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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교학의 실천행

화엄행 2013. 3. 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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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교학의 실천행  

화엄교학의 실천행 - 이름:도업

이행구(道業) / 동국대 불교문화대 불교학과 교수

 

 

화엄교학의_실천행_도업.hwp

Ⅰ. 서언

 

인류 역사상 위대한 인물로 4대 성인을, 큰 종교로 3대 종교를 들고 있다. 소크라테스ㆍ공자ㆍ석가ㆍ예수를 4대 성인으로 꼽기도 하고, 불교ㆍ그리스도교ㆍ이슬람교를 3대 종교로 꼽기도 한다. 그런데 4대 성인 혹은 3대 종교들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인간)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불만과 불안과 불신 등으로 가득 찬 괴로운 곳이다. 붓다는 사바는 고해(苦海)라고 정의를 내렸고, 예수는 이 세계는 유황불에 타고 있는 곳과 같다고 선언했다.

둘째,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人間)들은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정토교에서는 인간은 다생겁(多生劫)의 무명(無明)에 덮여 업장을 지어 온 업보중생(業報衆生)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고, 예수는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범한 죄인(罪人)이라 선언했다. 성인들은 이 세계와 인간을 부정(否定)의 논리로 정의한 후, 고해와 같은 이 세계에서 저 열반의 세계로, 불완전한 자가 완전자로 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속(俗)에서 성(聖)으로의 길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가르침을 우리는 한마디로 경(經)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경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시 두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유일절대 신의 힘에 의해서만 속(俗)에서 성(聖)으로 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 타력신앙의 敎와 다른 하나는 인간자신의 실천행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자력신앙의 敎다.

타력신앙의 대표적인 종교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이고 자력신앙을 강조하는 것은 유교와 불교라 할 수 있다.

불교 경전에는 참으로 많은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자력신앙의 대표적인 경중의 하나가 화엄경이다. 자력신앙의 실천행을 불교에서는 보살행이라고 한다. 타력신앙에서는 믿음과 찬송과 기도를 중요시하고 있지만, 불교의 자력신앙에서는 반야 지혜를 바탕으로 한 보살행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華嚴經』에는 대단히 논리적이고도 구체적인 菩薩의 道와 菩薩의 行이 說해지고 있으며, 그 菩薩의 道와 菩薩의 行은 他力이나 多聞에 의해서 成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自力의 實踐行에 의해서만이 成就될 수 있음이 여러 곳에서 강조되고 있다.

예를 들면 「十住品」에

有所聞法 卽自開解 不由他悟

라 설하고 있다. 이 經句는 法慧菩薩이 菩薩의 十住를 說明함에 있어 各住의 끝부분에 반드시 붙여놓은 語句다.

「菩薩十無盡藏品」에는

菩薩成就如是等無盡藏 以少方便 則能逮得一切諸法善妙方便 自然明達 不由他悟

라고 설해지고 있다. 보살은 지혜와 방편을 얻어 一切法의 이치를 완전하게 아는데, 그것은 보살 자신이 자기의 힘에 의해서 실천 수행한 結果이지 다른 사람의 깨달음을 의지해서 成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功德林菩薩의 說明이다.

즉 菩薩의 道와 行은 他力에 의해서가 아닌 自力에 의해서만 成就될 수 있음을 法慧菩薩이나 功德林菩薩은 강조해서 說하고 있는 것이다.

菩薩의 道나 行은 또한 理論이나 多聞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없음을 法首菩薩은

「菩薩明難品」에서

(설법을)많이 듣는 것만으로는

결코 여래의 법에 들어가지 못한다.

마치 어떤 사람이 물위에 표류하면서

(물에)빠질까 겁이 나서 목말라 죽는 것과 같이

붓다의 설하신 법(法) 행하지 않으면

다문(多聞)도 또한 그와 같나니.

물위에 떠 있으면서도 익사할까 두려워서 물을 마시지 않으면 목이 말라죽는 것(渴死)과 같이 붓다의 가르침을 귀로 듣기만 하고 입으로 외우기만 하면서 실행하지 않으면 어무런 이익도 없다는 것이다. 또 법수보살(法首菩薩)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실천행이 따르지 않는 수행이나 신앙 내지 학문연구가 얼마나 공허한가를 설명하고 있다.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이

밤낮 하루종일 남의 보배를 센다 하더라도

자기 몫은 반푼도 안 돌아오는 것과 같이

다문(多聞)도 또한 그와 같느니라.

