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 [1]

화엄행 2009. 3. 27. 03:10

2006/09/08 오후 5:06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四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二章. 歸敬三寶 (歸敬分)


歸命十方極三際에 塵刹圓明調御師인 法界

功德大悲雲과 毘盧遮那大智海와 所住甚深

眞法性과 所流圓滿修多羅와 一一塵方佛會

中에 普賢文殊諸大士하사옵나니 我今欲以

一毛智로 測量無邊法界空하옵나니 願承三

寶同體慈하야 句句冥符諸佛意하며 令法

眼常無缺하야 盡衆生界如普賢하며 廻玆勝

善洽群生하야 速證菩堤常樂果하야지이다


  十方과 三際를 다한 塵刹에 圓明하신 調御師인

法界功德大悲雲과 毘盧遮那大智海와 머무는 바

  깊고 깊은 眞法性과 유통시킨 바 원만한 修多羅

(경전)
와 낱낱 티끌같은 方所의 부처님 회상 가운

데의 普賢과 文殊 모든 대사님께 귀의하옵니다.

제가 이제 한 터럭같은 지혜로써 가이없는 法界

의 空함을 헤아리고저 하옵나니, 원컨데 三寶의

同體慈悲를 받들어 구절구절마다 모든 부처님의

뜻에 그윽히 부합하며, 法眼으로 하여금 항상 모

자람이 없게 하여 온 중생계가 다하도록 보현보

살과 같게 하시고, 이러한 수승한 善根을 회향하

여 중생을 교화하여 속히 菩提의 常樂果를 증득

하게 하여지이다.


自下는 第二에 歸敬三寶하야 請威加護니 有十六

句라 大分爲三호리니 初有八句는 正歸敬三寶요

次有六句는 請威加護요 後有二句는 廻施衆生이

라 


아래부터는 第二의 三寶에 歸敬하여 위신력으로

가호해 주시기를 청함이다. 十六句가 있으니 크

게 나누면 三이 된다. 처음에 있는 八句는 바로

三寶에게 歸敬함이요, 다음에 있는 六句는 위신

력으로 가호해 주시기를 청함이요, 후에 있는

二句는 중생에게 회향항 베품이다.





  第一節. 正歸敬三寶


初中에 初句는 總明이요 餘皆別顯이니 今初라

歸命二字는 顯能歸相이니 三業普周하야 歸向依

托無盡三寶니라 但云命者는 以人所寶重이 莫過

身命이니 今將仰投니라 十方以下는 所歸分齊니

十方은 橫遍이요 三際는 竪窮이라 極은 通橫竪라


처음 가운데에 첫 句는 총히 밝힘이고, 나머지는

모두 따로따로 드러냄이니, 지금은 初라.

'歸命' 二字는 능히 귀의하는 모양을 나타냄이니,

 三業이 널리 두루하여 다함이 없는 三寶에 귀의

하여 의탁함이다. 다만 '命'이라고 말한 것은 사

람이 가장 所重하게 여기는 바가 身命보다 더한

것이 없으나, 이제 우러러 던지려 하기 때문이다.

'十方'이하는 돌아갈 바의 分齊이다. 十方은

(공간)
으로 두루함이고, 三際는 (시간)로 다함이

다. 極은 橫과 竪에 통한다.





○ 塵刹圓明下는 就別顯中하야 三寶를 卽爲三別

이니 初三句는 歸佛이요 次二句는 歸法이요 後二

句는 歸僧이라 


  ○ '塵刹圓明'아래는 따로 나타낸 가운데에 나

아가서 삼보를 곧 세가지로 구별함이다. 처음 三

句는 부처님께 귀의함이요, 다음 二句는 法에 귀

의함이요, 後 二句는 僧에게 귀의함이다.



