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三 / [5]

화엄행 2009. 3. 27. 03:04

2006/07/15 오후 9:40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三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九. 感慶逢遇



是以로 菩薩이 搜秘於龍宮하시고 大賢이 闡

揚於東夏하시니 顧惟正法之代에도 尙匿淸輝

러니 幸哉라 像季之時에 偶斯玄化이랴 況逢

聖主하야 得在靈山하야 竭思幽宗하니 豈無

慶躍이리오


이러한 까닭으로 보살이 용궁에서 秘藏(華嚴經)을

찾으시고, 大賢이 東夏(中國)에 闡揚하시었다. 돌

아보건대 오직 正法의 시대에도 오히려 淸輝를 숨

기더니 多幸하게도 像法과 季法(末法)의 때에 이

玄化를 만났음이랴! 하물며 聖主를 만나서 靈山에

있으면서 幽宗을 마음껏 생각할 수 있으니, 어찌

기뻐서 뛰지 않겠는가?






第九에 是以菩薩搜秘於龍宮下는 感慶逢遇라 於

中에 二니

一은 明弘闡源由니 謂龍樹菩薩이 五百年外에

方入龍宮搜求하야 得斯玄奧之典이니 事如別傳

과 及纂靈記하니라

言大賢闡揚於東夏者는 正取覺賢이요 兼餘大德

이니 謂智嚴法業日照實叉等이 闡楊斯典하니라



第九에 "이러한 까닭으로 菩薩이 秘藏을 龍宮에서

찾으시고" 아래는 때를 만남을 고맙게 여기고 경하

함이다. 그 중에 둘이 있다.

一은 '弘闡'하는 根源과 理由를 밝힘이니,
龍樹보

♣(1)
이 五百年후에 비로소 용궁에 들어가서 찾고

구하다가 이 玄妙하고 奧妙한 경전을 얻었으니, 그


일은 別傳♣(2)과 및 纂靈記♣(3)
와 같다.

"大賢이 東夏에 闡揚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覺賢

스님♣(4)을 
취하고 다른 大德도 兼하니, "
智嚴♣(5)

法業♣(6)日照♣(7)實叉難陀♣(8) 等이 이

典을 東夏(중국)에 천양함"을 말한다.



♣(1) 龍樹보살 - 佛滅 후 6 ~7백년경 (AD2 ~3세기)의 남인도 사람. 인도의 대승불교를 발전시킴.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일찍이 4Veda. 천문. 지리 등 모든 학문에 능통하였다. 처음에 인생의 향락은 情慾을 만족하는 데 있다 하고 두 벗과 함께 주색에 몸을 맡겼다. 왕궁에 출입하면서 궁녀들과 정을 통하다가 발각되어 두사람은 사형되고,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 후 욕락은 괴로움의 근본이라는 것을 깨닫고, 절에 가서 가비마라에게서 소승 三藏을 배우다가 만족하지 못하여 설산지방으로 가서 대승경전을 공부하고,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대승경전을 구했는데, 용궁에 들어가 『화엄경』을 가져왔다고 한다.

♣(2) 別傳 - 藏緣 중에 龍樹菩薩別傳을 말한다. 그 傳에 이르기를 "大龍보살이 이와 같음을 보시고, 가엾이 여기시어 용궁에 들어가셔서 七寶藏과 七寶華函을 열어 無上妙法을 받으셨다. 용수보살이 이 경전을 90일간 읽으시고, 깊이 이해하시고 마음으로 法利를 體得하셨다.
龍이 그 마음을 알고 묻기를. "看經遍未?"라 하니,
용수보살이 답하기를, "汝諸函中經, 甚多無量不可盡也. 我所讀者已十倍間淨提"라고 하였다.
용이 말하길, "如我宮中 所有經典, 諸處此法復不可不知"라고 하였다.
이에 용수 보살이 經 한 상자를 얻어 無生法忍을 구족하고는 다시 南天竺으로 돌아왔다.

