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의 향기 ♣>/♧ 문화와 예술 ♧

安堅의「瀟湘八景圖」와 논문자료

화엄행 2009. 10. 6. 14:41

앞에 소개되었던 소상팔경도의

제5폭부터 제8폭의 제목이 잘못된 것 같아 수정해 봅니다.

 

제5폭 소상야우(瀟湘夜雨).

 

 제6폭 동정추월(洞庭秋月).

 

 제7폭 평사낙안(平沙落雁)

이 그림 또한 제 4폭의 원포귀범(遠浦歸帆)과 같은 그림이며,

원경의 기러기 모습이 확연하기에

제 4폭의 원포귀범(遠浦歸帆)의 그림이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제8폭 강천모설(江天暮雪) 

 

 

 

전(傳) 안견(安堅)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크기 : 720 × 397 (pixel)

 

http://www.gosiga.co.kr/bbs/pyeongsa.htm

 

 

「瀟湘八景」 漢詩의 含意와 情緖的 寄與

- '평사낙안(平沙落上)'을 대상으로 -

전경원(傳文硏 常任硏究員, 건국대 강사)

 

1. 서론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중국 호남성 동정호(洞庭湖) 남쪽 영릉(零陵) 부근으로 '소수(瀟水)'와 '상수(湘水)'가 합쳐지는 곳의 여덟가지 경치를 말한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는 그 여덟 가지 경치를 주제로 삼아 각 화폭에 그린 그림을 말한다.
'소상팔경(瀟湘八景)'에 대한 연구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와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에 대한 갈래로 구분되어 진행되어 왔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 대한 연구는 안휘준, 최기수, 김순명, 송희경 등의 연구성과가 마련되어 있고,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에 대한 연구는 성원경, 김기탁, 임창순, 최경환, 정운채, 안장리, 여기현, 조은심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논문은 기왕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하되, 기존의 논의와 차별되는 점은 소상팔경을 노래하는 사대부들의 심리는 무엇이었으며, 해당 작품들이 사대부들의 사유체계에 어떠한 정신적 기여를 하였는지 하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 소상팔경을 노래한 여덟 편의 한시 작품 전부를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자칫 논의의 초점이 분산될 우려가 있기에 우선은 '평사낙안(平沙落上)'만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장차의 논의는 나머지 작품들로 확장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소상팔경을 노래한 여덟 편의 한시 작품들은 어떠한 유기적 관련성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점에까지 연구가 진척되어야 함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이다. 이 논문은 그에 대한 시발점으로 소상팔경(瀟湘八景) 가운데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上)'을 노래한 한시 작품을 대상으로 작품에 담긴 함의(含意)와 사대부들에게 기여한 정서적 측면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제2장에서는 본격적 논의에 앞서, '소상팔경(瀟湘八景)'이 만들어지게 된 사상적 배경과 미학적 기반 등에 관하여 살펴보고(2.1.),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와의 관련성 속에서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가 창작되고 있으므로 당대의 '시(詩)'와 '화(畵)'의 관계를 조망하고자 한다.(2.2.) 아울러 '소상팔경'을 노래한 한시는 자연(自然)을 노래한 산수시(山水詩)이기에 자연을 바라보는 사대부계층의 자연관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2.3.) 이처럼 제2장에서는 본격적인 논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예비 사항을 먼저 살펴보고, 제3장에서 본격적으로 '평사낙안'의 형상과 의미를 살펴봄으로써, 작품 안에 담긴 함의(含意)와 '평사낙안'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들이 사대부에게 어떠한 측면에서 정서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하는 점이 자연스레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2. 예비적 고찰
2.1.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형성기반


우리나라를 포함한 중국, 일본 등에서는 몇가지 경승(景勝)을 가리켜 말할 때, 비단 '소상팔경(瀟湘八景)'뿐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팔(八)'이라는 수를 택하고 있는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예컨대, '관동팔경(關東八景)', '송도팔경(松都八景)', '신도팔경(新都八景)', '단양팔경(丹陽八景)' 등이 그렇다. 이렇게 아름다운 경승지를 요약적으로 제시할 때, '팔(八)'이라는 숫자를 강조하는 배후에는 동양적 수리관(數理觀)과 우주관(宇宙觀)이 작용하고 있다. 동양의 수치(數値)는 단순히 자연수를 셈하는 단위가 아니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대응과 조화의 원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말하자면 홀수와 짝수는 음양관(陰陽觀)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또한 그것은 양(陽)인 하늘(天)과 음(陰)인 땅(地)에 대응하는 수이다.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도 "하늘은 칠이요, 땅은 팔이다(天七地八)"고 하였는데, 이는 홀수인 7을 하늘에, 짝수인 8을 땅에 대응시킨 것이다. 또 <관자(管子)> 오행(五行)에서 말하는 "지리이팔제(地理以八制)"라는 것도 마찬가지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팔경(八景)'의 '팔(八)'이라는 수는 땅을 의미하는 동시에, 땅의 속성을 함께 드러내는 수라고 할 수 있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의 풍경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덟 폭 모두 음의 성질을 가진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만종(烟寺晩鐘)', '어촌낙조(漁村落照)', '원포귀범(遠浦歸帆)'에서, 산간 마을의 저녁 안개, 종소리 들리는 산사의 저녁, 어촌에 깔린 저녁 노을, 그리고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등은 음(陰)의 성질에 해당하는 것으로 양(陽)의 성질을 가진 아침, 일출, 출발 등에 대응하는 음(陰)의 풍경들이다. 또한 '소상야우(瀟湘夜雨)'의 '밤비(夜雨)', '동정추월(洞庭秋月)'의 '가을달(秋月)', '평사낙안(平沙落上)'의 '내려앉는 기러기(落雁)', '강천모설(江村暮雪)'의 '눈오는 겨울(暮雪)' 등도 각각 낮과 맑음, 봄과 태양, 그리고 여름과 대응하는 음의 성질을 가진 계절이나 풍경들이다. 이렇듯 그림의 대상들이 예외없이 음의 성질을 띤 것이라는 사실은 땅이 지닌 음의 속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상팔경도'에는 움직이는 것이 없어 보인다. 하늘 높이 치솟은 산들, 태고때부터 조금도 변함이 없이 흐르고 있었던 것 같은 강물, 그리고 산간 마을을 잠재우는 듯 내려깔린 저녁 안개는 마치 용해된 시간 속에서 완전히 멈추어 있는 것 같기만 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적막감 속에서도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것들이 있다. '원포귀범(遠浦歸帆)'의 저녁 안개 속에 포구를 향해 미끄러져 돌아오는 배, '평사낙안(平沙落上)'의 모래사장에 소리없이 내려앉거나 빙 돌아나는 기러기들, '소상야우(瀟湘夜雨)'의 비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이들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런 움직임도 배가 포구에 정박함으로써, 기러기가 모래 사장에 내려앉음으로써, 그리고 비바람이 그침으로써, 모두 적막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처럼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에는 우주적인 넓이와 깊이 속에서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가운데 고요와 적막감이 배여 있다.
만물이 생성, 분화되기 이전의 궁극적 상태를 도가(道家)에서는 '도(道)'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도(道) 자체는 어떤 실체도 아니며, 이를 청각적으로 표현한다면 '고요하다(靜)'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고요함의 도(道)에서 움직임(動)의 현상계가 생긴다. 그러나 그런 사물들의 움직임 끝에 돌아가는 곳은 다시 고요의 세계, 즉 도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고요는 움직임의 근원이요, 그 귀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의 각 화폭을 지배하고 있는 고요함과 적막함은 여덟 폭의 다양한 경치를 하나로 묶는 경향성(傾向性)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개개의 화폭은 완결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화폭과 연관을 맺으며 더욱 '완전한 전체'로 형성되어 가고 있다. '완전한 전체'라는 것을 자연의 궁극적 존재 형태나 이치라고 말할 수 있다면, '소상팔경도'는 바로 그러한 존재의 이치를 드러내기 위한 그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상팔경도'는 누적된 시간 속에서 완성된 예술형식이며, 또한 추상화, 이념화, 이상화된 산수화의 한 형식이다. 화가들은 역사적으로 완성된 '소상팔경'의 형식과 내용을 추종하면서 철저하게 전통을 따르는 자세로 임했다. 화가들은 그림에 개성을 발휘할 생각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든 이미 완성된 형식과 내용을 완벽하게 따라 그릴 수 있을만큼 수련을 쌓는 일이었다. 따라서 '소상팔경도'에서 화가의 개성을 말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이점은 조선조의 안견파 화풍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래도 안견파 화풍의 '소상팔경도'가 지닌 개성을 말하자면, 그것은 그가 나름대로 터득한 화법에 의해서 경물(景物)의 배치, 붓이 슬쩍 지나간 자욱, 희미한 색의 흐름에 저절로 드러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2.2. 시(詩)와 화(畵)의 관계


