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 [6]

화엄행 2009. 3. 27. 03:19

2007/02/03 오 전 3:07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八에 廣演玄言者는 謂經에 多有玄言妙旨어늘 昔不廣明이라 或指在別章하며 或略陳不具로다 今應具者는 畢在疏文이라 文易意深을 廣申體勢하노니 如始成正覺은 以諸宗始成으로 以會之하고 智入三世는 以二智三智四智로 而釋之하고 如幻喩中엔 具引兎章以盡之하고 如影之喩엔 分三影以別之하고♣(1) 第七廻向에 刹平等等은 出諸句以揀之하고
第八廻向에 歷境起願은 以橫竪位次而彰之하고 三天偈讚에 離相廻向은 以般若等深經과 中百等論의 玄妙而通之하고 九會五周는 皆以性相而廣之라 普賢三昧은 窮妙中之妙하고 出現一品은 盡玄中之玄이니라 至如法界華藏之深觀과 旨歸關 之妙章은 盡關鍵之幽微하야 窮義理之分齊요 如關中繫表와 三玄格言은 有美斯經이라 必盡其奧니라 亦有指別章者는 皆非正要어니와 知與不知에 無乖弘讚耳니라

  第八에 '廣演玄言'이라는 것은 經에 玄妙한 말과 뜻이 많이 있으나 옛적에는 자세히 밝히지 못하였다. 혹은 別章에 있다고 지적하거나 혹은 간략히 진술하여 갖추지 아니하였다. 응당히 갖추어야 할 것은 疏文에 있다. 글은 쉽지만 뜻이 깊은 것은 널리 體勢을 자세히 펴 보이니, '처음 정각을 이룸(始成正覺)'은 모든 宗의 '始成'으로써 그것을 회통하고, '지혜가 삼세에 들어감(智入三世)'은 二智·三智·四智로써 이를 해석하고, '幻과 같다는 비유' 가운데는 '兎章'을 갖추어 인용함으로써 다하고, '그림자와 같다는 비유'에서는 '세가지 그림자'로 나누어서 그것을 구별하고, 第七 廻向에 '刹이 평등하다'는 등은 여러 句를 냄으로써 이를 간별한다.
第八 廻向에 경계를 겪으면서 願을 일으킴은 橫과 竪의 位次로써 드러내고, 三天이 偈로 相을 여읜 회향을 讚嘆함엔 『般若經』등의 深經과 『中論』·『百論』등 論의 玄妙함으로 그것을 통괄시키고, 九會 五周는 모두 性과 相으로써 널리 설명한다. 普賢三昧는 妙한 가운데 妙함을 다하고, 「如來出現品」 한 品은 玄한 가운데 玄함을 다하였다. 法界華藏의 深觀과 旨歸關脈의 妙章에  關鍵의 幽微를 다하여 義理分齊를 窮究함이요,  關中繫表와 三玄格言 같은 것은 이 경을 아름답게 하니, 반드시 그 심오함을 다해야 한다. 또한 別章을 가리킴이 있는 것은 모두 올바른 要諦가 아니나, 知와 不知에 널리 찬탄함에 어그러짐이 없을 뿐이다.

♣(1) 如影之喩엔 分三影以別之하고 ;「十忍品」중의 '如影忍'을 설명함에 『攝論』의 三喩 (水月喩 * 光影喩 * 影像喩 )를 들어 해석함을 말함. 


 第九에 泯絶是非者는 昔人이 勝負氣高하며 是非情厚하야 上古妙義를 用而不言하고 先賢小瑕를 廣申破斥하니 如破娑婆의 形如虛空에 便云호대 良由譯人이 不閑經論하고 謬預譯場하야 誤累聖敎가 一朝至此라하니 先師가 在其譯內어늘 斧鑿이 太深이로다 纖芥가 在於珠中이어니 何須擊破리오 

  第九에 '泯絶是非'라는 것은 옛 사람이 승부의 기질이 높고 시비의 정이 두터워서 上古(賢首)의 妙意를 사용하되 말하지 아니하고 先賢의 작은 허물을 널리 펼쳐서 파척하였으니, '沙婆의 형상이 마치 허공과 같다' 함을 파척하면서 문득 이르길, "진실로 번역하는 사람이 經과 論을 연구하지 않고 잘못 譯場에 참여하여 聖人의 가르침을 그르친 것이 하루 아침에 이에 이르렀다."고 함과 같다. 先師(賢首)가 그 譯場內에 계셨는데 도끼로 깨뜨림이 너무 심하다. 작은 겨자가 구슬 가운데에 있다한들 어찌 반드시 깨뜨려야만 하겠는가?



