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二 / [9]

화엄행 2009. 3. 27. 02:46

2006/06/07 오후 1:37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二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言十身者는 卽八地에 云此菩薩이 遠離一切身

相分別하야 住於平等하며 此菩薩이 知衆生身

과 國土身과 業報身과 聲聞身과 獨覺身과 菩

薩身과 如來身과 智身과 法身과 虛空身이라하

니라


十身이라 말한 것은 곧 八地에 이르길, "이 菩薩이

一切의 身相分別을 멀리 여의어서 平等에 머무르

며, 이 菩薩은 衆生身과 國土身과 業報身과 聲聞

身과 獨覺身과 菩薩身과 如來身과 智身과 法身과

虛空身을 알게된다"고 하였다.





言相作者는 卽次經에 云此菩薩이 知諸衆生心

之所樂일새 能以衆生身으로 作自身하고 亦作

國土身과 業報身과 乃至虛空身하며 又知衆生

心之所樂일새 能以國土身으로 作自身하고 亦

作衆生身과 業報身과 乃至虛空身하며 又知衆

生心之所樂일새 能以業報身으로 作自身하고

亦作衆生身과 國土身과 乃至虛空身하며 又知

衆生心之所樂일새 能以自身으로 作衆生身과

國土身과 乃至虛空身하야 隨諸衆生의 所樂不

同하야 則於此身에 現如是形이라하니라

釋曰上四는 別顯이요 末後는 結例니 卽十身相

作也니라



'相作이라' 함은 즉 그 다음 經의 뒤를 이어서 이

르길, "이 菩薩이 모든 衆生의 마음이 즐거워하는

바를 알아서, 능히 衆生身으로써 自身을 지으며

또한 國土身과 業報身과 내지 虛空身을 짓는다.

또 衆生의 마음이 즐거워하는 바를 알아서, 능히

國土身으로써 自身을 짓고 또한 衆生身과 業報身

과 乃至 虛空身을 지으며, 또한 衆生의 마음이 즐

거워하는 바를 알아서, 능히 業報身으로써 自身을

짓고 또한 衆生身과 國土身과 乃至 虛空身을 짓는

다. 또한 衆生心이 즐거워하는 바를 알아서 능히

自身으로써 衆生身과 國土身과 乃至 虛空身을 짓

지만, 모든 衆生의 좋아하는 바가 같지 않음을 따

라서 이 몸에 이와같은 形相을 나타낸다"고 하였

다. 

해석하여 이르면, 위의 四는 따로 나타냄이요 末

後는 例를 든 것이니, 즉 十身이 서로 지음이다.




言歷然者는 不壞相故니 壞相而作이면 非不思

議니 其猶芥納須彌나 本相如故라 故下七十七

經에 云是以一刹이 入一切刹하되 而不壞其相

者之所住處라하며 又云是以一佛이 入一切佛하

되 而不壞其相者之所住處等이라하며 五十六經

에 云所謂以衆生身으로 作刹身하되 而亦不壞

衆生身이 是菩薩遊戱며 以刹身으로 作衆生身

하되 而亦不壞於刹身이 是菩薩遊戱며 如是佛

身이 與二乘身相作하며 菩薩行身이 與成正覺

身相作하며 於涅槃에 示生死等하되 皆不壞其

相이라하니 故云歷然而相作이니라


'歷然'이라고 함은 相을 무너뜨리지 아니하는 까

닭이니, 相을 무너뜨리고 나서 지으면 不思議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겨자씨가 須彌山을 받아 들

이나 本來의 相은 如如한 것과 같은 까닭이다. 그

러므로 아래 七十七經에 이르길, "이런 까닭으로

一刹이 一切刹土에 들어가나 그 相을 무너뜨리지

않는 자가 머무는 처소"라고 하고, 또 이르길 "이

러한 까닭에 一佛이 一切佛에 들어가나 그 相을

무너뜨리지 않는 자가 머무는 처소" 등이라 하였

다. 五十六經에 이르길 "이른 바 衆生身으로 刹身

을 짓되 또한 衆生身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이 菩

薩의 遊戱이며, 이와같이 刹身으로써 衆生身을 짓

되 또한 刹身을 무너뜨리지 않음이 菩薩의 遊戱이

며, 이와 같이 佛身이 二乘身으로 더불어 相作하

고, 菩薩行身이 成正覺身과 더불어 서로 지으며,

涅槃에 生死等을 보이지만 모두 그 相을 무너뜨리

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歷然而相作"이라

고 하였다.