시의 회화적 요소는 현대시에서도 중요한 기법으로 인식되는데, 과거에는 더욱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① 시와 그림은 기묘한 곳에서 서로 의지하기에 일률(一律)이라고 부른다. 옛날 사람들은 그림을 소리 없는 시라고 여겼고, 시를 운(韻)이 있는 그림이라고 여겼다.(詩與畵妙處相資 號爲一律 古之人以畵爲無聲詩 以詩爲有韻畵)

② 시는 소리가 있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바로 소리 없는 시이다.
(詩爲有聲畵 畵是無聲詩)

③ 세상의 기묘한 그림 속에는 또한 시가 있으니, ... 시 속에서 그림을 노래하고, 그림 속에는 시가 있다. 그림이 없는 시는 담(淡)에 치우치고, 그림만 있고 시가 없으면 그림 또한 외롭고 안타깝다.
(天下奇 中亦有詩...詩中詠 中有詩 無 詩偏淡 有 無詩 亦孤嗟)

인용문에서처럼 시와 그림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러한 견해들은 소식(蘇軾)이 당나라 때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왕유(王維)의 시와 그림을 평가하면서, "왕유의 시에는 시 속에 그림이 있으며, 그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味摩詰-王維-之詩 詩中有畵 觀摩詰之畵 畵中有詩)"라고 언급한 것을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당대에 시(詩)를 평가하던 평어(評語)를 보면 '시중화(詩中畵)'와 '시중유화(詩中有畵)' 등의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이처럼 당대의 문인들은 시와 그림을 상호보완적이며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하였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노래한 한시는 이같은 인식을 토대로 창작되었다. 따라서 소상팔경을 그린 그림에는 한 편의 시(詩)가 담겨있는 셈이고, 소상팔경을 노래한 시에는 한 폭의 그림이 그려져있는 셈이다.

2.3. 사대부 계층의 자연관(自然觀)
그렇다면 이번에는 관점을 달리하여, 당대 사대부들은 자연(自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가? 하는 자연관을 살펴볼 차례이다. 왜냐하면, '평사낙안'을 포함하여 소상팔경을 노래한 작품들은, 시인이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직접 감상한 후에 한시를 지었건, 혹은 그림을 직접 감상하지는 못했으나 이미 관념적이며 추상화된 '소상팔경'의 형상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것이건 작품 속에는 공통적으로 사대부들의 자연관이 고스란히 투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사낙안'을 노래한 시인들의 작품 세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연(自然)을 바라보던 시선이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는 문제가 중요하다.

<1> 李朝 江湖人이 한결같이 歸去來를 부르짖었고, 그것이 대부분 現實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만큼, 否定的 獨自의 그 무엇이 있을 법한데, 사실은 거의가 그렇지 못하였으니 특이한 逃避라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現實이 여하이 불만스러워도 그것을 否定할 수 없는 때문이다.
버리는 것만이 否定은 아니다. 李朝 兩班은 歸去來로써 현실을 버렸지만, 그 버림은 대체로 卽興的이고 安易하였다. 버리는 데에서 일어난다는 內的 葛藤이 심각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버리는 現實을,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한 媒介로 삼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 버림은 버림에만 그쳤다. 그러니 그 歸去來는 經國濟民의 뜻을 求하는 隱求요, 明哲保身을 꾀하는 獨善이다. 그것은 現實逃避라기 보다는 現實離脫이라 함이 적절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면「賢者避世」다.

인용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당대의 사대부들에게 '자연(自然)'이라는 공간은 언젠가 다시 돌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수양하며 자신의 학문을 연찬하고, 나름대로의 철학적 사유체계를 완성시키는 동시에 일신을 보존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시(詩)와 그림(畵)에서는 자연(自然)을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형상화하고 있는지 하는 점을 살펴보겠다.

