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 [5]

화엄행 2009. 3. 27. 03:18

2006/11/13 오 전 12:38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    卷第四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七에 明示法相者라 然이나 性之與相이 若天之日月과 易之乾坤하니 東夏西方이 分宗開敎에 學兼兩轍하야사 方曰通人이니 是以釋經에 事須明示니라
  然이나 此經法相은 名義兼廣하니 或有名無義하며 或有義無名이어늘 昔人이 苟見一名에 廣引論釋하야 隨名解義하니 義乃無窮이라 如釋淨行品百四十一願♣(1)에 以諸門料揀하고 釋梵行品四果♣(2)에 廣引婆沙♣(3)하며 問明品貪瞋之名은 全抄唯識하고 十行品三倒♣(4)는 廣據諸宗하니 雖則皆是法門이나 而甚深觀行이 峠於名相일새 今皆略陳而已니라
 古人이 若有義無名인댄 則莫知所以일새 今則引諸經論하야 以名管之하야 使經中法相으로 昭彰於衆論이로다

  第七에 '明示法相'이라는 것은 그러나 性相과 法相은 하늘의 日*月과 같고, 周易의 乾*坤과 같다. 東夏(중국)와 西方(인도)이 宗을 나누고 敎를 열음에 兩轍을 겸하여 배워야만 비로소 通達한 사람이라 말한다. 이러한 까닭에 經을 해석함에 이 일을 모름지기 밝혀 보여야 한다.
  그러나 이 經의 法相은 이름과 뜻이 모두 광대하다. 혹은 이름은 있으나 뜻이 없고, 혹은 뜻은 있되 이름이 없다. 옛 사람이 굳이 한 이름을 보고 널리 論을 인용하여 해석하고, 이름에 따라서 뜻을 해석하니 뜻이 무궁하다. 「淨行品」百四十一願을 해석함에 견주어보면, 여러 門으로써 헤아려 간별하고, 「梵行品」의 四果를 해석함에는  널리 '婆沙論'을 인용하였으며, 「問明品」의 貪瞋의 이름은 전적으로 '唯識論'을 베꼈다. 「十行品」의 三顚倒는 널리 모든 宗旨에 의거하였으니, 비록 모두 法門이긴 하지만 깊고 깊은 觀行이 名相에 가리워졌다. 이제 곧 간략히 진술할 뿐이다. 
 옛 사람이 만약 뜻은 있으나 이름이 없으면 그 까닭을 알지 못하기에, 이제 여러 經과 論을 인용하여 이름하여서 그것을 管轄하여 經 가운데에 法相으로 하여금 여러 論들을 환하게 밝히게 하였다.

♣(1) 淨行品百四十一願 ; 百四十一願은 十信 중의 願이다. 이 원을 나누면 열 가지가 된다.
1. 在家時의 11원이 있고, 2. 出家하여 受戒時의 15원, 3. 坐禪에 나가 觀할 때의 7원, 4. 行할 때의 6원, 5. 목욕과 세수할 때의 7원, 6. 걸식하며 道를 행할 때의 55원, 7. 城邑에 이르러서 걸식할 때의 22원, 8. 다시 돌아와서 세수하고 목욕할 때의 5원, 9. 외우고 익힐 때의 10원, 10. 자리에 들어 쉴 때의 3원 등 모두 141원이다.
「淨行品」疏에서는 '十信이 원융하여 낱낱이 十을 갖추었으므로 100이고, 三賢과 十地와 等覺이 41이다.'라고 하였다.

♣(2) 梵行品四果 ; "만약 승이 범행이라면 예류향이 승인가 예류과가 승인가, 일래향이 승인가 일래과가 승인가, 불환향이 승인가 불환과가 승인가, 아라한향이 승인가 아라한과가 승인가, 삼명이 승인가, 육통이 승인가?"라고 하였으니, 즉 預流 * 一來 * 不還 * 阿羅漢의 四果를 말한다.

♣(3) 婆沙 ; [아비달마대비바사론]을 말하며, 200권으로 되어 있다. 불멸후 400년에 가니색가왕이 500나한을 모아 불경을 결집할 때 「發智論」을 해석케 한 책으로 설일체유부의 근본 경전이다. 659년 玄奬이 번역하였으며, 약칭하여 「婆沙論」이라 한다.
 