言六位不亂以更收者는 六位는 卽三賢十聖과

等妙二覺이니 則因果皆悉相攝이 如初發心에

便成政覺하되 不壞初心之相이니 若無初心이면

何名初心에 便成政覺이리오

故로 十信이 攝於諸位하되 諸位十信이 歷然하

며 十住가 攝於諸位하되 諸位十住不亂이니 不

亂은 卽行布요 更收는 卽圓融이라 如下說因中

辨하니라 此句도 亦是相入門이로대 下有相入

일새 故此一句는 但爲相卽이니 如乳投水에 廢

己同他일새 故名相卽이니라


"六位를 어지럽히지 않으면서 다시 거두어 들인

다"고 함에, 六位는 곧 三賢과 十聖, 等覺과 妙覺

의 二覺이다. 즉 因果가 모두 다 서로 섭수함이 마

치 처음 發心함에 바로 正覺을 이루되 初心의 相

을 무너뜨리지 아니함과 같다. 만약 初心이 없다

면 무엇을 이름하여 "초심에 문득 정각을 이룬

다"고 하리요? 그러므로 十信이 諸位를 攝收하되

諸位에 十信이 歷然하며, 十住가 諸位를 섭수하되

諸位에 十住가 어지럽지 아니한다. 어지럽지 않은

것은 곧 行布요, 다시 거두어 들이는 것은 곧 圓融

이니, 아래에서 因을 설한 가운데에 밝힌 것과 같

다. 이 句도 또한 相入門이나 아래에 相入이 있으

므로, 이 一句는 다만 相卽이 된다. 마치 우유를 

물에 넣으니 자기를 없애고 남(물)과 같아지는 것

과 같다. 그러므로 相卽이라고 이름한다.




○ 廣大卽入於無間하고 塵毛包納而無外者는

第二廣狹而無碍門이니 上句는 大能入於小요

下句는 小能含大니 雖有卽入이나 意取廣狹이

니라

無間은 謂小니 小之則無內니 以無內故로 無有

中間이요 無外는 謂大니 大之則無外니 無外는

卽是廣大之身刹이니 卽入無內之塵毛일새 故名

廣狹無碍니라 若卽若入에 皆得廣狹無碍니라

晉經에 云金剛圍山數無量을 悉能安置一毛端하

나니 欲知至大有小相하야 菩薩이 以是初發心

이라하니 至大有小相이 卽廣狹無碍也라 又云

能以小世界로 作大世界하며 以大世界로 作小

世界等이라하니라



○ "廣大가 곧 無間에 들어가고 塵毛가 包納하여

無外"라는 것은 第二에 廣狹自在無碍門이다. 위의

句는 큰 것이 능히 작은 것에 들어가는 것이고, 아

래 句는 작은 것이 능히 큰 것을 含容함이다. 비록

卽하여 들어감이 있으나 뜻은 넓고 좁은 것을 取

한다.

無間은 작은 것을 말한다. 작은 것은 안이 없으니,

안이 없기 때문에 中間이 없다. 無外는 큰 것을 말

한다. 큰 것은 밖이 없으니, 밖이 없기 때문에

곧 廣大한 身刹이니, 곧 內가 없는 塵毛에 卽入한

다. 그러므로 廣狹無碍라 이름한다. 卽하거나 入

함에 모두 廣狹無碍함을 얻는다.

晉經(『화엄경』「十住品」)에 이르길, "金剛圍山

의 數가 무량하나 모두 한 터럭 끝 속에 능히 安置

할 수 있으니, 지극히 큰 것이 작은 相에 있음을 알

고자 하여 보살이 이러한 까닭으로 처음 발심하였

다."고 하였다. 지극히 큰 것이 작은 相에 있는 것

이 곧 廣狹無碍이다. 또 이르길, "능히 작은 세계로

써 큰 세계를 만들고, 큰 세계로써 작은 세계를 만

든다"고 하였다.



