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華嚴經 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鈔懸談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一 / [1]

화엄행 2009. 3. 27. 02:02

 2005/12/11 오후 6:06

 

         大方廣佛華嚴經疏演義鈔    卷第一

             
淸凉山 大華嚴寺沙門 澄觀述



將釋此疏에 大分爲四호리니 初는 總序名意요 二는 歸敬請加요 三은 開章釋文이요 四는 謙讚廻向이니 爲順經文하야 有四分故라 若順序正流通則合前二하야 爲序分이요 開章이 爲正宗이요 謙讚이 爲流通이니라

 

  이 疏를 解釋하고자 함에 크게 나누어 넷이 되리니, 初는 名意(名-소의전체,意-소의대의)  을 總序함이요, 二는 三寶에 歸敬하여 加被를 請함이요 三은 章을 열어 文을 解釋함이요, 四는 廻向을 謙讚함이니, 經文을 따라서 四分이 있는 연고니라. 만약 序分의 正宗分과 流通分을 順하면 則 前에 둘을 합하여 序分이 됨이요, 開章이 正宗分이요, 謙讚이 流通分이 되니라.

 

 

   第一章. 總序名意

 

    第一節. 分有四


今初는 總序名意니 卽是疏序며 亦名敎迹이라  分有四요 細科爲十이니

 

 今初는 名意를 總序함이니 즉 疏의 序이며 또한 이름이 敎迹이라. 크게 나 누어 넷이 있고 자세이  科해 열이 되니  

 

言有四者는

 一은 通序法界가 爲佛法大宗이요

 二는 剖裂下는 別敍此經하야 以申旨趣요

三은 是以菩薩搜秘下는 慶遇由致하야 激物發心이요

四는 題稱大方廣下는 若釋名題하야 令知綱要니

亦爲順經四分故라

 

  넷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一은 法界가 佛法大宗이 됨을 通序함이요,

二는 "剖裂"下는  별도로 이 經(華嚴經)을 서술하여 旨趣를  폄이요,

三은 "是以菩薩搜秘"下는 由致함을 만나 衆生들을 격려하여 發心하게함을 경하함이요,

四는 "題稱大方廣"아래는  간략히 名題를 解釋하야 綱要를 알게 함이니,

또한 經을 따라 넷으로 나눠진 까닭이니라.

 

 

    第二節. 細科爲十

 

言細科爲十者는 爲順無盡故니

一은 標擧宗體요 

二는 別歎能詮이요

三은 敎主難思라

四는 說儀周普요

五는 言該本末이요

六은 旨趣玄微요

七은 成益頓超요

八은 結歎宏遠이요

九는 感慶逢遇요

十은 略釋名題라


   "細科爲十"(十 = 圓數 =원만한수)라 말하는 것은 無盡을 隨順한 연고니,

一은 宗體를 들어 標함이요,

二는 별도로 能詮을 讚歎함이요,

三은 敎主를 思議하기 어려움이요,

四는 說儀가 두루 보편함이요,

五는 말의 本末을 해괄함이요,

六은 旨趣가 玄微함이요,

七은 成益을 頓超함이요,

八은 결론적으로 宏遠함을 歎함이요,

九는 逢遇함을 感慶함이요,

十은 간략히 名題를 解釋함이다.

 

 

      第一. 標擧宗體

 

往復이 無際나 動靜은 一源이라 含衆妙而有

餘하고 超言思而逈出者는 其唯法界歟인저

  가고 옴이 끝이 없으나 動과 靜은 한 根源

이다. 衆妙를 包含하면서 남음이 있고, 言思

를 超越하여 훤칠히 벗어난 것은 오직 法界뿐

이구나 !

 


今初에 往復無際로 至其唯法界歟하야 文有五句라 言意多含이어니와 略爲四意호리라

一은 約三大釋이요

二는 約本末釋이요

三은 明法界類別이요

四는 總彰立意라


  처음에 "往復無際로부터 其唯法界歟"까지에 文이 다섯구가 있다. 말은 많은 뜻을 包含하고 있으나 간략히 네가지 뜻이 된다.

