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九
唐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第二節. 藏敎所攝
第一. 明藏攝
1. 明藏
1) 釋三藏
① 修多羅藏
初中에 先辨名하고 後顯相호리라 今初는 亦名修妬路며 亦名素呾纜이니 此皆梵音楚夏니라
처음에 먼저 이름을 가려내고 후에 相을 나타내겠다. 이제 처음은 또한 修妬路(수투로)라고 이름하며 또한 素呾纜(소달람)이라 이름하는데, 이것은 다 梵音의 楚夏이다.
二中에 三藏은 卽爲三別이니 皆先標요 後釋이니 今初亦名下는 釋也라 於中에 四니 一은 會梵音이요 二는 敘古譯이요 三은 敘古破요 四는 會順違라
今初에 言梵音楚夏者는 秦洛♣(1)을 謂之中華며 亦云華夏며 亦云中夏니 淮南楚地♣(2)는 非是中方이니라 楚洛言音이 呼召輕重하니 今西域梵語가 有似於斯이라 中天♣(3)은 如中夏하고 餘四는 如楚蜀하니라 西來三藏이 或有南天하며 或有北天하며 或有中天하야 東西各異하니라
素呾纜者는 唐三藏譯엔 云호대 是中天이라하며 什公♣(4)은 多譯爲修多羅하고 亦云修妬路라 하시니 多通諸天이로다 什公은 是龜玆人이니 近於東天이요 實叉三藏♣(5)은 于闐國人이니 多近東北이라 然이나 什公도 亦遊五天이라 隨時所受가 小有輕重이나 語其大旨인댄 理則無乖니라 然이나 前後三藏이 多云호대 修多羅也라 하니라 (南藏엔 素呾纜者四行半이 在前하니라)
二(別釋三藏) 중에 三藏은 곧 셋으로 나눠지니, 다 先은 標하고 後는 해석이니 ‘今初亦名’아래는 해석이다. 그 중에 四니, 一은 梵音을 會通함이요, 二는 古譯을 서술함이요, 三은 古人을 破斥한(깨트려서 배척함) 것을 서술함이요, 四는 順違를 會通함이다.
지금 처음에 ‘梵音楚夏’라고 말한 것은 秦나라 지역과 洛水지역을 中華라고 말하며 또한 華夏라고도 하며 또한 中夏라고 하니, 淮南지역의 楚나라 땅은 中方이 아니다. 楚와 洛의 言音이 부르는 데에 輕重이 있으니, 오늘날 서역의 범어(:인도의 산스크리트어를 말함.)가 이와 비슷함이 있다. 중천축은 중하와 같고 나머지 四는(四方의 천축국은) 楚나 蜀과 같다. 서역에서 온 三藏들은 혹 남천축이 있으며, 혹 북천축이 있으며, 혹 중천축이 있어서 東쪽과 西쪽으로 각각 다르다.
‘소달람’은 唐 三藏의 번역에는 중천축(중천축의 언어)이라 하고, 구마라집公은 대부분 ‘修多羅’라 번역하였으며 또한 ‘수투로’라 하였으니, 대체로 여러 天竺國의 언어에 통한다. 구마라집공은 龜玆國(구자국 ; 오늘날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쿠챠’지역) 사람인데 동천축에 가깝고, 實叉難陀삼장은 于闐國(우전국 ; 이 또한 오늘날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지역이다.) 사람이니 대체로 동북천축에 가깝다. 그러나 구마라집공도 또한 다섯 天竺國을 유람했기에 때에 따라 영향을 받은 것이 조금은 輕重이 있지만, 그 大旨를 말한다면 이치가 어그러짐이 없다. 그러나 前後의 三藏이 대부분 ‘修多羅’라고 하였다. (南傳 藏經에는 ‘素呾纜’이라 한 四行 半의 글이 앞에 있다.)
♣(1) 秦洛 ; ‘秦’은 戰國시대 七雄의 하나였으나, 이후 始皇이 통일하고부터 중국을 '秦(China)'라 하게 되었다. 또 ‘洛’은 중국의 중앙지역으로 洛水 또는 洛陽을 말한다. 따라서 이 ‘秦洛’의 지역은 중국의 언어 중 중심부의 언어라 할 수 있다.
