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九 / [4]

화엄행 2010. 6. 25. 03:32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九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顯相者 西域四名 所目雖殊 意義相似이라 同稱修多羅 而聖敎多含하야 具上三義니라

二에 顯相이라는 것은 서역의 네 가지 이름이 제목한 것이 비록 다르지만 意義가 서로 비슷하다. 그러므로 한가지로 修多羅라고 일컬었으나 聖敎가 많이 (의미를) 포함하여 위의 세 가지 뜻을 갖추었다.


二顯相下 此中大意 取其一名四實하야 以會雜心五義 便是顯修多羅之相이니라 文中이니 擧總包含이요雜心♣(1) 正會五義 總上五義下 以義貫通이라

 ‘二顯相’아래는 이 중에 大意는 그 한 가지 이름에 네 가지 實相을 취하여 『雜心論』의 다섯 가지 뜻을 모았으니, 곧 수다라의 相을 나타낸 것이다. 글 중에 셋이니, 初는 총히 포함하였음을 들고, 二는 ‘故雜心’아래는 바로 五義를 會合하고, 三은 ‘總相五義’아래는 뜻으로써 貫通하였다.

 

♣(1) 雜心 ; 원래 雜心의 의미는 ‘① 산란한 마음으로 선을 닦는 散善心과 복잡한 생각을 쉬고 일념으로 극락정토를 관하는 定善心을 섞은 마음. ② 正業과 助業을 섞은 마음.’ 등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2C경 인도 學僧인 法勝이 지은『阿毘曇心論』4권을 3C경 건타라국의 法救가 서품 ․ 약품 ․ 입품 ․ 사품 ․ 현성품 ․ 지품 ․ 정품 ․ 수다라품 ․ 잡품 ․ 택품 ․ 논품 등 총11品으로 해석한 『雜阿毘曇心論』의미한다.


雜心 云經有五義하니 一曰涌泉이요 二曰出生이요 三曰顯示이며 四曰繩墨이요 五曰結鬘이라 通泉則注而無竭이요 出生 則展轉滋多이니 義同井索이니 有汲引故 顯示 正是聖敎 顯事理故 繩墨 則楷定正邪 亦是繩之爲經 能持於緯 同席經義 結鬘 同線이니 線能貫花하야 結成鬘故니라

그러므로 『雜心論』에 이르길, “經에는 다섯 가지 뜻이 있으니, 一은 ‘涌泉’이라 하고, 二는 ‘出生’이라 하고, 三은 ‘顯示’라 하며, 四는 ‘繩墨’이라 하고, 五는 ‘結鬘’이라 한다. 湧泉은 흘러도 마르지 않음이요, 出生은 展轉히(차츰 차츰, 점점더) 더욱 많아짐이니 뜻이 井索(두레박 줄)과 같아서 물을 깃듯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顯示는 바로 聖敎이니 事와 理를 드러내기 때문이요, 繩墨(먹줄; 먹줄은 물건을 자를 때 정해진 선대로 자르도록 해주는 기구로, 요즘도 목수들이 사용한다.)은 正과 邪를 楷定하며(본보기로 규정하며) 또한 繩이 (날줄)이 되어 능히 (씨줄)를 지탱하니 ‘席經’의 뜻과 같고, 結鬘은 線과 같으니 線은 능히 꽃을 꿰어 ♣(2)을 이루기 때문이다.

 

♣(2) 鬘 ; 원래는 머리장식 또는 머리를 풍성하게 장식한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그러한 풍성한 모양처럼 꽃이 아름답게 꽃다발이 된 것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二中 卽雜心第八修多羅品 云修多羅者 凡有五義하니 一曰出生이니 出生諸義故 二曰涌泉이니 義味無盡故 三曰顯示 顯示諸義故 四曰繩墨이니 辨諸邪正故 五曰結鬘이니 貫穿諸法故 如是五義 是修多羅義라하니 今疏 引初二義 不次者 依古疏引 取義便耳니라

(正會五義) 중에 곧 『雜心論』第八卷 「修多羅品」에 이르길, “修多羅라는 것은 무릇 五義가 있으니, 一은 出生이라 하니 모든 뜻을 출생하기 때문이요, 二는 湧泉이라 하니 의미가 다함이 없기 때문이요, 三은 顯示니 모든 뜻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요, 四는 繩墨이라 하니 모든 邪와 正을 가려내기 때문이요, 五는 結鬘이라 하니 모든 法을 꿰고 뚫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五義가 수다라의 뜻이다.”라 하였다. 지금 疏에 인용한 처음과 두 번째 의미가 次第하지 못한 것은(出生과 湧泉의 순서를 바꾼 것을 의미한다.) 古德의 疏에서 인용된 것에 의지하여 의미에 편의를 취했을 뿐이다.