○ 炳然齊現猶彼芥甁者는 第三微細相容安立門

이니 一能含多일새 卽曰相容이요 一多不雜일

새 故云安立이라 炳者는 明也라

微細有三하니 一은 所含微細니 如瑠璃甁에 盛

多芥子하면 炳然皆現하되 不相妨碍하야 非前

非後니 此卽如來不思議境界經說이라

然有兩本하니 一本엔 云白芥子라하며 一本엔

則但云芥子라하니 今依此本이니 謂一法稱性하

야 含容皆盡故로 一切法이 隨所依理하야 現在

一中이며 亦緣起實德이 無碍自在하야 致使相

容이언정 非天人所作이라 乃實德安立니 如八

相中一一相內에 卽具八相일새 名爲微細니라

二는 約能含微細요 三은 約難知微細니라



○ "炳然히 가지런하게 나타남은 마치 저 겨자씨

병과 같다"함은 第三에 '微細相容安立門'이다. 一

이 능히 多를 含容하니 곧 이르길 '相容'이라 하

고, 一과 多가 섞이지 않으므로 이르길 '安立'이라

하였다. '炳'이라는 것은 '明'이다.

'微細'에는 세가지가 있다. 一은 含容한 바가 微細

함이니 마치  유리병에 겨자씨를 가득채우면 환하

게 모두 나타나되 서로 妨害하거나 장애하지 않아

서, 前도 아니고 後도 아닌 것과 같다. 이것은 곧

如來의 不思議한 境界經의 說이다.

그러나 두가지 經本이 있으니, 一本은 '白芥子'라

고 하였고, 一本은 다만 '芥子'라 하였다. 지금은

이 本을 의지하였다. "하나의 法이 性에 稱合하여

모두 다 含容하는 까닭에 一切法이 의지한 이치를

따라서 하나 가운데에 나타나 있다"고 말한다. 또

한 緣起의 實德이 無碍自在하여 서로 容納하게 함

에 이르나 天人이 지은 바가 아니다. 이에 實德을

安立함이니 마치 八相 가운데에 낱낱이 相內에 곧

八相을 갖춤과 같으므로 '微細'라고 하였다.

 二는 능히 含用하는 微細를 잡음이고, 三은 알기

어려운 微細를 잡은 것이다.


○ 具足同時方之海滴者는 第四同時具足相應門

이니 如大海一滴이 卽具百川之味와 十種之德

이라 故隨一法하야 攝無盡法과 及下九門이니

以此一門이 爲其總故라

同時는 則明無先後요 具足은 則所攝無遺라

言十德者는 十地經에 云一은 次第漸深이요 二

는 不宿死屍오 三은 餘水入中에 皆失本名이요

四는 普同一味요 五는 具無盡珍寶요 六은 深

難得底요 七은 廣大無量이요 八은 大身所居요

九는 潮不過限이요 十은 普受大雨라 하니라

涅槃經에 云如人이 入大海浴하면 則爲已用諸

河之水인달하야 稱此而修하면 一行之內에 德

不可盡이라하니라



○ "同時에 具足함이 바닷물 방울과 같다"함은 第

四에 '同時具足相應門'이니, 마치 큰 바다의 한 물

방울이 곧 百川의 맛과 十種의 덕을 갖추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一法을 따라서 無盡法과 아

래 九門을 섭收하니, 이 一門이 그 總이 되는 것이

다. '同時'는 곧 先後가 없음을 밝힌 것이요, '具

足'은 섭수하여 남음이 없음을 밝힌 것이다.

'十德'이라 한 것은 十地經에 이르길, "一은 次第

로 점점 깊어짐이요, 二는 죽은 屍體를 두지 않음

이고, 三은 나머지 물이 가운데에 들어감에 다 本

名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四는 널리 一味이고, 五

는 다함이 없는 珍寶를 갖춤이고, 六은 깊어서 바

닥을 얻기가 어려움이요. 七은 廣大하여 無量함이

고, 八은 大身이 居住하는 바요. 九는 潮流가 한계

를 넘지 않음이고, 十은 널리 큰 비를 받아들인

다"고 하였다.

涅槃經에 이르길, "어떤 사람이 大海에 들어가 목

욕하면 이미 모든 강의 물을 쓰는 것과 같아서, 이

에 稱合하여 닦으면 한가지 行 속에 德이 다할 수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