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 [8]

화엄행 2009. 3. 27. 03:22

2007/02/12 오후 10:39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唐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二. 開章別釋


 先因後緣에 各開十義하야 以顯無盡호리라

  먼저는 因이요 후는 緣임에, 각각 十義를 열어서 다함이 없음을 나타내리라. 


 

  先因後緣에 各開十義者는 此下는 第二에 開章別釋이라 於中에 三이니 謂標요 釋이요 結이니 標는 可知니라

  '先因後緣에 各開十義'라는 것은 이 아래는 第二의 章을 열어 따로 해석함이다. 그 가운데 三이 있으니, 標와 釋과 結을 말한다. 標는 알 수 있다.


 因十義者는 一은 法應爾故요 二는 酬宿因故

요 三은 順機感故요 四는 爲敎本故요 五는 顯

果德故요 六은 彰地位故요 七은 說勝行故요

八은 示眞法故요 九는 開因性故요 十은 利今

後故니라

  因에 十義라는 것은 一은 法이 응당 그러하기 때문이요, 二는 과거의 因에 대한 보답이기 때문이고, 三은 根機의 感得에 隨順하기 때문이요, 四는 敎의 根本이 되기 때문이며, 五는 果德을 나타내기 때문이요, 六은 地位를 나타내기 때문이요, 七은 殊勝한 行을 설하기 때문이요, 八은 참된 法을 보이기 때문이고, 九는 因性을 열기 때문이며, 十은 현재와 미래를 이익되게 하기 때문이다. 
 
 

  因十義下는 雙釋이라
 先因中에 三이니 初는 列이요 次는 釋이요 後에 因上十義下는 結屬會釋이니라


  '因十義'아래는 쌍으로 해석함이다.
  먼저 因 가운데 三이 있으니, 처음은 열거함이고, 다음은 해석함이요, 후에 '因上十義'아래는 회통하여 해석함을 결속함이다.


 言法爾者는 夫王道坦坦은 千古同規요

一乘玄門은 諸佛齊證이라 故로 一切佛이 法

爾하야 皆於無盡世界에 常轉如是無盡法輪하

야 令諸衆生으로 返本還源하야 窮未來際토록

無有休息이니라


  '法爾(법이 그러하다)' 라고 말한 것은 대저 王道가 탄탄함은 千古에 잇어서 같은 規範이요, 一乘의 玄門은 모든 부처님께서 똑같이 증득한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부처님은 법이 그러하여 모두 다함이 없는 세계에서 항상 이와같은 다함이 없는 法輪을 굴리시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根本을 돌이켜 根源에 돌아가게 하시며, 未來際가 다하도록 휴식하지 아니하신다. 


  言法爾者下는 釋也라 卽爲十段이니 今初는 法爾라 疏文分四호리니 一은 正釋이요 二는 引證이요 三은 結釋이요 四는 解妨이라 初文은 可知라

  '言法爾者'아래는 해석이다. 곧 十段이 되니, 이제 처음은 '法爾'이다. 疏의 글을 나누면 넷이 되니, 一은 正釋이요, 二는 引用하여 證明함이요, 三은 結論지어 解釋함이요, 四는 妨難을 풀어줌이다. 처음의 글은 알 수 있다.



 故로 不思議品中에 明一切諸佛이 能於一身

에 化現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頭하고 一一

頭에 化爾所舌하고 一一舌에 出爾所音聲하며

乃至文字句義가 一一充滿一切法界하야 無有

窮盡하니라


  그러므로 「不思議品」가운데에 "일체제불이 능히 一身에서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佛刹 微塵數의 머리를 化現하시고, 낱낱 머리에 그러한 혀를  化現하고, 낱낱 혀에 그러한 음성을 내며, 내지 文字와 句義가 낱낱이 일체법계에 충만하여 다함이 없다"고 밝혔다.



