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六 / [1]

화엄행 2009. 3. 27. 03:39

2008/02/14 오후 7:40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六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三章. 開章釋文 (正宗分)
  第一節. 敎起因緣
  
第一. 生起大意
   
第二. 開章別釋
     1. 因十義
      1) 法應爾故 ~ 3) 順機感故
      4) 爲敎本故 ~ 10) 利今後故

↓卷第六 시작
     2. 緣十義
      1) 引例總明 ~ 2) 開章別釋
        ① 依時 ~ ② 依處


    2. 緣十義
     1) 引例總明



第二는 明說經緣者라 一切經首에 說時方人
等이 皆是緣起니라
 
第二는 경을 설한 연을 밝히는 것이다. 모든 經의 첫머리에 時·(方處)·人 등을 설한 것은 다 緣이 일어남이다. 
 

第二에 明說經緣等者는 疏文分二호리니 先은 引例總明이요 後는 開章別釋이라
前中에 謂六成就中에 信聞二種은 屬於阿難하니 在佛滅後結集時安이라 不爲經緣이어니와 餘四成就는 爲經緣起니 說必依時오 要有方處요 人通說聽이라 卽佛及衆이니 四義足矣로다
問智論에 云說時方人은 令生信故라 하야늘 何以로 今言爲緣起耶아
答이라 六中에 初二는 唯屬證信이요 後四는 義有兩兼하니 阿難이 引之는 爲生物信이나 當時無此면 敎不得興일새 故로 爲緣起니 今十緣中에 具有此四하니라

  第二에 '明說經緣等'은 疏文을 둘로 나누리니, 先은 例를 인용하여 총히 밝힘이고, 後는 章을 열어 따로 해석함이다.
前 중에서 '六成就中에 信(믿고)·聞(들음) 二種은 아난에게 속하니, 부처님 멸도 후 결집하는 때에 안치한 것이라 經의 緣이 되지 않거니와, 나머지 四成就는 經의 緣起가 되니, 설함은 반드시 때에 의지하여야 하고, 반드시 方處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說하는 主(설하는 사람)聽하는 主(듣는 사람)에 통함이다. 즉 부처님과 대중이니, 네가지 뜻이 구족하다.
 "『智論』에 이르길, "時·方·人을 말함은 중생들의 믿음을 내게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지금 (경을 설하는) 緣起가 된다고 말하는가?"라고 묻는다. 답한다. 六成就 중에 初二는 오직 證信에 속하고, 後四는 뜻에 두가지를 겸하고 있다. 아난이 그것을 인용함은 중생의 신심을 내게 하기 위함이나, 당시에 이것이 없었다면 敎가 興하지 못하니, 그러므로 緣起가 된다. 이제 '十緣' 가운데에 이 넷을 갖추고 있다.



     2) 開章別釋


今有十緣하니 一은 依時요 二는 依處요 三
은 依主요 四는 依三昧요 五는 依現相이요
六은 依說者요 七은 依聽者요 八은 依德本
이요 九는 依請者요 十은 依加者니라

  이제 十緣이 있으니, 一은 依時요(時에 의지함이요), 二는 依處요(處所에 의지함이요), 三은 依主요(敎主에 의지함이요), 四는 依三昧요(三昧에 의지함이요), 五는 依現相이요(現相에 의지함이요), 六은 依說者요(說하는 사람에 의지함이요), 七은 依聽者요(듣는 자에게 의지함이요), 八은 依德本이요(德의 근본에 의지함이요), 九는依請者요(請하는 사람에게 의지함이요), 十은 依加者라(加被하는 분에게 의지함이다). 


今有十緣下는 開章別釋中에 二니 先列요 後釋이라 先列은 可知라 今初依下는 釋이라 疏文分四호리니 一은 大意요 二는 開章이요 三은 融會요 四는 廣如旨歸♣(1)一句는 出法源이니라

  '今有十緣'아래는 章을 열어 따로 해석하는 가운데에 二니, 先은 열거함이고 後는 해석함이다. 먼저 열거함을 알 수 있다. '今初依'아래는 해석함이다. 疏文을 四로 나누리니, 一은 大意요, 二는 開章이요, 三은 圓融하게 會通함이요, 四는 '廣如旨歸(자세한 것은 『旨歸』와 같다)'의 一句는 법의 근원을 냄이다.

