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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근 칼럼니스트 - 박정희의 독재 모험과 박근혜의 민주 모험

화엄행 2012. 4. 7. 01:46

http://n.breaknews.com/sub_read.html?uid=200127§ion=sc1

 

박정희의 독재 모험과 박근혜의 민주 모험

‘각기 나름대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

 

심상근 칼럼니스트

 

 

인간은 수만 년 이상 ‘함께 사는 길’, ‘함께 사는 법’을 모색하여 왔다. 이는 앞으로도 영구히, 인간이 존재하는 한, 멈출 수 없는 여정이다. 왜냐하면, 엄청 발달된 두뇌로 인하여 인간들은 그들의 삶의 환경을 간단없이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중국의 경우, 농사만 짓던 시절에는 공자, 맹자, 순자의 가르침만 있으면 그런대로 굴러갔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회오리가 몰아치는 무렵, 중국의 중앙집권제 왕정은 폐기처분의 대상이었고, 그 폐기작업은 마오쩌둥(모택동)과 그의 지독한 공산주의의 몫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경제적 파산을 보장하는 제도임이 전 세계적으로 증명되었고, 덩샤오핑은 그 공산주의를 행정조직으로 퇴화시키고 서구식 자본주의를 경제의 축으로 삼았다.
 

▲ 심상근  박사  ©브레이크뉴스

그 후 중국은 승승장구하였고, 미국의 국채를 지속적으로 구입함으로써 미국을 파산으로부터 방지하는 역할을 맡아왔으며, 1930년대의 세계경제대공황과 동류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제는 유럽까지 중국에게 파산으로부터 구해달라고 거의 애걸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바보가 아닌 중국은 “산업투자는 하겠지만, 그냥 돈 꾸어주는 것은 못 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물론 어느 나라건, 당시의 상황에 가장 맞는 ‘함께 사는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아니면 거지나라가 되거나 아비규환이 된다. 소위 ‘한강의 기적’ 이후, 한국사람들은 잘먹고 잘사는 것이 무슨 하늘이 준 권리인줄로 아는데, 그 것은 아주 예외적인 특권(privilege)에 속한다. 문명이 발달한 현 세계에서도 잘 먹고 잘사는 나라는 전체적으로 아주 작은 일부에 국한되어 있다. 그러한 맹신은 자칫 한국을 도루 ‘보릿고개’의 예전 시대로 추락시킬 가능성이 아주 크다.
 
한민족은 몽고족과 비슷하게 무리를 지어 무리 사이에서 극한항쟁을 하는 문화를 오늘도 기축문화로 가지고 있다. 즉, ‘씨족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채 21세기를 맞은 것이다:
 
 “한국인하면 떠오르는 괄괄한 성격, 자기 무리만 생각하는 이기심, 제각기 잘난 사람들 - 세계를 움직이는 두뇌집단 속에서 수많은 인종과 부대끼며 살면서 저자는 한국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얻었다. 그 결과 한국인 특유의 ‘기세’가 자신을 둘러싼 50명 정도를 먹여살리는 데는 주효했지만 오늘날 경제대전의 기술경쟁에서 살아남기에는 역부족임을 절감했다 (중략) 이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100만 명 먹여 살리기’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게 되었다.”
 
이는 내가 ‘현철사태’가 ‘한보사태’로 곪아터지던 즈음인 1996년 11월에 펴낸 ‘100만명 먹여살기기’의 책 뒷면에 실린 글이다. 도솔출판사 편집자들이 내 원고를 읽고 자기들 나름대로 요약을 한 것이며, 이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한민족 내지 한국인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해 준다. 이 진실을 외면하면 그 어떤 정책과 법률도 실효성이 없게 된다.
 
해방 후에도 이러한 민족성으로 말미암아, ‘신 삼국시대’가 열렸고, 신 고구려는 소련의 영향 하에 공산주의를, 신 신라-백제는 미국의 영향 하에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명색이 국가라고 세웠지만, 그 후 남북 간, 남남 간 싸움질만 하며 60년 이상을 지낸 바가 크다. 예전 삼국시대의 그 ‘씨족문화’가 5%도 변하지 않은 채 ‘신 삼국시대’로 재연된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점으로서는, 중국, 소련, 미국 등 대국의 그늘에서 살아온 탓에, 스스로 ‘함께 사는 법’을 모색하여야 한다는 의식과 인식은 한 톨도 없다. 이 화두가 나오면 하버드의 누가 이랬고, 옥스퍼드의 누가 저랬고, 남의 나라 사람들 말 인용하기에 바쁘고, 큰 언론사들은 돈을 쳐 들여 그들을 초청하여 뻔한 이야기, 혹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침을 흘린다. 하다못해 재벌기업 내부에서 무슨 토론이 벌어져도, “미국에서도 그렇게 한다!”면 그 회의는 거기서 끝난다.
 
