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 序文 모음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序 - 淸凉山 大華嚴寺 沙門 澄觀撰述 / [1]

화엄행 2009. 3. 27. 04:07

2005/12/16 오후 4:12

 

大方廣佛華嚴經隨疏演義鈔  

  淸凉山 大華嚴寺 沙門 澄觀撰述 - [1]

 

 

至聖이 垂誥하사 鏡一心之玄極하시고 大士- 弘闡하

사 燭極言之幽致로다 雖忘懷於詮旨之域이나 而浩

瀚於文義之海라 蓋欲寄象 之迹하야 窮無盡之趣矣

시니 斯經文理는 不可得而稱也로다 晉譯秘典에 賢

首- 頗得其門하고 唐蒜靈篇에 後哲이 未窺其奧일새

不揆膚受하고 輒闡玄微하니 偶溢九州하고 遐飛四

海라 講者- 盈百하야 咸 余曰大敎趣深하고 疏文致

遠하니 親承指訓하야사   近宗이라 垂範千古인댄

慮惑高悟하노니 希垂重剖하야 得覩光輝케하라하야

늘 順斯雅懷하야 再此條治하니 名爲隨疏演義하니




至聖이 가르침을 내리사 一心의 玄極을 비추시고 大士가 널

리 밝혀서 微言의 그윽한 이치를 밝힘이라. 비록 詮旨의 경

계에는 생각이 없어졌으나 文義의 바다에는 넓고 넓음이라.

대개 象繫의 자취에 의지하고자 하야 다함이 없는 旨趣를 궁

구함이니 이 經文의 이치는 가히 얻었다고 稱할수 없음이로

다. 晉譯秘典에서는 현수가 자못 그 門을 얻고 唐蒜靈篇에서

는 後哲이 그 깊음을 엿보지 못할새 피부로 받음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문득 현미함을 밝히니 우연히 구주에 넘치고 멀리

四海에 퍼짐이로다. 강하는 자 백여명이 다 나에게 와서 물

어 가로되 대교의 지취가 깊고  文이 이치가 심원하니 친히

指訓을 받들어서 비슷하게 宗에 가까움이라. 천고에 모범을

드리울진대 높은 깨달음을 미혹할까 두려워하나 바라는 바

는 거듭 분석함을 드리워서 光輝 볼 수 있게 하소서 하거늘

이 아름다운 생각을 따라서 다시 이를 條治하니 이름이 隨疏

演義니라.


 

 

昔人이 云人在則易어니와 人亡則難이라하니 今爲

此釋은 冀遐方終古에 得若面會로다 然이나 繁則倦

於章句하고 簡則昧其源流이로다 顧此才難이라 有

慙折衷이어니와 意夫後學은 其辭不枝矣리라

(按此序 初無釋文이니 係後人所綴이라 筆法이 不

淸凉하고 特稷子等函北藏及方冊에 具載라 姑錄於

左로다)



옛 사람이 이르대 사람이 있는 즉 쉽고 사람이 없은 즉 어렵

다 하니 이제 이를 위하여 해석함은 먼 곳까지 퍼지고 오래

도록 유통되어 얼굴을 대함과 같이 하기를 바람이라. 그러나

번거로우면 章句에 권태로위지고 간단하면 그 원류에 昧함

이로다. 재능이 없음을 돌아보건데 절충하는데 부끄러움이

있거니와 생각컨데 후학들은 그 말이 번잡하다고 여기지 말

지니라.