<2> 시인이 인식하고 시에서 표현하는 자연은 현실적, 사실적 자연이 아니라 시인의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는 類型的 자연이라는 성격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자연의 세계는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스럽게 현실을 초월한 환상의 세계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3> 자연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관념이 앞세워졌던 것은 전통적으로 동양화에 그려져 온 자연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대할 수 있는 그림 중에 파도치는 바닷가에 그려진 한 마리의 학은 초원이나 늪지에 사는 새이다. 따라서 학이 파도치는 바닷가에 살지 않는다. 학은 초원이나 늪지에 사는 새이다. 따라서 학이 파도치는 바닷가에 있는 그림은 현실로는 이치에 맞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치에 맞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그것이 '一品當朝(當代의 조정에서 벼슬이 일품에 오름)'의 의미로 읽혀지기 때문인 것이다. 또한 가을 경치에 돛단배의 그림도 흔히 볼 수 있으니 그러한 그림의 제목은 '江東掛帆' 또는 '江東歸帆'이다. '江東掛帆'은 晉의 張翰이 벼슬을 버리고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간 故事와 관련되는 것인데 장한의 그러한 행적이 선비로서 매우 지조있는 행동으로 평가되어 가을 바람에 돛을 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림을 그려서 그의 행적을 기리는 것이다. 이러한 그림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현실성이나 사실성은 중요하지 아니하며 그것과 연관되는 정신적 관념의 세계에 보다 중점이 주어지는 것임은 물론이다.

인용문과 같이 시와 그림에서 자연을 인식하는 방법 또한 유형화된 정신적 관념의 세계를 중시하여 형상화하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평사낙안'을 노래한 시인들의 사유체계 속에 관념화된 '평사낙안(平沙落上)'의 실체를 드러내는 일이 이 논문의 과제이다. 더 나아가 소상팔경을 노래한 작품들의 함의(含意)을 밝히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어지는 3장에서는 '평사낙안(平沙落上)'을 노래한 한시 작품만을 대상으로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관념화되었다는 실체, 말하자면 평사낙안(平沙落上)의 '함의(含意)'를 살펴보려한다.

3. '평사낙안(平沙落雁)'의 형상과 의미

'평사낙안(平沙落上)'은 해석의 가능성을 두 방향으로 열어두고 있다. 이러한 점은 비단 '평사낙안'에만 해당하는 특질이 아니라 동양의 자연관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간과 거리를 두고 있는 자연물일지라도 인간과 별개의 독립된 공간의 자연이 아닌 인간의 삶과 늘 유기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고방식, 나아가 인간조차 우주와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사유체계 등에서 마련된 상징체계이다. 평사낙안과 관련된 시에서도 이러한 점은 예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두 가지의 해석 방향이 병립 가능하다는 말은 자연을 노래하는 의미 맥락에는 단지 자연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통해 인간의 삶을 투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경물(景物)'을 언급하는 것 같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경물(景物)'은 단순한 '기표'에 지나지 않고, '기의'는 인간의 삶 속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된다. 이를 염두에 두고 '평사낙안(平沙落上)'의 작품 세계를 보면, 크게는 두가지 군으로 작품 세계가 대별된다. 그것은 '경물(景物)' 그 자체를 노래한 작품 세계와 '경물(景物)'을 통해서 '인간(人間)의 삶'을 노래한 작품 세계로서 말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이같은 점에 주목하면서 '평사낙안'을 노래한 한시가 내포하고 있는 작품의 함의(含意)와 사대부들에게 정서적 차원에서 어떠한 기여를 하였는지 하는 점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

 

 

3.1. 시어(詩語)의 형상(形象)


평사낙안(平沙落雁)은 말 그대로 "모래밭에 내려앉는 기러기"를 뜻한다. '평사낙안'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주요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시어(詩語)들의 형상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① 기러기(上)
전통적 회화에서 기러기를 그린 그림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고 한다.

기러기와 갈대를 그린 그림을 보통 노안도(蘆上圖)라고 부르는데, 갈대와 기러기, 즉 '노안(蘆雁)'은 노후의 안락이라는 뜻의 '노안(老安)'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선택된 소재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한편, 기러기가 날아오르는 것은 그 상황 자체가 길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역경(易經) 점(漸)괘 상구(上九)의 효사(爻辭)에 "기러기가 하늘로 날아간다. 그 깃은 의식 때에 쓸 수 있을 것이다. 길하다.(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 吉)"라고 하였으며 같은 괘의 육이(六二) 효사에 "기러기가 반석으로 오른다. 화락한 마음으로 먹고 마시니 행복하리라(鴻漸于磐 飮食 吉)"라고 되어 있다. 또한 기러기는 '안서(雁書)'라는 말이 있듯이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서, 또는 혼인날 신랑이 신부집에서 행하는 전안례(奠雁禮)에 등장하는 부부금슬이 좋은 새로서 익히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여튼 기러기 그림은 그것과 가장 잘 어울리는 갈대를 함께 등장시킴으로써 조화로운 자연의 일경을 표현함과 아울러 노후의 안락에 대한 소망과 인간의 행복, 그리고 상서로움이 혼재된 길상화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인용문 외에 사전적 의미로, "오리 과(科)에 속하는 물새의 총칭. 부리와 다리는 누르고, 등은 다갈색이며, 가슴에는 검은 점이 있고, 목은 길고 다리는 짧다. 강, 바다, 늪가에 살며 가을에 우리나라에 와서 봄에 북쪽으로 가는 철새임, 우는 소리가 처량함" 정도로 풀이되어 있다.
생태적인 면을 보면, 기러기들은 이동할 때에 '∧'자를 그리며 남쪽으로 날아가는데, 그 이유는 각각의 새가 날개를 저으면 그것은 바로 뒤에서 따라오는 새를 위해 상승 기류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자를 그리며 날아감으로써 전체 기러기 무리는 각각의 새가 혼자서 날아가는 것보다 최소 71% 더 먼 거리를 날 수 있다고 한다. 서로의 추진력에 도움을 주고 받으며,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마리의 기러기가 대열에서 이탈하면 그 순간 그 기러기는 대기의 저항력을 느낀다. 그래서 기러기는 재빨리 대열에 합류한다. 앞서 가는 새의 추진력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이다. 대열의 맨앞에서 날아가는 기러기가 지치면 뒤쪽으로 물러나고 금방 다른 기러기가 앞장선다. 그리고 앞장서는 기러기들이 속도를 유지하도록 힘을 복돋우기 위해서 뒤쪽에서 오는 기러기들은 계속해서 울음소리를 낸다. 그리고 만일, 어떤 기러기가 병에 걸리거나 사냥꾼의 총에 부상을 입어 대열에서 낙오되면 두 마리의 다른 기러기들이 그 기러기와 함께 떨어져서 그 기러기가 지상에 내려갈 때까지 도와주고 보호해 준다. 두 마리의 기러기는 낙오된 기러기가 다시 날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죽을 때까지 함께 머문다. 그런 다음에야 두 마리의 기러기는 하늘로 올라와 다른 기러기들의 대열에 합류하거나 자신들의 대열을 따라잡는다.
또 기러기는 한 번 암수의 짝이 정해지면 그 배우자가 죽어도 다시 짝을 구하지 않는 등, '신의(信義)'와 '지조(志操)'의 새로 알려져있다. 앞의 인용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러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혼례에서 신랑이 신부집에 기러기를 가져가는 '전안례(奠雁禮)'라는 의식이 생겨난 것이다. 이같은 이미지가 토대를 형성하고 있기에 작품에서 기러기가 갖는 이미지 또한 '자유로움', '순수함', '질서', '무구(無垢)', '소식전달', '단아함' 등의 긍정적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다.

