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三 / [4]

화엄행 2009. 3. 27. 03:01

2006/07/15 오 전 10:17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三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 寄位南求因圓不踰於毛孔者는 第六成位益이

니 謂善財가 初見文殊는 寄十信位요 德雲至瞿

波는 寄三賢十聖이요 摩耶已下는 兼寄等覺이요

後見普賢은 便得因圓이 不踰毛孔이라

文에 云時에 善財童子가 又見自身이 在普賢身

內하야 十方一切諸世界中에 敎化衆生이라하며

又云是善財童子가 從初發心으로 乃至得見普賢

菩薩이 於其中間所入一切諸佛刹海는 今於普賢

一毛孔中의 一念所入諸佛刹海가 過前不可說不

可說佛刹微塵數倍니 如一毛孔하야 一一毛孔도

悉亦如是라하며


"位를 의지하여 南쪽에서 求하니, 因이 圓滿함이 毛

孔을 넘지 않았다."함은 第六의 位를 이루는 이익이

니, "선재가 처음 문수보살을 친견함"은 十信位에

의지한 것이고, "德雲부터 瞿波에 이르름"은 三賢十

聖에 의지한 것이다. '摩耶'이하는等覺에 의지하였

음을 겸하였고, 後에 '보현을 친견함'은 문득 因圓

이 毛孔을 넘지 않음을 얻음이다. 文에 이르길 "그

때에 선재동자가 또 자신이 普賢의 몸 안에 있어 十

方의 一切諸世界 중에서 중생을 교화함을 본다"고

하며, 이르길 "이 선재동자가 처음 발심하면서부터

보현보살을 친견함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들어

간 一切諸佛刹海는 이제 보현의 한 毛孔 중에 一念

에 들어간 諸佛刹海가 앞의(선재가 지내온 세계를 의미함)

不可說 不可說 佛刹 微塵數의 倍가 넘는다. 一毛孔

처럼 낱낱 毛孔에도 모두 또한 이와 같다."고 하며,




又云善財童子가 於普賢菩薩毛孔刹中에 或於一

刹에 經於一劫토록 如是而行하며 乃至或有經不

可說不可說佛刹微塵數劫토록 如是而行호대 亦

不於此刹沒하고 於彼刹現하여 念念周遍無邊刹

海하야 敎化衆生하야 令向阿多羅三?뺤옄三菩提

耳러라

當是之時하야 善財童子가 則次第得普賢菩薩諸

行願海하야 與普賢等하며 與諸佛等하야 一身이

充滿一切世界하며 刹等하며 行等하며 正覺等하

며 神通等하며 法輪等하며 言詞等하며 音聲等

하며 力無畏等하며 佛所住等하며 大慈悲等하며

不可思議解脫自在가 悉皆同等이라하니 釋曰此

卽毛孔中因圓也니라


또 이르기를 "선재동자가 보현보살毛孔의 刹 중에

서 或 一刹에서 一劫을 지나도록 이와 같이 行하며,

내지 或 不可說 不可說 佛刹微塵數 劫이 지나도록

이와같이 行하되, 또한 이 국토에서 멸하지 않고 저

국토에 나타나서 念念히 끝이 없는 刹海에 두루하

면서 중생을 교화하여, 阿多羅三?뺤옄三菩提에 向

하게 할 뿐이니라.

이 때를 당하여 선재동자가 곧 차례로 보현보살의

모든 行의 願海를 얻어서 보현과 더불어 같으며, 諸

佛과 더불어 동등하며, 一身이 일체세계에 충만하

며, 刹이 평등하며, 行이 평등하며, 正覺이 평등하

며, 神通이 평등하며, 法輪이 평등하며, 言詞가 평

등하며, 音聲이 평등하며, 力無畏가 평등하며, 부처

님이 住하신 바가 평등하며, 大慈悲가 평등하며, 不

可思議한 解脫自在가 모두 다 평등하다."고 하였으

니, 해석하여 말하면 이는 곧 毛孔 가운데에 因이

원만함이니라.