자랑 같지만, 나는 미국에서 수십 년 활동하면서 내가 백인들보다 못났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더 잘났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다. 생긴 것도, 키는 작지만, 백인 여비서들도 내가 잘 생겼다고 평했다. 엄청 덜 떨어진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내가 이러한 덜 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러한 덜 떨어진 짓일망정 ‘자부심’이 한국인들과 한민족에게 정말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는 한, 자신감을 얻을 수 없고, 만날 대국의 누가 이랬고 저랬고, 그런 염불만 외우며 살게 된다.
 
나는 미국에서도 근 30년 간 칼럼을 썼지만, 나이 60이 넘어서 주로 한국에서 체류하면서 한국에서 칼럼을 쓰고 있다. 나는 물론 지금도 내가 백인들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두뇌 수준은 백인보다 덜 하지 않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인들이 백인들에게 보이는 아부적인 태도에는 진짜로 구역질을 느낀다. 예전에는 중국인들에게 그랬다.
 
그리고, 진짜로 신경질 나는 일이 있는데, 미국에서 강사로 나온 자들이 인터넷에서 자기들끼리 자랑하는 것이다: “내가 한 번 동침하자고 요청한 한국 여성들 중 한 명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가 골자이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인종차별적 면은 엄청 많다. 일견 훌륭한 미국작가들도 동양여성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백인남자가 손만 내밀면 옷을 벗는 것으로 소설에서 묘사한다. 하버드 재학생들 사이의 연애를 소재로 한 소설에서도, 백인들 끼리 연애를 걸다가 티격태격 싸우고 임시 헤어졌는데, 허전한 마음에 동양계 여학생을 찾아갔더니 그 동양계 여학생은 그날 밤 침대에서 그 백인남자를 몸으로 위로해 주었고, 그 힘으로 말미암아 그 백인 남학생은 백인 여자 친구를 찾아가 다시 맺어졌다, 뭐 이런 x소리를 쓰고 있고, 그 소설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로 엄청 팔려나갔다. 지금도 그 소설 생각하면 오장이 끓어올라 누구건 두드려 패고 싶다.
 
며칠 전에도 대문짝만한 기사가 났는데, 10명 이상의 한국 여성들이 한 백인남자에게 몸을 주고 아우성들을 치고 있다는 기사였다:
 
“성추문 논란에 휩싸인 ‘슈퍼스타K3’ 출신의 크리스 고라이트리가 한국을 떠난다고 밝혔다. 크리스는 30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 북에 “나는 오늘 미국으로 간다. 거짓말은 나를 아프게 한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정말 슬프다. 굿바이, 한국”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지난 2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크리스의 팬이라는 누리꾼이 “크리스의 팬으로 SNS를 통해 친해져, 첫 만남에 그의 집에 가게 됐고 성관계를 맺었다”며 “나뿐만 아니라 팬 카페에서 여러 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은 걸 알게 됐다”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이에 앞서 크리스가 “내 삶은 나만의 특권이다. 여러 여자와 데이트를 했다. 몇 명은 내가 다른 여자와 데이트를 했다고 화냈지만 난 결혼하지도 않았고 날 이해해주는 사람을 찾고 있을 뿐”이라는 내용으로 남긴 글까지 인터넷에 퍼지면서 논란은 커졌다….”
 