 

② 갈대
작품 내에서 갈대는 '노(蘆)', '황노(黃蘆)', '위엽(葦葉)', '노화(蘆花)', '겸( )', '노위(蘆葦)', '적위(荻葦)', '적화(荻花)', '위화(葦花)'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러한 시어들이 작품 내에서 형성하고 있는 이미지는 크게 두가지로 대별되고 있었다.
하나는 기러기들에게 '생계를 도모하기 위한 현실 공간', '안식처'이자 '휴식처'로서의 공간적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시시때때로 기러기들을 노리는 주변 상황에 의한 '위기처'이자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주로 '처신'과 '상황'에 따라 그 '갈대'라는 공간이 주체의 이상 실현을 위한 공간이 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덫에 걸려 죽음에도 이를 수 있는 위기의 공간이 되기도 하였다.

 

③ 평사(平沙)
'평사(平沙)' 즉 모래밭과 관련된 용어로는 작품 내에서 '평사(平沙)'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고, 그 외에도 '정사(汀沙)', '사저(沙渚)' 등이 사용되고 있다. '평사(平沙)'의 공간적 의미는 '공(空)'내지 '천(天)'과의 대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공(空)' 또는 '천(天)'이 기러기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이상적 공간이라면 그 이상적 꿈의 실현을 가능토록 휴식을 제공하고 재충전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생계를 도모하는 공간, 말하자면 현실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공간이 바로 '평사(平沙)'가 갖는 이미지에 해당한다.
이를 하나의 상징 체계로 이해한다면 '평사(平沙)'는 사대부들의 세계에서 현실 정치무대에 해당한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인 동시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활동무대가 되는 셈이다. 그같은 인식이 전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작품의 표현 가운데 '평사(平沙)'에 '낙(落)'하는 것을 경계하는 표현들이 자주 보인다. 예컨대, "생활의 방편으로 쉽사리 (平沙에) 내려가지 말아라(莫戀稻梁容易下)"와 같은 표현도 있는가 하면, 아래와 같이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연 그 자체로서 '모래밭'을 말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쌍쌍이 넓은 모래밭으로 내려 앉는다네(雙雙下平沙)"
"한 쌍, 두 쌍 강가 모래밭에 모여서는(一雙二雙集沙渚)"
"반쯤은 백사장에 내려 한 떼가 빗겼구나(半落平沙一陳斜)"
"서로 불러 짝짓고 맑은 모래로 내려앉네(相乎 侶下晴沙)"

이와 달리 다른 한편에서는 표현을 통해 이상과 현실 정치의 괴리를 인식하면서 사로(仕路)에의 진출을 은근히 경계하는 암묵적 비유로 형상화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한 자연 그 자체를 말하고 있기도 하였다.

 

④ 도량(稻梁)
'도량'은 '생활의 계책' 즉 '생계'를 의미하는 관용어구이다. 이는 곧 '현실적 요구' 내지는 '경제적 욕구' 등을 의미한다. 작품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은 그리 탐탁하지는 않지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다소 구차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생계를 도모하는 행위를 형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 생계의 방편으로 쉽사리 내려가지 말아라(莫戀稻梁容易下)",
" 생계의 방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非無稻梁謀)"
" 어느곳에서 생계를 꾀하다 그물과 주살에 놀랐던지(何處稻梁驚網 )"
" 슬픈 울음소리로 생계가 어렵다고 한(恨)스러워 말아라(哀鳴莫恨稻梁難)"
" 어찌 생계를 위하여 몸을 도모하리요(謨身豈稻梁"
" 나지막히 날면서 생계를 도모하네(低飛爲稻梁)"
" 어찌 생계의 방편을 그리워하지 않음이(豈不戀稻梁)"
" 생계의 방편을 위해 가는 좋은 곳에 왕래함을 그만두면(稻梁香處休來往)"

 

⑤ 화살, 주살, 그물(網)
이같은 시어들은 기러기를 위기나 곤경에 빠뜨리는 이미지들로, 작품에서는 '익( )', '망익(網 )', '증익( )', '망라(網羅)' 등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기러기를 곤경에 빠뜨리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들로서, 이를 사대부의 삶에 견주어 보면, 삶의 본질이나 실재 현상을 왜곡하는 모함(謀陷)이나 무고(誣告), 질시(疾視), 함정(陷穽), 배척(排斥) 등에 해당하는 것으로 주체의 안정된 삶과 자아 실현을 저해하는 이미지를 생성하고 있다. 예컨대,

" 옥새에는 주살이 많고(玉塞多繒 )"
" 갈대를 품고는 모름지기 주살 피하라는 말을 더하네( 蘆須避 言加)"
" 어느곳에서 생계를 꾀하다 그물과 주살에 놀랐던지(何處稻梁驚網 )"
" 두려운 것은 화살로 사냥함에 있음이오(恐有 加)"
" 장차 화살을 쏘아 놀라서 날아가게 하지 말고(莫將 射驚飛去)"
" 화살을 피하는 것과 같으리오.(其如避 )"
" 화살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은 그만두시오(休言能避 )"
" 그것은 옥관(玉關) 주살의 촘촘함만 같지 않거니(不似玉關 密)"
" 뺑돌아날다 모여서는 다시 주살의 고통을 꺼리건만(翔集更妨 苦)"

등과 같은 표현이 확인된다. 이 밖에도 빙빙 돌면서 날아가는 이미지를 지닌 '상(翔)', 내려앉는 '낙(落)' 등등의 시어에도 유의하여 이미지 분석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논문에서는 주요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다섯 가지의 시어에 대한 이미지를 분석하였다. 다음에는 이러한 이미지 분석을 토대로 '평사낙안(平沙落雁)'의 작품 세계는 어떠하며, 함의(含意)는 무엇인가 하는 점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3.2. 작품(作品)의 함의(含意)