○ 剖微塵之經卷에 則念念果成者는 第七顯因成

果益이니 卽出現品大經潛塵喩라 偈에 云如有大

經卷이 量等三千界호대 在於一塵內하며 一切塵

亦然이라 有一聰慧人이 淨眼悉明見하고 破塵出

經卷하야 普饒益衆生인달하야 佛智亦如是하야

  遍在衆生心호대 妄想之所纏으로 不覺亦不知

어늘 諸佛大慈悲로 令其除妄想하야 如是乃出現

하사 饒益諸菩薩이라하며 又經에 云菩薩이 應

知自心에 念念常有佛成正覺이니 何以故오 諸佛

如來가 不離此心코 成正覺故라하니 故로 念念

相應則念念成矣니라
 


○  "微塵에서 經卷을 쪼개내니 곧 念念히 果를 이

룬다."고 함은 第七의 因이 果를 이루는 이익을 나

타낸 것이다. 즉 「出現品」에 大經이 티끌에 잠겨

있음을 비유한 것이다. 偈頌에 이르길 "大經卷이 있

으니 量이 三千世界와 같되 한 티끌 內에 있으며,

一切의 티끌도 또한 그러하다. 어떤 한 총명한 사람

이 淨眼으로 다 분명하게 보고, 티끌을 깨뜨려 經券

을 내어서 두루 중생을 饒益하게 하듯이, 부처님 지

혜도 또한 이와 같아서 두루 衆生心 중에 있으되 妄

想에 얽혀서 깨닫지 못하고 또한 알지 못하거늘, 모

든 부처님께서 大慈悲로 그로 하여금 妄想을 제거

하게 하시며, 이와 같이 출현하시어 모든 보살을 요

익하게 하신다."고 하며, 또 經에 이르길 "보살은

응당 자기의 마음에 念念히 항상 부처님이 계시어

正覺을 이룸을 아나니, 무슨 까닭인가? 諸佛如來가

이 마음을 여의고는 正覺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

라."고 하니, 그러므로 생각 생각에 相應하면 곧 생

각 생각에 성취한다.




○ 盡衆生之願門 則塵塵行滿者는 第八成就行願

益이니 謂菩薩發心은 化盡世界니 生界若盡이면

大願方終이어니와 生界無窮일새 大願無盡이니



十地品에 云若衆生界盡하면 我願乃盡이어니와

而衆生界가 不可盡故로 我此大願善根도 無有窮

盡이라하니라

今衆生界가 雖無有盡이나 而等有經卷일새 故普

開之하야 要令盡無盡之衆生으로 爲大願矣니라


○ "衆生을 다하려는 願門에 塵塵에 行이 充滿하

다."라는 것은 第八의 行願을 성취하는 이익으로,

"보살이 발심함은 중생계가 다하도록 교화함이니,

만약 중생계가 다하면 大願도 바야흐로 끝이 나나,

중생계가 다함이 없으므로 大願도 다함이 없음"을

말한다.

「十地品」에 이르길 "만약 중생계가 다하면 나의

願도 다하거니와 중생계가 다하지 않는 까닭에 나

의 이 大願善根도 다함이 없다" 고 하였다.

이제 중생계가 비록 다함이 없으나 그와 동등한 經

卷이 있으니, 그러므로 널리 그것을 열어서 다함이

없는 중생을 다하게 함으로써 大願을 삼은 것이다.




言塵塵行滿者는 菩薩大悲가 不可盡故로 心量難

思니 爲一衆生하야 於一盡中에 經無量劫토록

修行萬行호대 心不波倦이니 塵塵皆爾하며 生生

盡然하야사 方顯願行이 無窮盡也니라 文殊菩薩

이 讚善財云汝遍一切刹하야 微塵等諸劫에 修行

普賢行하야 成就菩提道라하시니라


"塵과 塵에 行이 充滿하다."라고 한 것은 보살의 大

悲가 다함이 없는 까닭으로 마음으로 헤아려 생각

하기가 어려우니, 한 중생을 위하여 한 티끌 중에

서 무량겁을 지나도록 萬行을 수행하되 마음에 피

곤함이 없으니, 塵과 塵이 모두 그러하며, 生과 生

이 다 그러하여아만 바야흐로 願行이 다함이 없음

을 나타낸다. 문수보살이 선재를 稱讚하여 이르기

를 "네가 一切刹에 두루하여 微塵과 같은 모든 겁에

보현행을 修行하여 보리道를 성취하였느니라" 하시

었다.






   第八. 結歎宏遠



眞可謂常恒之妙說이요 通方之洪規이며 稱性

之極談이요 一乘之要軌也로다 


진실로 常恒의 妙說이요, 方에 통하는 큰 규범이

며, 性에 칭합하는 지극한 말이요, 一乘의 要軌라고

말할 수 있도다.





第八은 眞可謂常恒之妙說下는 結歎宏遠이라 於

中에 二니 先은 當相顯勝이라


第八의 "진실로 常恒의 妙說이라 말할 수 있다"의

아래는 크고 멀다는 것을 結論하여 찬탄한 것이다.

그 중에 둘이 있으니, 先은 相에 해당하여 수승함을

나타낸 것이다. 