(이 序를 살필진댄 처음 釋文이 없음이니 이어 後人이 이를

엮은 바라. 筆法이 청량을 답습하지 아니하고 직자등 함북장

및 방책에 갖추어 실음이라. 조금 옆에 기록해 둠이라)


 

 

(釋文)將釋此序에 大文分三호리니 初明題目이요 次

弁撰人이요 後解本文이라 初中에 經疏 題는 具如下

釋이라 序者는 由也며 始也니 陳敎起之因由하야 作

法興之漸始일새 故名爲序라 又序因 起요  因疏起요

疏因經起니 三重次第가 展轉相由라 疏主- 仰遵聖德

하야 而有述作일새 故通序之하야 冠於 首니 故名序

也니라



(釋文) 장차 이 序를 해석함에 大文을 三으로 나눔이니 처음

은 題目을 밝힘이오 다음은 撰한 사람을 밝힘이요 後는 본문

을 해석함이라. 처음 가운데 經 疏 의 題目은 갖추어서 아래

에 해석한 것과 같음이라. 序는 由며 始이니 敎가 일어나는

因由를 설명하며 法이 일어나는 漸始를 지음일새 그러므로

이름이 序가 됨이니라. 또 序는  을 인하야 일어남이오  는

疏를 因하야 일어남이오 疏는 經을 因하야 일어남이니 三重

의 次第가 전전히 서로 말미암음이라. 疏主는 聖德을 우러러

쫓아서 述作함이 있을새 그러므로 통히 이를 序하야   머리

에 둠이니 그러므로 이름이 序가 됨이니라.


 

 

次撰人니 淸凉山大華嚴寺는 寺者는 卽所依處也라

淸凉者는 瑞 凝空하고 茂林森聳하며 夏仍飛雪하고

冬積堅氷하야 曾無炎署일새 故曰淸凉이라 山者는

峙也니 地踊層巒하야 衆峯齊峙하니 岷 拂漢하고 

領埼天일새 故名山也라 大華嚴寺者는 一一藍之局

號라 亦名化園寺니 寺前有園하야 地方數頃에 名花

間發하고 瑞草時敷하야 有異常境일새 故名花園寺

라 沙門者는 正擧能述人也라 梵語에 具云하면 室羅

末努라 此云勤息이니 經에 云息心達本源일새 故號

爲沙門이라하니라 然有勝義世俗示道汚道之異하니

如十輪經하니라 次二字는 卽疏主號也니 唐九宗聖

世에 而爲七帝門師일새 特賜淸凉之號니 廣如碑傳

하니라 述者는 疏主自謙이니 言不作也니라 意云我

但述古人之義하야 爲此 文이요 非新製作也니라



다음은 찬술한 사람이니 청량산 대화엄사의 寺는 의지하는

바의 처소라 청량이라는 것은 상서로운 기운이 허공에 엉켜

있고 우거진 나무가 빽빽히 솟아있으며 여름은 이에 눈이 날

리고 겨울에는 두꺼운 얼음이 쌓여 있어서 일찍이 炎暑가 없

을새 고로 가로되 청량이라 하니라. 산은 높음이니 땅에 層

巒이 솟아서 뭇 봉우리가 가지런히 높아서 岷 가 은하수를

떨치고 가파른 봉우리가 하늘에 의지함일새 고로 이름이 山

이라. 대화엄사는 한 가람에 국한한 호라. 또한 이름이 花園

寺이니 절 앞에 정원이 있어서 地方의 數頃에 이름 난 꽃이

간간히 피고 상서로운 풀이 때따라 피어서 이상한 경계가 있

음으로 이름이 花園寺이니라. 沙門은 바로 능히 술하는 사람

을 듦이라. 범어에 具云하면 室羅末努이니 此云하면 勤息이

니 경에 이르대 마음을 쉬고 본원을 達하는 연고로 이름을

사문이라 하니라. 그러나 勝義와 세속과 示道와 汚道의 다름

이 있으니 十輪經과 같음이라. 다음 二字는 즉 疏主의 호니

당에 九宗聖世를 지나서 七帝門師가 될새 특히 청량이라는

호를 내리시니 자세한 것은 碑에 전한 것과 같나니 述이라는

것은 疏主가 스스로 겸손함이니 창작하지 않음을 말함이라.

