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 [2]

화엄행 2009. 3. 27. 03:12

2006/09/13 오후 7:56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二節. 請威加護

     第一. 請歸之意


○ 第二我今下는 請威加護라 六句分三호리라
初二句는 請歸之意니 意欲釋經故라 然이나 通顯歸意가 乃有衆多하니 總相言者인댄 三寶吉祥하야 一切衆生의 最勝良緣이니 有歸依者면 能辨大事하야 生諸善根하고 離生死苦하야 得涅槃樂故니라
又一切經初에 有六成就하야 令物信故니 佛滅度後에 凡諸弟子의 所有著述에 皆歸三寶는 示學有宗하야 不自專已하야 離過失故요 請威加護하야 令契合故니라
上句는 自謙智劣하야 等彼一毛요 下句는 讚法廣深하야 同眞法界니 一毛度空엔 乍可知量이언정 凡智測法에 何能盡窮이리오
 

  ○ 第二의 '我今'아래는 위신력의 加護를 請함이다. 六句를 三으로 나눈다.
 처음 二句는 歸依를 請하는 뜻이니, 經을 해석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귀의하는 뜻을 통틀어 드러낸다면 매우 많다. 總相을 말한다면 三寶가 吉祥하여 일체중생의 가장 수승한 좋은 緣이니, 귀의하는 자가 있다면 능히 大事를 辨別하여 모든 善根을 내고, 生死의 苦痛를 떠나서 涅槃樂을 얻기 때문이다.
또 一切 經典의 처음에 六成就가 있으니, 중생(物)으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까닭이다. 부처님께서  滅度하신 後에 무릇 모든 제자들이 소유한 著述에서 모두 三寶에 귀의함은 배움에 宗旨가 있음을 보여서 스스로 전횡하지 아니하여 잘못을 여읜 것이며, 위신력으로 가호하기를 請하여 契合하게 하는 것이다.
上句는 스스로 지혜가 下劣하여 저 하나의 터럭과 같다고 겸양함이고, 下句는 법이 넓고 깊어서 眞法界와 같음을 찬탄함이다. 한 터럭으로 허공을 헤아림에 잠깐 동안에 그 量을 알 수 있을지언정 凡智(평범한 지헤를 갖은 者)가 법을 헤아림에 어찌 다할 수 있으리요?

♣ 六成就 ; 경전의 처음에 그 經이 설해진 장소나 聽衆 등을 기록한 부분을 通序(證信序)라고 하는데 通序의 내용은 다음 6항이 완비되어야 비로소 敎가 설해지기 때문데 이것을 六成就, 六事成就, 六種成就라고 한다. ① 信成就[如是] ② 聞成就 [我聞]③ 時成就 [一時] ④ 主成就 [佛] ⑤ 處成就 [在王舍城 등등] ⑥ 衆成就 [比丘衆 등등]



   第二. 願加護相
 

 次願承下二句는 願加護相이니 上句는 明加요 下句는 辨益이라
今初니 未能深入三昧하야 外感佛加일새 但請同體之慈하야 希霑勝益이니라
下句益中에 句句冥符는 願始末無違요 而言冥者는 亦謙詞也니 未得顯加일새 且希冥契하야 使凡心凡筆로 暗合聖心이니라 


  다음 '願承'아래 二句는 가호를 원하는 相이다. 上句는 가피를 밝힘이고 下句는 이익을 변별함이다.
이제 初니, 삼매에 깊이 들어가서 밖으로 부처님의 가피를 감득하지 못하였으니, 다만 同體의 자비를 請하여 殊勝한 利益에 적셔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下句의 이익 가운데에 '句句마다 그윽히 부합함'이라 함은 始와 末이 어긋남이 없기를 원함이다. 그리고 '冥'이라 말한 것은 또한 겸양의 말이다. 顯加를 감득하지 못하였으므로 우선 그윽하게 契合하여 凡心(평범한 중생의 마음)凡筆(평범한 중생이 쓴 글 등을 의미함)로 하여금 가만히 聖心에 계합되기를 바람이다. 



    第三. 著述所爲


 三에 令下二句는 著述所爲이니 使令法眼圓滿하야 化盡含生故니 賢首品에 云하되 彼諸大士威神力으로 法眼常全無缺減也라하니라 第九廻向에 不願成佛하고 唯願等於普賢者는 良以普賢이 該因徹果하야 佛前佛後에 皆悉有故며 普賢이 卽是諸佛根本故며 法界體故니라
故로 金剛頂經에 十方諸佛이 禮普賢者도 亦斯義矣니라 


 三에 '令'아래 二句는 저술이 된 이유(所以)니, 法眼을 원만하게 하여 含靈衆生들을 다 교화하려는 까닭이다. 「賢首品에 이르길 "저 諸大士의 위신력으로 法眼이 항상 온전하여 없거나 모자람이 없게 한다"라고  하였다. 第九 廻向에 '成佛을 원하지 아니하고 오직 보현과 같기를 원한다는 것'은 진실로 보현보살이 因을 해괄하고 果를 통철하여 佛前佛後에 모두 다 있기 때문이며, 보현이 곧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기 때문이며, 法界의 體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金剛頂經』에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보현보살에게 禮敬한다는 것'도 또한 이러한 뜻이다.