♣(3) 纂靈記 - 別傳에는 용수보살이 용궁에 들어가게 된 인연만 적혀있고, 纂靈記에는 『화엄경』을 찾아서 얻은 내용이 적혀 있어서, 둘을 동시에 들어 引證한 것이다. 

♣(4) 覺賢(359~429) - 佛陀跋陀羅라고도 한다. 인도 가비라국 사람. 인도에 법을 구하러 갔던 중국의 智儼스님의 請으로 중국에 와서 『화엄경』을 번역하였는데, 그것이 晉 60권 화엄이다.

♣(5) 智儼(350~427) - 중국 東晉代의 西凉사람. 弱冠에 출가하여 불경을 구하려고 인도에 가다가 계빈국에 이르러 佛陀先에게서 禪法을 받고 불타발타라를 청하여 함께 돌아와 長安의 大寺에 머물었다. 뒤에 山東의 精舍 등에 있었다. 427년 寶雲과 함깨 普曜經, 廣博嚴淨經, 四天王經 등 14부 36권을 번역함. 다시 인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계빈국에서 炳死함.

♣(6) 法業 - 晉經을 번역할 때 筆受를 맡음.

♣(7) 日照(613~687) - 唐代의 僧. 地婆訶羅라고도 한다. 中인도사람. 唐 高宗때 唐에 들어와 인도 중관파의 신학설을 소개하였다.  80권 화엄경의 입법계품 등등을 번역하였다.

♣(8) 實叉難陀(652~710) - 唐代의 譯經僧, 學喜라 번역. 695년 화엄경의 梵本을 가지고 洛陽에 와서 보리유지, 義淨과 함게 화엄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여, 復禮, 法藏 등과 같이 699년 80권화엄경을 마쳤다.




言於東夏者는 謂蔥嶺之東에 地方數千里를 謂之

神州大夏라 而上云是以者는 由上深妙故로 搜之

闡之라 故로 龍樹가 入於龍宮하사 廣見無數하

시고 偏誦此經者는 以玄妙故라 故로 智論에

名爲大不思議經이니 而諸大德이 皆見此經의 一

文一句가 竭海墨而莫盡이며 一偈一光이 破地獄

之劇苦일새 是以로 諸師가 盡命弘傳耳니라



'東夏'라고 말한 것은 "蔥領의 東쪽 지방의 數千里

를 神州大夏라 말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위에

서 "是以"라고 한 것은 위의 심묘함을 말미암기 때

문에 찾고 천양함이다. 그러므로 龍樹가 龍宮에 들

어가서 널리 무수한 경전을 보시고 유독 이 經을

외운 것은 玄妙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大智度

論』에 大不思議經이라 하고, 모든 大德들이 다 이

經의 一文一句는 바닷물로 먹물을 삼아 다 마르도

록 써도 다함이 없으며, 한 偈頌 한 광명이 地獄의

劇苦를 깨뜨리는 것을 보니, 이러한 까닭으로 여러

스승들이 목숨을 다해 널리 전할 뿐이다.





○ 顧惟正法之代에도 尙匿淸輝러니 幸哉라 像

季之時에 偶斯玄化等者는 二에 正明感遇라

於中에 亦二니 先은 對昔自慶이니 謂五百年前

은 卽當正法이로대 斯經淸輝가 隱匿龍宮之內하

야 時人不聞이러니 何幸像法垂末之年에 遇斯玄

微之化오 生居像末에 應合悲傷이어늘 反顧前不

聞經하니 未慙正法之代라 故로 自慶也니라

此依不減正法一千年일새 故로 今爲像末이니 以

今去大師涅槃이 一千八百六十年故라

又按大集月藏分에 第一五百年은 解脫牢固요 第

二五百年은 禪定牢固요 第三五百年은 多聞牢固

요 第四五百年은 塔寺牢固요 第五百年은 鬪諍

牢固니 今居塔寺之末하야 將隣鬪諍之時어늘 번

聞難思之經하니 碎身莫酬其慶이로다



○ "돌아보건대 正法시대에도 오히려 淸輝가 숨어

있었거늘 대행히 像季시대에 이러한 玄化를 만났

다..."는 等은 二의 때를 만남을 감사하게 느끼는

것을 바로 밝힘이다.

