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三 / [6]

화엄행 2009. 3. 27. 03:05

2006/08/09 오후 4:33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  卷第三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十. 略釋名題



題稱大方廣佛華嚴經者는 卽無盡修多羅之總

名이며 世主妙嚴品第一者는 卽衆篇義類之別

目이니


題目을 '大方廣佛華嚴經'이라 칭한 것은 곧 다함이

없는 修多羅(經典)의 總名이며, '世主妙嚴品 第一'이

라는 것은 곧 衆篇義類의 別目이다.




第十에 題稱大方廣佛華嚴經下는 略釋名題니 以

下第九門廣釋일새 故此云略이라 於中有三하니

先은 雙標經品二目이라 先標經目이니 謂若從略

至廣인댄 展演無窮이어니와 難思敎海가 不離七

字일새 故云無盡修多羅之總名이니 標經題也요

後에 世主妙嚴品第一은 卽衆篇義類之別目者니

標品目也라 衆篇은 卽三十九品이요 品者는 義

類不同이니 今當其一일새 故云別目이니라


第十에 "제복은 大方廣佛華嚴經이라 칭한다"아래는

간략히 제목의 이름을 해석한 것이다. 아래의 第九

門에서 자세히 해석하는 까닭에 여기서는 간략히라

고 말하였다. 그 중에 三이 있으니,

먼저는 雙으로 經과 品의 두 제목을 標함이다. 먼저

經의 題目을 表하니, "만일 略을 좇아 廣에 이른다

면 펼쳐 연설함이 다함이 없으나, 생각하기 어려운

敎海가 일곱글자를 벗어나지 못하므로, 그러므로

다함이 없는 修多羅의 總名이라 하여 經의 제목을

표하였음"을 말한다.

後에 "世主妙嚴品 第一은 곧 衆篇義類의 別目"이라

는 것은 品目을 標한 것이다. 衆篇은 곧 三十九品이

요, 品이라는 것은 義類가 같지 않음이다. 이제 그

하나에 해당하니, 그러므로 別目(따로 제목함)이라 하

였다.






大以曠兼無際요 方以正法自持요 廣則稱體而

周요 佛謂覺斯玄妙요 華喩功德萬行이요 嚴謂

飾法成人이요 經乃注無竭之涌泉하며 貫玄凝

之妙義하며 攝無邊之海會하며 作終古之常規

니라 佛及諸王을  稱世主요 法門依正을 俱曰

妙嚴이오 分義類以彰品名하고 冠群篇而稱第

一이니라


'大'는 넓으면서 兼하여 끝이 없음이며,

'方'은 正法을 스스로 지님이요,

'廣'은 體에 칭합하여 두루함이요,

'佛'은 이 玄妙한 것을 깨달음을 말함이요,

'華'는 功德과 萬行을 비유함이요,

'嚴'은 法으로 장식하여 人을 완성함이요,

'經'은 이에 마르지 않는 湧泉을 부어 까마득히 응

결된 妙義를 꿰뚫음이며, 無邊의 海會를 攝收하고,

終古에 항상하는 規範을 짓는 것이다.

佛과 모든 王을 아울러 世主라 칭하고, 法門의 依報

와 正報를 함께 妙嚴이라 하고, 義類를 나누어서 品

名을 드러내어 群篇 중에서 으뜸으로 놓으니 第一

(世主妙嚴品)
이라 稱한다.





大以曠兼下는 二에 雙釋二目이니 先釋總題라

下有十門하야 釋其七字하니 字各十義로대 今但

略擧當字하야 釋之라

然此七字는 略有六對하니

一은 經字는 是敎며 上六은 是義니 卽敎義一對



二는 嚴字는 是總이며 上五는 是別이니 卽總別

一對요

三은 華爲能嚴이며 上四는 皆所嚴이니 卽能所

一對요

四는 佛是所嚴所成之人이며 上三은 皆所嚴之法

이니 卽人法一對요

五는 廣者는 是用이며 上二는 皆體니 卽體用一

對요

六은 方者는 是相이며 大者는 是性이니 卽性相

一對니라

故此七字가 卽大性이니 大者는 體大요 方者는

相大요 廣者는 用大요 佛者는 果大요 華者는

因大요 嚴者는 智大요 經者는 敎大니 則七字皆

大며 七字皆相等이라


'大以曠兼'아래는 二에 雙으로 二目을 해석함이다.