아이고, 내가 오늘 이런 이야기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닌데, 완전히 격분이 되어 한참 다른 데로 흘렀다. 말이 나온 김에 요약하자면, 한국남자 요즈음 돈도 잘 벌고, 못 먹던 나의 세대와 달리 키도 평균 10센티 정도 커졌고, 여성들에게 서비스도 좋다. 백인들 겪어본 사람들 알지만, 한국인들처럼 다정다감하고 속 깊지 않다. 서양애가 뭐라고 시답지 않은 말을 걸면 정강이를 차거나 따귀를 갈기면 된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씨족문화’ 내에서 상호 싸움질에 여념이 없고, 게다가 중국, 미국 대국의 그늘에서 수백 년 살면서 자신감을 상실한 탓에, 한민족은 스스로 ‘함께 사는 법’을 강구하는 대신, 당시 당시의 대국이 하는 대로 모든 것을 따라 하며 산다. 이는 그 대국이 코스를 바꾼 후에도 춘향적 일편단심을 가지고 대국의 것을 사수하는 편이다. 이는 고쳐져야 한다.
 
나는 젊은 시절, 특히 세계 자유의 메카인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할 때, 진짜로 박정희라면 이를 갈며 미워하였고, 유학생들 모임에서는 앞장 서서 성토하였다. 그러나 그 후 살아오면서 세상구경도 하고, 그리고 현철사태-한보사태 등을 목격하였고, 그래서 급한 마음에 내 돈 들여 비행기 타고 한국에 와서 당시 희망의 대상이었던 이회창 당시 당 대표도 독대하고, 이러면서 박정희에 대하여 완전히 생각이 180도 바뀌었고 그가 왜 한국 정치가들을 그렇게 싫어했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는 거의 예수와 바오로의 관계와 비슷하다. 바오로는 원래 로마관리로서 예수를 본 적도 없지만, 그가 처형당한 후 선교를 하는 무리들을 찾아 가두고 처형하는 데 앞장 섰었다. 그러다가 마음의 눈을 뜨는 계기를 만났고, 그 후 그는 예수를, 문자 그대로, 하느님처럼 떠받들게 되었다. 다른 제자들은 초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결국 바오로는 신약을 집대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뭐, 박정희 신봉자를 잡아다 가두고 그러는 신분은 아니었지만 욕은 많이 하고 다녔었는데, 문민정부와 그 이후 돌아가는 ‘씨족적 문화’의 꼬라지를 보면서 입장을 완전히 전환하여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박정희 해석은 이러하다:
박정희는 비록 독재라는 나쁜 방법을 선택하였지만, 대국의 지정해준 틀을 벗어나는 모험을 하였다는 점에서는 적어도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미국정부에서는 박정희를 아주 경멸하였다. 그러나, 어렵쇼, 박정희는 한국을 단군 이래 처음으로 잘 먹고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다. 1970년에 내가 유학 갔을 때에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불쌍히 여기거나 얕보던 미국인들도 1980년이 지난 후에는 진짜로 대접을 하는 태도로 나를 대하였고, 다른 가난한 나라에서 미국에 온 사람들은 한국 출신이라고 하면 침을 흘리며 부러워하였다.
 
분석하자면, 박정희가 성공한 요인들은 다음과 같았다:

1. 쿠데타 전, 군부 내에서 청렴이라는 면에서 신화적인 존재였다.
2. 집권 후에도, 군부는 썩었었지만, 박정희 부부는 청렴의 상징이었다.
3. 중국 등 대부분 후진국들이 잠 자고 있었다.
4. 한국인들의 교육수준이 높다.
5. 미국과 일본과 가까우므로, 첨단기술을 배우고 도입하는 것이 용이했다.
6. 한국인들은 일을 하면 죽는 줄도 모르고 맹렬히 집중한다.
7. 재벌중심의 산업을 일구었다.
8. ‘재벌’이 ‘씨족집단’으로 인식되어, 재벌에 대하여 충성으로서 근무한다.
9. 이병철-이건희, 정주영-정몽구 등, 뛰어난 사업가들이 부상하였다.
10. 북한이 침투와 교란은 계속 했지만 큰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위의 “7항 재벌중심의 산업을 일구었다”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한국 내에서 살고, 이공계를 잘 모르는 분들은 이해하기가 힘들지도 모르지만, 세계적으로 장인정신이 없는 나라로서는 한국 내지 한민족은 거의 일등이다. 이는 진실이며, 나의 수필집, ‘백만 명 먹여 살리기’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 이유는, 우선 몽고족으로서 피가 뜨겁고, 무리를 지어 무한 항쟁을 하는 문화이며, 여자비하의 문화로 인하여 남자들은 꺼떡거리느라고 차분히 무엇에 정진하는 경향이 거의 전무하다. 중국과 백인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쎄며, 그러므로 많은 남자들은 마누라에게서 지천구나 안 먹으면 장땡으로 생각한다. 뭐, 그렇게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도 하지 않으므로 무슨 일에건 코를 박고 정진한다. 그리고 밥벌이를 못 하면 마누라에게 진짜로 얻어맞거나 이혼을 당 하거나 둘 다 이므로, 그저 눈만 뜨면 일에만 몰두한다. 미국에서도 중국계 남자들은 모이면 100% 돈 버는 이야기, 주식 동향, 부동산 정보 이런 이야기만 한다. 이는 진실이다. 반면 한국계 남자들은 100% 한국 정치 이야기나 혹은 교포사회 내의 감투 이야기만 한다. 나의 이 이야기가 틀리다고 증명하는 독자 분들에게는 내가 일일이 벌금을 내겠다.
 