♣(1) 廣如旨歸 : 華嚴宗 第三祖인 현수法藏(643~712)이 지은 『華嚴經旨歸』를 말한다. 여기서 法藏은 다음의 10가지를 말하였다.
1. 經을 설하는 뜻. 2. 경을 설하는 時. 3. 경을 설하는 佛. 4. 경을 설하는 대중. 5. 경을 설하는 威儀. 6. 경의 가르침을 변별함.
7. 경의 뜻을 나타냄. 8. 경의 뜻을 해석함. 9. 경의 이익을 밝힘. 10. 경이 원만함을 보임.




       ① 依時
 

今初는 依時라 夫心冥至道면 則渾一古今이요 法界는 無生이라 本亡時分이니 下經偈에 云호대 如來得菩提는 實不繫於日이라 하니라

  이제 初는 때(時)에 의지함이다. 대저 마음이 지극한 도에 (그윽히 계합함)하면 古今이 혼융하게 하나요, 法界는 생겨남이 없어 본래 時分이 없으니, 下經의 偈頌에 이르길,
  "여래가 보리를 얻음은
   진실로 날에 얽매이지 않네."
라 하였다. 


大意中에 二니 先은 拂迹顯實이요 後는 就德顯圓이라
前中에 言夫心冥至道인댄 則混一古今者는 此는 約人顯實이니 心與理冥契면 則無古今之相이라 故로 肇公이 云호대 古今이 通하고 始終이 同하니 窮本極末이면 浩然大均이라 하며 生公의 法華疏에 云호대 古亦今也요 今亦古矣라 하니라


  大意 중에 둘이 있다. 先은 자취를 떨쳐버리고 實을 드러냄이요, 後는 德에 나아가 원만함을 나타냄이다.
前 중에 '夫心冥至道 則混一古今'이라 말한것은 사람을 잡아 實을 나타냄이다. 마음과 이치가 그윽히 契合하면 古今의 모습(相)이 없다. 그러므로 肇公이 이르길, "고금이 통하고 始終이 같으니, 本을 다하고 末을 다하면 浩然하여 크게 고르다" 고 하였으며, 生公의 「法華疏」에 이르길, "古가 또한 今이요, 今도 또한 古이다."♣(2) 라 하였다. 

♣(2)  이것은 古今의 時가 정하여짐이 없음을 의미한 것이다.


○言法界無生等者는 約法顯實也니 有生則屬三世라 便卽有時어니와 無生則無三世刹那어니 安有時分이리오 故로 出現品에 云호대 眞如는 離妄恒寂靜하니 無生無滅하야 普周遍等이라 하니라

  ○'法界無生等'이라 말한 것은 法을 잡아 實을 나타냄이다. 生함이 있으면 三世에 속하니, 문득 곧 時가 있거니와, 생함이 없으면 삼세와 찰나도 없으니, 어찌 時와 分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如來出現品』에 이르길,
   "眞如는 妄을 떠나 항상 寂靜하니,
    생함이 없고 멸함도 없어 널리 두루하네."
라 하였다.

 

○言下經偈云下는 引經證이니 略擧人證耳라 卽兜率寶幢偈也니 彼에 具云호대 衆生이 如是說호대 某日에 佛成道라 하나니 如來得菩提는 實不繫於日이라 하니라 法界品에 云호대 菩薩智輪은 遠離一切分別網하며 超越一切障碍山하야 不可以生死長短染淨劫數로 顯示等이라하니 其文이 非一이니라

  ○'下經偈云'이라 말한 아래는 경을 인용하여 증명함이다. 간략히 사람을 들어 증명할 뿐이다. 곧 『兜率宮中偈讚品寶幢보살의 偈頌이다. 저기에 갖추어 이르길,
   "중생이 이와같이 말하길,
    '某日에 부처님이 성도하시었다'고 하나,
    여래가 보리를 얻음은
    실로 날에 얽매이지 않네."
라고 하였다.
法界品』에 이르길, "菩薩의 智輪은 멀리 일체 분별의 그물을 멀리 여의고, 일체 장애의 산을 초월하여 가히 生死·長短·染淨·劫數로 나타내 보일 수 없느니라 ..."라 하였으니, 그러한 글이 하나가 아니다.


況無涯之說이 念劫圓融哉아
  하물며 無涯의 說이 念과 劫에 원융함이겠는가!