總上五義인댄 不出貫攝이라

위의 五義를 총괄한다면‘(뀀)(거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總上五義下 以義貫通이라 於中 總釋貫攝이요 彰所貫攝이라 前中 有三하니 標義 引證이요 釋所引이라

 ‘總上五義’아래는 三에 뜻으로써 관통함이다. 그 중에 二니, 先은 총히 ‘貫攝’을 해석하고, 後는 貫攝할 것을 드러냄이다. 前 중에 三이 있으니, 初는 義를 標함이요, 二는 引證이요, 三은 인용한 것을 해석함이다.


佛地論第一호대 能貫能攝일새 故名爲經이니 以佛聖敎 貫穿攝持所應說義 所化生故라하니라

그러므로 『佛地論』 第一卷에 이르길, “능히 꿰고 능히 거두기 때문에 經이라 이름 하였다. 부처님의 聖敎가 응하여 說하실 뜻과 교화할 중생을 貫穿하고(꿰뚫고) 攝持하기(거두어 지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故佛地下 引證也 全引論文이라 更無所少니라 而次下所詮♣(3)호대 應知此中 宣說佛地하야 饒益有情일새 依所詮義하야 名佛地經이니 如緣起經하며 如集寶論이라하니 意云호대 皆從所詮也니라

 ‘故佛地’아래는 二에 引證이다. 온전히 論文을 인용하였으니 다시 줄인 것이 없다. 그러나 다음 아래에 所詮에 대하여 이르길, “응당히 알라, 여기서(論에서) 佛地를 宣說하여 有情(有情生命體, 즉 뭇 衆生을 의미한다.)을 饒益케 함이니, 所詮의 뜻에 의지하여 『佛地經』이라 이름 하였으니, 緣起經과 集寶論과 같다.”라 하였다. 뜻으로 말하자면 다 所詮을 따른 것이다.

 

♣(3) 所詮 ; 能詮의 반대. 能詮은 經文을 말하고, 所詮은 ‘나타낼 바의 뜻’으로, 즉 經文을 말하여 나타내는 文句 속의 뜻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經의 義理’이다.


此或貫攝 通所說所化하며 或貫穿法相하고 攝持所化니라

이것은 혹은 貫과 攝이 所說(설명할 대상)所化(교화할 대상)에 통하며, 혹은 法相을 꿰뚫고 교화할 대상을 거두어 지님이다.


此或貫攝下 釋所引論也 釋有二義하니이요이니 卽通也 言二義 通所說者謂貫穿所說之法하야 攝令不散故 下引瑜伽云호대 攝取聖語라 하니라 言二義 通所化者 貫穿所化衆生心行하야 攝取不捨故니라 局義 可知로다

 ‘此或貫攝’아래는 三에 인용한 論을 해석함이다. 해석에 두 가지 뜻이 있으니, 一은 通이요 二는 局이니 위는 곧 通이다. 두 뜻이(貫과 攝이) 所說에 통한다고 말한 것은 설할 바의 법을 꿰뚫어서 거두어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아래에서 『瑜伽論』을 인용하여 이르길, “聖語를 攝取한다”라 하였다. 두 뜻이(貫과 攝이) 所化에 통한다고 말한 것은 敎化할 바 중생의 心行을 꿰뚫어 攝取하여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국한되다) 뜻은 알 수 있을 것이다.


又世親攝論 釋貫穿云호대 謂能貫穿依故相故法故義故依者 謂依於是處하야 由此爲此而有所說이요 相者 謂世俗諦相 勝義諦相이요 法者 謂蘊界處緣起諦食靜慮無量無色解脫勝處徧處菩提分無礙解無諍等이요 義者 隨順密意說等이라 하니라

또 세친의 『攝論』에 貫穿을 해석하여 이르길, “능히 꿰뚫는다고 하는 것은 依이기 때문이며 相이기 때문이며 法이기 때문이며 義이기 때문이다. 依라는 것은 이곳에 의지하여 이를 말미암아 이를 위하여 설한 바가 있음을 말한다. 相이라는 것은 世俗諦相과 勝義諦相♣(4)을 말한다.  法이라는 것은 蘊 ․ 界 ․ 處 ․ 緣起 ․ 諦 ․ 食 ․ 靜慮 ․ 無量 ․ 無色 ․ 解脫 ․ 勝處 ․ 徧處 ․ 菩提分 ․ 無礙解 ․ 無諍 등을 말한다. 義라는 것은 密意說 등을 隨順함이다.”라고 하였다.