又如十行品에 釋不住中流에 廣申異釋하니 晉經失旨하야 致古釋詞枝어니와 今文은 分明하니 何須敍昔이리오 若斯之類가 其事頗多라 終日是非런들 豈合大道리오
凡破義者는 其猶毒蛇(석)手에 不得不斬이요 毒樹生庭에 不得不伐이니 若邪解亂轍이면 事須決之요 若易知其非면 略而不述이요 若似正不正이면 則幷決使明이라 如欲識眞金인댄 須知鍮石이니 蓋不獲已요 情忘是非니라 設有破斥이라도 須存禮樂하며 不得自尊己德하야 下視先賢이니 須知(창)♣(2)者는 難이요 因修者는 易니 縱有擧非顯是라도 不是自衒自媒라 故로 今疏文엔 是非全少하니라
 
또 「十行品」에 '中流에 머물지 아니함'을 해석함에 널리 다른 해석을 펴니, 晉譯經本이 뜻을 잃게되어 古譯이 言詞의 가지를 이루었으나 지금은 글이 분명하니, 어찌 옛것을 반드시 서술해야하겠는가? 이와 같은 종류의 일이 자못 많으니, 종일토록 시비한들 어찌 大道에 합하리오?
무릇 파하는 뜻은 마치 독사가 손을 물면 부득이 죽이지 않으면 안되고, 毒이 있는 나무가 정원에 나면 부득이 베어야 하는 것과 같다. 만약 삿된 해석이 어지럽게 돌아다니면 그 일은 반드시 결단해야 한다. 만약 그것이 그르다는 것을 알기 쉬우면 간략히 하여 서술하지 않고, 만약 옳은 것 같으면서 옳지 않으면 모두 결단하여 분명하게 하니, 진짜 금을 알고자 하면 반드시 놋쇠와 돌을 알아야 함과 같다. 대개 부득이 했을 뿐이고 感情에는 시비를 잊었다. 설사 파척함이 있더라도 반드시 禮樂을 두어야 하며, 스스로 자기의 덕을 높히고 선현을 얕잡아 보지 말아야 한다. 모름지기  草 하는 자는 어렵고 그로 因하여 닦기는 쉬운 것임을 알아야 한다. 비록 그른 것을 들어 옳은 것을 나타냄이 있더라도 스스로 자랑하고 스스로 뽑내서는 아니된다. 그러므로 지금 疏의 글에는 是非가 아주 적다.

♣(2) (창) ; 草創과 같은 것으로, 일의 시작 또는 사업의 시초를 의미한다.



 第十에 均融始末者는 然이나 造疏大體는 皆初重後輕이어니와 若更廣開門庭하고 消文疏略이면 至於弘闡에 聖旨多沈일새 今以大經九會의 始末深玄으로 逢義卽明하고 不揀初後하며 但初已釋인대 後不重明이로다 故로 義科章門이 落落星布하야 使初中後善하며 始末可觀也니라
略述製疏하면 有斯十意일새 故로 忘軀靈境하야 仰述玄猷하노니 本意皆爲衆生하야 得同普賢諸佛耳니라

 
第十에 '均融始末'이라는 것은 疏를 지음에 大體는 모두 처음은 重히 여기고 나중엔 가볍게 여기나, 만약 다시 널리 門庭을 열고 文을 해석함이 지나치게 간략하다면 널리 闡揚함에 이르러서 聖旨가 많이 잠겨버린다. 이제 大經九會의 始末의 깊고 그윽함에 뜻을 만나면 곧 밝히고 처음과 後를 간별하지 않는다. 다만 처음에 이미 해석하였으면 뒤에서 거듭 밝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뜻으로 科目한 章文이 落落하게 별이 널려 있는 것 같이 初·中·後를 잘 밝혀 처음과 끝을 볼 수 있게 한다. 
 疏를 지음을 간략히 서술하면 이러한 열 가지 뜻이 있으니, 그러므로 몸을 靈境에 잊어버리고 우러러 玄妙한 이치(猷)를 서술하노니, 本意는 다 중생이 보현보살이나 諸佛과 같아지기 위한 것 뿐이니라. 




    第三節. 廻施衆生

     

 ○ 廻玆勝善下二句는 第三에 廻施衆生者라 前之二句는 作疏所爲니 爲於衆生이요 此段은 通廻歸依之益과 及所成德과 製疏之功이니  ?뺤옄一句라도 冥合聖心인댄 盡爲衆生하야 得大覺圓明과 涅槃常樂耳니라 

 
○ '廻玆勝善'아래 二句는 第三에 衆生에게 회향하여 베푸는 것이다. 앞의 二句는 疏를 짓는 까닭이니 중생을 위함이다. 이 文段은 통틀어 귀의한 이익과 이룬 바 덕과 疏를 지은 공덕을 廻向함이니, 만일 一句라도 聖心에 冥合한다면 모두가 중생이 大覺圓明과 涅槃常樂을 얻게하기 위함일 뿐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