중국에서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은 사계절의 순환이라는 우주적 질서를 획득하지 못한 채, 오로지 팔경(八景)의 경물(景物)이 늦가을과 겨울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만, 이것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의 경물(景物)이 우주적 질서를 획득하게 된다. 말하자면 처음 중국에서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은 늦가을의 경물을 위주로 하였지만,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부터는 비록 관념적 세계에서나마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세계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우주적 질서에 따라 각 두 폭씩의 그림이 계절을 대변하듯이 질서화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안휘준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소상팔경도는 계절이나 때의 표현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소상의 여덟 장면은 대개가 봄·가을·겨울을 표현하며, 여름을 대상으로 표현한 장면은 없다. 瀟湘夜雨가 비바람을 그리고 있어 여름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가을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詩들이 한결같이 소상야우를 가을로 노래하고 있고, 또 우리나라 그림에서 대개 洞庭秋月 앞에 배치되어 있는 점도 이를 말해 준다고 하겠다. 山市晴嵐이나 烟寺暮鍾은 우리나라 그림에서는 대개 봄 경치로 간주되었던 듯하다. 항상 山市晴嵐이 첫 번째, 烟寺暮鍾이 두 번째에 배치되고, 그림의 내용도 대개 봄 경치에 합당하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이 두 장면들조차도 詩文學에서는 봄으로만이 아니라 가을로도 노래되었다.

그 가운데 '평사낙안'은 '가을'에 해당하는 시기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우주적 질서를 인간의 삶에 비유하자면 봄에 해당하는 시기는 청년기가 될 것이고, 여름에 해당하는 시기는 중년기가 되며, 그리고 가을에 해당하는 시기로는 장년기가 된다. 그리고 겨울에 해당하는 시기는 노년기에 대응됨으로써 인간이 한평생 살아가는 삶의 질서와도 합치되고 있다는 점이 '평사낙안'을 노래한 사대부들의 작품을 해석하는데 한 가닥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어디까지는 여덟 작품의 세계를 철저하게 논증한 후에 논의되어야 할 사항이다.
이 논문에서는 위의 실마리를 토대로 그에 대한 개연성만을 열어두고, '평사낙안(平沙落上)'의 작품군이 지닌 개별적 특수성을 논의하기로 하겠다. 우선, '평사낙안'을 노래한 한시 작품은 총 47수로 확인되었다. 전체 47수를 분석했을 때, 크게 '경물(景物)'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군과 '경물(景物)'을 통해 '인간사(人間事)'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군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오로지 '경물(景物)' 그 자체만을 형상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 총 12수였고, '경물(景物)'을 노래하면서 '인간사(人間事)'를 형상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 총 35수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단순히 '경(景)'만을 노래하기 보다는 '경(景)'을 통해 인간사의 '정(情)'을 언급하는 작품이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결과는 앞장에서 살펴본 사대부들의 자연에 대한 인식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선, '경물(景物)'만을 형상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작품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1>
水遠天長日脚斜 물 멀고 아득한 하늘 해가 지는데,
隨陽征上下汀沙 볕을 따라 기러기는 백사장에 내리네.
行行點破秋空碧 줄줄이 가을 하늘의 푸름을 점쳐 깨뜨리니,
底拂黃蘆動雪花 누른 갈대 낮게 스쳐 눈꽃을 뒤흔드네.

이 작품과 같이, 시인은 '평사낙안(平沙落上)'이라는 경물(景物)을 접하고 이를 형상화하면서 시적 화자의 주관적 정서가 일절 배제되고, '경(景)'의 핍진(逼眞)한 묘사에서 그치고 있는 작품에 해당한다.

 

<2>
風吹動蘆花 바람 불어 갈대꽃을 흔드는데
潮退露沙渚 조수가 물러가니 모랫벌이 드러나네
行行篆碧空 줄줄이 푸른 하늘에 도장을 찍고
陣陣自成侶 날아가는 무리마다 절로 짝을 이루네
回翔隨落霞 빙 돌아날면서 떨어지는 노을을 따르고
日暮更容與 해 저무니 다시 무리를 이루네

이 작품 역시 다분히 서경적인 시경(詩境)을 자아내고 있다. 땅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꽃과 썰물에 드러난 모래벌, 허공에는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떼의 모양이 푸른 하늘에 마치 도장을 찍어 놓은 듯하고, 무리마다 서로 짝지어 다정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저녁이 되자 노을이 붉게 물든 곳으로 비껴나는 기러기떼의 모습(景物)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시선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작품이 '경물(景物)'만을 노래하는 전형적인 작품에 해당한다.
이번에는 '경물(景物)'을 노래하고 있으면서도 그 이면에서는 '인간사(人間事)'를 빗대고 있는 작품을 살펴보겠다. 말하자면, '정(情)'과 '경(景)'이 동시에 교융(交融)되고 있는 작품을 의미한다.


<3>
沙際無田只荻花 백사장 끄트머리 밭은 없고 다만 갈대꽃 뿐인데,
有何窺望落橫斜 무엇 바라볼 것 있다고 기러기떼 비껴 내려앉는가.
人人焉得機心息 사람들은 어찌하면 교사(巧詐)스런 마음 버리고
莫遺人禽共一家 사람과 기러기 한 집안에서 함께 살려는가


<4>
平沙十里暝煙花 평사 십리에 어둑어둑 내 끼는데
雁陣猶能映日斜 기러기떼 아직도 저녁 놀에 비치누나
弟弟兄兄終不亂 아우는 아우노릇 형은 형노릇 질서 문란하지 않으니
當須曉喩 墻家 모름지기 집안끼리 싸우는 사람들 깨우쳐야겠네

위의 두 작품은 1구와 2구를 통해 경물(景物)을 묘사한 뒤에 3구와 4구를 통해 시인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를테면 전형적인 선경후정(先景後情)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작품 <3>의 경우는 모래밭에는 기러기들이 먹이를 구할만한 밭뙤기도 없고 오직 갈대꽃 뿐으로 무얼 바랄만한 것도 없는데, 부질없이 내려앉는 기러기떼를 보며 안타까운 심사를 드러낸다. 그 이유는 3구의 '기심(機心)'이란 말처럼, 그 기러기떼를 호시탐탐 노리는 인간들의 교사(巧詐)스런 마음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시인은 4구에서처럼 사람과 기러기가 자연의 일부로서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각득기소(各得其所)의 삶을 꿈꾸고 있다. 작품 <4>의 경우는 1구와 2구에서 이동하는 기러기떼를 경(景)에 접하여 이를 형상화하면서 촉발된 저자의 정서(情緖)를 드러내고 있다. 마치 사람인(人)자와도 같은 어린진(魚鱗陳)의 형태를 취하며 질서있고 조화롭게 이동하는 기러기떼를 보며, 인간 세상의 무질서함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 작품군은 '평사낙안'이라는 경(景)을 통해 '인간사(人間事)'와 대비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賴有汀邊木筆花 물 가에 나무붓꽃이 있었더라면,
最宜文字落橫斜 문자로 비스듬히 떨어지기에는 가장 알맞으련만.
低飛欲下沙洲戱 나즈막히 날다가 모래밭에 놀려 내려앉으려 한다면,
待汝傳書有幾家 너를 기다려 편지 전하려는 몇 집이 있을 것일세.


