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一 / [2]

화엄행 2009. 3. 27. 02:12

2005/12/20 오후 7:13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一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 二에 動靜一源者는 法界體也라

對上三義하야 約迷悟者인댄 動卽往也요 靜卽復也라

動靜迷悟가 雖有二門이나 所迷眞性은 一源莫二니 莫

二之源은 卽是體也라

二는 對唯妄者인댄 動卽往復이니 有去來故요 靜卽體

虛니 相待寂故니라

不釋動以求靜이라 必求靜於諸動이요 必求靜於諸動이



故雖動而常靜이니 則動靜名殊나 其源莫二니 莫二之源

이 卽一體也라

三은 對返本還源說인댄 自利는 靜也요 利他는 動也니

二利相導하야 化而無化일새 則不失一源이 爲法界體也

니라

若對上二種無際者인댄 廣多無際는 動也요 際卽無際는

靜也요 動靜無碍는 爲一源也니 際與無際는 當體寂也

 

○ 二動靜一源이라는 것은 법계의 體이다.

위의 세 뜻에 對하여 迷*悟를 잡는다면, 動은 곧 往이

요 靜은 곧 復이다.

動靜과 迷悟가 비록 두 문이 있으나 迷惑한 바의 眞性

은 一源이며 둘이 아니니, 둘이 아닌 근원은 곧 體이

다.

 二는 오직 妄을 對한다면, 動은 곧 往復이니 거래가

있는 까닭이요, 靜은 곧 체가 虛하니 相待함이 고요한

까닭이다.

動을 놔둔채 靜을 구하는 것이 아니니, 반드시 모든 動

에서 靜을 구해야 하며, 반드시 靜은 모든 動에서 구해

야 함이다.

그러므로 비록 動하나 항상 고요하니, 곧 동정의 이름

은 다르나 그 근원은 둘이 아니며, 둘이 아닌 근원이

곧 一體이다.

 三은 本을 돌이켜 一源으로 돌아감을 對하여 說함이

다. 自利는 靜이요 利他는 動이니, 二利가 서로 인도하

여 교화하되 교화함이 없으니, 곧 一源을 잃지 않는 것

이 법계의 體가 됨이다.

만약 위의 二種의 無際를 對한다면, 廣多無際는 動이

요, 際卽無際는 靜이다. 動靜이 걸림이 없는 것이 一源

이 되나니. 際와 無際는 當體가 고요한 것이다.

 

 

○ 三에 含衆妙而有餘者는 法界相大也니 謂杳冥之內

에 衆妙存焉이라

淸淨法界가 杳杳冥冥으로 以爲能含이요 恒沙性德의

微妙相大는 以爲所含이니 相依乎性하야 性無不包일새

故稱爲含이요

性體는 無外하고 相德은 有名하니 有名之數가 不能遍

無外之體일새 故云有餘니 則恢恢焉猶有餘地矣라

故로 阿僧祗品에 云於一微細毛孔中에 不可說刹이 次

第入이라 毛孔能受彼諸刹호대 諸刹不能遍毛孔이라하

니 卽斯義也니라

以毛約稱性이요 刹約不壞相이니 故로 廣相이 不能遍

小性也라

然此相大에 略有二義하니

一은 約不空恒沙性德이니 此는 同敎意요

二는 約事事無한 十玄之相이 本自具足하니 卽是別敎

意니라



○ 三에 "衆妙를 머금으면서 남음이 있다"라는 것은 법

계의 相大니 杳冥한 안에 衆妙가 있음을 말함이다.

청정법계가 아득하고 그윽함으로써 能含을 삼고, 恒沙

性德의 미묘한 相大로써 所含이 되니,

相은 性을 依支하고 性은 포함하지 않음이 없다. 고로

含이라 칭한다.

性體는 밖이 없고 相德은 이름이 있나니, 이름이 있는

數가 능히 밖이 없는 體에 두루하지 못한 까닭에 "有餘

(나머지가 있다)"라고 하니, 즉 크고 넓어서 오히려 남

음이 있다.

고로 {阿僧祗品}에 이르길, "하나의 미세한 毛孔 가운

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刹土(:우주법계내의 여러 국토

를 의미함)가 차례로 들어간다. 모공은 능히 저 모든

찰토를 받아들이나 모든 찰토는 능히 毛孔 에 두루하

지 못한다" 하니 곧 이러한 뜻이다.

터럭은 性에 칭합함을 잡음이요 찰토는 무너지지 않는

모양을 잡은 것이니, 고로 광대한 相이 능히 작은 性에

두루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相大에 간략히 二義가 있다.

一은 '不空恒沙性德'을 잡음이니 이는 同敎의 뜻이요

二는 事事無碍한 十玄의 相이 本來 스스로 구족함을

잡았으니 이는 別敎의 뜻이다.




