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五 / [2]

화엄행 2009. 3. 27. 03:29

2007/06/10 오후 7:15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五

             唐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五에 顯果德者는 謂此本法中에 顯佛勝德하야

令諸菩薩로 信向證故니 不識寶玉이면 不得其

用이라♣(1)
不知此德이면 安能仰求리오

  五에 果德을 나타낸다는 것은 이 本法 가운데에 佛의 수승한 덕을 나타내어 모든 보살로 하여금 믿고 향하여 증득하게 하기 때문임을 말한다. 寶玉을 알지 못하면 그 쓰임을 얻지 못하나니, 이 德을 알지 못하면 어찌 능히 우러러 구하리요?


♣(1) 不識寶玉이면 不得其用이라 ; 중국고사에서 [和氏璧]의 故事에서 나온 의미를 인용한 것이다.



五에 顯果德者는 疏文分二호리니 初는 總明大意라 有法과 喩와 合이니 可知로다

  五에 ‘顯果德’이라는 것은 疏文을 둘로 나누리니, 처음은 총히 大意를 밝힘이다. 法과 喩와 合이 있으니, 알 수 있나니라.




然이나 果德이 有二하니 一은 依果니 謂華藏

世界海等이요 二는 正果니 如來十身等이라

此二無로 以爲佛德이니라

  그러나 果德이 두가지가 있다. 一은 依果니 華藏世界海 등이요 二는 正果니 如來十身 등을 말한다. 이 둘은 장애가 없는 것으로 佛德을 삼았나니라.




然果德有二下는 開章別釋이라 於中에 亦二니 先은 正釋이니 可知라

  ‘然果德有二’아래는 章을 열어 따로 해석함이다. 그 중에 또한 둘이 있다. 先은 바로 해석함이니, 가히 알지니라.



然이나 依正無碍에 通有六句하니 一은 依內現依니 如塵中刹海요 二는 正內現正이니 如毛孔現佛이라 三은 正內現依요 四는 依內現正이요 五는 依內에 現依正이요 六은 正內에 現正依니 其文이 非一이니라

  그러나 依報와 正報가 장애가 없는 것에 통틀어 六句가 있으니, 一은 依報 內에 依報를 나타냄이니, 티끌 가운데에 刹海와 같고, 二는 正報 내에 正報를 나타냄이니, 毛孔에 부처님을 나타냄과 같다. 三은 正報 내에 依報를 나타냄이요, 四는 依報 내에 正報를 나타냄이고, 五는 依報 내에 依報 正報를 나타냄이요, 六은 正報 내에 正報 依報를 나타냄이니, 그러한 글이 하나가 아니다.




後에 然依正無碍下는 融通이라 於中에 三이라 初는 約用互在하야 以明六句요 次는 約體相相卽하야 以明四句요 後에 隨擧一門下는 雙結體用이라
今初에 言然依正無通有六句로 至其文非一者는 約用也니 初二는 指事令曉요 餘但列名이라 然이나 卽相入相在之義는 義分齊中에 廣明이나 而相入이 各有分圓하니 若約圓說인댄 應言刹中有刹이어늘 今欲顯勝일새 擧塵毛之分하야 以攝刹身之總也니라

  後에 ‘然依正無碍’아래는 원융하여 회통함이다. 그 중에 三이있다. 처음은 用이 서로에게 있음을 잡아서 六句를 밝힘이요, 다음은 體와 相이 서로 卽함을 잡아서 四句를 밝힘이다. 後에 ‘隨擧一門’아래는 쌍으로 體와 用을 結함이다.
 이제 初에 ‘然依正無通有六句로부터 其文非一’이라 말한것은 用을 잡은 것이다. 처음 二는 事를 가리켜 밝혔고, 나머지는 다만 이름만 열거하였다. 그러나 즉 相入과 相在의 뜻은 [義理分齊] 가운데에 자세히 밝히니, 相入에 각각 分과 圓이 있다. 만약 圓을 잡아 설한다면 응당 刹土 가운데에 刹土가 있다고 말해야 하거늘, 지금은 수승함을 나타내고자 하므로 塵毛의 分을 들어서 刹身의 總을 攝收함이다.




言其文非一者는 謂第六經에 法界普明慧菩薩偈에 云호대 佛刹微塵數의 如是諸國土를 能令一念中에 一一塵中現이라하니 卽第一句에 依中現依也니라 成就品에 云호대 一微塵中多刹海여 處所各別悉嚴淨이라 如是無量入一中이나 一一區分無雜越이라하니 亦第一句也니라

  ‘其文非一’ 이라 말한 것은 第六經의 法界普明慧菩薩偈에 이르길,
 "부처님 세계 티끌 수 같아
  이와 같은 모든 국토를
  능히 한 생각  가운데에서
  낱낱 티끌 가운데에 나타내시네."
라고 하니, 곧 第一句의 依報 내에 依報를 나타내는 것이다. 「成就品」에 이르길
  "한 티끌 가운데에 많은 刹海여
   처소마다 각각 따로 다 嚴淨하였네
   이와 같이 무량한 것이 하나 가운데 들어가나
   낱낱이 구분되어 섞이거나 넘어서지 않는다네."
라고 하였으니, 또한 第一句이다.