♣(4) 十行品三倒 ; 여기서 十行은 十廻向으로 보인다. 그리고  三倒는 三顚倒로, 心顚倒 * 想顚倒 * 見顚倒를 뜻한다.



  至如昇兜率品에 二十一種功德은 則有義無名하고 離世間品初는 則有名無義하니 今於兜率品엔 廣引經論하야 而委釋之하고 至離世間品하야는 略陳而已니라 又如離世間品이 具含諸位인댄 一一位內에 攝義無遺라 或名異義同하며 或前後廣略 이로다
  然이나 於五十二位에 次第無差일새 今竝具引六會經文하야 對而釋之하야 昭然可見하야 使七卷之經으로 句句有據케하노니 ?뺤옄驗昔解컨댄 臆說이 尤多로다 

  「昇兜率天宮品」에 이르러 견주어보면 二十一種의 功德은 뜻은 있으나 이름이 없고, 「離世間品」初에는 이름은 있으나 뜻이 없다. 지금은昇兜率天宮品」에서는 널리 經과 論을 인용하여 자세히 그것을 해석하고, 「離世間品」에 이르러서는 간략히 밝힐 뿐이다. 또 「離世間品」과 같이 諸位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 낱낱 位 안에 뜻을 攝收하여 빠뜨림이 없게 하였다. 혹 이름은 다르나 뜻은 같고, 혹은 前後가 자세하거나 간략하다.
  그러나 五十二位에서는 차례가 어긋남이 없으므로 지금은 六會의 經文을 아울러 모두 인용하고 대조하여 해석해서 분명하게 볼 수 있어 七卷의 經으로 구절 구절마다 의거함이 있게 하였으니, 도리어 옛 해석을 證驗해 보면 억지설이 더욱 많다.



  然이나 性相二宗은 法相이 有同有異하니 如五眼十眼♣(5)과 六通十通等을 竝各示之하야 使無餘惑이로다 如初卷歎德에 釋以十身은 則法性宗之法相也요 釋智入三世에 廣引四智♣(6)는 卽法相宗之法相也요 以衆海解脫之門으로 釋衆海之名은 則法性宗之法相也요 以九門之六度♣(7)로 釋經十度♣(8)는 卽法相宗之法相也요
  如十通十忍♣(9)에 會六通於五忍♣(10)하고 十身十智에 融三身於三智하고 十門涅槃에 以會通四種涅槃하고 十種佛智에 而一智融於四智는 卽性相二宗無違之法相也니 觸類非一이니라 

  그러나 性宗과 相宗의 二宗은 法相이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으니, 五眼·十眼과 六通·十通 등을 아울러 각각 보여서 남은 의혹이 없게 하였다. 初卷에서 德을 찬탄함에 十身으로 해석함은 즉 法性宗의 法相이요, 智가 三世에 들어감을 해석함에 四智를 널리 인용함은 즉 法相宗의 法相이다. 衆海의 解脫門으로써 衆海의 이름을 해석함은 곧 法性宗의 法相이요, 九門의 六度로써 經의 十度를 해석함은 곧 法相宗의 法相이다.
  十通·十忍을 견주어보면 六通과 五忍에 회통하고, 十身·十智는 三身과 三智에 융합하며, 十門涅槃에는 四種涅槃으로 회통하고, 十種佛智에 一智가 四智에 융합함은 즉 性宗과 相宗의 二宗에 어긋남이 없는 法相이다. 부딪치는 종류가 하나가 아니다.


♣(5) 五眼十眼 ; 五眼은 1. 肉眼(일체의 色을 봄) 2. 天眼(일체의 중생心을 봄) 3. 慧眼(일체 중생의 경계를 봄) 4. 法眼(일체 法의 如實한 相을 봄) 5. 佛眼(여래의 十力을 봄) 이다.
十眼은 五眼을 더 자세히 연 것이다. 즉 6. 智眼(諸法을 앎) 7. 光明眼(불광명을 봄) 8. 出生死眼(열반을 봄) 9. 無碍眼(보는 바가 걸림이 없음) 10. 一切智眼(普門으로 法界를 봄) 등이다.