然이나 衆妙兩字는 亦老子意니 彼道經에 云道可道할

진댄 非常道요 名可名이며 非常名이니 無名은 天地之

始요 有名은 萬物之母라 常無로 欲以觀其妙하고 常有

로 欲以觀其 니 此兩者는 同出而異名이라 同謂之玄이

니 玄之又玄하여 衆妙之門이라하니

釋曰然이나 彼意는 以虛無自然으로 以爲玄妙하고 復

拂其迹일새 故云又玄이니 此則無欲이라 於無欲에 萬

物이 由生일새 故云衆妙之門이라함이라

今借其言이나 而不取其義하니 意以一眞法界로 爲玄妙

體하고 卽體之相으로 爲衆妙矣니라

 

그러나 衆妙라는 두 글자는 또한 老子의 뜻이니 저

{道德經}에 이르길, "道를 가히 道라 할진대 常道가 아

니요, 이름을 가히 이름이라 할진댄 常名이 아니다. 無

名은 천지의 시작이요 有名은 만물의 어머니다. 常無

로써 그 妙함을 觀하고자 하고, 常有로써 그 도는것을

관하고자 하니, 이 두가지는 함께 났으되 이름이 다름

이다. 한가지로 玄이라고 말하니, 玄하고 또 玄하야 衆

妙의 門이다"고 하였다.

해석하여 이르길, "그러나 저(老子)의 뜻은 虛無自然으

로써 玄妙를 삼고 다시 그 자취를 떨치는 까닭에 이르

길 '又玄'이라 하니, 이는 곧 無慾이다. 無慾에서 만물

이 나는 까닭에 <衆妙의 門>이다"라고 하였다.

이제 그 말을 빌렸으나 그 뜻을 취하진 않으니, 뜻은

一眞法界로써 玄妙의 體를 삼고. 體에 즉한 相으로 衆

妙를 삼음이다.



 

○ 四에 超言思而逈出者는 融拂上三也니 融則三一互

收요 拂則三一雙寂이라

云何超耶아 謂理圓言偏일새 言生理喪하고 法無相想이

라 思則亂生하나니  皆超之일새 故云逈出이니라

故로 肇公이 云口欲談而詞喪하고 心將緣而慮亡이라하

시니 則逈出於言象之表矣니라

何者오 欲言相用이나 卽同體寂이요 欲謂體寂이나 相

用紛然하니 卽一而三相不同이요 卽三而一體無二니 三

一無 하야 互奪雙亡이라 存泯莫羈어니 豈言象之能至

리오 故云逈出이니라

又借斯亡絶하야 以遣言思언정 非有無言에 可爲棲託이

라 故로 下經에 云雖復不依言語道나 亦復不着無言說

이라하니라 況言相이 本寂하야 亡絶도 亦亡하니 斯則

言與亡言이 相待亦寂일새 故假逈出之稱하야 以拂言與

亡言之迹矣니라



○ 四에 "超言思而逈出(언사를 초월하여 훤칠히 벗어

났다)"이라는 것은 위의 셋을 융합하여 떨치는(融拂

) 것이니 융합한즉 三과 一이 서로 거두어 들이고, 떨

친즉 三과 一이 雙으로 고요함이다.

어떻게 초월하는가? 理致는 원만하나 말은 편벽되니,

말을 내면 이치가 喪함이요, 法은 相과 想이 없어서 생

각한즉 어지럽게 生한다. 아울러 다 초월하기에 그러

므로 '逈出'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肇公(:僧肇法師)이 이르길, "입으로 말하고자

하나 말이 상함이요 마음으로 장차 반연하고자 하나

생각이 없어진다"라고 하니, 言象의 表를 멀리 벗어난

것이다.

어째서인가? 相과 用을 말하고자 하면, 즉 體가 고요

함과 같고, 體가 고요하다고 말하고자 하나 相과 用이

粉然하니, 즉 一이면서도 三相이 같지 않고, 즉 三이지

만 一體이고 둘이 아니고, 三과 一이 걸림이 없어서 서

로가 빼앗고 雙으로 없어지며 있고 없음에 얽매임이

없으니, 어찌 言象으로 도달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逈出이라 하였다.

또 이러한 亡絶을 빌려 言思를 보낼지언정 有·無의 말

로 棲託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로 아래의 經에 이

르길, "비록 다시 言語道에 의지하지 않으나 또한 다시

言說이 없는데에도 執着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물며

言相이 본래 고요하여 亡絶 또한 없나니, 이는 곧 말과

말없음이 서로 대하는 것 또한 고요하다. 그러므로 逈

出이라고 稱함을 빌려서 말과 말없음의 자취를 떨쳐버

렸다.

 

 

○ 五에 其唯法界歟者는 結法所屬이니 屬法界也라 謂

具上諸德은 獨在於法界矣니라



○ 五에 "오직 법계뿐이다(其唯法界歟)"라는 것은 法에

屬한 바를 結論지어 법계에 屬하게 함이니, 위의 모든

덕을 갖춘 것은 오직 법계에만 있음을 말한다.