 現相品에 云호대 如來一一毛孔中에 一切刹塵諸佛坐라 菩薩衆會共圍하야 演說普賢之勝行이라하니 卽第二句에 正內現正也니라 廻向品에 云호대 一毛孔中에 悉明見不思議數無量佛하고 一切毛孔皆如是하야 普禮一切世間燈이라하며 僧祗品에 云호대 於一微細毛端處에 有不可說諸普賢이어든 如一毛端一切爾하야 如是乃至法界라하니 皆第二句也니라

 「現相品」에 이르길,
 “여래의 낱낱 털 구멍 가운데에
  一切刹塵에 모든 부처님이 앉아 계시어
  보살대중 모임에 함께 둘러싸여
  보현의 수승한 행을 연설하시네"
라고 하니, 즉 第二句의 正報 내에 正報를 나타내는 것이다. 「回向品」에 이르길,
 "하나의 털 구멍 가운데서 다 분명히
  부사의한 수의 무량한 부처를 보고,
  一切의 털 구멍도 다 이와 같아서
  널리 일체세간의 燈佛에 禮하시네."
라고 하였다. 「僧祗品」에 이르길,
 "하나의 미세한 터럭 끝 처소에
  말할 수 없는 모든 보현이 있고,
  한 터럭 끝과 같이 일체가 다 그러하며
  이와 같이 내지 법계에 두루하네."
라고 하니, 다 第二句이다.




又云호대 於一微細毛孔中에 不可說刹次第入하고 毛孔能受彼諸刹이나 諸刹不能毛孔이라하니 卽第三句에 正內現依也니라 現相品에 云호대 如來安坐菩提座하사 一毛示現多刹海하며 一一毛現悉亦然하야 如是普周於法界라하니 亦第三句也니라

또 이르길,
 "하나의 미세한 털 구멍 가운데
  말할 수 없는 刹이 차례로 들어가되
  털 구멍은 능히 그 모든 刹을 받으나
  모든 刹은 능히 털 구멍에 두루 할 수 없다네."
라고 하니, 즉 第三句의 正報 내에 依報를 나타내는 것이다. 「現相品」에 이르길,
 "여래가 보리좌에 앉으시어
  한 터럭 끝에 많은 刹海를 나투어 보이시며,
  낱낱 터럭이 나타남도 다 또한 그러하여
  이와같이 널리 법계에 두루하네."
라고 하니, 또한 第三句이다.




第五經普賢偈에 云호대 如於此會見佛坐하야 一切塵中悉如是라 佛身無去亦無來나 所有國土皆明現이라하니 卽第四句에 依內現正也니라 現相品에 云호대 一切刹土微塵數에 常現身雲悉充滿이라 普爲衆生放大光하야 各雨法雨稱其心이라하니 亦第四句也니라

第五經에 보현의 偈頌에 이르길,
 "이 모임에서 부처님이 앉아 계심을 봄과 같이
  일체의 티끌 가운데에도 다 이와 같다네.
  부처님의 몸은 가심도 없고 오심도 없으나,
  있는 바 국토에 다 분명하게 나타나시네."
라고 하니 곧 第四句의 依報 내에 正報를 나타내는 것이다. 「현상품」에 이르길,
 "모든 刹土의 작은 티끌 수에
  항상 身雲을 나타내시어 다 충만하시고,
  널리 중생을 위하여 대광명을 놓으시어
  각각 法의 雨를 내려서 그 마음에 칭합하시네."
라고 하니 또한 第四句이다.




又云호대 一一塵中無量身이여 復現種種莊嚴刹하며 一念沒生普令見하야 獲無碍意莊嚴者라하니 卽第五句에 依內에 現依正也니라
僧祗品에 云호대 一微塵中能悉有不可言說蓮華界어든 一一蓮華世界中에 賢首如來不可說이라하니 第五句也니라

또 이르길,
 "낱낱 티끌 속에 무량한 몸이시여!
  다시 가지가지로 莊嚴한 刹을 나타내시고,
  한 생각에 없어지고 생겨남을 널리 보게 하시어
  걸림 없는 意莊嚴을 얻게 하시네."
라고 하니, 곧 第五句 依報 내에 依報와 正報를 나타내는 것이다.
  「僧祗品」에 이르길,
 "하나의 작은 티끌 속마다 능히
  말할 수 없는 蓮華藏世界가 있고,
  낱낱 蓮華藏世界 가운데의
  賢首如來도 가히 설할 수 없다네."
라고 하니, 또한 第五句니라.
 