文有四句하니 初句는 明常이니 常恒之說은 前

後際而無涯故라


文에 四句가 있으니, 처음 句는 항상함을 밝힌 것이

다. 常恒하다는 說은 前後際에 끝이 없기 때문이다.



二는 通方之洪規者는 明遍이니 無有一國도 不

說此法故니 明是通方은 不同隨宜之敎에 有說不

說이라


二에 "通方의 洪規이며"라는 것은 두루함을 밝힌 것

이니, 한 국토도 이 법을 설하지 않음이 없는 까닭

이다. 通方이라는 것은 마땅함을 따르는 교가 설하

고 설하지 않음이 있는 것과는 같지 아니함을 밝힌

것이다.



三은 稱性之極談者는 顯深이니 一一稱理故로

一文一句라도 不可盡이라 故로 普賢이 語善財

云我法海中엔 未有一文一句도 非是捨施無量轉

輪王位하야 而求得者라하시니라


三에 "性에 稱合하는 지극한 말씀"이라는 것은 깊음

을 나타낸 것이니, 낱낱이 理致에 稱合한 연고로 一

文一句라도 다할 수 없다. 그러므로 普賢이 善財에

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法海 중엔 一文一句도 無

量轉輪王位를 버려서 구하여 얻지 못함이 없다"고

하시었다.




四는 一乘之要軌者는 明要니 謂於一乘之中에

是別敎一乘이니 不共之旨며 圓因之門이며 成佛

之妙故니라
 

四에 '一乘의 要軌'라는 것은 중요함을 밝힌 것이

다. 一乘중에 이 別敎一乘임을 말함이니, 不共敎의

뜻이며, 圓因의 門이며, 성불의 妙인 까닭이다.






尋斯玄旨하고 却覽餘經하면 其猶 日麗天

에 奪衆景之耀요 須彌橫海에 落群峯之高로다


이러한 玄旨를 찾고서 도리어 다른 經을 열람하면,

그것은 마치 밝은 태양이 하늘에서 빛남에 많은 별

들의 빛남을 빼앗는 것과 같고, 須彌山이 바다에 가

로 놓임에 여러 봉우리의 높음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




尋斯玄旨却覽餘經下는 二에 對他顯勝이라 先은

法이요 後는 喩니 初法은 可知라

後喩之中에 文有二喩하니

初는 其猶日麗天에 奪衆景之耀者는 卽智明映

奪喩니 初昇之日을 謂之日이라 麗者는 著明

也니 此經이 猶如日이라 日旣昇에 衆景이

奪耀하니라 景은 猶明也니 卽大明流空에 繁星

이 奪曜하고 斯經大闡에 衆典이 無輝니라


"그러한 玄旨를 찾고서 도리어 다른 經을 본다"의

아래는 二에 他를 대하여 수승함을 나타냄이다. 先

은 法이요 後는 비유이다.

처음에 법은 알 수 있다. 후에 비유한 중에 글에 두

가지 비유가 있다.

처음은 "아침 해가 하늘에서 빛남에 많은 별들의 빛

남을 빼앗는 것과 같다."는 것은 즉 智慧가 밝아서

빛을 빼앗는 것에 비유한다. 처음 떠오르는 해를

'日'이라 말하고, '麗'라는 것은 밝음을 나타낸

다. 이 經이 마치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으니,

아침에 태양이 이미 떠오르고 나면 많은 별이 빛남

을 빼앗긴다. '景'은 밝음과 같으니, 즉 大明(태양)

이 허공에 流行함에 많은 별이 빛남을 빼앗기는 것

이고, 이 經이 크게 闡揚됨에 뭇 經典들이 빛이 없

어지는 것이다.





○ 後는 須彌橫海에 落群峯之高者는 卽高勝難

齊喩니 須彌는 卽是此經이요 群峰은 卽是餘敎

라 設七金鐵圍가 方餘高廣이나 比妙高之出海컨

댄 幷落其高니 以俯望群峰에 如培?뺤옄故니라


○ 後에 "須彌山이 바다에 가로 놓임에, 많은 봉우

리들의 높이를 떨어뜨리는 것과 같다"라 함은 곧 높

고 수승하여 가지런하기 어려움을 비유한 것이다. 

'須彌'는 곧 華嚴經이요, '群峰'은 곧 나머지 가르

침이다. 설사 七金山과 鐵圍山이 다른 산에 비유함

에 높고 넓지만, 妙高山이 바다에서 솟아나온 것에

비유하면, 그 높이가 함께 떨어지니, '群峰'을 굽어

보면 작은 언덕과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