  故로 不思議下는 引證이라 此卽第四十七經에 第五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 云호대 佛子야 一切諸佛이 能於一身等이라 하고 乃至已下는 中間에 應云호대 法界衆生이 靡不皆聞하며 一一音聲에 演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修多羅藏하며 一一修多羅藏에 演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法하며 一一法에 有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文字句義하니 如是演說하야 盡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劫하고 盡是劫已에 復更演說하야 盡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劫하고 如是次第하야 乃至盡於一切世界微塵數하며 盡一切衆生心念數하나니 未來際劫은 猶可窮盡이어니와 如來化身이 所轉法輪은 無有窮盡이니라

  '故로 不思議'아래는 引證이다. 이것은 곧 第四十七經의 第五에 大那羅延幢勇健法이니, 이르길 "불자야, 모든 부처님께서 능히 一身에서..."이라 하고, 乃至 이하 중간에 응당 이르길 "법계의 중생이 모두 듣지 아니함이 없고, 낱낱 음성에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불찰미진수의 수다라장을 연설하시며, 낱낱 수다라장에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불찰미진수의 법을 연설하시며, 낱낱 법에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불찰미진수의 文字와 句義가 있느니라. 이와같이 연설하시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불찰미진수劫을 다하며, 이러한 劫이 다하면 다시 연설하시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불찰미진수劫을 다하며, 이와같이 차례로 하여 내지 일체세계미진수가 다하고, 일체 중생의 心念數를 다하나니, 미래제의 겁은 오히려 다할 수 있으려니와 여래 화신이 굴리신 法輪은 다함이 없느니라.


  所謂知慧演說法輪과 斷諸疑惑法輪과 照一切法法輪과 開無碍藏法輪과 令無量衆生歡喜調伏法輪과 開示一切諸菩薩行法輪과 高昇圓滿大智慧日法輪과 普然照世智慧明燈法輪과 辯才無畏種種莊嚴法輪이라

 이른 바 지혜로 연설하는 법륜과 모든 의혹을 끊는 법륜과 일체법을 비추는 법륜과 걸림없는 法藏을 여는 법륜과 무량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심을 내어 조복하게 하는 법륜과 일체의 모든 보살행을 열어 보이는 법륜과 높이 떠 오르는 圓滿大智慧日 법륜과 널리 세상을 비추는 智慧明燈 법륜과 辯才無畏한 가지가지 莊嚴 법륜들 이니라.


  如一佛身이 以神通力으로 轉如是等差別法輪에 一切世法으로 無能爲喩하야 如是盡虛空界一一毛端分量之處에 有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世界어든 一一世界中에 念念現不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化身하야 一一化身도 皆亦如是라 所說音聲과 文字句義가 一一充滿一切法界하야 其中衆生이 皆得解了나 而佛言音은 無變無斷하며 無有窮盡하니 是爲諸佛의 第五大那羅延幢勇健法이라하니 今疏는 略引耳니라 

  마치 한 부처님 몸이 신통력으로 이와같이 차별된 법륜을 굴리심에 일체의 세간법으로 비유할 수 없음과 같이, 이와같이 온 허공계의 낱낱 털끝의 분량과 같은 처소에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불찰미진수 세계가 있는데, 낱낱 세계 가운데에 생각 생각에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불찰미진수 化身을 나타내시며, 낱낱 化身도 모두 이와 같느니라. 말씀하시는 음성과 문자와 句義가 낱낱이 일체 법계에 충만하여 그 중의 중생이 모두 알았으나, 부처님의 말씀과 소리는 변하지도 끊어지지도 않으며 다함이 없으니, 이를 모든 부처님의 第五 大那羅延幢勇建法이다 하느니라”라고 하였으니, 이제 疏에서는 간략히 인용하였을 뿐이다.