況無涯之說等者는 第二에 就德顯圓이라 無涯之說은 竪約長時니 故로 旨歸에 云호대 常恒之說은 前後際而無涯라 하니라 念劫圓融者는 約一念이 卽不可盡이니 一念이 卽無量劫이요 無量劫이 卽一念等일새 故로 云爾也라 一念이 卽多劫이어니 何定時之長短哉아

  '況無涯之說等'이라는 것은 第二의 德에 나아가 원만함을 나타냄이다. '無涯의 설'은 竪로(수직적, 즉 시간적을 의미한다.) 長時를 잡았으니, 그러므로 旨歸』에 이르길, "常恒의 설은 前際와 後際가 걸림이 없다"고 하였다.
'念劫圓融'이라는 것은 一念이 곧 다할 수 없음을 잡았으니, 일념이 곧 무량겁이요 무량겁이 곧 일념 과 같다. 그러므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일념이 곧 다겁이니, 어찌 때의 길고 짦음을 정하겠는가?


今以無時之時로 略顯十重時別호리니
  이제 無時의 時로써 十重으로 時가 다름을 나타낸다.


今以無時之時로 略顯十重時別者는 此下는 第二에 開章解釋也라 就中에 三이니 初에 上二句는 標요 次에 初唯下는 釋이요 後에 於前下는 結이라

  '今以無時之時 略顯十重時別' 아래는 第二에 章을 열어 해석함이다. 그 중에 나아가 三이 있다. 初에 위의 二句는 標요, 다음에 '初唯'아래는 釋이요, 後에 '於前'아래는 結이다.

 

初는 唯一念이요 二는 盡七日이요 三은 遍三際요 四는 攝同類劫이요 五는 收異類劫이요 六은 以念攝劫이요 七은 劫念重收요 八은 異類界時요 九는 彼此相入이요 十은 以本收末이니 謂以非劫爲劫故라

  처음은 오직 일념이요, 二는 칠일에 다함이요, 三은 三際에 두루함이요, 四는 同類劫을 섭수함이요, 五는 異類劫을 거두어들임이요, 六은 念으로써 겁을 섭수함이요, 七은 劫과 念을 거듭 거두어들임이요, 八은 異類界의 時요, 九는 彼此가 相入함이요, 十은 本으로써 末을 거두어 들이니, 劫 아닌 것으로써 劫을 삼기 때문임을 일컫는다. 


二는 釋이라 初唯一念者는 謂於一刹那에 頓遍無盡之處하야 說無邊法이라 二에 盡七日者는 謂初成道하사 一七日中에 自受法樂하시고 第二七日에 頓說此經이라 言三遍三際者는 謂盡前後際하야 各無邊劫에 常恒周遍하야 演說此經호대 初無暫息이라 上三은 易故로 疏但列名而已니라 言四攝同類劫下는 以義稍隱일새 故로 竝加字니 旨歸엔 但云四는 攝同類요 五는 收異劫요 六은 念攝劫이요 七은 復重收요 八은 異界時요 九는 彼此相入이요 十은 以本收末이라하니 今加一字에 義則易見일새 故竝不釋하고 唯釋第十耳니라

  二는 해석이다. 처음에 '唯一念'이라는 것은 一刹那에 몰록 다함이 없는 처소에 두루하여 가이없는 법을 설함을 말한다. 二에 '盡七日'이라는 것은, 처음 성도하시어 一七日 중에 스스로 法樂을 받으시고 第二七日에 몰록 이 경을 설하심을 말한다. 三에  '三遍三際'라 말한 것은 前際와 後際를 다하여 각각 가이없는 겁에 항상 두루하여 이 경을 연설하되, 처음에 잠깐도 휴식함이 없음을 말한다. 위의 三은 쉬운 까닭에 疏에서는 다만 이름만 나열했을 뿐이다.  四에 '攝同類劫'이라 말한 아래는 뜻이 조금 숨겨져 있으니, 그러므로 아울러 글자를 더하였다.
『旨歸』에선 다만 이르길, "四는 同類를 攝收함이고, 五는 異類劫을 거두어들임이며, 六은 念이 劫을 섭수함이요, 七은 다시 거듭하여 거두어들임이고, 八은 異界의 時이며, 九는 彼此가 相入함이요, 十은 本으로써 末을 거두어들임이다."라고만 하였으니, 이제 한 글자를 보태어 뜻이 곧 쉽게 보인다. 그러므로 함께 해석하지 않고 오직 第十만을 해석했을 뿐이다. 


○攝同類劫者는 於前無邊劫이 各攝同類니 如長劫은 唯攝長劫하고 短劫은 唯攝短劫等이라 

 ○'攝同類劫'이라는 것은 전에 가이없는 겁이 각기 동류를 섭수함이니, 長劫은 오직 長劫만을 섭수하고, 短劫은 오직 短劫만을 섭수하는 등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