그 중에 또한 둘이 있다. 先은 옛날에 대하여 스스

로 경축함이니, "五百年前은 곧 正法시대에 해당하

되, 이 경의 빛남이 용궁의 안에서 숨겨져서 그 때

의 사람들이 듣지 못하였다. 상법의 말년에 그 玄

微한 교화를 만났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像

法시대의 末에 살게 됨은 응당 슬프고 속상하나,

전에 經을 보지 못한 것을 돌이켜 보니, 정법의 시

대에 부끄럽지 않다. 그러므로 스스로 기뻐하는 것

이다." 이는 滅하지 않는 正法이 一千年임에 의거

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 像法시대의 末이 됨이

다. 지금은 大師께서 열반하신 지 一千八百六十年

이 되는 연고이다. 또 『大集』의 月藏分을 살펴보

면, 第一 五百年은 解脫牢固요, 第二 五百年은 禪

定牢固요, 第三 五百年은 多聞牢固요, 第四 五百年

은 塔寺牢固요, 第五 五百年은 鬪爭牢固이다. 이제

塔寺牢固의 末에 사니, 장차 鬪爭牢固의 시대에 가

까워졌으나, 도리어 생각하기 어려운 經을 들었으

니, 몸을 부수어서도 그 경사로움을 갚을 수 없다.







○ 況逢聖主하야 得在靈山하야 竭思幽宗하니

豈無慶躍者는 第二對今自慶이니 此慶有三하니

一은 慶時요 二는 慶處요 三은 慶修라

初는 卽況逢聖主니 謂明時難遇라 今値聖明天子

하야  敷陳五敎하고 高闡一乘에 列刹相望하며

鐘梵交響이라 使得閑居學肆하야 探?뺤옄玄門하니

斯一幸也라



○ "하물며 聖主를 만나서 靈山에 있으면서 幽宗을

마음껏 생각할 수 있으니, 어찌 기뻐 뛰지 않겠는

가?"라는 것은 第二에 지금에 대하여 스스로 경축

함이다. 이 慶祝에 셋이 있으니, 一은
때를 기뻐함

(慶時)
이요 二는 處를 기뻐함(慶處)이요 三은
닦음

을 기뻐함(慶修)이다
.

처음은 곧 '況逢聖主'니, 때를 만나기 어려움을 밝

힌 것이다. 이제 聖明天子♣(1)를 만나서 五敎♣(2)

펴서 一乘을 높이 천양함에 羅列한 ♣(3)이 서로

바라보며 鐘소리와 梵唄가 서로 울린다.
學肆♣(4)

에 한가로이 살면서 玄門을 탐색할 수 있게 하셨으

니, 이것이 첫번째 幸이다.




♣(1) 聖明天子 - 唐의 德宗. 年號는 貞元.

♣(2)
五敎 - 부처님의 一代敎說을 분류하여 5種으로 하는 것.
 일례로 唐의 賢首法藏의 五敎說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小乘敎(아함경)   2. 大乘始敎(해심밀경)   
  3. 終敎(능가경, 승만경) 
  4. 頓敎(유마경)   5. 圓敎(화엄경)

♣(3)
刹 - 刹竿, 刹柱. 탑의 꼭대기에 있는 장대를 말한다. 꼭대기에 寶珠焰形을 만들어 금속으로 장식하여 불당 앞에 세웠다.

♣(4) 學肆 - 肆는 여기서는 陳의 뜻으로, 시장에 팔 물건이 진열되어 있듯이 書, 史 등이 진열되어 있는 學處를 말한다.