그러므로, 박정희가 재벌중심으로 산업을 일군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상기 사실을 알고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그러하다. 장인정신의 결핍과 그로 인한 산업적 불리함은 천문학적이며, 이는 앞으로도 100년 이상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뭐, 몇 가지 특별한 사례를 들면서 나의 주장을 반박할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그러하다.
 
장인정신에 가장 투철한 인종은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첨단기술계의 고급인력에 있어서, 중국계가, 인도계와 더불어, 9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계는 5%도 안 된다. 이 또한 진실이다.
 
박정희의 쿠데타와 업적은 그러나 일회성이었고, 그의 아들 박지만 군의 술회대로, 그의 아버지는 언젠가 불행한 최후로 생을 마감할 확률이 높은 상태에서 통치를 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정치인들을 극도로 혐오하였다. 문민정부 이후 오늘까지 한국의 정치사를 보면 그의 그 견해는 100% 옳은 것이다. 그리고 그가 기성 정치인들에게 정치를 돌려준다면 그는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선고를 받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역사적 재평가네 하면서 그는 진흙탕으로 끌려 다니는 수모를 당할 것이었다. 그는 탈출구가 없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괜찮아…”였다. 그는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었고, 그 면에서는 여한이 없었을 것으로 나는 추정한다.
 
부언하자면, 덩샤오핑 이하 후진타오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자들은 박정희를 멘토로 여기고 있으며, 덩샤오핑은 일년이 넘게 방송을 통하여 “박정희 식을 따라 하자!”는 방침을 전국적으로 캠페인을 하며 경제부흥을 하였고 결국 오늘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후진타오가 10분 전에 건물 밖에 나와 부동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신세는 반드시 대를 이어 갚는다”는 중국의 오랜 전통의 결과이며, 그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 중국인들은 그를 싸가지 없는 지도자로 간주했을 것이다.
 
박정희가 경제부흥에 몰두하던 1970년 대는 미국을 중심으로 흥청망청하던 시절이었다.

서구경제는 3대를 주기로 흥했다 망했다 하는데, 경제대공황을 맞으면 1대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2대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부모를 보고 배워서 열심히 하는 편이며, 3대에 이르면 일을 하는 대신 투기로서 돈을 버는데 골몰하며, 그러다가 1929년과 2008년처럼 경제대공황이 시작된다. 경제대공황은 서구에서는 항상 수백 만 명이 죽어나가는 큰 전쟁으로 풀었고, 그러므로 1945년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 그 1대는 다시 번영을 구가하였다. 그러므로 박정희가 군사혁명으로 강제로 집권한 1960/70년 대는 그 3주기 중 1대에 속했고, 수출중심으로 경제부흥을 하기에는 진짜로 좋은 시절이었다.
 
그 후 그는 갔고, 이윽고 문민정부 등 소위 미국 식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씨족문화는 영이고 국가의식이 충일하며 예수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부정부패는 전혀 없는 미국과 달리, 전통적인 씨족문화에 ‘동창관계’라는 새로운 씨족집단이 가미되어 아래에서 위까지 왕창 해먹기에 분주하고, 안 해먹으면 바보로 간주되는 풍토는 조선왕조 시와 자유당 시절과 같되, 해먹을 것이 별로 없던 예전과 달리 경제부흥의 결과 눈알이 튀어나오게 해쳐먹을 것이 산지사방에 깔려있는지라. 한국은 완전히 도루아미타불, 부정부패라는 면에서 자유당 시절 뺨치게 엉망으로 돌아갔다.
 
