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十 / [1]

화엄행 2010. 10. 27. 02:37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十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二節. 藏敎所攝

 第一. 明藏攝

  1. 明藏

  2. 明敎攝 


第二 明敎攝者 敎有二種하니

第二에 敎攝을 밝힌 것은 敎에 二種이 있으니,


一者 通相十二分敎 亦分大小하니 至下十藏品辯호리라

二者 諸宗立敎不同이니 今當略釋호리라

一은 通相으로 十二分敎다. 또한 大乘과 小乘으로 나누니 아래 「十藏品」에 이르러 설명하겠다.

二는 모든 宗이 敎를 세움이 같지 않으니 이제 마땅히 간략히 해석하겠다.


  二者諸宗立敎等者 由前經藏 有權實等일새 故有此門이니라 於中이니 標擧將說이요 總辯深玄이요 開章別解 今初 可知로다

  ‘二者諸宗立敎’ 등은 앞의 經藏이 權 ․ 實 등이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  門이 있다. 그 중에 三이니, 一은 장차 설할 것을 들어 표함이요, 二는 총체적으로 깊고 현묘함을 말함이요, 三은 章을 열어 따로 해석함이다. 지금 (‘標擧將說’)는 알 수 있을 것이다.


夫敎海沖深하며 法雲彌漫하며 智光無際하야 妙辯叵窮일새

대저 가르침의 바다가 깊고 깊으며 법의 구름이 두루 넘쳐흐르고, 지혜 광명이 끝이 없어 미묘한 辯才로도 다하지 못하는데,


  夫敎海沖深下 總辯深玄이니 有標釋結이라 今初敎海 總含深廣이라 文畧語深하니 法雲智光 畧明其廣이라 下經호대 一切諸佛雲雨說法 唯十地菩薩 能安能受能攝能持 佛刹微塵法門海故 雲雨說法故라하며 夜摩偈讚品 勝林菩薩호대 譬如孟夏月 空淨無雲翳하면 赫日揚光輝하야 十方靡不充하야 其光無限量이라 無有能測知하나니 有目斯尙然이어든 何況盲冥者 諸佛亦如是하야 功德無邊際 不可思議劫 莫能分別知라 하니라호대 智光無際 妙辯叵窮者 法華호대 諸法寂滅相 不可以言宣이니 是法不可示 言辭相寂滅이라 하니라 四辯八音♣(1)으로도 不能談其狀也니라

  ‘夫敎海沖深’아래는 二에 깊고 현묘함을 총체적으로 말함이니, 標 ․ 釋 ․ 結이 있다. 이제 처음 敎海는 총히 깊고 넒음을 포함하였다. 文에서는 생략하여  깊음을 말하였으니 法雲과 智光이 간략히 그 넓음을 밝힘이다. 下經에 이르길, “일체제불의 雲雨說法은 오직 십지보살만이 불찰미진수법문해를 能安 ․ 能受 ․ 能攝 ․ 能持하기 때문에 雲雨說法인 것이다.”라 하였다. 「야마게찬품」에 勝林菩薩이 이르길, “비유컨대 孟夏月(초여름)에 하늘이 맑아서 구름에 가리움이 없으면 밝은 해가 光輝를 드날려 시방에 충만하지 않음이 없어서 그 빛이 한량이 없어서 능히 헤아려 알 수 없나니, 눈이 있어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눈 먼 자이겠는가? 모든 여래께서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공덕이 가없으니, 생각할 수 없는 劫에 분별하여 알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지혜광명은 끝이 없다’라고 하였다. ‘미묘한 辯才로도 다하지 못한다’라는 것은 『法華經』에 이르길, “제법의 적멸한 모습은 말로써 宣說할 수 없으니, 이 법은 보일 수 없다. 言辭의 相이 적멸하다”고 하였으니, 그러므로 四辯과 八音으로도 능히 그 상태를 말할 수 없다.

♣(1) 四辯 ․ 八音 ; 四辯은 四無碍辯으로, 四無碍智 ․ 四無碍解라고도 한다. 마음의 방면으로 智 ․ 解라 하고, 일의 방면으로 辯이라 한다. ① 法無碍는 온갖 敎法에 통달한 것. ② 義無碍는 온갖 교법의 要義를 아는 것. ③ 辭無碍는 여러 가지 말을 알아 통달한 것. ④ 樂說無碍는 온갖 교법을 알아 機類가 듣기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에 자재한 것. 등이다.