然이나 著述所爲는 但願大法弘通하야 衆生利樂이니 卽悲智大意어니와 曲論別爲인댄 乃有多緣하니 以斯經은 乃諸佛所證根本法輪이며 諸敎標準이라
此方西域에 無不仰遵이니라 而聖后所♣(1)은 文詞富博하야 賢首將解에 大願不終하고 方至第十九經하야♣(2) 奄歸寂滅하시니 苑公言續하나 而前疏를 亦刊하니 筆格文詞가 不繼先古하야 致令後學으로 輕夫大經하야 使遮那心源을 道流가 莫하며 普賢行海를 後進이 望涯일새 將欲弘揚에 遂發慨然之歎하노라


 그러나 著述하는 이유는 다만 大法이 널리 유통하여 중생이 利樂하기를 원할 분이니, 즉 慈悲와 智慧의 大意거니와, 자세하게 논하여 구별하면 이에는 많은 緣이 있다. 이 경이 모든 부처님이 證得하신 根本法輪이며, 모든 가르침의 標準이므로 이 지방(중국)과 西域에서 우러러 따르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러나
聖后(則天武后)께서 번역한 바는 文詞가 풍부하고 해박하여 賢首법사가 해석하다가 大願을 마치지 못하시고, 바야흐로 第十九經에 이르러 갑자기 寂滅에 드시었다. 慧苑公이 계속하였다고 말하나 전의 疏를 또한 깎아내어 필법의 격식과 文詞가 먼저 돌아가신 분을 계승하지 못하였으니, 後學으로 하여금 大經(화엄경)을 가볍게 여기게 하고 毘盧遮那(法身佛)의 心源을 수도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붙잡지 못하게 하였으며, 普賢行의 바다를 後進이 그 끝만 바라보게 하였으니, 장차 널리 드날리고자 함에 끝내 慨然히 탄식을 發한다.



 若有過不說하야 是非混同이면 豈唯掩傳者之明이리오 實乃壅學者之路라 若指其瑕(마디뢰) 가 出彼乖差면 豈唯益是非之情이리오 實乃心智之境이니라 故로 撫心五頂♣(3)하고 仰託三尊하야 不獲已而爲也로다 


만약 허물이 있어도 말하지 않아서 옳고 그름을  혼동하면 어찌 傳하여 준 者의 밝음을 가리운 것 뿐이리요? 실로 이에 배우는 者의 길도 막는 것이다. 만약 그 잘못을 지적함이 저 어긋남을 드러나게 한다면 어찌 옳고 그르다는 생각만 더할 뿐이겠는가? 실로 心智의 境界를 더럽히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에 五頂을 어루만지고 三尊께 우러러 의탁하여 부득이 저술한다. 


♣(1) 聖后所 ; 聖后는 則天武后를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는 황제의 신분으로 번역장에 참여하였다. 즉 이 경은 則天武后가 통치하던 周나라 證聖元年(695)으로부터 聖曆2년(699)까지 실차난타가 번역한 80권 『화엄경』을 말한다.

♣(2) 方至第十九經하야 ; 賢首 法藏이 80권 화엄경을 해석하다가 불기 1256년(AD712년) 제19권「十行品」전반까지 해석하다가 입적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임.

♣(3) 五頂 ; 중국 五臺山의 五峰(東臺,西臺,南臺,北臺,中臺)을 말한다. 이곳은 文殊菩薩의 住處이기 때문이다.




以斯別意가 略有十焉하니라
一은 聖旨深遠故요 二는 顯示心觀故요 三은 扶昔大義故요 四는 剪截浮詞故요 五는 善自他宗故요 六은 辨析今古故요 七은 明示法相故요 八은 廣演玄言故요 九는 泯絶是非故요 十은 均融始末故니라
初一은 爲總이요 後九는 爲別이니 意指昔瑕니라 然이나 疏中에 欲掩是非나 傳者가 須知得失이니 諸徒誠請에 難以違之요 長時弘宣에 不繁數述이나 恐迷宗滯迹하야 競作是非耳니라 


 이 別意가 간략히 열가지가 있다.
一은 聖旨가 깊고 멀기 때문이고, 二는 心觀을 나타내 보이기 때문이요, 三은 옛날의 大義를 잡아 세우기 때문이요, 四는 부질없는 말을 끊어버리기 때문이고, 五는 自他의 宗旨를 선양하기 때문이며, 六은 현재와 옛것을 분석하여 밝히기 때문미요, 七은 法相을 明示하기 때문이며, 八은 玄妙한 말씀을 자세히 演說하기 때문이요, 九는 是非를 없애버리기 때문이요, 十은 처음과 끝을 똑같이 圓融하게 하기 때문이다.
初一은 總이 되고 後의 九는 別이 되니, 그 뜻은 과거의 잘못을 지적함이다. 그러나 疏 가운데 是非를 막으려 하지만 傳하는 자가 모름지기 得과 失을 알아야 하므로 여러 門徒들이 정성껏 請을 하니 그것을 어기기 어렵고, 오랫동안 널리 선양함에 잦은 著述을 번거롭게 여기지는 않지만 宗旨에 迷惑하고 자취에 막혀서 다투어 시비할까 두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