初中에 又二니 二句는 總歸諸佛이요 一句는 別歸

本師라

初中에 塵刹은 有二義하니 一은 所依處니 謂一一

塵中에 諸刹土故며 佛所嚴刹이 等塵數故라 又塵

은 約微細요 刹은 通序細니라 二는 卽塵數如來니

라 圓은 謂圓寂이요 明은 謂智明이니 卽菩提涅槃

이라 亦無德不圓하며 無法不照故라 上二字는 自

利요 調御師者는 通利自他니 十號之一이라


처음 가운데에 또 두가지가 있으니, 二句는 모든

부처님께 총히 귀의함이요, 一句는 本師에게 따

로 귀의함이다.

처음 가운데 塵刹은 두 가지 뜻이 있다.

一은 의지할 바 처소이니, 낱낱 티끌 가운데 모든

刹土인 때문이며, 부처님께서 장엄하신 刹土가 

티끌 수와 같기 때문이다. 또 티끌은 미세함을 잡

은 것이고 刹은 거칠고 세밀한 것에 통한다.

二는 곧 티끌 수와 같은 여래이다. '圓'은 圓寂을

말하고 '明'은 지혜가 밝음을 말하니, 곧 보리열

반이다. 또한 덕이 없으면 원만하지 못하며, 법이

없으면 비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에 二字는 자신을 이롭게 함이요, '調御師'는

自利와 利他에 통하니, 如來十號의 하나이다.



法界도 亦二義니 一은 成上依處라 上云塵刹은 似

當約事요 今云法界는 義兼事理니 佛身이 充滿於

法界故며 又充滿法界無窮盡故라 二者는 該後니

稱法界之功德大悲雲故라 功德者는 亦圓明中別義

니 卽十力과 無畏와 十八不共과 百四十四種無盡之

德이라 大悲普覆하야 無心含潤일새 故喩於雲이

니라 


법계도 또한 두 가지 뜻이 있다. 一은 위(여래)

가 의지하는 처소를 이루는 것이다. 위에서 말

한 '塵刹'은 事를 잡음에 해당하는 것과 같고, 지

금 말하는 '法界'는 뜻이 事와 理를 겸한 것이다.

佛身이 법계에 충만하기 때문이며, 또 법계에 충

만하여 다함이 없기 때문이다.

二는 뒤를 해괄함이니, 법계에 칭합하는 功德大

悲雲이기 때문이다. '功德'이라는 것은 또한 '圓

明' 가운데의 다른 뜻이다. 즉 十力과 無畏와 十

八不共法과 百四十四種의 다함이 없는 德이다.

大悲가 두루 덮어서 무심히 潤澤함을 머금으니,

그러므로 구름에 비유했다.




毘盧一句는 別歸本師니 承恩이 重故라 四字는 標

名이요 三字는 讚德이라 上云功德은 總該無盡이

요 今云大智는 別語最勝이니 順於光明遍照義故

라 大智深廣일새 故喩於海니라 又諸佛에 擧悲하

고 本師에 語智는 影略以明이니 悲智廣深故라 悲

亦稱海는 大悲深廣故요 智亦如雲은 含潤雨法故

라 又前云功德하고 此云大智는 成二嚴故며 無盡

功德이 不出二故라


'毘盧遮那' 一句는 本師에 따로 귀의한 것이니,

은혜를 받음이 두텁기 때문이다. 네 글자는 이름

을 표함이고, 세 글자는 德을 찬탄한 것이다. 위

에서 말한 功德은 총히 다함이 없는 것을 해괄하

고, 지금 말하는 大智慧는 가장 수승한 것을 따로

말함이니, 광명이 두루 비추는 뜻을 따르기 때문

이다. 大智가 깊고 넒기에, 그러므로 바다에 비유

했다. 

또 모든 부처님의 경우에는 悲를 들고, 本師의 경

우에는 智를 말함은 影略으로써 밝힌 것이니, 悲

와 智가 넓고 깊기 때문이다.