한편 八音은 8종의 부처님 음성을 말한다. ① 極好音은 맑고 아름다워서 듣는 이들로 하여금 싫증이 않나게 하고, 모두 좋은 道에 들어가게 한다. ② 柔軟音은 대자대비심에서 나오는 말소리로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서 듣는 사람들을 기르게 하여 계율에 들게 한다. ③ 和適音은 듣는 이의 마음을 화평하게 하여 이치를 알게 한다. ④ 尊慧音은 듣는 이들이 존중히 여기어 慧解를 얻게 한다. ⑤ 不女音은 듣는 사람이 두려운 마음으로 공정케 하며, 천마나 외도들을 굴복시킨다. ⑥ 不誤音은 말로 논의함에 잘못됨이 없고,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른 견해를 얻게하며 95종의 잘못을 여의게 한다. ⑦ 深遠音은 말소리가 뱃속에서 울려나와 시방에 들리며, 모두 깊은 이치를 깨달아 깨끗한 행이 더욱 높게 한다. ⑧ 不竭音은 말소리가 거침없이 힘차게 나와서 그치지 아니하며,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無盡常住의 果를 이루게 한다.


以無言之言으로 詮言絶之理하며 以無變之變으로 應無窮之機하시니

말 없는 말로써 말이 끊어진 이치를 설명하며, 변함없는 변화로써 다함이 없는 根機에 응하시니,


 以無言之言等者이라 卽出叵窮所以 全依體上하야 起大用故 非是無言이라 非在言故니라이나 能說之妙 謂無言之言이요 所說之深 謂言絶之理호대 了法不在言하야 善入無言際호대 而能示言說하야 如響徧世間이라하며 法華호대 以方便力故 爲五比丘說等이라하니라

  ‘以無言之言(말없는 말로써)’ 등이라는 것은 二에 해석이다. 곧 다하지 못하는 까닭을  드러냄이니, 온전히 體上을 의지하여 大用을 일으키는 까닭에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能說의 妙는 ‘말없는 말’을 일컫고, 所說의 깊음은 ‘말이 끊어진 이치’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經에  “법이 말에 있지 않음을 了達하여 無言際에 잘 들어가되 능히 언설로 보여서 마치 메아리처럼 세간에 두루한다.”라고 하였으며, 『법화경』에 “방편의 힘을 쓴 까닭에 다섯 비구를 위하여 설하였다.”라고 하는 등이다.


  以無變之變者 能說多端故 下經호대 一法門中無量門이라 無量千劫如是說이니 所演法門廣大義 普運光天之所了等이라 하니라

  應無窮之機者 所感 非一故 九地호대 如是乃至不可說世界所有衆生 一刹那間 一一皆以無量言音으로 而興問難 一一問難 各各不同이라도 菩薩 於一念頃 悉能領受하고 亦以一音으로 普爲解釋호대 各隨心樂하야 令得歡喜等이라하니 菩薩 尙爾어든 何況如來

  出現品호대 如來音聲 亦復如是하야 普入一切處一切衆生一切法一切業一切報中이나 而無所住者 卽無邊之變也니라 又云호대 佛子 如來隨一切衆生 心行欲樂 無量差別하야 出若干音聲하야 而轉法輪者 卽應無窮之機也 廣如下說이니 是知如來敎法 能深能廣하며 能高能遠하야 其猶大海 周天 雖涉而難越이요 孤峰四絶 可仰而叵昇也로다

  ‘以無變之變(변함없는 변화로써)’이라는 것은 能說이 여러 가지기 때문이다. 下經에 이르길  “하나의 法門 중에 한량없는 문이라 무량천겁토록 이와 같이 설하시니, 연설하신 法門이 넓고 크다는 뜻이며 普運光天이 了達한 바이다.”라고 하는 등이다.

  ‘應無窮之機(다함없는 근기에 응한다)’라는 것은 感應한 바가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九地에 “이와 같이 내지 불가설 세계에 있는 중생이 한 찰나 사이에 낱낱이 다 한량없는 말소리로 질문하고, 낱낱의 질문이 각각 같지 않더라도 보살이 일념 사이에 다 능히 받아들이시고, 또한 一音으로써 널리 위하여 해석하시되 각각 마음의 좋아함을 따라서 환희를 얻게 하신다.”라고 하는 등이다. 보살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여래이시겠는가?