♣(2) 淮南楚地 ; ‘淮南’은 하남성의 동백산에서 발원하여 안휘성과 강소성을 거쳐 황해로 들어가는 淮水 이남지역을 말한다. ‘楚地’는 춘추전국시대 淮水남쪽과 양자강 중류지역을 지배했던 楚나라의 지역을 말한다. 즉 ‘淮南楚地’는 중국 변방의 언어라 할 수 있다.
♣(3) 中天 ; 지금의 印度를 다섯 방위의 5天竺國으로 나누고, 그 중 中印度 즉 中天竺國을 말한다.
♣(4) 什公 ; 인도의 鳩摩羅什(343~413)을 말한다. 중국 秦나라에 들어와 역경사업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5) 實叉三藏 ; 인도의 實叉難陀三藏(652~710)을 말한다. 중국 唐나라 때에 역경사업에 공헌하였다.
古譯엔 爲契經하고
古譯에는 계경이라 하고
古譯等者는 第二에 敘古譯也라 於中에 五니 一은 標名이라
‘古譯’ 等이라는 것은 第二에 古德이 번역한 것을 서술함이다. 그 중에 五니, 一은 이름을 標함이다.
智論之中엔 名爲經藏하니
『大智度論』중에는 經藏이라 이름하였다.
二는 智論下는 引證이라
二는 ‘智論’아래는 인증이다.
契는 謂契理契機요 經은 謂貫穿攝化니
契는 이치에 계합하고 根機에 계합한 것을 말하고, 經은 꿰고(貫穿) 거두어 교화하는 것(攝化)을 말한다.
三은 契謂契理下는 釋義라
三은 ‘契謂契理’아래는 뜻을 해석함이다.
卽契理合機之經은 依主受名이요 契經卽藏은 持業釋也니라
곧 契理合機의(이치에 계합하고 근기에 합하는) 經은 依主釋♣(6)으로 이름을 받음이요,‘契經’이 卽‘藏’이라 함은 持業釋♣(7)이다.
四는 卽契理合機下는 會六釋이니 以契對經이면 卽名依主요 以契經對藏이면 便名持業이니라
四는 ‘卽契理’아래는 六釋♣(8)을 會通함이다. 계합으로써 경을 대하면 곧 ‘의주석’이라 이름하고, 契經으로써 藏을 對하면 곧 ‘ 지업석’이라 이름한다.
♣(6)(7) 依主釋 ․ 持業釋 ; ① 依主釋은 六釋의 하나로서, 依士釋이라고도 한다. 2개 이상의 명사로 성립된 합성어에서 윗말에 제한되어 主와 伴의 관계가 있음을 나타내는 방법으로서, 앞에 말은 뒷말을 제한한다.
예) ‘한국 사람이다’에서 ‘사람’은 각국에 통하지만 ‘한국’이란 말을 쓰면 동양에서도 한국 사람을 표시하는 것이다.
② 持業釋 ; 六釋의 하나로서 同依釋이라고도 한다. 인도의 문법에서 어느 물건에 두 가지 이상의 뜻이 있을 때에 앞의 말이 뒷말의 형용사나 부사가 되는 등의 것이다.
예) ‘惡人 - 나쁜 사람’․ ‘寶玉 - 보배로운 玉’․ ‘高山 - 높은 산’ 등과 같다.
♣(8) 六釋 ; 六離合釋 또는 六釋이라 하며, Sat-samasa를 殺三麽娑라 音譯한다. 즉 6종의 釋으로, 梵語의 複合詞를 해석하는 여섯 가지 방식이다.
① 依主釋 ② 持業釋 은 위에서 해석한 것과 같다.
③ 相違釋 ; 예) ‘王과 臣’을 ‘王 ․ 臣’이라 하는 것과 같다.
④ 帶數釋 ; 예) ‘四方’, ‘三界’ 등등과 같다.
⑤ 有財釋 ; 多財釋이라고도 한다. 예) ‘長身之人’ 즉 ‘키 큰 사람’을 ‘키다리’라고 하는 것 등이다.
⑥ 隣近釋 ; 예) ‘河의 부근’을 ‘河畔’이라 하는 것 등이다.
復云호대 正翻爲線이니 線能貫花요 經能持緯라 此方엔 不貴線稱일새 故存於經이니라
다시 바로 번역하여 線이라 말하니, 線은 능히 꽃을 꿰고 經(날줄)은 능히 緯(씨줄)를 지탱한다. 此方(이곳 중국)에서는 線이라는 명칭을 귀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經’이라 하였다.