뜻에 이르대 내가 다만 고인의 뜻을 述하야 이  文을 지음이

요 새로이 제작한 것이 아니니라.

 



 

至聖垂誥下는 三本文中에 分二호리니 初는 敎起源

流요 後는  興本末이라 初中에 二니 初는 通明諸敎

요 後는 別指當經이라 又初中에 四니 一은 明如來

說經이요 二는 明菩薩造論이요 三은 縱奪遣妨이요

四는 出示經意니라 今初에 明如來說經이라 就二段

中하야 具彰三寶니 至聖은 佛也요 垂誥는 法也요

大士는 僧也니 三寶- 最吉祥일새 故我經初說이라

至者는 極也요 聖者는 正也니 爲如來- 能以正智로

證窮法界하야 更無過者일새 故名至聖이라



至聖垂誥下는 三의 본문 가운데에 二로 나누니 初은 敎가 일

어난 원류요 後는  가 일어난 本末이니 처음 가운데 二니 初

은 모든 교를 통히 밝힘이요 후는 當經을 따로 지시함이라.

또 처음 가운데 四니 一은 여래가 설한 경을 밝힘이요 二는

보살이 지은 논을 밝힘이요 三은 縱奪로 방난함을 보냄이요

四는 경의 뜻을 드러내 보임이라. 이제 처음에 여래께서 설

한 경을 밝힘이라. 二段 가운데에 나아가서 삼보를 갖추어

밝힘이니 至聖은 佛이요 垂誥는 法이오 대사는 僧이니 삼보

는 가장 吉祥할새 그러므로 내가 경의 초에 설함이라. 至라

는 것은 極이요 聖이라는 것은 正이니 여래가 능히 바른 지

혜로써 법계를 다 증득하고 궁구하여 다시 지남이 없음일새

고로 至聖이라 이름하니라.


 

 

又至揀因位요 聖揀凡夫라 集玄記에 云聖者는 生也

니 視物之生하야 知其終始하며 智通乎大道하야 應

變而無窮일새 故名至聖이라하니라 然이나 諸敎不

同하니  分爲五이라 初는 小乘敎는 以五分身으로

爲法身하고 丈六身으로 爲報身하고 隨類로 爲化身

하야 名至聖이라 二는 大乘始敎中에 有二宗하니 一

은 破相宗中엔 以勝義諦中에 離一切相하야 非蘊界

處로 爲法身하고 智隨物現하야 爲報化身하야 名至

聖이요


 

또 至는 因位를 가림이요 聖은 범부를 가림이라. 集玄記에

이르대 "聖은 生이니 物의 生함을 보아서 그 마침과 시작을

알며 智는 大道에 通하야 變化에 應하야 다함이 없음으로 至

聖이라 이름한다" 함이라. 그러나 모든 교가 같지 않으니 간

략히 나누어서 五가 됨이라. 처음 소승교는 五分身으로써 법

신을 삼고 丈六身으로 보신을 삼고 類를 따르는 것으로 화신

을 삼아서 至聖이라 이름함이라. 二는 대승시교중에 二宗이

있으니 一은 破相宗中에 勝義諦 가운데에 一切相을 여의어

서 五蘊 十八界 十二處가 아닌 것으로 법신을 삼고 智가 物

을 따라서 나타남으로 報化身을 삼아서 至聖이라 이름함이

라.


 