悲 또한 바다라 칭함은 大悲가 깊고 넓기 때문이

며, 智 또한 구름과 같다 함은 은혜의 습기를 머

금고 법을 비처럼 내려주기 때문이다.

또 앞에서는 '功德'이라 말하고, 여기서 '大智'라

한 것은 두 가지 장엄을 이루기 때문이며, 다함이

없는 功德이 이 둘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 二에 所住下二句는 歸法이라 言所住者는 

起後니 所以者는 顯同體故며 但歸別相인댄 不

會理故니라 然이나 三寶有三하니 一은 同相이요

二는 別相이요 三은 住持相이니 今通依之니라 


  ○ 二에 '所住'아래 二句는 法에 귀의함이다.

머무는 바라고 말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뒤를 일으

킨 것이다. '잇는'까닭은 同體임을 드러내기 때문

이며, 단지 別相에만 귀의한다면 이치를 알지 못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三寶에 세 가지가 있으니,

一은 同相이요 二는 別相이요 三은 住持相이다.

지금은 통틀어 그것을 의지하였다.



初에 同相者는 此有三義라

一은 約以事就義門인댄 則別相之上에 各有三寶

라 佛體之上에 有覺照義는 名爲佛寶요 軌持義邊

은 名爲法寶요 違諍過盡은 是名僧寶니 卽以無漏

界功德爲體니라

二에 法上三者는 法有性覺은 卽是佛寶요 軌持는

卽是法寶요 法體無違는 卽是僧寶니라

三에 僧上三者는 觀智는 爲佛寶요 軌持는 爲法寶

요 在衆無違하며 無違衆生일새 故名爲僧寶니라

今擧佛所住하야 以明法者는 卽約佛上하야 論同

體也라 理는 是佛所住요 敎는 佛所流니 兩重相依

니라
 

처음에 '同相'이라는 것에 세 가지 뜻이 있다.

一은 事로써 義에 나아가는 門을 잡는다면, 곧 

別相의 위에 各各 三寶가 있다. 佛體 위에 覺照의

뜻이 있음을 佛寶라 이름하고, 軌持의 뜻쪽은 法

寶라 이름한다. 어기고 다투는 허물이 다한 것은

 僧寶라 하니, 즉 無漏界의 공덕으로써 體를 삼는

다.

二는 法上에서 三寶라는 것은 법에 性覺은 곧 佛

寶이고, 軌持는 곧 法寶익, 法體에 어김이 없는

것은 곧 僧寶이다.

三은 僧上에 三寶라는 것은 지혜를 관함은 佛寶

요, 軌持는 法寶요, 衆生에 있으나 어김이 없으

며, 중생을 어김이 없으므로 僧寶라 이름한다.

이제 부처님의 머무는 곳을 들어서 法을 밝히는

것은 즉 부처님 體上(佛上)을 잡아서 同體를 논하

는 것이다. 理는 부처님의 머무는 곳이고, 敎는

부처님의 유통시키신 바이니, 둘이 거듭 서로 의

지한다.


二는 約會事從理門인댄 三寶가 皆依眞故로 今擧

佛法이 皆歸眞性하고 略不言僧이니라

二는 事를 모아서 이치를 따르는 門을 잡으면 三

寶가 모두 眞에 의지하는 까닭에 이제 佛과 法이

모두 眞性에 돌아감을 들고, 僧은 생략하여 말하

지 아니하였다.




三은 約理義融現門인댄 心性本覺은 卽是佛寶요

恒沙性德이 皆可軌持는 卽是法寶요 此恒沙德이

性相不二하야 和合은 名僧寶니라 由此一門故로

令如來로 住眞法性이니 若無此者인댄 何所住耶

아 三門雖異나 幷稱同體니라


三은 理와 敎가 원융하게 나타나는 난 門을 잡는

다면 心性의 本覺은 곧 佛寶요, 恒河의 모래같

은 性德이 모두 軌持할 수 있음은 곧 法寶요, 이

러한 恒河의 모래같은 性德이 性과 相이 둘이 아

니어서 화합함을 僧寶라 이름한다. 이 一門으

로 말미암았기에 여래로 하여금 참된 法性에 머

무시게 한다. 만약 이것이 없다면 어느 곳에 머물

겠는가? 三門이 비록 다르나 모두 同體라 칭한

다.




