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五 / [6]

화엄행 2009. 3. 27. 03:36

2007/07/24 오후 12:33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五

             唐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十에 利今後者는 旣等有其分이라 故로 廣利

無邊이니라

  十에 今과 後를 이익하게 한다는 것은 이미 평등히 그 分이 있음이라. 그러므로 널리 이롭게 함이 끝이 없다.


十에 利今後者는 文中에 亦二니 先은 前總辨이라

  十에 ‘利今後’라는 것은 文 가운데 또한 둘이 있으니, 先은 앞을 攝收하여 총히 가려냄이다.



 

此亦二種이니 一은 利今이니 卽佛在當機요

二는 利後니 卽今之聞見이니 發心品에 云호

대 我等諸佛이 護持此法하야 令未來世一切菩

薩의 未曾聞者로 皆悉得聞이라하니라

  이것도 또한 二種이 있다. 一은 지금을 이롭게 함이니, 곧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던 當時의 根機요, 二는 후를 이롭게 함이니, 곧 지금 보고 듣는 자이다. 「初發心功德品」에 이르기를, “우리들 모든 부처가 이 법을 護持하여 미래세의 일체 보살이 일찍이 듣지 못한 자로 하여금 다 듣게 하리라.”고 하였다.


後此亦下는 開章別明이라 文分爲三호리라
初는 約時分二니 可知라 次는 此益復二下는 約行分二요 後는 又此利益下는 對前辨異니라

  後에 ‘此亦’아래는 章을 열어 따로 밝힘이다. 글을 三으로 나누리라.
  初는 時를 잡아 둘로 나눔이니, 알 수 있다. 다음에 ‘此益復二’아래는 行을 잡아 둘로 나눔이고, 後에 ‘又此利益’아래는 前에 대하여 다름을 辨別함이다.


 

此益이 復二니 一은 令得見聞하야 爲堅種故

니 出現品에 云호대 如人이 食少金剛에 終竟

不銷等이니라

  이 이익이 다시 둘이 있다. 一은 見聞을 얻게 하여 종자를 굳건하게 하는 때문이다. 「如來出現品」에 이르기를, “마치 어떤 사람이 조그마한 金剛을 먹음에 마침내 소화하지 못함과 같다.....”등이라 하였다.


二中에 疏云호대 終竟不銷等者는 等取餘句니 餘句에 云호대 要穿其身하야 出在於外하나니 何以故오 金剛이 不與肉身雜穢로 而同止故니라 於如來所에 種少善根도 亦復如是하야 要穿一切有爲諸行煩惱身過하야 到於無爲究竟智處하나니 何以故오 此少善根이 不與有爲諸行煩惱로 而共住故라하니라

  二 중에 疏에 이르길 ‘終竟不銷等’이라는 것은 나머지 句를 等取함이니, 나머지 句에 이르길, “그 몸을 꿰뚫고 밖으로 나와야 하니, 무슨 까닭인가? 金剛이 肉身의 雜穢(잡되고 더러움)와 더불어 함께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如來의 處所에 조그마한 善根을 심은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반드시 일체 有爲의 諸行煩惱의 몸을 뚫고 지나가 無爲의 究竟止處에 이르나니, 무슨 까닭인가? 이 적은 善根이 有爲의 諸行煩惱와 더불어 함께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二는 令起行하야 成證入故니 出現에 又云호

대 設有菩薩이 無量百千億那由他劫에 行六波

羅蜜하야 修習種種菩提分法이라도 若未聞此

如來不思議大威德法門커나 或時聞己코도 不

信不解하며 不順不入이면 不得名爲眞實菩薩

이니 以不能生如來家故어니와 若聞此法하고

信解隨順悟入하면 當知하라 此人은 生如來家

하며 乃至深入如來無境界라하니라

  二는 行을 일으켜서 證入을 이루게 하기 때문이다. 「如來出現品」에 또 이르길, “설사 어떤 보살이 무량한 백천억나유타겁에 육바라밀을 행하여 가지가지 菩提分法을 닦아 익혔다 하더라도, 만약 이 여래의 不思議大威德法門을 듣지 못했거나, 혹 들었더라도 믿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며 따르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으면 참된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하나니, 능히 如來家에 태어나지 못하는 까닭이니라. 만약 이 법을 듣고 信解하고 隨順하여 깨달아 들어가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如來家에 태어나며, 내지 여래의 걸림없는 경계에 깊이 들어가느니라.”라고 하였다.