 

♣(4) 世俗諦相 ; 諦는 진리이니, 세속 일반의 도리의 相을 말한다.

勝義諦相 ; 眞諦, 第一義諦인 수승한 지혜의 대경인 진리, 즉 변치 않는 진리의 相을 말한다.



 又世親攝論下 第二 彰所貫攝之法이라 於中 引攝論正釋이요 例同指餘니라 前中 卽彼論第一이라 文中 亦二 引論總標

又世親攝論’아래는 第二에 貫攝한 바의 법을 드러냄이다. 그 중에 二니, 初는『攝論』을 인용하여 바로 해석함이요, 後는 같은 것을 例로하여 나머지를 가리킴이다. 前 가운데에는 곧 저 論의 第一권이다. 글 중에 또한 二니, 先은 論을 인용하여 총히 標함이다.


後依者下 引論別釋이라 釋標四義하야 則分爲四호리니 釋依中 擧其三事 於是處者 卽說經處 如佛在摩竭提國等이라 由此者 卽說經因緣이니 卽所被機等이니 如十地經 由十方佛加 解脫月請等이라 爲此者 卽說經意 如發心品호대 爲欲顯示佛法故 爲以智光普照故 爲欲開闡實義故等이니라 梁論호대 是處是人是用이라하니라

 後에 ‘依者’아래는 論을 인용하여 따로 해석함이다. 四義를 해석하여 標함에 나누어 四로 하리니, 初는 依를 해석하는 가운데 그 세 가지 일을 들었다. 一은 ‘於是處’라는 것은 즉 經을 설한 곳이니 ‘부처님께서 마갈제국에 계셨다’는 등과 같다. 二에 ‘由此’라는 것은 즉 經을 설하는 인연이니 곧 ‘加被시킬 根機’ 등인데,  『十地經』에 ‘十方 부처님의 가피와 해탈월보살의 간청으로 말미암아...’라는 등과 같다. 三에 ‘爲此’라는 것은 곧 經을 설한 뜻이니, 「發心品」에 “불법을 顯示하고자 하기 때문이며 지혜광명으로써 널리 비추기 위한 때문이며, 진실한 뜻을 열어 펼치고자 하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등과 같다. 그러므로 『梁論』에 “處이며, 人이며, 用이다”라고 하였다.


○ 言相者 謂世俗諦相 勝義諦相者 謂世尊說法 有何相貌리오마는 諸佛 唯依二諦하야 爲衆生說이요 更無餘相이니라

 ○ ‘相者 謂世俗諦相勝義諦相’이라 말한 것은 세존의 설법이 무슨 모습이 있을까마는 諸佛은 오직 二諦(眞諦와 俗諦)에 의지하여 중생을 위하여 설하실 뿐이요, 다시 나머지 모습이 없으시다.

 

 ○ 言法者 謂蘊界處等者 卽所詮法門軌持之法이니 一一皆通二諦니라 卽五蘊이요 卽十八界 卽十二處 緣起 卽十二因緣이요 卽四諦 卽四食이니 如世親論第十初說이요 靜慮 卽四靜慮無量 卽四無量이요 無色 卽四無色이요 解脫 卽八解脫이요 勝處 卽八勝處 徧處 卽十徧處 菩提分 卽三十七品等이요 無礙解 卽四辨才無諍 卽無諍三昧 等者 等餘法數 幷下經文 廣有其相하니라

 ○ ‘法者 爲蘊界處...’등이라 말한 것은 곧 所詮의 法門과 軌持의 法이니, 낱낱이 다 二諦에 통한다. 蘊은 곧 五蘊이요, 界는 곧 十八界요, 處는 곧 十二處요, 緣起는 곧 十二因緣이요, 諦는 곧 四諦요, 食은 곧 四食이니, 세친의 論 第十권 첫 부분의 설과 같다. 靜慮는 곧 四靜慮요, 無量은 곧 四無量이요, 無色은 곧 四無色이요, 解脫은 곧 八解脫이요, 勝處는 곧 八勝處요, 徧處는 곧 十徧處요, 菩提分은 곧 三十七品 등이요, 無碍解는 곧 四辨才요, 無諍은 곧 無諍三昧다. ‘等’이라는 것은 나머지 法數를 等取한 것이니, 아울러 아래 經文에 두루 그 相이 있다.♣(5)

 

♣(5) 여기에 열거된 것 중 다음 몇 가지만 열거해 보기로 한다.