五는 復云下는 會傍正이라
五는 ‘復云’아래는 傍(부차적인 것)과 正(주된 것)을 會通하였다.
有云호대 按五印度에 呼線席經井索聖敎하야 皆曰修多羅라하나니 則經이 正是敵對라하야 斥於古德의 經非敵對하니
어떤 이(중국 화엄3祖인 賢首 法藏스님(643~712)의 맏 제자인 靜法寺의 慧苑스님을 가리킨다.)가 이르길, “五印度를 살펴보니 線(실) ․ 席經(돗자리의 날줄) ․ 井索(두레박 줄) ․ 聖敎(성인의 가르침)를 불러서 모두‘修多羅’라 말하니, 곧‘經’이 바로‘敵對’이다.”라고 하면서 古德(賢首 法藏스님 등의 옛 論師들을 가리킨다.)의 ‘經은 敵對♣(9)가 아니다’라고 것을 배척하였다.
♣(9) 敵對 ; 서로 상대되는 것 가운데 그 의미나 역할 등이 주된 것, 또는 대등한 것끼리 정확히 배대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直譯 또는 正飜의 뜻이다.
有云等者는 第三에 敘古破니 此古는 卽是靜法苑公의 刊定記中義也라 但言有云은 卽是刊定記主어니와 若云古德은 多是藏和尙이며 亦有此前諸德이니 此中엔 總擧先古諸德이니라
‘有云’等이라는 것은 第三에 ‘敍古破(古人이 깨트린 것을 서술함)’이다. 여기의 '古'는 곧 靜法寺 苑公의『刊定記』중의 뜻이다. 다만 ‘어떤 이가 말하길’이라 함은 즉『刊定記』의 著者인 慧苑이고, ‘古德’은 대부분 法藏和尙이며 또한 이 앞에 있던 여러 大德이다. 이 중에는 총히 先古의 諸德들을 든 것이다.
又此中疏는 攝略刊定之意이니 刊定記에 敘古義竟하고 便云호대 今詳諸論과 及以梵言컨댄 良恐不爾니 所以者何오 此中에 通辨有三失故니 一은 敵對翻名失이요 二는 以義爲名失이요 三은 總別不分失이니 今疏所明은 卽第一失이니라 謂修多羅一名이 旣含四實하니 線旣敵對인댄 經何得非리오 經是敵對어늘 言非敵對라할새 故云敵對翻名失耳니 故로 疏云斥於古德의 經非敵對니라
또 여기 疏에서는『刊定記』의 뜻을 撮畧한 것이다(간추린 것이다). 『刊定記』에 옛 뜻을 서술하고 나서는 곧 이르길, “이제 諸論과 梵言을 자세히 살피면 진실로 아마도 그렇지 않으리니, 어째서인가? 이 중에 통틀어 가려내자면 세 가지 잘못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敵對하여 이름을 번역한 허물이요, 둘째는 뜻으로써 이름을 삼은 허물이요, 셋째는 總과 別을 나누지 않은 허물이니, 지금 疏에 밝힌 것은 즉 첫 번째 허물이다. 말하자면 ‘修多羅’라는 하나의 이름이 이미 네 가지 實相을 포함하고 있으니, ‘線’이 이미 敵對라면 ‘經’이 어찌 敵對가 아니겠는가? 經이 적대인데 적대가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에 이르길, ‘敵對하여 이름을 번역한 허물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疏에 이르길, ‘斥於古德經非敵對(古德의 ’경이라는 번역은 적대가 아니다‘는 견해를 파척하였다.)’라 하였다.♣(10)
♣(10) 이 전체 문장에서 말하는 것은 즉, 慧苑이 『刊定記』에서 스승인 法藏和尙이 『探玄記』에서 “직역하면 線이라고 하는데, 왜 經이라 하는가? 선은 능히 꽃을 꿰며 경은 능히 씨줄을 지니므로 의미와 쓰임새가 서로 비슷해서이다. 다만 이곳 중국에서는 經이라는 이름은 중히 여기고 線이라고 이름 하는 것은 귀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때문에 번역하여 그 중하게 여기는 것을 따라서 線을 버리고 經을 두었으니, 비유를 따라서 이름 한 것이다”라고 한 것을 부인한 것인데, 다시 淸凉 澄觀스님이 바로잡아 法藏和尙의 말씀이 옳은 것임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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