二는 立相宗中엔 以淸淨法界로 爲法身하고 四智相

應心品所現으로 爲報化身하야 爲至聖이라 三은 終

敎이니 依起信論컨댄 以體大로 爲法身하고 相大로

爲受用身하고 用大로 爲他報化身하야 爲至聖이라

四는 頓敎中엔 不分三異고 絶待離言한 一實之性으

로 爲至聖이라 五는 圓敎이니 卽以法界無盡身雲으

로 眞應相融하며 一多無 하야 圓滿十身으로 爲至聖

이니라 若具實爲論인댄 唯圓敎佛이라야 方名至聖

이니라



二는 立相宗中에 청정법계로 법신을 삼고 四智相應心品에

나타난 바로 報化身을 삼아서 至聖이라 함이라. 三은 終敎이

니 기신론을 의지할진대 體大로 법신을 삼고 相大로 受用身

을 삼고 用大로 저 報化身을 삼아서 至聖라 한다. 四는 頓敎

中에 세가지 다른 것으로 나누지 않고 待를 끊고 말을 여읜

一實의 性으로 至聖을 삼음이라. 五는 圓敎니 즉 法界無盡身

雲이 眞과 應이 서로 융합하며 一과 多가 무애하야 十信이

원만함으로 至聖을 삼음이라 만약 實을 갖추어 논할진대 오

직 원교가 佛이라야 비로서 이름이 至聖이라.


 


 

垂誥者는 卽所說之敎也라 垂者는 布也니 垂布典誥

하야 宣揚法化하야 利益衆生일새 故云垂誥라 又尙

書에 有大誥康誥等篇하니 告上曰告요 發下曰誥라

하니라 有云王言이 爲誥라하니 皆不定也라 今謂如

來演說三乘十二部經하사 利益有情일새 故云垂誥니




垂誥라는 것은 곧 說한바의 가르침이라. 垂라는 것은 베품이

니 典誥를 멀리 펴고 법화를 선양하야 중생을 이익하게 함일

새 고로 이르대 垂誥라. 또 尙書에 大誥 康誥등의 篇이 있으

니 윗 사람에게 알림을 가로되 告요 아래사람에게 發함을 가

로대 誥라고 하니라. 어떤이가 이르대 "王의 말씀이 誥가 된

다" 하니 다 일정하지 않음이라. 이제 이르대 여래가 三乘 十

二部 經을 연설하야 有情을 이익케할새 그러므로 이르대 垂

誥라 함이라.


 


 

鏡一心等者의 鏡者는 喩也니 鏡有照鑑之功은 喩能

詮敎法이요 鏡中之像은 喩一心이니라 玄極은 卽所

詮之法也라 淸凉이 云以聖敎로 爲明鏡하야 照見自

心하고 以自心으로 爲智燈하야 照經幽旨라하시니

卽斯意也라 今依五敎하야 略明一心호리라 初는 小

乘敎中엔 實有外境하야 假立一心이니 由心造業하

야 所感이 異故요 二는 大乘始敎中엔 以異熟賴耶로

爲一心이니 遮無外境이요 三은 終敎엔 以如來藏性

으로 具諸功德일새 故說一心이요 四는 頓敎엔 以泯

絶無寄일새 故說一心이요 五는 圓敎中엔 總該萬有

하야 事事無 일새 故說一心이니 良以如來- 隨機設

敎일새 故有千差이어니와 殊途同歸는 皆一致也니




鏡一心등 이라는 것의 鏡은 비유이니 거울이 照鑑의 功이 있

음은 능전의 敎法을 비유함이오 거울 가운데의 像은 一心에

비유함이니라. 玄極은 所詮의 法이라. 청량이 이르대 聖敎로

써 밝은 거울을 삼아서 자기의 마음을 비추어 보고 자심으로

지혜의 등을 삼아서 경의 그윽한 이치를 비추라 하시니 즉

이 뜻이라. 이제 오교에 의하야 간략히 一心을 밝히리라. 처

음 小乘敎 가운데는 實로 外境이 있어서 거짓으로 一心을 세

움이니 마음을 말미암아서 업을 지어서 감득하는 바가 다른

연고요 二는 대승시교 中에는 異熟賴耶로 一心을 삼으니 外

境이 없다고 부정함이오 三은 終敎에서는 여래장성이 모든

공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一心을 說함이오 四는 頓敎에서는

泯絶無寄일새 고로 一心을 說함이라 五는 원교 中에는 총히

만유를 꾸려서 事事가 무애할새 고로 一心을 설함이니 진실

로 여래가 機를 따라 교를 施說함일새 고로 千差가 있거니와

길이 다르나 한가지로 돌아감은 다 같은 이치니라.