♣(6) 四智 ; 法相宗에서 설명하는 智로, 지는 成道時에 轉識하여 얻은 것으로 다음과 같다. 
1. 前 五識을 轉하여 얻은 智로 成所作智라 한다. 이를 얻어 十地 이전의 보살과 二乘과 凡夫 등을 利樂케하기 위하여 시방에서 三業으로 여러가지 변화하는 일을 보여 각각 이락되게 하는 지혜임.
2. 第六識을 轉하여 얻은 지혜로 妙觀察智라고 한다. 이것은 모든 법의 상을 묘하게 관찰하여 법을 설하고 의혹을 끊는 지혜이다.
3. 第七識을 轉하여 얻은 無漏智로 平等性智라고 한다. 通達位에서 一分을 얻고 佛果에 이르러서 그 全分을 얻는다.
4. 有漏의 第八識을 轉하여 얻은 無漏智로서 大圓鏡智라고 한다. 이것은 거울에 한 점의 티끌도 없어 삼라만상이 그대로 비추어 모자람이 없는 것과 같이 원만하고 분명한 지혜이다.

♣(7) 九門之六度 ; 六度는 육바라밀로서 각각 9개의 문이 있음을 말한다. 즉 1.自性門 2.一切門 3.難行門 4.一切門門 5.善土門 6.一切種門 7.道求門 8.與二世樂門 9.淸淨門 등이다.

♣(8) 十度 ; 십바라밀로서 보시 * 지계 * 인욕 * 精進 * 禪定 * 智慧의 육바라밀 중에서 지혜바라밀을 열어서 4바라밀을 더한 것이다. 즉 大願바라밀 * 方便바라밀 * 大力바라밀 * 大智바라밀을 더한 것이다.
 
♣(9)
十忍 ; 音聲忍 * 順忍 * 無生忍 * 如幻忍 * 如焰忍 * 如夢忍 * 如響忍 * 如影忍 * 如化忍 * 如空忍 등을 말한다.

♣(10) 五忍 ; 伏忍 * 信忍 * 順忍 * 無生忍 * 寂滅忍이 있고, 각각 上中下의 三品이 있어 각각 三賢 * 十地 * 等覺 * 妙覺에 배대하였다.


  又諸經疏에 所明法相은 多是傍來라 如法華經엔 但云如來知見과 力無所畏와 禪定解脫三昧로 深入無際라하니 斯乃通讚佛智深遠이어늘 逢一力字에 立十力章하고 無所畏字에 立四無所畏章하고 禪立四禪♣(11)하고 定立八定♣(12)하고 解脫三昧에 各立章門하니 若此之流가 千章萬章이라 釋一卷經도 亦不得盡이어니 若爲成種智之境이리오 應須更學多聞이니라
  若取法華玄宗인댄 但示等有知見이라 先所出(납)은 是子所知라하니 非是十章五章으로 能盡其妙니라 若華嚴經인댄 有異於此하니 如十度十力을 一經에 數十處明이라 故須總撮一章하야 頓曉其旨니라

  또 여러 經 疏에서 밝힌 法相은 흔히 곁가지에서 온 것이다. 『法華經』을 견주어보면 다만 "如來의 知見과 十力과 四無所畏와 禪定과 解脫三昧로 깊이 無際에 들어간다"고만 말하였다. 이것은 즉 부처님의 지혜가 심원함을 통틀어 찬탄한 것이거늘, 하나의 '力'字를 만남에 十力章을 세우고, '無所畏'字에 四無所畏章을 세우며, '禪'에 四禪을 세우고, '定'에 八定을 세우며, '解脫三昧'에 각각 '章門'을 세웠으니, 이와같은 部流가 千章 萬章이나 된다. 한 권의 經을 해석함도 또한 다할 수 없는데 어찌 一切種智의 경계를 이루리오? 응당 모름지기 다시 多聞을 배워야 할 것이다.
  만약 法華의 玄妙한 宗旨를 취한다면 다만 평등하게 갖고 있는 知見을 보일 뿐이다. 먼저 출납한 바는 窮子가 알 바이니, 十章*五章으로 그 玄妙함을 다 할 수는 없다. 『화엄경』을 견주어보면 이와는 다르니, 十度와 十力을 한 경전의 수십 곳에서 밝혔다. 그러므로 반드시 총히 一章을 잡아서 몰록 그 뜻을 밝혀야 한다.