二에 得在靈山者는 慶處也니 淸淨靈山은 三千

之最요 文殊大聖은 諸佛祖師라 金色이 雖在東

方이나 住處는 卽爲金色이요 大聖이 雖周法界

나 攝機는 長在此山이니 應感普周는 若百川影

落이요 淸凉長在는 猶素月澄空이라 萬聖이 幽

贊於五峰하고 白祗傳慶於千古로다 況大孚靈鷲

으로 標乎聖寺之名하야 一介微僧이 得在居人之

數아 此之慶幸은 爰多生이니 斯再幸也라




二에 '得在靈山'은 處를 경축함이다. 淸淨한 靈山

은 삼천의 최고요 文殊大聖은 諸佛의 祖師이다. 금

색이 비록 동방에 있으나 거주하는 곳은 곧 金色이

된다. 大聖이 비록 法界에 두루하시나, 根機를 攝

受함은 길이 이 山에 있으니, 感應함이 널리 두루

함은 百川에 그림자가 떨어지는 것과 같다. 淸凉山

에 오래 계심은 밝은 흰 달이 맑은 하늘에 있음과

같다. 萬聖이 五峯을 그윽히 贊歎하고 百祗가 경사

로움을 千古에 전하도다. 하물며 大孚靈鷲로 聖

스러운 寺의 이름을 表하였으니, 一介 微賤한 僧이

起居하는 사람의 수에 있어서랴! 이 기쁘고 행복함

은 이에 多生에 부끄럽나니, 이는 두 번째 幸이다.



♣ 大孚靈鷲 - 漢나라 明帝 때에 摩勝天眼이 이곳에 塔이 있는 것을 보고, 황제에게 청하여 이곳에 절을 지었다. 산의 모양이 靈鷲(독수리의 일종)과 흡사하다고 하여 절 이름을 大孚靈鷲寺라고 하였다. 大孚는 弘信의 뜻이다. 후에 측천무후 때에 이곳에서 화엄경을 번역하고, 보살이 淸凉山에 머무심을 보고는 大華嚴寺라고 개칭하였다.





三에 竭思幽宗者는 慶所修也니 大方廣佛華嚴經

은 卽毘盧遮那之淵府요 普賢菩薩之心骨이며 一

切諸佛之所證이요 一切菩薩之所持라 包性相之

無遺며 圓理智而特出이니 不入餘人之手어늘 何

幸捧而持之며 積行菩薩도 猶迷어늘 何幸探乎幽

?뺤옄오 亡軀得其死所하고 竭思有其所歸하니 幸之

三也라

豈無慶躍은 結上三也니 其猶溺巨海而遇芳丹하

며 墮長空而乘靈鶴이라 慶躍之至는 手舞何階리

오 故로 感之慶之하노니 唯聖賢之知我也로다




三에 '깊은 종지를 다 생각하였다.'라 함은 닦은

바를 경축함이다. 大方廣佛華嚴經은 곧 毘盧遮那

如來의 淵府이고, 普賢菩薩의 心骨이며, 일체제불

의 所證이요, 일체보살이 가지는 바요, 性相을 포

함하여 남음이 없으며, 理智를 圓滿히 하여 特出하

니, 다른 사람들의 손에 들어가지 못하나 받들어

지니니 어찌 행운이 아니며, 積行보살(공덕보살)

도 오히려 迷惑하거늘 ?뺤옄(오묘한 진리)를 탐구하

니 어찌 행운이 아니겠는가? 몸을 잃음에 그 죽을

곳을 얻고, 생각을 다함에 그 돌아갈 바를 얻나니,

다행함의 세번째이다.

"어찌 慶躍함이 없으리요?"는 위에 셋을 結함이다.

그것은 마치 큰 바다에 빠져서 芳舟를 만난 것과

같고, 長空에 떨어졌으나 靈鶴을 타는 것과 같다.

'慶躍'의 至極함은 손으로 춤을 추더라도 어찌 미

치리오? 그러므로 감사하고 경축하노니, 오직 聖

賢만이 나를 아실 것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