淨名에 云호대 佛卽是法이요 法卽是衆이라 是는

三寶가 皆無爲相이라 與虛空等이라하니 是故로

若就覺義인댄  稱佛寶요 軌持而言인댄 無非法寶

요 冥符和合은 莫不皆僧이니라 義說有三이라 不

可爲一이나 然無別體어니 豈爲異耶아 故云同相

이니라


淨名에 이르기를 "佛은 곧 法이요, 法은 곧 衆生

이다. 이것은 三寶가 모두 無爲의 相이니, 虛空과

더불어 평등하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만약 覺

의 뜻에서 보면 모두 佛寶라 칭하고, 軌持에서 말

하면 法寶 아님이 없고, 冥符하여 화합함은 모두

僧寶 아님이 없다. 뜻으로 說함에 세 가지가 있어

서 하나가 될 수 없으나 別體가 없으니, 어찌 다

른 것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同相'이라 하였다.



二에 別相者는 卽如前科하니 佛則橫該一切하며

竪徹十身이요 法則通四나 略擧理敎니 法性은 是

理며 修多羅는 是敎요 僧雖該攝이나 偏語大乘이

니라 


二에 別相이라는 것은 곧 앞에서 科目한 것과 같

다. 佛은 橫(공간적)으로 일체를 해괄하고, 竪(시

간적)로는 十身을 통철한다. 法은 四에 通하나 간

략히 理와 敎를 든다. 法性은 理이며, 修多羅는

敎이다. 僧은 비록 해괄하여 섭수하나 치우쳐 大

乘만 말한다.




三에 住持相者는 十身之中에 有力持身과 及形像

等은 卽住持佛이요 其修多羅는 卽住持法이요 住

持之僧은 含菩薩中이니라 然三에 三寶가 通於諸

乘하야 含有勝劣하니 以義料揀인댄 歸勝非劣이

어니와 一理統之인댄 三三無異라 故竝歸敬하야

顯敬無遺니라 


三에 '住持相'이라는 것은 十身의 중에 力持身과

 形相 등이 있는 것은 곧 住持佛이요, 그 修多羅

는 곧 住持法이요, 住持僧은 菩薩 가운데에 포함

된다. 그러나 三에 三寶가 諸乘에 통해서 수승하

고 열등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뜻으로써 料揀(헤

아림)할진댄 수승한데에 돌아가고, 열등함은 아

니나 하나의 이치로 그것을 통괄하면 三가지 三

寶가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아울러 歸敬하여 남

김없이 귀경함을 나타낸다.



三에 一一塵方下二句는 歸僧이라

初句는 明處니 一一微塵中에 有一切諸佛하야 菩

薩衆이 圍?뺤옄故니라 況一一佛所에 難思普賢이 住

普賢位하니 莫不皆爾아


三에 '一一塵方'아래 二句는 僧寶에 귀의함이다.

初句는 處所를 밝힘이다. 낱낱 微塵 중에 계신 一

切諸佛을 菩薩의 무리들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

다. 하물며 낱낱 佛所에 생각할 수 없는 普賢보살

이 普賢의 地位에 머무시니, 모두 그러하지 아니

한 것이 없다.





下句는 擧人이라 偏擧二者는 以是海會之上首故

요 表理智故라 諸言은 不一하니 則無所不該니라 
 


下句는 사람을 거론함이다. 치우쳐 둘(보현보살

과 문수보살)만 거론하는 것은 바다와 같은 모임

의 上首이기 때문이며, 理와 智를 표하기 때문이

다. '諸'는 하나가 아님을 말하니, 즉 해괄하지 않

는 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