 

 

玄極者는 深妙也라 又玄者는 幽也며 遠也요 極者는

盡也니 謂至理幽奧하고 深遠難測이라 故로 老子-

云杳冥之內에 衆妙存焉이라하시니 皆不思議之境也

라 又海慧禪師- 云森羅萬象은 至空而極이요 百川衆

派는 至海而極이요 一切聖賢은 至佛而極이요 一切

敎法은 至圓而極이라할새 故云玄極이니라



玄極이라는 것은 깊고 妙함이라 또 玄이라는 것은 그윽하며

먼 것이요 極이라는 것은 다함이니 이르대 지극한 이치가 幽

奧하고 深遠하야 헤아리기 어려움이라. 고로 노자가 이르대

"杳冥속에 衆한 이치가 있다"고 하니 다 부사의한 경계라. 또
해혜선사가 이르대 "삼라만상은 空에 이르러서 다하고 百川

衆 는 바다에 이르러서 다함이오 一切聖賢은 佛에 이르러서

다하고 일체교법은 圓에 이르러서 다한다" 하니 고로 玄極이

라 말하나니라.



 

 

 

○大士下는 菩薩造論이니 筆削記에 云發大心하며 信大

法하며 解大敎하며 修大行하며 證大果일새 故名大士라

하니라 又大士者는 有德之稱也라 此通凡聖이니 若論弘

闡인댄 亦兼餘疎 主也라 是以西域東夏에 造論釋經은 或

地上菩薩이며 或當代英賢이니 皆思拔群位하고 智出衆情

하야 弘道利生일새 故名大士니라



○大士下는 菩薩이 論을 지음이니 筆削記에 이르대 "大心을

발하며 대법을 믿으며 大敎를 알며 大行을 닦으며 大果를 증

득할새 고로 大士라 이름한다" 했나니라. 또 大士란 德이 있

음을 稱함이라 이는 凡聖에 通함이니 만약 널리 천양함을 논

할지댄 또한 나머지 疏 의 主를 겸함이니라. 이로써 서역과

동하에 논을 짓고 경을 해석함은 혹 地上菩薩이며 혹 당대의

英賢이니 다 생각이 群位에서 빼어나고 지혜가 衆情에서 출

중해서 도를 넓혀 중생을 이익하게 할새 고로 대사라 이름하

나니라.

 

 


 

弘闡者는 弘者는 大也오 闡者는 開也니 或分宗立敎

하며 或顯正 邪하며 或高建法幢하며 或廣揚聖化가

皆爲弘闡也라 燭謂燈燭하니 有照了之義라 故로 下

經에 云호대 譬如暗中寶를 無燈不可見하야 佛法無

人說하면 雖慧莫能了라하니라 然이나 上에 云호대

鏡者는 在明卽見이니 如對上根하야 見經生解也오

言燭者는 在暗卽見이니 如諸下根은 覩疏 文하야사

方乃生解하니라 亦如起信之說四根과 法華之明三品

이 皆其意也라



弘闡이라는 것은 弘은 큰것이요 闡은 여는 것이니 혹 宗을

나누고 교를 세우며 혹 正을 나타내어 邪를 꺽으며 法幢을

높이 세우고 혹 聖化를 널리 드날리는것이 다 弘闡이 됨이니

라. 燭은 이르대 燈燭이니 비추어 안다는 뜻이 있음이라. 고

로 下經에 이르대 "비유컨대 어두운 가운데 보배를 등불이

없으면 가히 보지 못함과 같아서 불법도 사람이 설함이 없으

면 비록 지혜로우나 능히 요달하지 못한다" 하니라. 그러나

위에 이르대 "鏡이라는 것은 밝음이 있은 즉 봄이니 上根을

대하여 경을 봄에 解를 내는 것과 같음이오. 燭이라 말한 것

은 어둠이 있는 즉 봄이니 모든 下根은 疏 文을 보아야 비로

소 이에 解를 내는것과 같나니라. 또한 저 기신론의 설한 四

根과 법화의 三品을 밝힘이 다 그 뜻이라.

