과 끝이 없다면 어찌 初成(처음 成道)의 시작(始)과 九會의 끝(終)이 있겠는가?

亦隨見聞下는 會釋也니 疏指前通하니라 又此一部가 卽是無邊法海니 以下皆結通이 無分齊故며 一部가 卽是一切說故니라

  '亦隨見聞'아래는 會通하여 解釋함이니, 疏가 前과 통함을 가리킴이다. 또 이 一部가 곧 가이없는 法海이니, 아래에서 모두 結하여 통하게 함은 分齊가 없기 때문이며, 一部가 곧 一切說이기 때문이다.



若依此時인댄 則逈異餘敎라 而餘敎時가 不出於此이언마는 或說三七六七等은 隨見聞故니라

  만약 이 때를 의지한다면 나머지 가르침과 훤출히 다르다. 나머지 가르침의 때(時)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혹 三七·六七日 等이라 설함은 見聞(보고 들음)을 따랐기 때문이다.



若依此時下는 三에 顯勝能이라 於中에 又三이니 初는 揀他顯勝이요

   '若依此時'아래는 三에 殊勝한 功能을 나타냄이다. 그 중에 또한 三이니, 처음은 他를 간별하여 수승함을 나타냄이다.


○次는 而餘敎下는 會他顯勝이요
○後는 或說下는 再通妨難이라 難云호대 彼有三七等殊어늘 云何不出於此리오할새 故今通云호대 皆是此經之時니 隨見聞故라하니라

  ○'次에 而餘敎'아래는 他를 회통하여 수승함을 나타냄이다.
  ○'後에 或說'아래는 다시 비방가 힐난을 통하게 함이다. 힐난하여 이르길, "그것에는 三七日 등의 다름이 있는데, 어찌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는가?"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회통하여 이르길, "모두 이 經의 時이니, 보고 들음을 따랐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廣如旨歸하니라
  자세하게는 『旨歸』와 같다.

廣如下는 四出法之源이라
  '廣如'아래는 四에 법의 근원을 냄이다.



 依時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