① 四食 ; 몸을 길러 유지해 가기에 필요한 네 가지 食物. 다음의 두 종류의 四食을 볼 수 있다.

1) 段食, 觸食, 思食, 識食

- 段食은 모든 유정중생들 특히 인간, 동물, 어류, 조류, 곤충 등이 먹는 먹거리들을 말한다.

- 觸食은 즐거운 생각이 일어나는 觸感으로 身命을 유지하는 밥을 삼는 것. 예로 좋은 구경을 할 때 배고픔도 잊는 것과 같으며, 귀신들이 촉식을 한다고 한다.

- 思食은 思想과 希望으로 사는 것.

- 識食은 다만 心識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것.

2) 下口食, 仰口食, 方口食, 維口食

- 下口食은 얼굴을 아래로 하는 직업을 통해 밥을 얻는 것이니, 농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 仰口食은 얼굴을 위로 들고 하는 직업을 통해 밥을 얻는 것이니, 天文을 읽는 직업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 方口食은 관리나 부자들에게 아부하면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간교한 말을 겸하면서 많은 재물을 얻어 생활하는 것이다.

- 維口食은 呪術이나 卜筮 등을 배워 생활하는 것이다.


② 四靜慮 ; 四禪, 또는 色界定이라고도 한다. 고요함과 함께 지혜가 있어 능히 자세하게 생각하는 뜻으로 靜慮라 한다. 이에 初,2,3,4의 구별이 있다.

初禪은 有尋有伺定이요, 二禪은 無尋有伺定이며, 三禪은 無尋無伺定이고, 四禪은 捨念法事定이다.


③ 四無色 ; 四空處라고도 한다. 空處定을 닦아서 나는 네 가지 하늘의 처소를 말한다.

1. 空無邊處(虛空處, 空處), 2. 色無邊處(色處),

3. 無所有處, 4. 非想非非想處(非有想非無想處)


④ 八解脫 ; 8종의 觀念. 이 관념에 의하여 5欲의 경계를 등지고, 그 탐하여 고집하는 마음을 버림으로 背捨라 하고, 또 이것으로 인해 3界의 번뇌를 귾고 아라한과를 증득하므로 해탈이라 한다.

1) 內有色相觀外色解脫 - 안으로 色慾을 탐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 밖으로 부정한 색상을 관하여 탐심이 일어남을 막는 것.

2) 內無色相觀外色解脫 - 안으로 이미 色慾을 탐하는 마음이 없어졌으나, 이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하여 밖으로 부정한 것을 관하며 탐심이 다신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

3) 淨解脫身作證具足住 - 깨끗한 색을 관하여 탐심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이 淨解脫이고, 이 淨解脫을 몸안에 증득하여 具足圓滿하며, 定에 들어 있음을 身作證具足住라 한다.

4) 空無邊處解脫  5) 識無邊處解脫  6) 無所有處解脫  7) 非想非非想處解脫 

이 4~7의 넷은 각각 능히 그 아랫자리의 탐심을 버리므로 해탈이라 한다.

8) 滅受想定解脫身作證具足住 - 이것은 滅盡定이니, 멸진정은 受, 想 등의 마음을 싫어하여 길이 無心에 머물므로 해탈이라 한다.


⑤ 八勝處 ; 8해탈을 닦아 얻은 뒤에 관하는 마음이 익어져서 자유롭게 淨不淨의 경계를 마음대로 관하는 것. 이것이 勝地勝見을 일으키는 의지처이므로 勝處라고 한다. 1) 內有色相觀外色少勝處 2) 內有色相觀外色多勝處 3) 內無色相觀外色少勝處 4) 內無色相觀外色多勝處 5) 內無色相觀外色靑勝處 6) 內無色相觀外色黃勝處 7) 內無色相觀外色赤勝處 8) 內無色相觀外色白勝處 (여기 5~8의 넷은 청, 황, 적, 백의 色相을 관하여 法愛를 일으키니 않는 것임.)


⑥ 十徧處 ; 靑, 黃, 赤, 白의 네 가지 色과 地, 水, 火, 風, 空, 識의 六大를 합한 열 가지의 法은 모든 곳에 퍼져 있기에 ‘徧處’라고 한다.