 



 

微言者는 微妙之法故로 名微言이니 唯識에 云호대

激河辯而贊微言等이라하며 孝經序云호대 夫子가

沒而微言絶라하니 皆以聖敎로 爲微言也라 幽致者

는 幽者는 遠也요 致者는 趣也라 卽上玄極之理가

幽遠하고 深邃故로 云幽致라 雖忘懷下는 次縱奪遣

妨에 二니 初는 縱이니 法本離言이요 後는 奪이니

不 言說이니 今初라 雖者는 縱其無言이니 應有問云

호대 上言理趣가 玄極하고 微言幽隱하야 忘懷絶慮

하야사 方可契會어늘 何用廣陳言敎하야 蒜欲擾人

耶오할새 故로 縱云하며 雖忘懷於詮旨之域하니 忘

懷者는 忘情絶慮를 謂之忘懷요 詮旨者는 所詮理也

요 域者는 疆域이니 謂能詮三藏이 有包含義故라 今

皆超之일새 故로 云爾也니라



微言이라는 것은 미묘한 법일새 고로 微言이라 이름하니 유

식에 이르대 "激河의 辯으로 微言等을 찬탄한다" 라고 하며

孝經序에 이르대 "夫子가 돌아가심에 微言이 끊어졌다" 하니

다 성인의 가르침으로써 微言을 삼음이라. 幽致라는 것의 幽

는 遠이요 致는 趣라는 뜻이니 위의 현극의 이치가 幽遠하고

深遂할새 고로 이르대 幽致라 했나니라. 雖忘懷下는 다음 縱

奪遣妨에 二니 처음은 縱이니 법이 본래 말을 여임이요 後는

奪이니 언설에 걸리지 않음이니 이제는 처음이라. 雖라는 것

은 그 말이 없음을 따름이니 응당 어떤이가 물어 이르대 "위

의 말에 이취가 玄極하고 微言이 幽隱하여 생각을 잊어버리

고 생각을 끊어야사 바야흐로 가히 契會할수 있다고 했거늘

어찌 널리 言敎 폄을 써서 도리어 사람을 어지럽게 하리오"

할새 고로 긍정하여 이르대 "비록 詮旨의 영역에서 생각을

잊는다" 하니 忘懷라는 것은 情을 잊고 생각이 끊어짐을 이

를 일러 忘懷라 하고 詮旨라는 것은 所詮의 이치요. 域이라

는 것은 疆域이니 이르대 能詮三藏이 包含의 뜻이 있는 연고

라. 이제 다 이를 초월할새 고로 그렇게 말함이라.



 

 

○而浩瀚下는 奪其無言이 不碍言也니 謂諸佛菩薩이 有

大智故로 上契無爲하고 有大悲故로 下垂言敎니라 浩瀚

者는 大水之貌이니 疏序에 云호대 湛湛忘言이나 而敎海

之波瀾이 浩瀚이라하니 謂此大經하야 文廣理深일새 故

로 喩如海니라



○而浩瀚下는 그 無言이 언설에 장애되지 않음을 부정함이

니 이르대 모든 제불보살이 大智慧가 있는 고로 위로 無爲에

계합하고 대자비가 있는 고로 아래로 言敎를 드리움이라. 浩

瀚이라는 것은 大水의 모양이니 疏序에 이르대 "담담하야 말

을 잊으니 敎海의 波蘭이 浩澣하다" 하니 이르대 이 大經이

文이 넓고 이치가 깊을새 저 바다에 비유했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