경제성장이 되니까 오히려 빚내는 데에는 정부건 민간이건 도사들이 되어, 2008년에 시작된 경제대공황이 드디어 문턱에 도달하면 나라건 가정이건 도산할 확률이 엄청 현저하여 진 상태이다.
 
그나마 박정희 시절은 세계적으로 올라갈 일만 있는 1대/2대의 경제국면이었다. 그러나 2012년 현재는 3대의 시대이고, 경제주기 상 경제공황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이 주장을 수년 전부터 칼럼을 통하여 잠꼬대처럼 반복했지만, 결국 2011년 12월 초에 IMF총재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였다: “세계 경제는 1930년대의 대공황 비슷한 것으로 접어들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한다”
 
3대의 특징은 힘든 일은 싫어하고 투기로만 돈을 벌려고 하는 점이다. 안철수 원장에게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그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그의 청중 2030 세대가 경제대공황주기 이론의 3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정몽구-이건희 이하 60대 이상은 안 원장의 이야기에 결코 심취하지 않는다. 자기 손으로 힘들여 돈을 버는 것 이외에 어느 왕도도 없다는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제3대 추세에 의하여 망하는 길로 들어선 참이다.
 
안철수연구소의 주가가 만팔천원 수준에서 안철수 바람과 함께 거의 열 배가 뛴 것은 ‘세계대공황 3대 주기 이론’의 살아있는 예이다. 최근 인터넷에 뜬 글을 아래에 소개하자면:
 
"저희 회사에 윗분 중에 사주를 공부하신 분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안철수님 사주를 물어봤더니.ㅋㅋ   명절 연휴 때 세분 다 봤는데요… 안철수님 대통령 후보에 나오면 대통령 된다고 합니다. 이 세 분 중에 젤로 좋다고요.
 
그런데.. ㅠㅠㅠ 평양감사도 본인이 싫다고 하면 안되는거잖아요. ㅠㅠㅠ
 
저도 하루 하루가 피가 마릅니다.  오늘 날짜로 저 손해 17.1% 입니다. ㅠㅠㅠ 이백만원 넘게 손해네요.
 
그래도 오늘 3주 추매했습니다. 평균단가 별로 안 낮아줬지만.. 그래도 꾸준히 조금씩 살랍니다.
 
전 제 사주도 한번 믿어 볼랍니다. ㅋㅋ 이번 년도 재물 복이 좋다고 하던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재물 복이 들어온다고..
 
그럼.. ㅋㅋ 주식 밖에 없거든요.
 
전 우량주 위주로 하다가 대선 테마주 하니까 정말로 가슴 떨리고 힘이 들긴 하네요. ㅠㅠㅠ
 그래도 안철수님 대선 안 나온다는 말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나오시더라도 늦게 말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박근혜 씨는 그의 부모님, 특히 어머님의 서거 후 Death tunnel을 헤매며 살아오다가, 한보사태와 IMF금융구제 사태 이후 정계입문을 결심했다. ‘힐링캠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IMF사태가 없었다면 정계에 안 들어왔을 것이었다. 그의 나이 27세에 아버지가 가셨고, 그러니까 33년 후에 정치권의 중심에 선 것이다.
 
그가 정치권의 중심권 서게 된 것은 그의 인품과 인격과 두뇌 덕분이다. 어르신들 사이에서는 아버지 덕을 보는 면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그는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산이 충분히 있다. 정계입문 이후 근 14년 동안 국민들은 그러한 면을 보았고 그를 많이 지지하고 있다. 작년 가을에 서울시장 직을 구해주는 데는 실패했지만, 서울 구청장 보궐선거에서부터 호남지역을 제외한 전국에 걸쳐 그는 100% 한나라당 후보들을 당선시켰다. 그 이전의 44승 무패에 이은 이러한 기록은 한국 정치역사 상 다시 나올 것 같지 않다. 누가 뭐래도 ‘박근혜 효과’는 거의 종교적이다, 하다못해 ‘힐링 캠프’ 시청률을 배로 띄워주었고, 그 이전에는 나 자신 모르던 ‘힐링 캠프’는 인터넷을 도배하였고, 적수인 문재인 전 수석까지 지지도에서 대박을 터뜨려 주는 순진함도 발휘하였다.
 
