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五 / [1]

화엄행 2009. 3. 27. 03:27

2007/03/18 오후 9:42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五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三章. 開章釋文 (正宗分)
  第一節. 敎起因緣
  
第一. 生起大意
   
第二. 開章別釋
     1. 因十義
      1) 法應爾故 ~ 3) 順機感故

↓卷第五 시작
      4) 爲敎本故 ~ 10) 利今後故


 四에 爲敎本者는
 四 敎의 根本이 된다는 것은
 

  四에 爲敎本者는 文三이니 初는 標章이요 次는 總彰大意요 三에 然亦有二下는 開章別釋이라 初標는 可知라

  四에 '爲敎本者'는 글이 셋이 있다. 처음은 章을 표함이고, 다음은 총히 大意를 밝힘이다. 三에 '然亦有二'아래는 章을 열어 따로 해석함이라. 처음의 標는 알 수 있다.

 

 謂非海면 無以潛流요 非本이면 無以垂末이
 
  바다가 아니면 (땅속으로)잠겨서 흐를 수 없으며, 根本이 아니면 枝末을 드리울 수 없음을 일컫나니

  大意中에 初二句는 立理라 故로 出現品에 云호대 譬如大海가 潛流四天下地일새 有穿鑿者인댄 無不得水라하니 彼는 喩佛智가 普入衆生身心이라 今借用之니 斯卽喩也니라 
 非本無以垂末者는 法說이라 如無海本이면 不能流末이요 無其本月이면 無影入於百川이니 無有法身이면 豈能垂於應化리오 故로 無有根本之法이면 何有隨宜之談가

  大意 가운데에 처음 二句는 이치를 세움이다. 그러므로 「여래출현품」에 이르길, "비유하자면 大海가 四天下의 땅 밑을 가만히 흐르니, 뚫는 자가 있으면 물을 얻지 못함이 없는 것과 같다" 라고 하였다. 그것은 부처님의 智慧가 널리 衆生의 몸과 마음에 널리 들어감을 비유함이다. 이제 이 말을 빌려 썼으니, 이것은 곧 비유이다.
 '非本無以垂末'이라는 것은 법을 설함이다. 마치 바다라는 根本이 없으면 枝末을 흘려보낼 수 없고, 그 本月이 없으면 (달의)그림자가 백천에 들어갈 수 없는 것과 같나니, 法身이 없으면 어찌 능히 應化를 드리울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근본의 法이 없으면 어찌 마땅함을 따르는 말씀이 있겠는가?



 

 將欲逐機하야 漸施末敎인댄 先示本法일새
頓演此經이니라

  장차 根機를 따라서 점차 末敎를 베풀고자 한다면 먼저 根本法을 보여야 하므로 몰록 이 『화엄경』을 연설하시였다. 

  後에 將欲下兩句는 正釋爲本之義라 故로 天台가 指爲乳敎하니 乳是酪等 諸味本故니라

  後 '將欲'아래 兩句는 本이 되는 뜻을 바로 해석함이다. 그러므로 천태가 지적하여 乳敎라 하였으니, 乳는 (락 : 진한유즙, 즉 요즘의 치즈) 등 모든 맛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然亦有二하니 一은 爲開漸之本이니 出現品에 云호대 如日初出에 先照高山故니라

  그러나 또한 둘이 있으니, 一은 漸을 여는 근본이니, 「여래출현품」에 이르길, "해가 뜸에 먼저 높은 산을 비추는 것과 같은 연고라" 하였다. 

  出現品云等者는 彼文에 云호대
 譬如日出에 先照須彌山等諸大高山하고 次照黑山하고 次照高原然後에 普照一切大地나 日不作念호대 我先照此코 後照於彼라 但以山地가 有高下故로 照有先後인달하야 如來應正等覺도 亦復如是하야 成就無邊法界智輪하사 常放無碍智慧光明하되 先照菩薩摩訶薩等諸大山王하고 次照緣覺하고 次照聲聞하고 次照決定善根衆生하사 隨其心器하야 示廣大智하시고 然後에 普照一切衆生하며 乃至邪定에도 亦皆普及하나니 爲作未來利益因緣하야 令成熟故로대 而彼如來大智日光은 不作是念호대 我當先照菩薩大行하며 乃至後에 照邪定衆生이라 但放光明하야 平等普照하사 無碍無障하며 無所分別이라
 釋曰 始成에 便說華嚴이 是照菩薩山王이니 此는 明先大後小니라


