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三 / [1]

화엄행 2009. 3. 27. 02:51

2006/07/03 오후 2:54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三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七. 成益頓超


若夫高不可仰은 則積行菩薩이 鱗於龍

이요 深不可窺는  則上德聲聞이 杜視聽於

嘉會로다



높아서 우러러 볼수 없음은 즉 行을 쌓은 菩

이 龍門에서 (비늘)만 햇빛에 쬐는것이♣⑴
,

깊어서 엿볼 수 없음은 즉 上德聲聞이 嘉會에서도

보고 듣지 못함이로다♣⑵
.


♣⑴ - 龍門山은 『尙書』注에 이르길, 하동군의 서쪽에 있고 높이는 오천인(?뺤옄)이다. 그물은 아래로 흐르는데 매년 붉은 빛의 잉어가 봄날에 이 산 아래에 모였다가 물을 거슬러 오른다. 만약 능력이 있는 놈은 용문에 올라 통과하여 하늘을 나는 용이 되지만, 오르지 못한 놈은 용문의 아래에서 비늘을 쬐는 것이다. 여기서는 假名菩薩을 지칭한 것이다.

♣⑵ - 『周易』乾卦文言에 나오는 말로, 乾의 4德(元*亨*利*貞)을 설명하는 항목에 보인다. {亨者嘉之會也 - 君子休仁足以長人嘉會定以合禮}




若夫高不可仰則積行菩薩曝鱗於龍門下는 第七

成益頓超니 文有十義라 初有二義는 總顯高深

하야 明權小莫測이요 後八은 正明成益하야 遍

益頓圓이라 又前二高深은 反顯成益이니 明權

小莫測은 由昔無因이니 反勸衆生하야 令信仰

故요 後八은 順顯成益이니 謂能頓能圓할새 令

必受故라



"높아서 우러러 볼 수 없음은 곧 적행보살이 용문

에서 비늘만 햇볓에 쬐는 것이고"아래는 第七

의 "成益頓超"(利益을 이룸이 몰록 超越함) 文에 十義

가 있다. 처음 二義는 總히 높고 깊음을 나타내어

서 權敎와 小乘敎가 헤아릴수 없음을 밝힘이요.

後八義는 成益이 두루 頓敎와 圓敎에 이익이 됨을

바로 밝힌 것이다. 또 前二의 높고 깊음은 반대로

利益이 있음을 나타냄이니, 權敎와 小乘이 헤아릴

수 없음은 과거의 因이없음으로 말미암은 것을 밝

힌 것이어서 도리어 중생에게 勸하여 信仰케 하는

까닭이다. 後의 八은 順으로 이익 이룸을 나타냄

이니 能頓能圓케 하여 반드시 받게하는 까닭이다.



今初中에 一은 明高遠이니 若泰華倚天하며 岷

拂漢하야 難仰其頂이라 故로 論語에 云仰之彌

高하며 鑽之彌堅이라하니라 積行菩薩者는 出

現品에 云設有菩薩이 於無量百千億那由他劫에

修行六波羅密하며 修習種種菩提分法이라도 若

未聞此如來不思議大威德法門이거나 或時聞已코

도 不信不解하며 不順不入하면 不得名爲眞實

菩薩이니 以不能生如來家故니라 若得聞此如來

無量不可思議無障無碍智慧法門하고 聞已信解하

야 隨順悟入하면 當知此人은 生如來家等이라

하니 如魚登龍門하야 若得登者는 卽化爲龍이

니 如入華嚴之機也요 若登不過者는 曝鱗於

龍門之下하나니 如彼假名菩薩이니 卽權敎次第

修者니라



이제 初中에 一은 高와 遠을 밝힌 것이다. 泰山과

華山이 하늘을 의지하였고, 岷山과 峨山이 銀河水

에까지 떨치는 것과 같아서 그 頂上을 쳐다보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論語』에 이르기를 "그것을 바