그는 공부하듯이 정치를 하는 성격이고 그 것이 그의 성공의 비결이다. 서강대학 전기과를 일등으로 졸업한 이유와 동일하다. 그리고, 그의 두뇌수준을 이해하지 않으면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만주사관학교 일등 졸업이었던 아버지의 두뇌를 물려받은 덕분이다. 열 사람 이상이 모여서 공부하고 의논하여 얻는 량을 그는 혼자 공부하고 혼자 얻는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매주 수십 명에게서 이 것 저 것 배우고 코치 받고 그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널리 인재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지적 함량과 수준은 상식적으로 유추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 것이 그를 많이 돕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아래와 같은 많은 내우외환에 시달릴 것이다:
 
1. 세계경제공황의 주기를 맞아 다시 세계경제가 아수라장으로 돌진하고 있는 중이다.
 
2. 그로 인하여, 서구 식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도마에 올랐다. 미국에서도 대선주자 사이에 이 것이 가장 뜨거운 논제이다. 민주당은 1%가 99%를 수탈한다는 식이고, 일부 공화당 대선주자는 그 따위 소리를 하면 그나마 경제는 아주 쓸어진다고 주장한다.
 
3. 정치주체와 경제주체가 안 보이는 손을 서로 잡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시장경제를 추구하였고, 그 결과 경제부실화와 양극화를 악화시킨 것은 맞다. 이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다.
 
4. 문제는 “어떻게 알을 낳는 거위를 위축시키거나 심지어 죽이지 않고 이 문제를 바로 잡느냐?”이다. 한국의 경우, 진보진영 인사들 중 일부는 도끼와 식칼을 들고 나서는 중이고, 여당에서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김종인 위원의 손에 정교한 메스(surgical blade)를 쥐어주며, “정교하게 수술하세요!”하고 당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어느 쪽의 손을 유권자들이 총선에서 들어줄지는 하느님밖에 모르지만, 수천 년 지지리 가난했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도끼와 식칼을 든 쪽에 손을 들어줄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 못 살 적에는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법이다. 우선 거위 몇 개 잡아먹으면 당장 배가 부르고, 그리고 그 부자 놈들 망하는 꼴 보면 소화도 잘 될 것이다. 낳은 알의 수효가 줄어드는 것은 그 때가서 엉뚱한 사람들 탓하면서 북새기를 치면 된다.

 
요약하자면, 박정희는 경제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1대의 시절, 쿠데타로 기성정치인들을 억누르고 경제부흥을 성취하였고, 그 것이 죄라면 그 죗값을 치르고 먼저 보낸 그의 아내에게로 갔다. 그 후 30여 년이 흘렀고, 힘들여 일하는 것은 싫어하고 투기에는 회를 치는 3대의 시절이 도래하였고, 세계경제는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는 즈음, 그의 딸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섰다.
 
내가 그라면 나는 안 나선다. 국면이 너무 안 좋다. 그러나, 아버지의 운명을 항상 예감하고 있었다던 박지만 군은 아마 이럴 것이다: “제 누님 성격을 모르시니까 그런 말씀 하시는 거예요. ‘국면이 안 좋다!’ 뭐 그런 것은 누님 성격 상 고려 사항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고생도 팔자’라는 이야기도 있는 것이다. 당선될 확률이 상당히 높으므로 내가 보기에는 고생길이 훤하다. 그러나 세계대공황 주기 제3세대에 해당하는 2040세대를 데리고, 세계공황이 본격화될 시기에 정치의 중심에 선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소원대로 애국할 기회를 맞게 될 확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비대위에서 발표한 소위 ‘국민과의 약속’이라는 정책강령을 나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본다. 그리고 같은 일도 그가 하면 더욱 착실하고 정교하게 이루어 질 것이다. 공부하듯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김종인 위원의 굵은 성향과 박근혜 위원장의 정교한 성향은 상호 보완적이며, 이는 상호 인내한다면 국민과 서민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다. 재벌의 입장에서도, 이왕 회초리를 맞을 것이면 이들에게서 맞는 것이 백 배 낮고 안전하다. 다만, 상술한 바와 같이, 선택은 유권자들 몫이므로 누구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 예단할 수 없다.
 