二에 令起行成證入故下는 文에 二니 初는 正釋이요 二는 釋成이라
今初라 疏云호대 乃至深入如來等者는 中間經에 云호대 隨順一切如來境界하며 具足一切諸菩薩法하며 安住一切種智境界하며 遠離一切諸世間法하며 出生一切如來所行하며 通達一切菩薩法性하며 於佛自在에 心無疑惑하야 住無師法하며 深入如來無境界라하니 故云乃至니라

  二에 ‘令起行成證入故’아래는 글에 둘이 있다. 처음은 바로 해석함이고, 二는 이루어짐을 해석함이다.
  지금은 初이다. 疏에 이르길 ‘乃至深入如來’라 한 等은 中間의 經에 이르길, “일체 여래의 경계를 수순하며, 일체 모든 보살법을 구족하며, 一切種智의 경계에 안주하며, 일체 모든 세간법을 멀리 여의며, 일체여래의 행한 바를 내며, 일체 보살의 法性을 통달하며, 佛自在에 마음의 의혹이 없어서 스승이 없는 法에 머물며, 여래의 걸림이 없는 경계에 깊이 들어가느니라.”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乃至’라고 말하였다.



 

良以有作之修는 多劫이라도 終成敗壞어니와

無心體極이면 一念에 便契佛家니 賢首品에

云호대 十刹塵數如來所에 悉皆承事盡一劫이

라도 若於此品能誦持하면 其福最勝過於彼等

이라하니라

  진실로 지음이 있는 닦음은( ; 有爲法으로 닦음을 의미함.) 多劫이라도 마침내 敗壞를 이루나, 無心으로 體達하여 끝까지 다하면 一念에 문득 佛家에 契合하나니, 「賢首品」에 이르길,
 “十佛刹 티끌 수 같은 여래 처소에서
  모두 다 一劫이 다하도록 받들어 섬기더라도
  만약 이 品을 능히 誦指한다면
  그 복이 가장 殊勝하여 그것들보다 낫다네.”
라 하였다.


良以有作下는 二에 釋成이라

  ‘良以有作’아래는 二에 이루어짐을 해석함이다.



 