라보면 더욱 높아지고, 그것을 뚫으려 하면 더욱

堅固해진다" 라고 하였다. '積行菩薩'이라 함은

「出現品」에 이르길 "설사 어떤 보살이 無量百千

萬億那由他劫에 六波羅密을 修行하여 가지가지 菩

提分法을 닦아 익히더라도, 이 如來의 不思議한

大威德法門을 듣지 못했거나, 或 어느 때에 들었

다 할지라도 믿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못하며, 수

순하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으면, 眞實한 菩薩이

라 이름할수 없으니, 如來家에 태어나지 못하는

까닭이다. 만약 如來의 無量하고 不可思議한 無障

無碍의 智慧法門을 듣고, 듣고 나서는 믿고 이해

하며 隨順하여 깨달아 들어가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如來家에 태어날 것이다." 등이라 하였다.

물고기가 龍門에 오르는 것과 같아서, 만약 올라

간 것은 곧 변하여 龍이 되니, 華嚴에 들어가는 機

와 같다. 만약 오르더라도 지나가지 못하면 비늘

을 龍門아래에서 햇볓만 쪼이는 것이니, 저 假名

菩薩과 같다. 곧 權敎의 次第로 닦는 者이다.




○ 深不可窺則上德聲聞杜視聽於嘉會는 第二彰

深妙者니 卽法界品初에 舍利弗等五百聲聞이니

彼歎德云悉覺眞諦하며 皆證實際하며 深入法性

하야 永出有海하며 依佛功德하며 離結使縛하

여 住無碍處하야 其心寂靜함이 猶如虛空하며

於諸佛所에 永斷疑惑하며 於佛智海에 深信趣

入이라하니 釋曰卽上德也라 在逝多林如來嘉會

호대 而不見聞을 名杜視聽이니 杜는 猶寒也라

在目曰視요 在耳曰聽이니 雖在會下나 如聾如

盲일새 故云杜視聽也라


○ "깊어 엿볼 수 없음은 즉 上德聲聞이 嘉會에 있

어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이라 함은 第二에 깊고

妙함을 밝힌 것이다. 곧 「法界品」初에 舍利弗等

五百聲聞이니, 그들에게 德을 讚歎하여 이르길

"모두 眞諦를 깨달았으며, 모두 實際를 증득하고,

法性에 깊이 들어가서 길이 有의 바다를 벗어났으

며, 부처님의 공덕을 의지하고 그 結使의 묶이는

것을 떠나 無碍處에 住하며, 그 마음이 寂靜함이

 虛空과 같으며,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영원히 疑

惑을 끊었으며, 부처님의 智海에 깊이 믿어 들어

간다"고  하니, 해석하여 말하면 곧 '上德'이라 한

다. 逝多林의 如來嘉會에 있었으나 보고 듣지 못

함을 '杜視聽'이라 이름한다. '杜'는 '塞(막힘)'과

같다. 눈에 있음을 '視(본다)'라 하고 귀에 있음을

'聽(듣는다)'이라 하니, 비록 會下에 있었으나 귀

머거리와  장님과 같은 까닭에 '杜視聽'이라고 하

였다.