⑦ 四辨才 ; 辨은 辨別로 구별한다는 뜻으로, 이치를 분명하게 판단하여 分別하는 재주를 말하는 것에 네 가지가 있다는 것.


 ○ 言義者 隨順密意說等者 義名所以 世尊說法 或顯了說이며 或密意說이니 如說一切皆空 此就第一義說이어늘 凡夫不解하야 謂無俗諦等이라하나니 亦如四意趣四隨等이니라 梁論 釋義云호대 義者 所作事일새 故名義 生道滅惑 是事라하니 此意호대 佛所說經 但令衆生으로 生道滅惑으로 以爲其義耳 亦佛之意趣也니라

 ○ ‘義者 隨順密意說’등이라 말한 것은 義라고 이름한 이유이다. 세존의 설법이 혹 顯了說이며 혹 密意說이니, 일체가 다 공하다고 설한 이것은 第一義에 나아가 설한 것이거늘 凡夫가 이해하지 못하고 ‘俗諦가 없다’고 말하는 등과 같다. 또한 四意趣와 四隨등과 같다. 『梁論』에 義를 해석하여 “義라는 것은 지은 바의 일이기에 義라 이름 했으니, 道를 내고 惑을 없애는 것이 이 일이다.”라고 하였다. 이 뜻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經은 다만 중생으로 하여금 道를 내고 의혹을 없애게 함으로 그 뜻을 삼았을 뿐이다.”라 하는 것이니, 또한 부처님의 意趣이다.


瑜伽二十五 顯揚二十 大同此說하니라 餘義 至十二分中當明호리라

『瑜伽論』 二十五권과 『顯揚論』 二十권은 이 설과 대체로 같다. 나머지 뜻은 十二分에 이르러 밝히겠다.


瑜伽二十五下 例同指餘 例同이니 謂彼二論 皆云호대 素怛纜者 謂佛世尊 於彼方所 爲彼有情하사 依彼所作諸行差別演說無量蘊相應語이라 하며 乃至廣說호대 結集法者攝取聖語하야 爲法久住하야 以美妙言으로 次第結集하야 貫穿縫綴하야 能引義利하며 能引梵行 眞妙實義 是名素怛纜이라하니라

瑜伽二十五’아래는 二에 같은 것을 예로 하여 나머지를 가리킴이다. 先은 같은 것을 예로 함이니, 저 두 論에 다 이르길, “素怛纜이라는 것은 불세존께서 저 方所에서 저 有情들을 위하여 저들이 지은 바 諸行差別에 의지하여 無量한 蘊에 相應하는 말씀을  연설하심을 말한다.”라고 하며, 내지 자세히 설하길, “법을 結集한 것은 聖人의 말씀을 섭취해서 법이 오래도록 머물게 하기 위하여, 美妙한 말씀으로써 차례로 결집하여 貫穿하고 縫綴하여 능히 義利를 이끌며 능히 梵行을 이끈 진실하고 미묘한 實義가 素怛纜이라 이름 함이다.”라고 하였다.


餘義至十二分中當明者 下有異名이라 異名 有四하니 依仁王二諦品인댄 名爲法本이요 依梁論인댄 名爲聖敎 依成論인댄 名直說語言이요 依智論第二인댄 但名爲經이라 四中 疏文 已有二四하니라 初三二名在十藏品하니 文局十二分中修多羅일새 故此不釋이라 又遠公立三修多羅하니  一總相이요 二別相이요 三畧相이라 刊定記 破於後二어늘 幷在十藏品中救之일새 云餘義等이니라

‘餘義 至十二分中 當明’이라는 것은 아래에 다른 이름이 있다. 異名에 넷이 있으니, 一은 『仁王經』「二諦品」에 의하면 ‘法本’이라 이름하고, 二는 『梁論』에 의하면 ‘聖敎’라 이름하며, 三은 『成實論』에 의하면 ‘直說語言’이라 이름하며, 四는『智論』第二권에 의하면 다만 ‘經’이라 이름 하였다. 넷 중에 疏文에는 이미 두 번째와 네 번째가 있다. 첫 번째와 세 번째의 두 이름은 「十藏品」에 있으니, 文이 十二分 중에 수다라에 국한되므로 여기서는 해석하지 않았다. 또 遠公이 세 가지 修多羅를 세웠으니, 一은 總相이요, 二는 別相이요, 三은 畧相이다. 『刊定記』에서 뒤의 둘을 파하였거늘 아울러 「十藏品」중에서 이를 구제하기에 ‘餘義’ 등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