又此利益은 別對前九하면 成十種益이니 謂一

은 聞法爾하면 則知常遍하야 成見聞益이

요 二는 聞本行願하고 學佛發興하면 成發心

益이요三은 聞機感하고 知法由善起하면 成造

修益이요 四는 聞爲本하고 知其義圓하면 成

頓得益이요 五는 聞果德하면 則信樂願齊하야

成滅障益이요 六은 聞位하고 期心證入하면

成攝位益이요 七은 聞行하고 發意修行하면

成起行益이요 八은 聞法하고 決須解了하면

成稱性益이요 九는 聞因하고 知一切皆同하면

成轉利益이요 十은 總具前九하면 成速證益이

라 故前九因이 皆爲今益이라

  또 이 이익은 따로 前의 九에 對하면 열 가지 이익을 이루나니, 一은 법이 그러함을 들으면 항상하고 두루함을 알아 見聞益(보고 듣는 이익)을 이룸이요, 二는 근본 行願을 듣고 佛을 배워 發興하면 發心益을 이룸이요, 三은 機가 感應함을 듣고 법이 善으로 말미암아 일어남을 알면 造修益(수행을 지어가는 이익)을 이룸이요, 四는 근본이 됨을 듣고 그 뜻이 원만함을 알면 頓得益(몰록 터득하는 이익)을 이룸이요, 五는 果德을 듣고 곧 믿고 즐겨서 같아지기를 원하면 滅障益(장애를 소멸하는 이익)을 이룸이요, 六은 位를 듣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들어가기를 기약하면 攝位益(位를 攝收하는 이익)을 이룸이요, 七은 行을 듣고 뜻을 발하야 수행하면 起行益(行을 일으키는 이익)을 이룸이요, 八은 법을 듣고 결정코 모름지기 이해하고 了達하면 稱性益(性에 稱合하는 이익)을 이룸이요, 九는 因을 듣고 일체가 모두 같은 줄을 알면 轉利益(利로 轉變하는 이익)을 이룸이요, 十은 총히 前의 九를 갖추면 速證益(빨리 證得하는 이익)을 이룬다. 그러므로 앞의 九因이 모두 지금의 이익이 된다.


又此利益下는 對前辨異라 所以辨異者는 亦爲揀濫故니 以利今後義가 似順機感이니 機感도 亦有二世機故라 故로 上에 又明約行分二에 已是異前이니 但約時故니라 又順機는 多約於所요 利益은 多約於能이니라
又順機는 但是別義요 利益은 通於十義하니 卽總別之異라 故로 對前九하야 別成斯十益也니라 於中에 二니 先은 別對前이요 後에 亦可已下는 通申本義라

 
  ‘又此利益’아래는 前을 대하여 다름을 밝힘이다. 다름을 밝히는 까닭은 또한 揀濫(잘못을 가려냄)하기 위해서이니, 지금과 後를 이익되게 한다는 뜻이 機를 따라 感應하는 것과 유사하다. 機의 感應도 또한 二世의 機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에 또 ‘行이 둘로 나누어짐을 잡은 것’에서 이미 前과 다름을 밝혔으니, 앞에서는 다만 時만을 잡았기 때문이다.
  또 ‘順機(機를 따름)’는 흔히 所(對象)를 잡은 것이고, 이익은 흔히 能(主體)을 잡음이다. 또 ‘順機’는 다만 별도의 뜻이고 이익은 十義에 통하니, 곧 總과 別이 다르다. 그러므로 前의 九에 대하여 달리 이 十利益을 이룬다. 그 가운데 두 가지가 있으니, 先은 따로 前에 대함이고, 後에 ‘亦可’이하는 통틀어 本義를 펼침이다.


 

今初라 此十種益이 出於旨歸로대 但次第不同耳니라 彼次第에 云호대 一은 見聞益이요 二는 發心益이요 三은 起行益이요 四는 攝位益이요 五는 速證益이요 六은 滅障益이요 七은 轉利益이요 八은 造修益이요 九는 頓得益이요 十은 稱性益이라하니 此는 依從淺至深과 自利利他等하야 以爲其次니라
今疏는 順前九門하야 展轉相生이니 後能成前으로 以爲次第耳니라 然이나 見聞等이 實通十因이나 欲顯別義하야 隨便逐勝하야 以別配耳니라

  이제는 初이다. 이 열 가지 이익이 「旨歸」(賢首法藏이 찬술한 「華嚴經旨歸」를 말한다.)에서 나왔으나, 다만 차례가 같지 않을 뿐이다. 그 차례에서 이르길, “一은 見聞益이요, 二는 發心益이요, 三은 起行益이요, 四는 攝位益이요, 五는 速證益이요, 六은 滅障益이요, 七은 轉利益이요, 八은 造修益이요, 九는 頓得益이요, 十은 稱性益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얕은 곳으로부터 깊은 곳에 이르는 것과 自利利他 등에 의지하여 그 차례를 삼았다.
  이제 疏는 前의 九門을 따라서 展轉히 서로 生하니, 後가 능히 前을 이룸으로 차례를 삼았을 뿐이다. 그러나 見聞 등이 실로 十因에 통하나 별도의 뜻을 나타내고자 하여 편의에 따라 殊勝함을 좇아서 따로 배대하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