  '出現品云'等이라는 것은 저 文에 이르길,
 "비유하면 마치 해가 떠오르면 먼저 수미산 등 모든 크고 높은 山을 비추고, 그 다음에 흑산을 비추고 다음에 고원을 비추며, 그런 뒤에 널리 일체의 대지를 비추지만, 해는 스스로 '나는 먼저 이것을 비추고 후에 저것을 비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것과 같다. 다만 산과 땅이 높고 낮음이 있기 때문에 비추는 것에 先後가 있는 것과 같이, 如來應正等覺도 또한 이와 같아서 無邊法界智輪을 성취하여 항상 가이없는 智慧光明을 놓으심에 먼저 보살마하살등 제대산왕을 비추시고, 다음에 연각을 비추시고, 다음에 성문을 비추시고, 다음에 決定善根衆生을 비추시어, 그 마음의 그릇에 따라서 廣大한 智를 보이신 연후에 널리 일체중생을 비추시며, 내지 邪定(삿된 定 ; 즉 올바르게 수행하여 얻어지는 定이 아닌 것)의 중생에 까지도 또한 다 널리 미치게 하시니, 미래에 이익되는 인연을 지어 성숙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 여래의 大智日光은 이러한 생각 즉, '나는 마땅히 먼저 보살대행을 비추고 내지 후에 邪定의 衆生을 비추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신다. 다만 광명을 놓아서 평등하게  널리 비추시되 장애가 없으시며 분별하는 바가 없으시다" 라고 하였다. 
 해석해 말하면, 처음 正覺 이루시고는 문득 화엄을 말씀하심은 菩薩山王을 비춤이니, 이것은 大乘을 먼저 밝히시고 뒤에 小乘을 밝히신 것이다. 



 二는 爲攝末之本이니 如日沒時에 還照高山故니라

  二는 末을 섭수하는 根本이 됨이니, 마치 해가 질 때에 도리어 높은 산을 비추는 것과 같은 연고이다.

 

  二에 爲攝末之本者는 於中에 二니 初는 標名이라 華嚴에 未有末之可攝이니 以法華의 攝末歸本이 歸華嚴故라 故로 爲本也니라
 言如日等者는 後에 義證이니 取出現經意하야 以證하나 而無此文하니 卽是法華의 所明先小後大와 及三時五時之敎에 後後가 勝於前前하니 法華涅槃에 唯明一極이 爲照菩薩이니라

  二에 '爲攝末之本'이라는 것은 그 중에 둘이 있다. 처음은 이름을 표함이다. 화엄에 아직 섭수할만한 末이 있지 아니하니, 법화가 末을 섭수하여 本에 돌아가는 것이 화엄에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本이 된다. '如日' 等이라 말한 것은 後에 뜻으로 증명함이다. 「出現經」의 뜻을 취하여 증명하였으나 이러한 글은 없으니, 즉 法華가 밝힌 바 소승을 먼저하고 대승을 후에 함이다. 그리고 三時·五時♣(1)의 敎에 後後가 前前보다 수승하니, 法華·涅槃에선 오직 一極(;一佛乘)만을 밝힘이 보살을 비추는 것이 된다. 

♣(1) 三時·五時敎 ; 천태지의가 불교의 모든 경전 내용을 분류하고 해석하는 데, 시간적으로 釋尊의 설법순서에 따라 교판한 것.
1. 華嚴時 - 세존이 성도한 2*7일에 『화엄경』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이 때에 설한 교의 내용은 圓敎이면서 겸하여 別敎를 설하고 있다. 이 설법의 대상은 근기가 뛰어난 대 보살중이며, 그 내용은 불타 자신이 증득한 佛慧이다. 그러나 이 때의 설법은 정도가 높아서 聲聞은 장님과 귀머거리와 같다.
2. 鹿苑時 -『화엄경』을 설한 뒤 12년간 16대국에서 소승의 『四阿含經』을 설한 시기이다. 불타가 최초에 설법한 곳이 녹야원이므로 녹원시라 하고,  『阿含經』을 설하였으므로 아함시라고도 한다. 대체로 정도가 낮아서 三藏敎小乘 뿐이며, 下根機를 대상을 하여 이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3. 方等時 - 녹야원 뒤 8년동안 『維摩經』*『思益經』*『勝經』등의 大乘을 설한 시기. 설해진 교법은 藏敎*通敎*別敎*圓敎의 四敎를 竝說하고, 小乘을 헐뜯고 대승을 칭찬하였다.
4. 般若時 - 방등 뒤 21년간『般若經』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5. 法華·涅槃時 -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이의 능력이 향상되어 바야흐로 佛知見에 證入시키는 시기로, 불타 입멸 전 8년동안이다. 이 때 설하신 교법은 순수 원만한 圓敎로 앞에서 방편으로 설법하신 것과는 다르다.




 無不從此法界流며 無不還歸此法界故니라

  이 법계로부터 흐르지 않음이 없으며, 이 법계로 다시 돌아가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다. 