一은 三大를 잡아 解釋함이요,

二는 本末을 잡아 解釋함이요,

三은 法界의 종류가 다름을 밝힘이요,

四는 총히 立意를 밝힘이라.

 

 

       1. 約三大釋

 

初今에 約三大釋者는 意明法界-具三大故니 初句는 明用이요 次句는 明體요 次句는 明相이요 次句는 融拂이요 末句는 結屬이라

今初니 卽往復無際가 是也라
往者는 去也며 起也며 動也요 復者는 來也며 滅也며 靜也라

無際는 有二하니,

 一은 約廣多하야 無有際畔이니 此趣事用이요

二는 約絶於邊際니 據卽事同眞이라

何法이 往復고 略有三義하니

一은 雙約迷悟說이요 二는 唯就妄說이요 三은 返本還源說이니

今初라 爲迷法界而往六趣는 去也며 動也요

悟法界而復一心은 來也며 靜也니 皆法界用也라

迷卽妄生이요 悟卽妄滅이라

 

  지금 처음에 "約三大釋"이니, 뜻은 法界가 三大를 갖추었음을 밝히는 연고다. 初句는 用을 밝힘이요, 次句는 體를 밝힘이요, 次句는 相을 밝힘이요, 次句는 融合해 떨침이요, 末句는 結屬이다.

  지금은 처음이다. 즉 "往復無際"가 이것이다.
"往"은 가는 것이며 일어나는 것이고 움직이는 것이다. "復"이라는 것은 오는 것이며 滅하는 것이며 고요한것이다.

  "無際"는 둘이 있으니,

 一은 廣多하여 끝이 없음을 잡음이니, 이는 事의 用에 나아감이다.

 二는 邊際에서 끊어진 것을 잡음이니, 事에 卽해 眞과 같은것임을 들음이다.

어떤 법이 왕복인가? 간략히 세가지 뜻이 있으니,

一은 迷와,悟를 雙으로 잡아 설함이요, 二는 오직 妄에 나아가 설함이요, 三은 근본을 돌이켜 근원으로 돌아가 설함이다.

  지금은 처음이다. 법계에 미혹하여 육취로 나아가는 것은 去이며 動이요,

법계를 깨달아 일심을 회복한 것은 來며 靜이니, 다 법계의 用이다.

迷한즉 妄이 생겨나고 悟한즉 妄이 소멸함이다.

 

然이나 眞有二義하니,

 一은 約隨緣인댄 迷卽眞隨於妄이라 卽眞滅妄生이요 悟卽妄滅歸眞이라 則眞生妄滅이며

二는 約不變인댄 迷悟生滅이 來往紛然이나 眞界는 湛若虛空하야 體無生滅이니 此義는 在下體中하니라

言無際者는 迷來無始일세 故無初際요 悟絶始終일세 際卽無際니라

二는 唯約妄說에 復有二義하니

一은 竪論去來인댄 過去無始하고 未來無終일세 無初後濟요

二는 約橫說인댄 妄念攀緣이 浩無邊際니

上二는 皆約廣多無際니라

若約絶際인댄 妄無妄源일새 竪無初際요 旣無有始어니 豈得有終이리오 故絶後際니라

 

  그러나 眞에는 두가지 뜻이 있으니,

一은 隨緣을 잡는다면 迷는 곧 眞이 妄을 따름이다. 즉 眞이 滅하고 妄이 나는 것이요,  깨달은 즉 妄이 滅해 眞으로 돌아 감이니, 곧 眞이 생겨나면 妄이 소멸함이다.

二에 不變을 잡는다면 迷,悟,生,滅이 오고 감이 어지러우나 眞界는 맑기가 허공과 같아서 體에는 생멸이 없다. 이뜻은 아래 體中에 있다.

