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 [7]

화엄행 2009. 3. 27. 03:21

2007/02/03 오후 8:08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三章. 開章釋文 (正宗分)


 將釋經義에 總啓十門호리니 一은 敎起因緣

이요 二는 藏敎所攝이요 三은 義理分齊요 四

는 敎所被機요 五는 敎體淺深이요 六은 宗趣

通局이요 七은 部類品會요 八은 傳譯感通이

요 九는 總釋經題요 十은 別解文義니라

  장차 경의 뜻을 해석함에 총히 十門을 열리니, 一

은 敎가 일어난 因緣이요, 二는 藏敎가 攝收하는 바

이고, 三은 義理分齊요, 四는 敎가 가피하는 근기이

고, 五는 敎體의 얕고 깊음이요, 六은 宗趣의 通함

과 局執됨이요, 七은 部類의 品會요, 八은 傳譯感通

이요, 九는 總히 經의 題目을 해석함이요, 十은 文

義를 따로 해석함이다.
 



   將釋以下는 第三에 開章釋文이라 十門之內에 前八은 義門이요 後二는 正釋이니 以經題目이 卽是文故니라 亦可九皆義門이니 題目이 通一部故니라 十門生起者는 夫聖人은 言不虛發이라 動必有由니 非大因緣이면 莫宣斯典일새 故로 受之以敎起因緣이니라 

  將釋以下는 第三에 章을 열어 文을 해석함이다. 十門의 안에 前八은 義門이요 後二는 正釋이니, 經의 제목이 곧 이 文이기 때문이다. 또한 九가 모두 義門이라고 할 수 있으니, 제목이 一部에 통하기 때문이다. 十門이 생긴 것은 대저 聖人은 말씀을 헛되이 발하지 아니하시니, 움직임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큰 인연이 아니면 이 경전을 말씀하지 않으니, 그러므로 '敎가 일어나는 因緣'으로써 받는다. 



  二者는 因緣旣興에 有所起敎라 佛敎雖廣이나 不出三藏十二分敎니라 未委此經이 三藏敎等에 何藏敎攝일새 故擧藏敎之總하야 含攝華嚴之別敎라 故로 受之以藏敎所攝이니라 

  二는 인연이 이미 일어나면 일으킨 바 가르침이 있을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비록 넓으나 三藏 十二分敎를 벗어나지 않는다. 아직 이 경이 三藏과 十二分敎 등에서 어떠한 藏과 敎에 섭수되는가를 알지 못하기에 藏과 敎의 總志를 들어 華嚴의 別敎를 포함하고 攝收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藏敎所攝'으로써 받는다.



  三은 已知此經이 修多羅攝하야 具十二分이나 然其藏敎가 皆通權實하니 揀權取實인댄 唯圓敎收어니와 未知圓義의 深淺寬狹일새 故로 受之以義理分齊니라

 三은 이미 이 華嚴經이 수다라(修多羅 ; 三藏 十二部 經의 총칭을 의미함.)에 섭수되어 十二分敎를 갖추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 藏과 敎가 다 權(방편)과 實(진리 * 실제)에 통하니, 權을 가려내서 實을 취한다면 오직 圓敎에 攝收된다. 그러나 아직 圓敎의 뜻이 깊고 얕음과 넓고 좁음을 알지 못하므로 '義理分齊'로써 받는다.



  四는 旣知圓義의 包博沖深어니와 未審此深이 被何根器일새 故로 受之以敎所被機니라
  五는 旣知深義가 正被圓機어니와 未知其詮이 何爲體性일새 故로 受之以敎體淺深이니라
  六은 能所文義는 已知該羅어니와 未審所宗이 尊崇何義일새 故로 受之以宗趣通局이니라
  七은 旣知旨趣沖深이어니와 未委能詮의 文言廣狹일새 故로 受之以部類品會니라

  四는 이미 圓敎의 뜻이 包博(넓음)과 沖深(깊음)함을 알았으나 아직 이 깊음이 어떠한 根機를 加被하는가를 살피지 못했으므로 '敎가 加被하는 根機'로써 받는다. 
  五는 이미 깊은 뜻이 바로 圓機를 가피함을 알았으나 아직 그 가르침이 무엇을 體性으로 삼는지 모르므로 '敎體의 淺深'으로써 받는다. 
  六은 能과 所의 글 뜻이 이미 該羅하는 것을 알았으나 아직 宗으로 삼는 바가 어떠한 뜻을 존중하고 숭상하는지를 살피지 못하였으므로 '宗趣通局'으로써 받는다. 
  七은 이미 旨趣가 깊음을 알았으나 아직 能詮( ; 말로써 나타낼 義理에 대하여 능히 나타내는 文句나 언어를 의미한다. 所詮의 반대개념임.)의 文言이 넓고 좁음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으므로 '部類品會'로써 받는다.
 