世界成就品에 云호대 一毛孔內難思刹이 等微塵數種種住어든 一一皆有遍照尊하야 在衆會中하야 宣妙法이라하니 卽第六句에 正內에 現正依也니라 現相品에 云호대 一切諸佛土의 一一諸菩薩이 普入於佛身하야 無邊亦無盡이라하며 成就品에 云호대 一切刹土入我身하고 所住諸佛亦復然하니 汝應觀我諸毛孔하라 我今示汝佛境界라하니 皆第六句也니라


「世界成就品」에 이르길,
 "하나의 털 구멍 속에 생각 할 수 없는 刹이
  티끌 수처럼 가지가지로 머무시며,
  낱낱에 모두 照尊이 계시어
  衆會 가운데에 妙한 法을 宣揚하신다네."
라고 하니, 곧 第六句의 正報 내에 正報와 依報를 나타내는 것이다. 「현상품」에 이르길,
 "일체의 모든 불토의
  낱낱의 모든 보살이
  널리 부처님 몸에 들어가니.
  끝도 없고 또한 다함도 없다네."
라고 하며, 「성취품」에 이르길,
 "모든 刹土는 나의 몸에 들어오고
  머무는 바 모든 부처님도 또한 다시 그러하시니,
  너희는 응당 나의 모든 털 구멍을 관하라.
  내가 이제 너희에게 부처의 境界를 보이리라."
라고 하니, 다 第六句이다.



 

又有四句하니 一은 或唯依이니 佛卽刹故며 二는 或唯正이니 刹卽佛身故며 三은 俱요 四는 泯이니 思之可知로다

  또 四句가 있다. 一은 혹 오직 依報이니 佛이 곧 刹인 까닭이며, 二는 혹 오직 正報니 刹이 곧 佛身인 까닭이며, 三은 둘 다 있음(俱)이요, 四는 둘 다 없음(泯)이니, 생각하면 알 수 있다.



又有四句等者는 第二에 約體相相卽하야 明四句也라 相卽互亡일새 故無有六이니라 一에 佛卽刹者는 佛體卽是法性土니 廢己從他에 佛體虛故며 土外無佛이니 法性無二故니라
二에 刹卽佛者는 刹體卽是法性身故로 廢他從己에 刹體虛故며 佛外無刹이라 法性無二故니라 由性無二하야 以性融相일새 故로 身刹相卽이니라
三에 俱者는 謂有身有土하야 不壞相故니 若無身土면 無可相卽故니라 四에 泯者는 謂佛卽刹이니 故로 非佛이요 刹卽佛이니 故로 非刹이니 以互奪故니라

  ‘又有四句’等이라는 것은 第二에 體와 相이 서로 卽함을 잡아서 四句를 밝힘이다. 서로 卽하고 서로 없어지니, 그러므로 六句 없나니라.
一에 ‘佛이 곧 刹이다’라는 것은 佛體가 곧 法性土이어서, 자기를 폐하고 남을 좇음에 佛體가 虛하기 때문이며, 土外에 佛이 없기에 法性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二에 ‘刹이 곧 佛이다’라는 것은 刹體가 곧 法性身이기 때문인데, 남을 폐하고 자기를 좇음에 刹의 體가 허망기 때문이며, 佛 밖에 刹이 없기에 法性이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法性이 둘이 아님을 말미암아 性이 相에 융합하는 까닭으로 身과 刹이 서로 卽하는 것이다.
 三에 ‘俱’라는 것은 身이 있고 土가 있어서 서로가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身과 土가 없으면 가히 서로 卽할 수 없기 때문이다. 四에 ‘泯’이라는 것은 佛이 곧 刹이기 때문에 부처도 아니고, 刹이 곧 佛이기 때문에 刹도 아님을 말한다. 서로가 빼앗기 때문이다.





隨擧一門하야 卽攝一切니 如下說하니라
 
一門을 듦에 따라 곧 일체를 攝收하니, 아울러 아래에서 말함과 같다.



隨擧一門者는 三에 雙結體用이니 以卽入二門이 無二體故로 體外無用하야 唯相卽故며 用外無體하야 唯相入故니 如無鏡外之明과 明外之鏡故니라 言如下說者는 卽指義分齊中이니라

  ‘隨擧一門’이라는 것은 三에 雙으로 體와 用을 結함이다. 相卽과 相入 두 가지 門이 體가 둘이 없는 까닭에 體 밖에 用이 없기에, 오직 相卽하기 때문이며, 用 밖에 體가 없기에, 오직 相入하기 때문이다. 마치 거울 밖에 밝음이 없고 밝음 밖에 거울이 없는 것과 같은 까닭이다. ‘如下說’이라 말한 것은 곧 「義理分齊」가운데를 지적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