♣(11) 四禪 ; 범어 Catur-dhyana. 四禪定으로 줄여서 四禪이라고 한다. 色界의 禪으로 이 사선을 닦아서 色界에 태어난다 하며, 內道(불교를 믿고 수행하는 자들을 의미.)와 外道(불교 이외의 신앙을 갖고 수행하는 자들을 의미.)가 함께 닦는다. 여기에 初禪 * 二禪 * 三禪 * 四禪이 있다.

♣(12) 八定 ; 色界禪의 四禪의 定과 無色界의 空無邊處定 * 識無邊處定 * 無所有處定 * 非想非非想處定을 합한 것이다.



  如十地品內엔 以法相으로 爲貫門하니 不了三聚면♣(13) 豈知離垢之名이며 不曉八禪이면 寧知發光之行이리오
  四地道品은 成無生之慧光이요 五地諸諦는 窮眞俗以化物이요 六地般若는 要觀緣生호대 星羅十門과 月滿三觀으로 硏窮性相이라야 般若現前하니 非是懸指昔三에 中乘所見이니라 七地엔 窮一切菩提分法이라 權實雙行이요 八地엔 七勸該羅하니 方見無功之道요 九地엔 居法師之位라 藥病須知니 不將四十辯才면 何以廣能化物이리오 得第十地하야사 方盡種智之深玄이니라

 「十地品」안을 살펴보면 法相으로 貫門을 삼으니, 三聚를 알지 못하면 어찌 離垢의 이름을 알며, 八禪을 밝히지 못하면 어찌 發光의 行을 알겠는가?
  四地의 道品은 無生의 慧光을 이루고, 五地의 모든 諦는 眞과 俗을 다함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며, 六地의 반야는 반드시 緣으로 生함을 관찰하되 별같이 늘어선 十門과 달같이 圓滿한 三觀으로 性과 相을 연구하여야 般若가 앞에 나타나니, 멀리 과거의 三乘에서 中乘이 보는 바를 가리킴은 아니다. 
  七地에선 一切의 菩提分法을 다하니, 權과 實이 쌍으로 行한다. 八地에선 七勸을 該羅하니, 바야흐로 無功의 道를 본다. 九地에선 法師의 地位에 머물기에 藥과 病을 반드시 알아야 하나니, 장차 四十辯才를 갖추지 않으면 무엇으로써 널리 중생을 교화할 수 있으리요?  第十地를 얻어서야 비로소 深奧하고 玄妙한 一切種智를 다하게 된나니라. 

♣(13) 不了三聚 ; 三聚는 三聚淨戒로, 律儀戒 攝善法戒 饒益有情戒를 말한다. 『화엄경』「十地品」에서는 이 삼취정계를 닦아 離垢地를 얻는 것을 설명하였다.



  四十二位之昭彰에 竝稱觀行이요 九會五周之因果에 佛道方圓이라 故로 若相若性과 若因若果가 無不成觀하며 無不契眞이니 依經修行이 竝是聖意니라 若不了法相하면 豈唯不知聖旨리오 亦非弘闡이니 尋文自知니라

 四十二位를 밝힘에 觀과 行에 아울러 칭합하고,  九會의 五周의 因果에서 佛道가 비로소 원만해 진다. 그러므로 相이나 性이나 因이나 果가 觀을 이루지 않음이 없으며 眞에 계합하지 않음이 없으니, 經을 의지하여 수행함이 모두 聖人의 뜻이다. 만약 法相을 요달하지 못하면 어찌 聖人의 뜻만 알지 못할 뿐이겠는가? 또한 널리 드날리게 함도 아니니, 글을 찾아보면 스스로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