 「출현품」에 이르길, “여래 음성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널리 一切處  ․ 一切衆生 ․ 一切法 ․ 一切業 ․ 一切報 중에 들어가시나 머무시는 바가 없다.”라 한 것은 곧 ‘無變한 변화’이다. 또 이르길, “불자야! 여래가 일체중생의 心行과 欲樂의 무량한 차별을 따라서 약간의 音聲을 내어서 法輪을 굴리신다.”라고 한 것은 곧 ‘다함없는 根機에 응함’이다. 자세한 것은 아래의 설과 같으니, 이에 알라. 여래의 교법은 능히 깊고 능히 넓으며 능히 높고 능히 멀어서 마치 큰 바다가 천하에 두루 함에 비록 건너지만 초월하긴 어려움과 같고, 외떨어진 산봉우리가 사방으로 끊어져 우러러 볼 수는 있으나 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極位所承이라 凡情難挹이로다

極位가 받드는 것이라서 凡情(凡俗한 衆生)이 잡아당기기 어렵다.


  極位所承等者 結成難思 唯十地菩薩이야 位極能承일새 十地經 云譬如婆伽羅龍王 所霔大雨 唯除大海 餘一切處 皆不能安하며 不能受하며 不能攝하며 不能持인달하야 如來秘密藏 大法明 大法照 大法雨 亦復如是하야 唯除第十地菩薩 餘一切衆生 聲聞獨覺 乃至第九地菩薩 皆不能安하며 不能受하며 不能攝하며 不能持라하니라 第五經호대 佛子衆會廣無限하야 欲共測量諸佛地 諸佛法門無有邊일새 能悉了知甚爲難이라하고 唯精進力夜神호대 諸佛法海無有邊 我悉一時能普飮等이라하니 證上 可知로다

 ‘極位所承’ 등이라는 것은 三에 생각하기 어려움을 결론함이다. 오직 십지보살이라야 位가 至極하여 능히 받들 수 있다. 그러므로 『十地經』에 “비유컨대 바가라용왕이 내린 큰 비는 오직 대해를 除外하고 나머지 모든 處에서는 다 둘 수 없으며, 受容할 수 없으며, 거둘 수 없으며, 지닐 수 없는 것과 같이 如來秘密藏의 大法明과 大法照와 大法雨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오직 십지보살을 除外하고는 나머지 일체중생과 성문과 독각과 내지 第九地菩薩은 다 둘 수 없으며, 受容할 수 없으며, 거둘 수 없으며, 지닐 수 없다.”고 하였다. 第五經에 “불자야! 衆會가 넓고 무한하여 함께 諸佛의 地位를 推測하여 헤아리고자 하지만 제불의 法門은 끝이 없으니, 능히 다 了達하여 알기가 매우 어렵다.”라 하였고, 오직 精進力夜神만이 이르길 “제불의 法海가  끝이 없음을 내가 다 일시에 능히 두루 마신다.”라고 하는 등이다. 위에서 증명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今乘理敎之力하야 略啓四門호리니 大意離合이요 古今違順이요 分宗立敎 總相會通이라

지금 이치와 가르침의 힘을 타고서 간략히 四門을 열리니, 一은  大意의 離合이요, 二는 古今의 違順이요, 三은 宗을 나누어 敎를 세움이요, 四는 總相으로 會通함이다.


  今承理敎下 第三 開章別解也 於中 先標 後釋이니 今初 應有難云호대 旣極位方知인댄 何以凡情으로 輒窺大敎아할새호대 依憑敎理라하니 聖敎 許故니라 涅槃經호대 具縛凡夫 能知如來秘密之藏이라하며 毘盧遮那品호대 如因日光照하야 還見於日輪이라 我以佛智光으로 見佛所行道라 하니라 卽因佛敎하야 能了敎也 卽仰推之智 信解而知耳니라

  ‘今乘理敎’아래는 第三에 ‘장을 열어 따로 해석함’이다. 그 중에 먼저는 標요 다음은 釋이니, 지금은 初이다. 응당 어떤 이가 “이미 極位라야 비로소 안다고 하였는데 어찌 凡夫의 마음으로 문득 큰 가르침을 엿보겠는가?”라고 따져 물을 것이다. 그러므로 “敎와 理에 의지한다.”고 하니, 聖敎에서 허락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반경』에 “具縛凡夫가 능히 여래의 비밀한 藏을 안다.”고 하였으며, 「비로자나품」에 “햇빛이 비추는 것으로 인하여 도리어 태양(日輪)을 보는 것과 같이, 내가 부처님의 지혜광명으로 부처님의 行하신 道를 본다.”라고 하였다. 곧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능히 가르침을 了達하는 것이니, 곧 우러러 추측하는 지혜로 믿고 이해하여 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