故로 經에 云爾時上首諸大聲聞인 舍利弗과 大

目健連과 摩訶迦葉과 離波多와 須菩提와 阿

('누' 또는 泥)
樓馱와 難陀와 劫貧那와 迦?뺤옄延과

富樓那等의諸大聲聞이 在逝多林호대 皆悉不見

如來神力과 如來嚴好와 如來境界와 如來遊戱

와 如來神變과 如來尊勝과 如來妙行과 如來威

德과 如來住持와 如來淨刹하며 亦復不見不可

思議菩薩境界와 菩薩大會와 菩薩普入과 菩薩

普至와 菩薩普詣와 菩薩神變과 菩薩遊戱와 菩

薩眷屬과 菩薩方所와 菩薩莊嚴師子之座와 菩

薩宮殿과 菩薩住處와 菩薩所入三昧自在와 菩

薩觀察과 菩薩頻申과 菩薩勇猛과 菩薩供養과

菩薩受記와 菩薩成熟과 菩薩勇健과 菩薩法身

淸淨과 菩薩智身圓滿과 菩薩願身示現과 菩薩

色身成就와 菩薩諸相具足淸淨과 菩薩常光衆色

莊嚴과 菩薩放大光明寶網과 菩薩起變化雲과

菩薩身遍十方과 菩薩諸行圓滿이라
 

그러므로 經에 이르길 "그때에 上首 諸大聲聞인

사리불과 대목건연과 마가가섭과 이바다와 수보리

와 아누루타와 난타와 겁빈나와 가전연과 부루나

등 諸大聲聞이 逝多林에 계시되, 모두 다 여래의

위신력과 여래의 相好莊嚴과 여래의 境界와 여래

의 遊戱와 여래의 神變과 여래尊勝과 여래妙行과

여래威德과 여래住持와 여래淨刹을 보지 못했으

며, 또한 다시 불가사의한 보살의 境界와 菩薩의

大會와 菩薩이 두루 들어감과 菩薩이 두루 도착함

과 菩薩이 널리 다다름과 보살의 神通變化와 보살

遊戱와 보살의 眷屬과 보살의 方所와 보살의 사자

좌를 장엄함과 보살의 궁전과 보살이 처소에 안주

함과 보살이 三昧에 自在롭게 들어가는 것과 보살

의 관찰과 보살의 頻申(빈신 - 빠르다는 의미)과 보살

의 용맹과 보살의 공양과 보살의 受記와 보살의

성숙과 보살용건과 보살의 法身淸淨과 보살의 智

身이 圓滿함과 보살의 願力身이 示現됨과 보살의

色身이 성취됨과 보살의 諸相이 具足하여 淸淨함

과 보살이 항상 많은 色으로 장엄한 광명을 놓음

과 보살이 大光明寶網을 놓음과 보살이 變化雲을

일으킴과 보살이 十方에 두루함과 보살의 諸行이

원만함을 보지 못한다.




如是等事를 悉皆不見하나니 何以故오 善根不

同故며 本佛修集見佛自在善根故며 本不讚說十

方世界一切佛刹淸淨功德故며 本佛稱歎諸佛世尊

의 種種神變故며 本不於生死流轉之中에 發阿

?뺤옄多羅三三菩提心故며 本不令他로 住菩薩心

故며 本不能令如來種性으로 不斷絶故等이라하

니 上來에 先列人은 卽是上德聲聞이요 次明不

見等은 卽杜視聽也요 何以故下는 釋不見因이

니 劣者不見은 猶未爲深이어니와 上德不知하

니 方知玄妙로다


이와같은 等의 일을 모두 다 보지 못하니 무슨 까

닭인가? 善根이 같지 않기 때문이며, 본래 부처님

의 自在한 선근을 보는 것을 닦아 모으지 않은 까

닭이며, 본래 시방세계의 일체 부처님세계의 청정

공덕을 찬탄하여 설명하지 아니한 까닭이며, 본래

제불세존의 가지가지 신통변화를 칭탄하지 아니한

 까닭이며, 본래 生死流轉 가운데에 아뇩다라삼막

삼보리심을 발하지 아니했기 때문이며, 본래 남으

로 하여금 보리심에 머물게 하지 아니한 까닭이

며, 본래 如來種性으로 하여금 단절되지 않도록

하지 않은 때문 등이라고 하였다. 위에서 먼저

사람을 나열함은 즉 '上德聲聞'이요. 다음에 보지

못하는 등을 밝히는 것은 즉 '杜視聽'이다. '何以

故'아래는 보지 못하는 이유를 밝히는 것이니, 열

등한 자가 보지 못함은 오히려 깊은 것이 되지 못

하나, 上德이 알지 못하므로 비로소 '玄妙'함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