 

 

      2. 約本末釋

 

  第二는 約本末釋者는 此上五句에 初句는 從本起末이

니 卽不動眞際하야 建立諸法이요 次句는 攝末歸本이

니 卽不壞假名하고 而說實相이요 第三句는 本末無 니

則性相歷然이요 第四句는 本末雙寂이니 則言思無寄요

末句는 結屬이니 通四義焉이니라

 

  第二는 本末을 잡아서 해석함이다. 이 위의 五句에서

初句는 本으로부터 末이 일어남이니, 즉 眞際를 움직

이지 않고 諸法을 건립함이다. 다음 句는 末을 섭수하

여 本으로 돌아감이니, 假名을 무너뜨리지 않고 實相

을 설함이다. 셋째 句는 本과 末에 장애가 없음이니,

곧 性相이 뚜렷함이다. 넷째 句는 本末이 雙으로 고요

함이니, 곧 말과 생각이 붙일데가 없음이다. 마지막 句

는 결속함이니 네가지 뜻에 통함이다.


 


    3. 明法界類別

 

  第三은 明法界類別者는 略有三意하니

一者는 會三法界니 初句는 事法界요 次句는 理法界요

第三句는 無障 法界요 第四句는 融拂上三이요 第五句

는 結屬上三法界也라

二者는 會四法界니 往復無際는 事也요 動靜一源은 具

三義也니 動卽是事요 靜卽是理요 動靜一源은 卽事理

無碍法界也요 含衆妙而有餘는 事事無碍法界也요 超言

思而逈出은 融拂四法界요 其唯法界歟는 亦結屬四法界

也라.

 

  第三 (明法界類別)법계의 종류가 다름을 밝힌 것이

다. 간략히 세가지 뜻이 있다.

一은 三法界를 회통함이니, 처음句는 事法界요 다음

句는 理法界요 셋째 句는 無障碍法界요 넷째 句는 위

의 셋을 융합하여 떨침이요 다섯째 句는 위의 三法界

를 結屬함이다.

二는 四法界를 회통함이니, 往復無際는 事요 動靜一源

은 三義을 갖춤이니, 動은 곧 事요 靜은 곧 理며 動靜

一源은 곧 事理無碍法界요, "(含衆妙而有餘)衆妙를 머

금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은 事事無碍法界이며, "(超言

思而逈出)言思를 초월하여 훤칠히 벗어났다"는 것은

四法界를 融拂함이요, "(其唯法界歟)오직 法界뿐이

다!"는 것은 또한 四法界를 結屬함이다.




三者는 會五法界니 往復與動은 皆有爲也요 靜卽無爲

요 一源은 有二니 若互奪雙亡으로 爲一源인댄 則非有

爲非無爲法界요 若互融雙照로 爲一源인댄 則亦有爲亦

無爲法界요 含衆妙而有歟는 卽無障碍法界요 超言思而

逈出은 總融五法界요 其唯法界歟는 結屬五法界니라



三은 五法界를 회통함이니 <往復>과 <動>은 다 有爲

요 <靜>은 곧 無爲다.

<一源>에는 둘이 있으니, 만약 서로 빼앗고 쌍으로 없

어짐으로 一源을 삼는다면 有爲도 아니고 無爲도 아닌

法界이다. 만일 서로 융합하여 쌍으로 비추는 것으로

一源을 삼는다면 또한 有爲이며 또한 無爲法界요, 含衆

妙而有餘는 곧 無障碍法界이며, 超言思而逈出은 총히 五

法界를 융합함이요, 其唯法界歟는 五法界를 결속함이

다.

 

 

    4. 總彰立意

 

  第四는 總彰立意者는 所以最初에 敍法界者는 應有問

言호대 諸家章疏엔 多先敍如來의 爲物應生하사 先小

後大하며 或無像現像하고 無言示言이어늘 今何最初에

便敍法界오할새 故今答云호대 以是此經之所宗故며 又

是諸經之通體故며 又是諸法之通依故며 一切衆生의 迷

悟本故며 一切諸佛의 所證窮故며 諸菩薩行이 自此生

故며 初成頓說은 不同餘經의 有漸次故라 然이나 最後

一意가 正答初問이요 而前諸意는 共成後意耳니라




  第四에 "(總彰立義)총히 立義를 드러냄"이라는 것은

맨 처음에 법계를 서술한 까닭은 응당 어떤이가 묻기

를, "諸家의 章疏에는 흔히 먼저 여래께서 物을 위하여

중생에게 응함을 펴되 먼저 소승을 말씀하시고 나중에

대승을 말씀하시며, 혹은 像이 없는데 像을 나타내며

말이 없는데 말을 보이시거늘, 지금은 어찌 최초에 문

득 法界를 서술하는가?"라고 하니, 그러므로 이제 답

하여 이르길, "이것이 이 경이 宗이되는 까닭이며, 또

모든 경의 通體인 까닭이며, 또 모든 법이 통히 의지하

는 까닭이며. 일체 중생의 迷悟의 근본인 까닭이며, 일

체 諸佛이 증득하여 窮究하신 까닭이며, 모든 菩薩行

이 이로부터 생겨나는 까닭이며, 처음에 몰록 설하신

것은 나머지 經에 漸次가 있는 것과는 같지 않은 까닭

이다. 그러나 최후의 한 뜻이 바로 처음 물음에 대한

답이면서, 앞의 여러 뜻은 함께 後意를 이룰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