먼저 總히 제목을 해석함이다. 아래에 十門이 있어

서 그 七字를 해석하니, 글자마다 各各 十義가 있

다. 이제 다만 간략히 當字(大方廣佛華嚴經이라는 제목 자

체의 글자)
를 들어서 그것을 해석한다. 그러나 이 七

字에 대략 六對가 있다.

一은 '經'字는 敎이고 위의 六字는 義가 되니, 곧

敎와 義가 一對요,

二는 '嚴'字는 總이며 위의 五字는 別이니, 곧 總과

別이 一對요,

三은 '華'는 能嚴이며 위의 四字는 所嚴이니, 곧 能

과 所가 一對요,

四는 '佛'은 所嚴所成의 사람이며 위의 三字는 다

所嚴의 法이니, 곧 人과 法이 一對요,

五는 '廣'은 用이며 위의 二字는 다 體이니, 곧 體

와 用이 一對요,

六은 '方'은 相이며 '大'는 性이니, 즉 性과 相이 一

對이다. 

그러므로 이 七字가 곧 七大性이니, 大는 體大요 方

은 相大요 廣은 用大요 佛은 果大요 華는 因大요 嚴

은 智大요 經은 敎大니, 곧 七字가 다 大며 七字가

다 相 等이다.




今各二義釋이니 大以曠兼無際者는 曠兼은 明其

包含이니 約廣遍釋大라 故로 涅槃에 云 所言大

者는 其性廣博이 猶如虛空故라 下經에 云 法性

이 遍在一切處하니 一切衆生及國土와 三世悉在

無有餘나 亦無形相而可得也라하니라

二에 無際者는 約其堅論則常故로 名大니 涅槃

에 云 所言大者는 名之爲常故라하며 下經에 云

法性無作無變(역)이 猶如虛空本淸淨이라 諸佛

境界亦如是하야 體性非性離有無라하니라

然이나 淵府不可以擬其深妙일새 故로 寄大以目

之어니와 實則言思斯絶이라 故로 下經에 云 法

性不在於言論하니 無說離說에 恒寂滅이라 諸佛

境界不可量이언만은 爲悟衆生하야 今略說이라

하니라


이제 각각 二義로 그것을 해석한다. "大는 넓으면서

겸하여 끝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그 포함하는

것을 밝힘이니, 넓고 보편함을 잡아서 大를 해석함

이다. 그러므로 『涅槃經』에 이르길 "大라고 말한

것은 그 性이 廣博하여 마치 虛空과 같은 까닭이

다."라고 하며, 아래의 經에 이르길, "法性이 일체

處에 두루하니, 일체 중생과 국토와 三世에 다 있어

서 남음이 없으나, 또한 形相으로써는 가히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二에 '無際'라는 것은 그 (시간)

잡아서 논하면 항상하는 까닭으로 '大'라고 이름한

다. 『涅槃經』에 이르기를 "大라고 말한 것은 그것

을 이름하여 常이라고 하기 때문이다"라 하며, 아래

의 經에 이르기를 "法性은 지음도 없고 變易(변역)

없으니 마치 허공이 본래 淸淨함과 같다. 모든 부처

님의 境界도 또한 이와 같아서 體性은 性이 아니어

서 有無를 떠났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淵府(깊은

곳)
'는 甚深한 妙를 헤아릴 수 없으므로 '大'에 의지

하여 그것을 제목하거니와, 實인 즉은 言思가 이에

서 끊어진다. 그러므로 아래의 經에 이르길 "法性

은 言論에 있지 아니하니, 說함도 없고 說을 여의지

도 않아서 항상 적멸하다.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헤

아릴 수 없지만, 중생을 깨닫게 하기 위해 이제 간

략히 설한다."라고 하였다.




