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 [3]

화엄행 2009. 3. 27. 03:14

2006/11/04 오후 6:53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一聖旨深遠者는 此是總意니 謂佛法이 沖深에 隨人智慧하야 有淺深故니라 斯亦爲遮外難이라 恐有難言호대 世路는 以多岐亡羊♣(1)하고 學者는 以多途喪眞하나니 根源莫二나 枝派轉多라 舊疏新章이 益汨眞性이어늘 何以屋上架屋하며 牀上安牀고 昔已有之라 何要改作이리요할새 故下十意는 皆通此疑니라
 今之初意는 正答斯難이니 特由聖旨深遠에 隨見不同일새 各呈其能하야 以光法施하니라 昔可尙也면 安更有詞리오
 故로 五百比丘가 各說身因에 佛許無非正說하시며 三十二菩薩이 共談不二에 異見同歸하며 下經之中에 無邊海會가 各入解脫之門하니 境界萬差나 同趣如來智海라

  第一에 '聖旨深遠'이라는 것은 總意니, 佛法이 깊고 깊어 사람의 지혜에 따라 얕고 깊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外道의 힐난을 막기 위함이다.
어떤 사람이 따져 묻되 '세상의 길은 갈래가 많아 羊을 잃어버리고, 배우는 자들은 많은 길 때문에  眞理를 잃어버린다. 根源은 둘이 아니나 가지와 갈래가 전전하여 많아졌다. 舊疏와 新章이 더욱 眞性을 잠기게 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지붕 위에 지붕을 얹어놓고, 평상 위에 평상을 놓는가? 옛부터 이미 그러한 것이 있으니, 무슨 필요로 고쳐서 짓는가?'라고 할까 두렵다. 그러므로 아래의 十意는 모두 이러한 의심을 통하게 함이다.
 이제 처음 뜻은 이러한 힐난에 바로 답함이다. 특히 聖旨가 深遠하기 때문에 견해에 따라 같지 않으니, 각각 그 能(잘함)을 드러냄으로써 法施를 밝힌다. 옛 것이 숭상할 만하면 어찌 다시 말할 것이 있으리오?
 그러므로 오백비구가 각각 身因을 말씀하심에  부처님께서 正說이 아닌 것이 없음을 허용하시며, 三十二菩薩이 함께 不二를 말씀하심에 異見이 한가지로 돌아가며, 下經 가운데에 가이없는 바다 같은 모임이 각각 해탈의 문으로 들어가니, 경계가 萬가지로 差異가 나나 여래의 智慧의 바다로 함께 나아간다.

♣(1) 多岐亡羊 ; '世路'는 갈래가 많아 羊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列子』「說符第八」에 나오는 故事를 인용한 것이다.


 故로 海慧菩薩이 云호되 如來境界無有邊하니 各隨解脫能觀見이라하시니라 是以로 西域東夏가 釋論釋經에 經有多家論文하고 論有多師解釋이나 如析金杖에 金體不殊요 總收百川에 溟渤彌大니라
 故로 或登地菩薩과 或加行賢人과 或當代時英과 或如來懸記가 皆思拔群伍하고 智出衆情이나 而所見不同이라 竝傳於世에 各申其美하며 共讚大猷하니 依之修行에 無不獲益이니라 今亦仰攀勝德하야 用盡專精하니 以管窺天♣(2)이요 滴流足海니 復何怪焉이리오

  그러므로 海慧菩薩이 이르길, “如來의 境界는 가이없어 각각의 해탈에 따라서 觀하여 볼 수 있네”라고 하였다.
 이러한 까닭으로 西域과 東夏(중국)에서 論을 해석하고 經을 해석함에 經에는 많은 大家의 論文이 있고, 論에는 많은 論師들의 해석이 있다. 마치 금으로 된 錫杖을 쪼갬에 金 자체는 다르지 않은 것과 같고, 百川을 전부 거두어들임에 溟(큰 바다)이 더욱 커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혹 登地菩薩과 혹 加行位의 賢人과 혹은 當代의 英賢과 혹은 如來懸記가 모두 思慮가 대열에서 뛰어나고, 지혜가 뭇 妄情으로부터 뛰어나나 보는 바가 같지 않다. 아울러 세상에 전하여 각각 그 아름다움을 펴고 큰 이치(大猷, 즉 華嚴經)를 함께 찬탄하니, 그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이익을 얻지 못함이 없다. 이제 또한 수승한 덕에 우러러 의지하여 오롯한 정성을 다 쓰니,  대롱의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봄이고, 방울져 떨어지는 물이 흘러 바다를 채움이니, 다시 무엇이 괴이하다 하리요?