"無際"라고 말하는 것은 迷하여 오는 것이 시작이 없다. 그러므로 初際가 없음이요, 깨달으면 시작과 끝이 끊어지므로, 際가 곧 際가 없음이다.

二는 "오직 妄을 잡아 설함"에 다시 두가지 뜻이 있다.

一은 수직적(시간적)으로 去來를 論한다면 과거는 시작이 없고 미래는 끝이 없으므로 初際와 後際가 없다.

二는 횡적(시간적)으로 잡아 설한다면 妄念이 반연함이 커서 변제가 없다.

위에 둘은 다 廣多하여 際가 없음을 잡은 것이다. 

만약 "際가 끊어짐"을 잡는다면 妄에는 妄의 根源이 없으므로 竪直的으로 初際가 없다. 이미 시작이 없는데 어찌 끝이 있으리요?  그러므로 後際가 끝어 짐이다.

 

中觀論에 云大聖之所說은 本際不可得이니 生死無有始며 亦復無有終이라 若無有始終인댄 中當云何有리오 是故於此中에 先後共亦無라하니 橫尋妄心에 不在內外일새 故亦無際니라

是故로 遠公이 云本端竟何從고 起滅有無際라 一毫涉動境하면 成此퇴山勢로다 惑相更相承하여 觸理自生滯라 因緣雖無主나 開途非一致라하니 卽其義也니라

 

  [中觀論]에 이르기를 "大聖께서 說하신 바는 本際를 얻을 수 없으니 生死가 시작이 없고, 또한 다시 끝남도 없다. 만약 始終이 없다면 가운데가 당연히 어찌 있겠는가? 이런고로 이 가운데 先,後際가 모두 없다"고 하였다. 橫的으로 妄心을 찾으나 內外가 있지 않으니, 그러므로 또한 無際이다.

이 때문에 遠公(慧遠公)이 이르기를 "本의 끝을 끝내 무엇으로 쫓을 것인가? 起와 滅에 無際가 있으니, 조금이라도 動하는 境界에 涉하면 이렇게 산을 무너뜨리는 形勢를 이룸이로다. 迷惑함이 서로 이어져서 理致에 觸해 스스로 막힘(滯)을 내느니라. 因緣은 비록 主人이 없으나 길을 여는 것이 一致하지 못한다" 하였으니, 곧 그러한 뜻이다.

 

三은 約返本還源說하야 對其初義인댄 初義는 是總이요 第二約妄은 唯往非來요 今此는 有復이라 復本源故니 斯卽靜義라

故로 周易復卦에 云 復에 其見天地之心乎인져하니라

然이나 往者必復이라 故로 泰卦에 云 無往不復은 天地際也라하니라 就此一義하야 自有往復이라

 

  三은 "返本還源"을 잡아서 說함이다. 그 初義에 對하면 初義는 總이요, 第二에 "約妄"은 오직 往뿐이요 來가 아니다. 今此는 復이다. 本源을 회복한 때문에 이것은 곧 靜의 뜻이다. 그러므로 [周易]<復卦>에 이르길 "復에 天地의 마음을 보는구나 !"라 하였다.
그러나 往한 것은 반드시 復하니, 그러므로 <泰卦> 이르길, 가고나서 돌아오지 않음이 없는 것은 天地의 際니라"라고 하였다. 이 一義에 나아가서 자연히 往復이 있다.