方以正法自持도 亦二義者이니

一은 方者는 正也요 二는 方者는 法也니 幷持

自性하야 通上二義라 謂恒沙性德이 卽是相大

니 幷無偏僞일새 故稱爲正이요 皆可軌持일새

目之爲法이라

故로 下經에 云凡夫無覺解일새佛令住正法이언

만 諸法無所住하니 悟此見自身이라하니라


"方은 正法을 스스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에도

또한 두 뜻이 있으니,

一은 '方'이라는 것은 正이요 二는 '方'이라는 것은

法이니, 아울러 自性을 갖고 있다. 위의 두 뜻에도

通하니, "恒河의 모래같이 많은 性德이 곧 相大이

고, 아울러 편벽되고나 거짓됨이 없으므로 칭하

여 正이라 하는 것"을 말한다. 모두 軌持할 수 있으

므로 그것을 지목하여 法이라 한다.

그러므로 아래의 經에 이르기를 "凡夫는 覺解가 없

으므로 부처님께서 正法에 머물게 하였으나, 諸法

은 머무는 바가 없으니, 이를 깨달아야 자신을 본

다."고 하였다.




廣則稱體而周者는 此卽用大니 用如體故로 無不

周遍이라 然亦二義니 由體有二義故라

一者는 能包요 二者는 能遍이니 猶如虛空이 包

含萬象하며 遍至一切色非色處라

今用稱體는 一은 稱體之包니 則一塵이 受世界

之無邊이요 二는 稱體之遍이니 則刹那에 彌法

界而無盡이니라

上之三字는 卽體相用이 無有障碍니 爲所證之法

界也라


"廣은 곧 本體에 칭합하여 두루하다"는 것은 이는

곧 '用大'니, 用은 體와 같은 까닭에 두루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나 또한 二義가 있으니, 體에 二義

가 있는 것을 말미암기 때문이다.

一은 能包요 二는 能遍이니, 마치 虛空이 萬象을 包

含하여 두루 一切色과 非色處에 두루 미치는 것

과 같다.

이제 用이 體에 稱合함에는 一은 體에 稱合한 包含

이니, 곧 한 티끌이 세계의 無邊함을 수용한 것이

다.

二는 體에 稱合한 두루함이니, 곧 刹那에 法界에 가

득차지만 다 함이 없는 것이다.

 위의 三字는 곧 體와 相과 用이 障碍가 없는 것이

니, 證得하여야 할 法界가 된다.




佛謂覺斯玄妙者는 亦有二義하니

一者는 能覺이니 佛陀는 梵言이니 此云覺者故

요 二者는 所覺이니 卽大方廣이라 斯爲玄妙之

境일새 故云覺斯玄妙라 斯卽此也니 卽此上大方

廣耳라

若別說者인댄 覺上用者는 覺世諦也요 覺上體者

는 覺眞諦也요 覺上相者는 覺中道也니 三諦相

融하며 三覺無碍가 爲妙覺也라


"佛은 그 玄妙함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라는 것은

또한 두 뜻이 있으니,

一은 能覺이니, 佛陀는 梵語니 여기에서는 覺者라

부르는 까닭이다.

二는 所覺이니 곧 大方廣이다. 이것이 玄妙한 境界

가 되니, 그러므로 (이) 玄妙를 깨닫는다고 말한

다. 斯는 곧 此이니, 곧 此는 위의 大方廣일 뿐이

다.

만약 따로따로 說한다면, 위의 用을 깨닫는 것은 

世諦를 깨닫는 것이요, 위의 體를 깨닫는 것은 眞諦

를 깨닫는 것이며, 위의 相을 깨닫는 것은 中道를

깨닫는 것이다. 三諦가 서로 融合하며 三覺이 걸림

이 없는 것이 妙覺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