<6>
十里平沙上陣橫 십리 넓은 모래밭에 기러기떼 가로지르며
一時飛下九秋聲 일시에 날아 내리니 구추의 소리 울리는구나
更看隻影南來遠 다시 보니 외 그림자가 남쪽 멀리서 날아오니
知是傳書報子卿 편지로 자경의 소식을 알리는 것임을 알겠도다

<5>는 이규보의 작품이고, <6>은 정조대왕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에 실려있는 작품이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평사낙안(平沙落上)'의 형상을 통해, 4구에서 '전서(傳書)'를 언급함으로써 '소식 전달'의 매개로 평사낙안의 경(景)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작품군에서는 '평사낙안'의 경물(景物)을 토대로 소식 전달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7>
群飛有意亂蘆花 무리지어 나는 뜻 갈대꽃 어지러워
半落平沙一陳斜 반쯤은 백사장에 내려 한 떼가 빗겼구나
須愼傍邊謨汝者 모름지기 조심하게 곁에 너를 도모하는 이 있으니
繞汀臨渚幾人家 물가에 임하여는 몇 채의 인가가 두르고 있구나


<8>
行行點點整還斜 줄줄이 점점이 가지런하게 날다가 다시 비껴 날고
欲下寒空宿暖沙 찬 허공에서 내려와 따뜻한 모래에서 자려는 것이네
怪得翩蒜移別岸 이상하게 다시 펄펄 날아 다른 언덕으로 옮기는 것은
軸?人語隔蘆花 뱃사람들이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말하기 때문이라네

위의 두 작품은 역시 선경후정(先景後情)이라는 시상(詩想) 전개 방식에 따라 1구와 2구에서 경(景)을 묘사하고 3·4구에서 시인의 정서(情緖)를 표출하고 있다. 작품 <7>의 경우는 무리져 나는 기러기떼를 대상으로 처세의 신중함을 당부하고 있다. 작품 <8>도 역시 그와 같은 맥락에서 하늘을 날던 기러기들이 모래밭에 내려와 잠자리에 들려고 하다가 다시 푸드득 날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뱃사람들이 갈대꽃 너머에서 기러기를 도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형상화하였다. 이같은 작품군에서는 '평사낙안'이라는 경물(景物)을 통해 인간의 교사(巧詐)스런 이기심을 주된 형상화의 방식으로 설정하였다. '평사낙안'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9>
微雪飄飄細屑花 싸락 눈이 표표히 흩날리니
一行直下一行斜 한 줄은 곧게 한 줄은 비스듬히 내려앉네
半斜半整眞奇景 반은 비끼고 반은 가지런하니 참으로 기이한 풍경이니
火急將屛付畵家 서둘러 장차 병풍에다가 그림을 그려야겠네


<10>
沙明宿上群 모래밭 밝아 기러기 떼 잠들고,
落日轉紛紛 지는 해가 어지러이 옮겨가네.
萬里孤舟客 만리길 외로운 배의 나그네는
哀音月下聞 슬픈 소리를 달 아래서 듣네.

 

 

위의 두 작품도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과 같이 시상 전개 방식등에서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앞의 두 구에서 경물(景物)에 대한 형상화의 과정을 거친 후, 뒤의 두 구절에서 시인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다만, 위의 두 작품은 시적 자아의 지극히 개인적인 상황을 형상화한 작품군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평사낙안(平沙落上)'을 노래한 작품 세계는 크게 네 가지 범주로 구분하여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평사낙안'의 대표성을 획득하고 있는 작품군은 인간의 교사스런 이기심을 언급하며 처세의 신중함을 언급한 세 번째 작품군이다. 따라서 이 세 번째 작품군에 주목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볼 때, '평사낙안'의 함의(含意)가 구체화될 것이다. 우선, 그에 해당하는 상황을 사대부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인식하고 형상화하였는지 하는 점을 살펴보겠다.

 

<1> 모름지기 삼가하라, 곁에 너를 도모하는 이 있으니/ 물가에 임해 둘려 있는 몇 채의 인가인가(須愼傍邊謨汝者/繞汀臨渚幾人家)
<2> 괴이하게 다시 펄펄 날아 다른 언덕으로 옮기는 것은/뱃사람들이 갈대꽃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기 때문이었다(怪得翩蒜移別岸/軸?人語隔蘆花)
<3> 마음이 편하면 이곳을 집으로 삼지/무엇하러 하늘 한 끝에서 나그네살이 하는가(心安只合此爲家/何事客天涯)
<4> 철을 따라 남북으로 날았으나/어찌 생계를 위해 몸을 도모하리요(逐候飛南北/謨身豈稻梁)
<5> 생활의 방편으로 쉽사리 내려가지 말아라/갈대를 품고는 모름지기 주살 피하라는 말을 더하네(莫戀稻梁容易下/ 蘆須避 言加)
<6> 놀라 부르짖음은 외려 자신을 지키는 경계임을 알겠지만/가는 배의 횃불에 화살 감추었음을 어찌 헤아리겠는가/도랑 적은 듯 보고 생계의 뜻을 품었으나/많은 강과 수많은 산에 가고 돌아옴을 맡길 뿐이네(驚叫尙知奴守警/行舟寧料炬藏彈/看渠若少懷梁意/萬水千山任往還)
<7> 생계의 방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두려운 것은 화살로 사냥함에 있음이오/대개의 무리가 한 번은 굶주림을 참다가도/쌍쌍이 넓은 모래밭으로 내려 앉는다네/모래 가에 살짝 들어가 보지만/저물녘 내리는 비만이 갈대의 푸른 은빛을 울리네/서로를 부르며 다시금 아득히 날아보아도/정처없는 구름과 물만이 진정한 내 집이로세(非無稻梁謀/恐有 加/擧群一飢忍/雙雙下平沙/沙際少入行/暮雨響 /相呼復冥飛/雲水眞吾家)
<8> 인간 세상 발디딘 곳 모두가 함정이려니/어찌 아득하고 그윽하게 구름 끝 날아감과 같겠는가(人間着足盡機穽/何似冥冥雲際飛)
<9> 어찌 생활의 계책을 그리워하지 않음이/화살을 피하는 것과 같으리오(豈不戀稻梁/其如避 )
<10> 화살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은 그만두시오/평지에도 위기는 있는 법이라오(休言能避 /平地有危機)