  無不從此下는 三에 雙證上二니 先引攝論이요 後引法華라
 初는 引攝論에 從法界流는 卽證開漸之本이요 無不還歸此法界故는 卽證攝末之本이라 此는 以義證敎니 謂論에 所明報化身等이 皆從法身生하야 還歸於法身이니 法身等은 卽義니라 今以法身으로 類於華嚴일새 故로 云以義證敎也니라


  '無不從此'아래는 三에 쌍으로 위의 둘을 증명함이다. 먼저 『攝論』을 인용하고, 후는 『法華』를 인용하였다.
  처음은『攝論』을 인용함이니, '법계로부터 흐름'은 곧 漸을 여는 근본임을 증명함이다.
 '이 법계로 돌아가지 않음이 없다'라고 한 것은 곧 末을 섭수하는 本임을 증명함이다. 이것은 뜻으로써 교를 증명함이니, 論에서 밝힌 바 報身과 化身 등이 다 法身에서부터 나와서 다시 法身으로 돌아가니, 法身 등은 곧 뜻이다. 이제 법신으로 화엄에 比類하니, 그러므로 '뜻으로써 敎를 증명한다'고 하였다.




 法華에 亦云호대 始見我身하고 聞我所說에 卽皆信受하야 入如來慧라하니 此는 漸本也요 次云호대 除先修習學小乘者는 卽開漸也요 又云호대 我今亦令得聞是經하고 入於佛慧는 卽攝末歸本也니

  『法華經』에 또한 이르길, "처음 나의 몸을 보며 나의 설한 바를 듣고, 곧 다 信受하여 如來의 智慧에 들어간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漸의 근본이다. 다음에 이르길, "먼저 소승을 習學하여 닦은 자를 除한다"고 함은 곧 漸을 여는 것이다. 또 이르길, "내가 이제 또한 이 경을 듣고 佛慧에 들어가게 한다" 라고 한 것은 곧 末을 攝收하여 本에 돌아감이다.

  法華亦云下는 引法華證이라 故로 下에 吉藏이 引此하야 立三種法輪하니 第一은 名根本法輪이요 第二는 名枝末法輪이요 第三은 名攝末歸本法輪이라 文中에 便引便釋하니 三節이 具也로다

  '法華亦云'아래는『法華經』을 인용하여 증명함이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吉藏이 이것을 인용하여  三種法輪을 세웠으니, 第一은 根本法輪이라 이름하고, 第二는 枝末法輪이라 이름하며, 第三은 攝末歸本法輪이라 이름하였다. 글 중에 문득 인용하고 문득 해석하니 三節이 갖추어졌다. 



 斯則法華도 亦指此經하야 以爲本矣로다

  이것은 즉 『法華經』도 또한 이 經을 가리켜서 本을 삼음이다.

 

  斯則下는 二에 結成本義니 若自立爲本인댄 恐義未明이어니와 法華에 指此爲本하니 本義方顯이라 始見入於佛慧가 旣卽華嚴인댄 亦令得聞法華하고 入於佛慧가 豈非指初爲本이리오 又法華第一에 云호대 於一佛乘에 分別說三이라하니 亦是從本流末이라 卽指華嚴하야 爲一佛乘하고 分別說昔之三이니 三은 卽鹿野四諦等이라 若不指華嚴爲本이면 鹿野之前에 以何爲一乘耶아

  '斯則'아래는 二에 本義를 결성함이다. 만약 스스로 세워서 根本을 삼는다면 뜻이 분명하지 않을까 염려되나, 『법화경』에서 이를 가리켜 근본으로 삼았으니, 本義가 비로소 나타남이다. 처음 보고 佛慧에 들어가는 것이 이미 곧 화엄이라면, 또한 법화를 듣게하여 佛慧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어찌 처음이 근본이 됨을 가리킨 것이 아니리요? 또『법화경』第一에 이르길, "一佛乘을 분별하여 三乘을 설한다" 하니, 또한 이 本으로 부터 末을 흘려보냄이다. 곧 화엄을 가리켜 一佛乘을 삼고, 분별하여 과거의 三乘을 설하니, 三乘은 곧 鹿野의 四諦♣(2)이다. 만약 화엄을 가리켜서 本을 삼지 않았다면 녹야 以前은 무엇으로 一乘을 삼겠는가?

♣(2) 鹿野의 四諦 - 鹿野苑에서 四聖諦법문을 하신것을 의미함.
   四聖諦는 四諦라고도 한다.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로서 불교의 근본 진리. 석가모니가 깨달은 진리로서, 고통과 고통의 원인, 고통의 소멸과 고통을 없애는 여덟 가지의 길을 말한다. 고(苦), 집(集), 멸(滅), 도(道), 네 가지로 요약된다.
 제1 고제(苦諦)란 미혹의 세계는 모든 것이 고통이라고 하는 진리이다.
 제2 집제(集諦)란 고통의 원인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즉 갈애(渴愛)라고 하는 진리이다.
 제3 멸제(滅諦)란 갈애를 없앤 상태가 구극의 이상 상태라고 하는 진리이다.
 제4 도제(道諦)란 구극의 이상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덟 가지의 바른 행위 즉 8정도(正道)를 따라야 한다는 진리이다. 사성제(四聖諦), 사진제(四眞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