  八은 旣知部類가 廣則無盡이요 略乃百千이어니와 未知傳譯何年이며 有何感應하야 使宗承有緖며 知勝益可歸일새 故로 受之以傳譯感通이니라
  九는 大旨旣陳에 隨文解釋이라 先明總目의 包盡難思일새 故로 受之以總釋經題니라
  十은 總意雖知나 在文難曉니 使沈隱之義로 彰乎翰墨하며 宗通之理로 見乎百千일새 故로 受之以別解文義니라
 
 
  八은 이미 部類가 넓히면 다함이 없고 간략히 하면 百千임을 알았으나, 아직 傳하여져서 飜譯된 것이 어느 해인지와 어떠한 감응이 있어서 宗旨를 繼承케 함에 실마리가 있었는지를 알지 못하며, 수승한 이익이 돌아올 수 있음을 아는 것을 모른다. 그러므로 그것을 '傳譯感通'으로써 받는다. 
  九는 큰 뜻을 이미 진술하였음에 經文을 따라 해석한다. 먼저 總目이 생각하기 어려운 것을 다 포괄하였음을 밝히니, 그러므로 그것을 '總釋經題'로써 받는다.
  十은 總意는 비록 알았으나 글에서는 깨닫기 어려우니, 잠기고 숨겨진 뜻으로 하여금 翰墨(; 종이와 먹이란 의미로, 글을 상징한다.)에서 밝혀지게 하며, 宗通의 이치를 百千에 드러나게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別解文義'로써 받는다.


 
  第一節. 敎起因緣
   第一. 生起大意


 初에 因緣者는 夫聖人設敎가 必有由致니 若

須彌巨海가 大因이라야 方爲搖動하야 今搖如

來融金之德山하며 動深廣之智海니 非小緣矣

니라 故下經에 云非以一緣이며 非以一事로

如來出現하야 而得成就라하니 出現은 本爲大

華嚴故니라

  처음에 인연이라는 것은 대저 聖人이 가르침을 베품에는 반드시 이유와 이치가 있으니, 수미산과 큰 바다가 큰 因이라야 비로소 요동하는 것과 같이, 지금 여래의 融金의 德山을 흔들어 깊고 넓은 智慧의 바다를 움직이게 함은 작은 緣이 아니다. 그러므로 下經에 이르길 "한 가지 緣으로써가 아니며, 한 가지 일로써 여래가 출현하야 성취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니, 如來의 출현은 본래 大華嚴을 위한 까닭이다.



  初因緣者下는 疏文有二하니 一은 生起大意요 二는 先因下는 開章別釋이라 前中에 有三하니 一은 正釋이요 二는 引證이요 三은 解放이라

  '初因緣者'아래는 疏文에 둘이 있다. 一은 生起大意요, 二에 '先因'아래는 開章別釋이다. 前(生起大意) 가운데에 三이 있다. 一은 바로 해석함이요, 二는 引用하여 證明함이요, 三은 妨難을 풀어줌이다.



 初中에 又三이니 初는 法이요 次에 若須彌下는 喩요 後에 今搖如來下는 合이라 如來는 合山하고 智慧는 合海라 此文意는 出智論이라 今轉勢用之니라

 처음 가운데에 또 三이 있으니, 처음은 法이요, 다음에 '若須彌'아래는 比喩이고, 후에 '今搖如來'아래는 合이다. 여래는 산에 합하고 지혜는 바다에 합한다. 이 글의 뜻은 『智度論』에서 나왔다. 이제 勢를 轉하여 그것을 썼다.



  智論中에 問曰 佛이 以何因緣故로 說般若波羅蜜經고 諸佛은 不以無事와 及小事小因緣으로 而自發言이시니 譬如須彌山王이 不以無事와 及小事小因緣故로 動이라 今以何等大因緣故로 說般若波羅蜜經고하니 此中論意는 卽以說般若로 爲動須彌어니와 今開須彌하야 約能說人하고 智海로 通能所說하니 動能說之佛智하야 說如來之智海라  竝卽不共般若니라 又於經中에 廣說佛身과 及與佛智일새 故佛及智가 竝通所說하니라

 『智論』중에서 묻기를 "부처님은 어떠한 인연으로 『반야바라밀경』을 說하시는가? 모든 부처님은 無事와 小事와 小因緣으로써 스스로 발언하시지 않나니, 마치 수미산왕이 無事와 小事와 小因緣으로 움직이지 아니함과 같다. 이제 어떠한 큰 인연으로 『반야바라밀경』을 說하시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論중의 뜻은 곧 般若를 설하시는 것으로써 須彌山을 움직였다고 하였다. 지금은 수미를 열어서 能說人을 잡고 智海로 能說과 所說에 통하게 하니, 能說의 佛智를 움직여서 여래의 智海를 說한다. 아울러 곧 不共般若이다. 또 경 가운데에  佛身과 佛智를 자세히 말하니, 그러므로 부처님과 智慧가 아울러 설하는 바에 통한다. 
 


  ○ 故下經下는 二에 引證也라
 出現本爲下는 三에 解妨也라 有伏難云호대 非一緣等은 乃明出現之緣이니 今證說經에 豈爲當가할새 故今通云호대 出現은 本爲一大事因緣이요 一大事因緣은 卽華嚴佛智니라 明知하라 出現之緣이 卽華嚴緣也로다

  ○ 故下經下는 二에 引證이다.
 '出現本爲'아래는 三에 妨難을 풀어 줌이다. 어떤 사람이 가만히 따져 묻기를 '한 가지 緣이 아니다'는 等은 出現의 緣을 밝힌 것인데, 이제 경을 설한 것을 증명함에 어찌 꼭 맞다고 하겠는가?"라고  할새, 그러므로 이제 통하여 이르길 "出現은 본래 一大事因緣을 위함이요 一大事因緣은 곧 華嚴佛智이다. 분명히 알라! 出現의 緣이 곧 華嚴의 緣이다."라고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