 

위의 시적 형상을 통해서 드러나듯이, 시적 자아는 기러기라는 경물(景物)을 노래하면서, 평사(平沙)에 내려앉는 기러기(落上)의 형상에 시적 자아의 심리를 투사하여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시적자아가 공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평사낙안(平沙落上)의 형상은 출처진퇴(出處進退)의 처세(處世)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그처럼 출처진퇴의 처세를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를 노래하는 이면에는 공수신퇴(攻遂身退)와 평화롭고 안정된 노년을 준비하기 위한 염원(念願)이 작용하고 있다.
요컨대, 평사낙안(平沙落上)이 지닌 함의(含意)는 출처진퇴(出處進退)의 처세 문제를 통하여 공수신퇴(功遂身退)를 이루고자 하는 장년기의 소망이 '가을'이라는 완숙미를 드러내는 계절적 배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안정과 조화를 갈구하는 욕망이 '평사낙안(平沙落上)'의 시와 그림으로 형상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처세의 신중함을 요구하는 '평사낙안'의 함의(含意)를 원만하고 지혜롭게 극복해 낼 수 있을 때, 사대부로서의 삶은 풍성한 결실과 함께 최고의 지위에 올라 '동정추월(洞庭秋月)'의 형상을 맞아들일 수 있고, 가장 높이 오른 보름달의 형상을 취한 뒤로는, 이제 생장사멸(生長死滅)의 법칙에 따라 '어촌석조(漁村夕照)'와 '강천모설(江天暮雪)'의 형국을 취하여 사(死)와 멸(滅)의 과정을 취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판단한다. 그러나, '평사낙안'이외의 작품에 대해서는 차후의 논의를 통해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유기적 연관성을 밝히도록 하고, 여기서는 다만 그 개연성(蓋然性)만을 언급하는 정도로 그치겠다.

 

 

3.3. 정서적(情緖的) 기여(寄與)

 

앞장에서는 '평사낙안(平沙落上)'을 노래한 한시에 담긴 함의(含意)가 무엇이었는지 하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 장에서는 '평사낙안'이 오랜 시간동안 소상팔경의 하나로 끊임없이 불리어진 이유는 무엇이고, 이처럼 오랜 시간동안 노래되었다는 것은 분명 사대부들의 정신세계에 기여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불려진 이유를 정서적 측면에 주목하여 살펴보려는 것이다. 이는 비단 '평사낙안' 뿐만이 아니라 소상팔경의 여덟 가지 경물(景物)들 모두가 제각각 기여하는 바가 상이할 것이다. 장차는 이 여덟 편이 지닌 특수성과 전체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고려말기로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사대부로서의 삶에서 '출처진퇴(出處進退)'는 본인에게만 국한된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가족은 물론이고, 가문(家門)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당대를 살던 사대부들에게는 이따금씩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불가피한 진퇴(進退)의 선택과 요구에 직면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 때로는 빈번한 사화(士禍)와 당쟁(黨爭) 속에서 학문적 기틀을 다지며 자신의 가문을 지켜야 하는 등 수많은 처세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앞의 "2.3. 사대부의 자연관"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그같은 과정 속에서 '자연(自然)'이라는 공간은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공간이자 "경국제민(經國濟民)의 뜻을 구하기 위한 은구(隱求)"의 공간인 셈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부르는 '평사낙안(平沙落上)'이야말로 시인이자 시적 자아인 사대부 작가 자신을 타자화하여, '평사(平沙)'에 내려앉으려는 기러기의 형상에 투사하여 일정한 거리를 형성한 채, 출사(出仕)에 대한 경계(警戒)와 처세(處世)에 대한 신중함을 끊임없이 노래함으로써 정신적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출처진퇴(出處進退)와 처세(處世)에 대한 불안감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사대부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정서적 위안과 정신적 평온을 얻을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바로 이점이 소상팔경(瀟湘八景) 가운데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上)' 이 지닌 의미이자 그것을 노래한 한시(漢詩)가 지닌 정서적 기여의 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4. 결론

 

지금까지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노래한 한시 작품 가운데, '평사낙안(平沙落雁)'을 대상으로 작품의 함의(含意)와 정서적 기여의 한 측면을 살펴보았다. 이상의 논의를 요약 정리하면서 이 논문에서 보완되어야 할 사항과 앞으로 전개되어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겠다.
이 논문은 '평사낙안(平沙落雁)'이 사대부들의 의식 세계 내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을 논의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논의 과정을 통해서도 언급했듯이, 과거 사대부들에게 '자연(自然)'이라는 공간은 현실과 유리(遊離)된 공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현실을 투사하기에 적합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시각은 '평사(平沙)'에 '내려앉는 기러기(落雁)'의 형상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시적 화자이자 작가인 사대부 자신의 심리를 '기러기'에 투사하여 '출처진퇴(出處進退)'라는 처세의 신중함을 끊임없이 노래하였고, '출처진퇴'와 '처세'를 노래한 그 이면에는 사대부들의 '공수신퇴(功遂身退)'라는 당대적 삶의 지향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말하자면 '공수신퇴(功遂身退)'라는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출처진퇴(出處進退)'와 '처세(處世)'는 하나의 방법론이 되는 셈인데, 이러한 사유체계를 구현함에 있어서 '평사낙안(平沙落雁)'은 사대부들의 의식 속에 하나의 중요한 소통체계로 작용하였다는 점이 작품의 함의(含意)이자 정서적 기여의 측면이었다.
이 논문에서의 논의는 '평사낙안'을 노래한 작품군을 중심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다보니, '평사낙안(平沙落雁)'을 노래하고 있는 전체 작품의 보편성은 구체화되어 드러났으나 '평사낙안(平沙落雁)'을 노래한 개별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세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아 개별 작품이 지닌 특수성에 대한 논의는 미흡한 감이 있다. 또한 '평사낙안(平沙落雁)'과 여타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노래한 작품들과의 비교·검토가 이루어져야 나머지 일곱 작품과 구분되는 '평사낙안(平沙落雁)' 만의 특수성이 드러날 것이다. 이러한 점은 계속해서 보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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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錄 - 平沙落上 漢詩 總47首