 

 斯則處以毛端으로 橫該法界하고 時以刹那로

竪窮劫海라 處則頓起요 時則常起라 不待別因

이니라

 
이것은 處所는 털끝으로서 횡(; 공간적 의미)으로 법계를 해괄하고 時間은 찰나로써 竪(竪直 ; 시간적 의미)로 劫海를 다함이니, 處는 즉 몰록 일어남이요 時는 즉 항상 일어나니, 별도의 因을 기다리지 아니한다.


 
斯則下는 三에 結釋也라 結釋經文하야 成初正說이라 於中에 初四句는 正結이요 後에 處則下는 覆釋이라 法界齊起가 爲頓이니 如月入百川에 非從東向西等故요 長時不斷曰常이니 無暫間斷故라 旣常旣遍일새 故로 不待別因也니라

  '斯則'아래는 三에 結論지어 解釋한 것이다. 經文을 결론으로 해석하여 처음의 '正說'을 이루게 함이다. 그 가운데에 처음 四句는 바로 結함이고, 뒤의  '處則'아래는 반복하여 해석함이다. 법계가 가지런히 일어남이 頓이니, 마치 달이 온갖 내(川)에 들어감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함이 아닌 등과 같기 때문이다. 긴 시간이 끊어지지 않음을 '常'이라 하니, 잠깐도 끊어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항상하고 이미 두루하므로 별도의 因을 기다리지 아니한다.


 但隨見聞하야 說有初成九會之別이라 諸慈悲

者가 於無盡中에 略此流傳이니

  다만 ㅂ고 들음에 따라 처음 成道와 九會의 차별이 있다고 말한다. 모든 자비하신 분들이 다함이 없는 가운데서 이를 간략히 하여 流傳시키시니,


  但隨見聞下는 四에 解妨이니 爲有伏難云旣橫竪該羅하야 說窮時處인댄 何有初成之始와 九會之終할새 故爲此通이라 於中에 二니 先은 正解妨이니 可知라

  '但隨見聞'아래는 四에 妨難을 풀어줌이다. 어떤 이가 조용히 따지며 말하길, "이미 橫과 竪로 該羅하여 시간과 처소를 모두 말하였다면 어찌 처음 成道의 시초와 九會의 끝이 있겠는가?"라고 하므로,  이를 통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 중에 둘이 있는데,먼저는 妨難을 바로 풀어줌이니, 알 수 있다.
 


  令尋於此하야 見無邊法은 如觀?뺤옄隙하야 見

無際空이라 而此時處가 卽同無盡이니 以一

處가 卽一切處며 一時- 卽一切時故니라


  이것을 찾아서 가이 없는 法을 보게 하는 것은 창문틈으로 보면서 끝없는 허공을 보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이 時와 處가 곧 다함이 없음과 같나니, 하나의 處所가 곧 一切의 處所며 一時가 곧 一切의 時인 까닭이다.


  令尋於此下는 重通再難이라 難云호되 略本이 至少하니 安窮無盡之理아 할새 故爲此通이라 以見理圓融故로 見少나 能窮無盡이니라 有法喩合하니 此二句는 法이요 如觀下二句는 喩요 而此時處下二句는 正法合이라
  以一處下는 釋成上義니 時處가 旣一多相卽인댄 法豈一不含多리오

  '
令尋於此'아래는 다시 힐난함을 거듭 통하게 함이다. 힐난하여 이르길 "略本 『화엄경』이 지극히 적으니 어찌 다함이 없는 이치를 다하리오?"라고 하니, 그러므로 이를 위하여 통하게 함이다. 理致가 원융함을 보는 까닭으로 조금 보았으나 능히 다함이 없는 이치를 다한다. 法과 比喩와 合이 있으니, 이 二句는 法이다. '如觀'아래 二句는 비유요, '而此時處'아래 二句는 바로 法과 合이다.
  '以一處'아래는 위의 뜻이 이루어짐을 해석함이다. 時와 處가 이미 一과 多에 相卽하였다면 法이 어찌 一이 多를 포함하지 않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