 

故로 文殊師利所說不思議佛境界經中에 善勝天子-問文殊云호대 云何名修菩 薩道니잇고

文殊-初說雙行之行하시고

次云 復次天子야 有往有復이 名修菩薩道니라

云何名有往有復인고

觀諸衆生의 心所樂欲을 名之爲往이요

隨其所應하야 而爲說法을 名之爲復이며

自入三昧를 名之爲往이요

令諸衆生으로 得於三昧를 名之爲復이며

自行聖道를 名之爲往이요

而能敎化一切凡夫를 名之爲復이며

如是自得無生法忍은 爲往이요

令諸衆生으로 得無生法忍은 爲復이며

自以方便으로 出於生死는 爲往이요

令諸衆生으로 而得出離는 爲復이며

心樂寂靜은 爲往이요

常在生死하야 敎化衆生은 爲復이며

自勤觀察往復之行은 爲往이요

爲諸衆生하야 而說斯法은 爲復이며

自修空無相無願은 爲往이요

爲令衆生으로 斷於三種覺觀心故로 而爲說法은 爲復이며

堅發誓願은 爲往이요

隨其誓願하야 拯濟衆生은 爲復이며

發菩提心하야 願坐道場을 名之爲往이요

具修菩薩의 所行之行을 名之爲復이니

是爲菩薩往復之道라하시니

釋曰

上來十對에 皆上句는 自利爲往이니 往涅槃故요

下句는 利他二復이니 復於生死하야 化衆生故라

雖有往復이나 總爲返本還源하야 復本心矣니라

此中無際도 亦有二義하니

一은 菩薩行海-廣無際也요

二는 一一稱眞하야 心無際也라

然上三義는 皆法界用矣니라

 

  그러므로 文殊師利께서 설하신 [不思議佛境界經] 가운데 善勝天子가 文殊菩薩에게 묻기를, "어떤한 것을 이름하여 菩薩道를 닦는다고 합니까? "라고 하니,

文殊께서 처음에 雙行의 行을 說하시고, 다음에 이르시길,

"天子야! 往과 復이 있는 것을 이름하여 '修菩薩道'라고 하느니라. 어떠한 것이 가고 옴이겠느냐?

모든 衆生의 마음이 즐겁게 하고자 하는 바를 觀하는 것을 이름하여 往이라 하고,

그 應하는 바를 따라 法을 說함을 이름하여 復이라 하며,

스스로 三昧에 들어감을 이름하여 往이라 하고,

모든 衆生으로 하여금 三昧를 얻게함을 復이라 하며,

스스로 聖道를 행함을 往이라 하고,

능히 一切凡夫를 敎化함을 復이라 하며,

이와같이 스스로 無生法忍을 얻음을 往이 하고,

모든 衆生으로 하여금 無生法忍을 얻게 함을 復이라 하며,

스스로 方便으로써 生死를 벗어나는 것을 往이라 하고,

모든 衆生으로 하여금 出離를 얻게 함을 復이라 하며,

마음에 寂靜을 즐기면 往이라 하고,

항상 生死에 있으면서 衆生을 敎化함을 復이라 하며,

스스로 부지런히 往復의 行을 觀察함은 往이라 하고,

모든 衆生을 위하여 그 法를 說함을 復이라 하며,

스스로 空,無相,無願을 닦음을 往이라 하고,

衆生으로 하여금 三種覺觀心을 끊게 說法하는 연고로 復이라 하며,

굳은 誓願을 發함을 往이라 하고,

그 誓願을 따라 衆生을 拯濟함을 復이라 하며,

菩提心을 發하여 道場에 坐하길 願함을 往이라 하고,

菩薩의 行할 바 行을 갖추어 닦음을 이름하여 復이라 하니,

이것이 菩薩의 往復의 道가 되느니라"하시니,

解釋해 이르길,

위의 十對에 上句는 다 自利의 往이 됨이니 涅槃에 가는 까닭이요

下句는 利他의 復이 됨이니 生死에 돌아와서 衆生을 敎化하는 까닭이다.

비록 往復이 있으나 총히 反本還源하야 本心에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가운데 無際도 또한 두 뜻이 있으니,

一은 菩薩의 行海가 넓어서 無際요,

二는 낯낯이 眞에 稱合하기에 깊이가 無際이다.

그러나 위의 세가지 뜻은 다 法界의 作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