1. 水遠天長日脚斜/隨陽征上下汀沙/行行點破秋空碧/底拂黃蘆動雪花
2. 秋容漠漠湖波綠/雨後平沙展靑玉/數行翩翩何處雁/隔江啞托鳴相逐/靑山影冷釣磯空/浙瀝斜風響疎木/驚寒不作 天飛/意在蘆花深處宿
3. 群飛有意亂蘆花/半落平沙一陳斜/須愼傍邊謨汝者/繞汀臨渚幾人家
4. 賴有汀邊木筆花/最宜文字落橫斜/低飛欲下沙洲戱/待汝傳書有幾家
5. 微雪飄飄細屑花/一行直下一行斜/半斜半整眞奇景/火急將屛付畵家
6. 沙際無田只荻花/有何窺望落橫斜/人人焉得機心息/莫遺人禽共一家
7. 平沙十里暝煙花/雁陣猶能映日斜/弟弟兄兄終不亂/當須曉喩 墻家
8. 紛紛已擾水 花/更向沙汀拂拂斜/汝旣爲賓無特操/有誰容作主人家
9. 行行點點整還斜/欲下寒空宿暖沙/怪得翩蒜移別岸/軸?人語隔蘆花
10.玉塞多繒 /金河欠稻梁/兄兄弟弟自成行/萬里到瀟湘/遠水澄拖練/平沙白耀霜/渡頭人近斜陽/欲下更悠揚
11.醉墨疎還密/殘碁整復斜/料應遺跡在泥沙/來往歲無差/水暖仍菰米/霜寒尙葦花/心安只合此爲家/何事客天涯
12.平沙如雪 無垠/萬里衡陽欲暮春/不似玉關 密/悠揚直下莫紛綸
13.逐候飛南北/謨身豈稻梁/相呼萬里不離行/隨意下淸湘/江 涵秋影/天淸拂曉霜/長洲沙暖好秋陽/遵渚任飄揚
14.隨陽南又北/遵禮第於兄/所以丹靑手/殷勤作爾形
15.冥路通雲漢/低飛爲稻梁/排空點點字千行/去意在三湘/沙遠平鋪雪/蘆深 着霜/驚寒千障向衡陽/作勢抑還揚
16.一行秋上落汀沙/抹破晴空數點霞/ 雨靜依黃葦葉/寒塘細 白 花/歸心暗逐湘江渚/亂 相催夢澤涯/莫戀稻梁容易下/ 蘆須避 言加
17.秋容濃淡雨還晴/海波不動含 綠/沙平若剪雪嵯峨/上背寒光斜欲滴/西風吹影落漁磯/字字新出臨池墨/何處稻梁驚網 /急向蘆花深處宿
18.渺渺晴沙際碧灣/斜飛點點下雲端/影隨返照 遙峀/聲雜濟江轉石灘/驚叫尙知奴守警/行舟寧料炬藏彈/看渠若少懷梁意/萬水千山任往還
19.非無稻梁謀/恐有 加/擧群一飢忍/雙雙下平沙/沙際少入行/暮雨響 /相呼復冥飛/雲水眞吾家
20.一雙二雙集沙渚/一飮一啄相因依/人間着足盡機穽/何似冥冥雲際飛
21.霜落長空杳/潮回遠渚生/水淸沙白暮霞明/風定數群橫/影亂蘆花色/聲連玉塞情/蒜蒜裳下又輕輕/宿處莫須驚
22.風吹動蘆花/潮退露沙渚/行行篆碧空/陣陣自成侶/回翔隨落霞/日暮更容與
23.沙明宿上群/落日轉紛紛/萬里孤舟客/哀音月下聞
24.極目寒汀帶晩沙/幾群 入蘆花/莫將 射驚飛去/留作書郵好寄家
25.整整斜斜字幾行/平沙如紙白於霜/却嫌誤入詩仙眼/看作天書第一章
26.沙白如鋪紙/聯鴻字萬行/影寒辭朔漠/聲斷宛衡陽/孤帶三江月/群呼七澤霜/觀魚仍作伴/便勝古濠梁
27.豈不戀稻梁/其如避 /前身諸葛候/布陣依沙象
28.明沙白如雪/平鋪三十里/征上落照邊/箇箇皆成字
29.蘆白沙如雪/聯翩下夕暉/休言能避 /平地有危機
30.平沙十里 漫漫/塞上行行點羽翰/翔集更妨 苦/哀鳴莫恨稻梁難
31.江湖秋水 無涯/蘆葦蕭蕭兩岸花/霜後霜前幾 上/月明相伴宿寒沙
32.秋晩江城富荻花/ 數聲歸上落晴沙/稻梁香處休來往/却 人間有網羅
33.蕭瑟江天晩/驚霜陣陣回/斜陽明荻葦/碧水映 苔/亂影風前墜/寒聲月下來/不因淸怨去/還作好詩媒
34.刷羽歸飛楚水涯/相乎 侶下晴沙/平鋪似雪汀洲逈/散落隨風字樣斜/點綴幾看依渚日/回翔時復隱蘆花/忽聞柔櫓聲鴉軋/驚起翩蒜帶晩霞
35.山外千 上/低飛點點斜/平沙無限白/明月宿蘆花
36.洞庭秋欲霜/沙上多鳴上/還從亂山翔/復集蘆花茫
37.百里長江際白沙/寒空落上數行斜/紛紛叫斷離還合/陳陳飛廻邇復遐/肯效率場求粟粒/任敎遵渚喙蘆花/俄然矯翼向何處/薄暮閒雲天一涯
38.浮雲滅盡霜天碧/金風洲渚蘆花白/平沙渺渺薄霧生/畵裏溪山淡水墨/冥冥鴻雁杳靄間/數行飛下江天夕/月下哀鳴不忍聽/遠客孤舟依岸宿
39.江上愛沙 /淸霜放子孫/低回方漸下/警急復同喧/回頸嗔風逆/ 翎 日暄/北方寒氣候/烏鵲却飛蒜
40.九江秋色老 /鴻上南歸集白沙/霜落 門凋木葉/月明湘浦暎蘆花/雲邊 侶行行急/烟際離 字字斜/半夜寒聲孤客枕/夢魂驚斷楚天
41.引領瀟湘浦/ 飛點點斜/回翔低拂水/ 入洞庭沙
42.江上西風動荻花/水波如練水汀 / 飛紫塞三秋上/亂落靑苔兩岸沙/點點遠從山外下/雙雙時向浦邊斜/一聲 侶流霜氣/彭 湖平曳晩霞
43.十里平沙上陣橫/一時飛下九秋聲/更看隻影南來遠/知是傳書報子卿
44.雁別胡天天一涯/瀟湘江畔宿芦花/時隨明月浮寒水/更度孤烟下自沙
45.塞聲凄更斷/風影整還斜/明月 苔岸/情霜蘆荻花/箭驚十里翩/書寄幾人家/已學雲逵漸/時來戱晩沙
46.自有悲秋思/何爲上 酸/影分蘆渚月/飛破霜空寒
47.翔空頭尾直/近沙頭尾低/催 乍緩矯/閃入水東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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