대북정책에 관하여서는, 북한에 대한 ‘내정불간섭주의’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조갑제 씨 등 극보수들은 예상대로 반대가 극심하지만, 대외사정은 안 좋다. 중국과 미국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심화될 것이며, 경제는 엄청 나빠지므로 전쟁을 벌이고 싶은 심리는 상대적으로 아주 높아질 것이며, 미국국방 전략이 중국을 포위하는 것으로 공개적으로 천명된 현실에서, 북한에게 감 놔라, 밤 놔라 하며 실랑이를 할 여유가 전혀 없다. 매달 매년이 다르게 북한은 중국에게 흡수되고 있고, 세계적 수준의 광물자원은 이미 50년 계약으로 중국에게 넘어갔다. 극보수들이 원하는 대로 북한이 붕괴되어 쓰러지면 반드시 중국 쪽으로 쓸어지지, 남한 쪽으로는 쓰러지지 않는다. 만주에 이어 북한도 완전히 잃을 수 있다.
 
그리고 급변 사태가 벌어지면 망하는 것은 남한이다. 북한주민들은 이미 굶주림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으므로 죽건 살건 잃을 것도 별로 없다. 남한의 극보수가 원하는 대로 북한이 붕괴되는 경우, 미국과 중국이 무력으로 충동을 할 확률은 90%가 넘는다. 그 경우 남한이 잿더미가 될 확률은 50%가 넘는다. 누가 뭐라 건 나는 나의 이 분석을 신뢰한다.
 
남한 국민들도 여론조사에서 80%가 평화공존을, 20%가 통일을 원하다. 이러한 총체적 상황에서 남한에게 가능한 유일한 실효성 있는 대북정책은 평화적 공존과 경제적 상호상조이다. 그리고 잘살면 인권문제, 자유 이런 것들도 향상된다. 남한이 주장질한다고 북한이 변할 리 만무하다. 오히려 북한정권은 방어심리로서 더욱 장악력을 굳히려 할 것이다.
 
그리고 어쨌든 김정은 국방 부위원장은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가 고령의 군부 인사들의 영향권 내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한이 하기에 따라서 그가 상당히 획기적으로 북한을 변모시킬 가능성은 확실히 있다.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켰고, 박정희가 경제부흥을 위한 독재를 하는 동안, 일부 남한의 민주세력과 함께, 남한에게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김신조 일당은 박정희 목을 따러 와서 거의 성공했었고, 문세광은 육영수 여사를 해치었고, 그 후에도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북한에 우호적인 상황을 남한에 조성하려고 시도하였다는 죄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고 고문을 받고 심지어 죽기도 하였다.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격침 등, 북한의 공세는 줄기찼다. 반면, 근래에 들어서서는 남한은 경제적 그리고 국제적 위상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북한정권의 붕괴를 거의 노골적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북은 남을 붕괴시키려고 하고, 남은 북의 붕괴를 기다리고, 이런 일은 이제는 종식되어야 한다. 그러한 싸움질에 신나고 수지 맞추는 것은 중국과 미국과 일본이다. “아이고, 한반도에서 전쟁이나 한 번 다시 크개 터져라!” 내가, 만약, 현재 아무 것도 되는 일 없는 일본의 국민이라면 그러한 기대도 할 것이다. 그러한 기대가 10년 내에 실현될 가능성은, 게다가 세계경제공황으로 인하여, 30% 정도로 나는 추산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북정책의 실용화는 좋은 방향일 뿐 아니라 필수적이다.
 
‘힐링 캠프’에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IMF 구제금융 후 정계입문을 결심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라고 하였다. 인터넷에는 “대한민국이 너희 아버지와 너의 사유물이냐?” 뭐 그런 댓글도 떴었는데, 그런 야지를 놀 사람들은 세상에 언제나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 내외적으로 힘든 국면에서 그는 나름대로 ‘함께 사는 법’을 모색하고 찾아보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상술한 바와 같이, 그의 시도는 그 성공의 확률에서 그의 아버지가 시도했던 경제 부흥보다 낮다. 그러나 그는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가 선호하는 ‘수술 용 메스’ 방식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일부 극단적인 진보진영이 선호하는 대로 ‘도끼와 식칼’의 방식을 선택하느냐는 한국인들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 ssheem@hanmail.net
 
*필자/심상근. 미 버클리대 공학박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