♣(2) 以管窺天 ; 대롱으로써 하늘을 본다는 것으로, 세상을 보는 식견이 좁은 것을 비유한 것.
그러나 여기서는 각자마다 자기의 얕은 智慧를 다하여 각자 나름대로 華嚴敎學의 弘布에 一助할 수 있다는 확신을 말한 것이다.



 第二에 顯示心觀者는 以經雖通詮三學♣(3)이나 正詮於♣(4)하니 皆是如來定心所演이라 故로 經에 云호되 汝所說者는 文語요 非義어니와 我所說者는 義語요 非文이라하니라 況華嚴性海는 不離覺場코 說佛所證이라 海印三昧가 親所發揮며 諸大菩薩의 定心所受아
 昔人이 不參善友하고 但尙尋文하며 不貴宗通하고 唯攻言說하니♣(5) 不能以聖敎로 爲明鏡하야 照見自心하며 不能以自心으로 爲智燈하야 照經幽旨라 玄言理說을  竝謂雷同♣(6)하며 虛己求宗을 名爲臆斷이라하며 不知萬行으로 令了自心하고 一生驅驅하야 但數他寶하며 或年事衰邁하야 方欲廢敎求禪하니 豈唯抑乎佛心이리오 亦實?뺤옄誤後學이로다

  第二에 '顯示心觀'이라는 것은 經은 비록 三學을 통틀어 말하나 正으로는 定을 말함이니, 모두가 如來의 禪定心으로 연설한 바이다. 그러므로 經에 이르길 "너희가 말한 것은 文語이지 義가 아니나 내가 말한 것은 義語요 文이 아니다."고 하시었다. 하물며 華嚴性海는 覺의 도량을 떠나지 아니하고 부처님이 證得하신 바를 설한 것이고,  海印三昧로 친히 발휘한 바이며 모든 大菩薩이 禪定心으로 받은 바일까 보냐?
 옛사람이 善友를 찾아보지 아니하고 단지 글만을 숭상하여 찾으며, 宗通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오직 言說만을 전공하여 聖敎로써 밝은 거울을 삼아 자기 마음을 비추어 보지 못하고, 자기 마음으로 智慧의 등불로 삼아 經의 깊은 뜻을 비추어 보지 못했다. 玄微한 말씀과 이치의 말씀을 모두 '雷同'이라고 말하며, 자기를 비우며 宗旨를 구함을 臆斷이라 이름하고, 萬行으로 자기의 마음을 了達케 함을 알지 못하고, 일생을 구구하게 다만 다른 이의 보물만 세고 있다가, 혹은 나이가 쇠진하여 바야흐로 敎를 폐하고 禪을 구하려 하니, 어찌 佛心만 억누르리요? 또한 참으로 도리어 後學들을 잘못되게 함이다.

♣(3) 三學 ; 범어 trini-siksani. 불교를 배워 도를 깨달으려는 이가 반드시 배우고 닦아야 할 세가지. 즉 戒(增上戒) * 定(增上定) * 慧(增上慧)를 말한다. 戒는 身口의 惡을 그치고 非를 막는 戒律. 定은 산란심을 막고 안정을 얻는 방법으로, 즉 모든 禪定과 三昧를 말한다. 慧는 惑을 깨뜨리고 진리를 깨닫기 위한 四諦 * 十二因緣 * 眞如 * 實相을 觀하는 것이다.

♣(4) 定 ; 三藏 가운데 經은 定을, 律은 戒를, 論은 慧를 말한 것이다.

♣(5) 不貴宗通하고 唯攻言說하니 ; 『?뺤옄加經』에 宗通은 自修行이고, 說通은 깨닫지 못한 者에게 보이는 것이라 하였다. 宗에 通하지 못하고 오로지 해석에만 매달리는 것을 말한다.

♣(6) 雷同 ; 『禮記』에 이르기를 "雷同하지 마라"하고, 注에 이르기를 "雷가 소리를 냄에 萬物이 동시에 應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라고 하였다.



今皆反此일새 故製玆疏하야 使造解成觀하야 卽事卽行하며 口談其言이나 心詣其理케하야 用以心傳心之旨하야 開示佛所證之門호대 陶南北二宗之禪門♣(7)하고 撮台衡三觀之玄趣♣(8)하야 使敎合亡言之旨하며 心同諸佛之心하니라 無違敎理之規하야 暗蹈忘心之域일새 不假更看他面하야 謂別有忘機之門하야 使彰乎大理之言으로 疏文懸解하야 更無所隱♣(9)하니 難可具陳이로다 

  지금은 모두 이와는 반대이다. 그러므로 이 疏를 지어서 理解해서 觀을 이루게 하여 事에 나가면 곧 行하게 하며, 입으로는 그 말을 이야기하고 마음으로는 그 理致에 나아가게 하며, 마음으로써 마음을 傳하는 뜻을 사용하여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門을 열어 보이게 하되 남북 二宗의 禪門을 陶冶하고, 台와 衡의 三觀의 玄妙한 理致를 잡아서 敎로 하여금 말을 잃어버린 뜻에 합하게 하며, 마음으로 諸佛의 마음과 같게 한다. 敎理의 規範을 어김이 없이 가만히 妄心의 경계를 밟으니, 다시 다른 면을 보아서 따로 根機를 잊어버리는 門을 빌리지 않고, 큰 이치를 밝히는 말로 疏文을 미리 해석하여 다시 숨기는 바가 없게 하니, 다 갖추어 말하기 어렵나니라.

♣(7) 陶南北二宗之禪門 ; '南北 二宗의 禪門을 陶冶하고'에 南宗은 즉 六祖 慧能의 禪이고, 北宗은 神秀의 禪이다. 비록 남종은 頓이고 북종은 漸이라는 頓漸의 차이가 있으나, 見性에는 다름이 없으므로 회통한다는 뜻임.

♣(8) 撮台衡三觀之玄趣 ; 天台山의 智?뺤옄와 衡山 (또는 南岳이라고도 함) 惠思대사를 말한다.
惠思大師(517~577)는 중국 남북조시대에 남예주 무진에서 태어나서 15세에 출가하여 『法華經』을 공부하고, 慧文의 가르침을 받아 일심으로 연구 정진한 공으로 마침내 法華三昧를 얻었다. 뒤에 그 이름을 시기하는 무리들의 박해를 받으면서 곳곳에서 『法華經』을 강의하며, 568년 남악에 들어가 講席을 펴고 선양하다가 道敎의 道士들의 참소를 받아 陳나라 대건9년 6월에 63세로 입적하였다.저서로는 『大乘止觀』2권, 『四十二字門』2권, 『安樂行儀』1권, 『南岳願文』1권, 『無諍行門』2권 등이 있다. 天台 智?뺤옄에게 止觀雙修의 一心에서 空 * 假 * 中觀을 함께 닦는 一心三觀을 전수하였다.
天台 智?뺤옄는 (538~597) 중국 隋나라 때 승려로, 天台宗의 開祖이다. 字는 덕안, 俗姓은 陳이며, 法名은 智?뺤옄이다. 18세에 상주 과원사에서 法緖에게 출가하고, 慧曠에게 律學과 大乘敎를 배우고, 陳 天嘉1년(560)에 광주 대소산에서 惠思를 찾아가 心觀을 전수 받았다. 30세에 惠思의 명으로 금릉에서 전도, 38세에 천태산에 들어가 수선사를 창건하고 『法華經』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일하였으며, 天台宗을 완성하였다.
저서로는 『法華文句』『法華玄義』『摩訶止觀』 등이 있으며, 실천과 지혜의 완성을 宗旨로 삼았다. 천태 지의는 종래 達摩禪은 頓悟頓修로 上上根機에 대한 편향된 것임을 비판하여, 현실의 凡夫도 따라서 수행하면 성불할 수 있도록 觀法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자세히 서술하였다. 즉 三種止觀이다.
三種止觀이란 1.漸次止觀 2.不定止觀 3.圓頓止觀이다. 이상의 삼종지관을 惠思로부터 전수 받는 一心三觀을 사용하였으니, 假觀과 空觀과 中觀이다.
현실세계는 인연에 따라 假合된 것이니 假이고(假觀), 假合된 것이기에 그대로가 空하다(공관). 그러나 현실의 세계는 그대로가 眞如의 實相이 나타난 것이니, 假라거나 空하다는 것에 집착해서는 않된다(中觀). 그리고 이상의 三觀이 一心 가운데서 동시에 행하여지니 圓頓止觀이다.

♣(9) 更無所隱 ; 聖人의 말씀은 큰 이치를 가르치는 말씀이니 '大理之言'이라 하고, 이러한 성인의 말씀은 뜻이 가려져 있어서 凡夫가 잘 알지 못하므로, 疏로 이를 밝혀서 사람들로 하여금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