돈 한 푼 없어 가난한 사람이 하루종일 앉아서 남의 돈을 아무리 센다 하더라도 자기 몫으로 일전은 고사하고 반전도 안 돌아오는 것과 같이 다문(多聞)도 또한 그와 같다는 것이다. 實踐行이 없는 多聞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菩薩의 行은 多聞이나 말로 하는 것이 아님을 金剛藏菩薩은

「十廻向品」에서

菩薩摩訶薩 如是觀諸善根 信心淸淨 長養大悲 以諸善根 普爲衆生 深心廻向 非但口言

이라고 說한다.

이상과 같이 菩薩의 道와 行은 他力이나 理論 또는 多聞이나 口言에 의해서 成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自力에 의한 實踐行에 의해서만 成就될 수 있음을 『華嚴經』은 說하고 있다.

 

 

Ⅱ. 화엄교학의 실천행

 

그렇다면 화엄교학에서의 실천행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 있을까? 본고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두 가지면 즉, 화엄교가들이 말하는 실천행과 화엄경에 설하고 있는 실천행의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화엄교가로서 처음으로 「십지품(十地品)」에 대해 주석을 쓴 용수는 불교의 수행방법을 두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 보면

불법가운데에 무량한 문이 있듯이 세간의 길에도 어려운 길(難行道)과 쉬운 길(易行道)이 있다. 육지에서 발로 걸어가면 고통이 따르고, 바다에서 배를 타고 가면 즐거움이 따르듯이 보살의 길도 이와 같다. 혹은 자기 스스로 부지런히 수행 정진함이 있고, 혹은 信方便에 의해서 속히 아유월치(阿惟越致)에 이르는 자도 있다.

고 했다. 즉 불교의 실천행에 難, 易의 二行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信方便이란 염불(念佛)을 말한다. 그러면 염불을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품(品)」에서

만약 보살이 이 몸으로 아유월치(阿惟越致) 지위에 이르러 아뇩다락삼먁삼보리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念하고 그 명호를 불러야 한다.

용수는 정등정각을 이루기 위한 실천행으로써 「念諸佛」과 「稱其名號」를 제시하고 있다. 즉 念佛行과 稱名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를 환기시켜 두고자 하는 것은 용수가 말하는 “念佛”은 화엄경에 자주 설해지고 있는 念佛, 念法, 念僧과 같은 뜻으로 憶念 또는 觀念의 뜻이며, 또 하나는 붓다의 명호를 불러서 정등정각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이행도(易行道)는 겁약한 下劣人을 위한 방편설(方便說)이지 대승보살의 정도(正道)는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십지경론(十地經論)』을 쓴 세친(世親)은 『정토론(淨土論)』에서 ① 예배(禮拜) ② 찬탄(讚歎) ③ 작원(作願) ④ 관찰(觀察) ⑤ 회향(廻向)의 五念門을 말하고 있다. 이 五念門을 실천함으로써 往生極樂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친은 彌陀와 遮那는 無二며 華藏과 極樂은 不二임을 설하고 있기 때문에, 이 五念門의 실천에 의해서 연화장 장엄세계에 得生할 수 있음을 믿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음 중국 화엄의 초조로 불리고 있는 두순(杜順)은 실천행으로써 “관행(觀行)”을 주장하고 있다. 『법계관문(法界觀門)』이 두순의 眞作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있지만 일단 두순의 저술이라는 전제하에서 보면, 그는 이 法界를 ① 진공관(眞空觀) ② 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 ③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의 셋으로 나누고 있다.

관(觀, Vipaśyanā)이란 지(止, Śamatha)와 함께 불교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말로써 지엄(智儼)에 의하면 “內心을 觀察하는 것” 이라고 한다. 두순은 실천행으로서 이 법계를 ① 진공(眞空)으로, ② 理事가 無碍한 것으로, ③ 널리 두루 포용해서 事와 事까지도 無碍한 것으로 보는 觀法行을 제시하고 있다.

이상에서 화엄교가들이 말하고 있는 실천행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화엄교학에 있어서의 실천행은 觀念行, 觀法行으로 요약 할 수 있다.

Ⅲ.『화엄경』의 실천행

『六十華嚴經』 7處 8會의 說法 중 寂滅道場會는 信을, 그 다음의 五會는 解를, 그 다음의 普光法堂重會는 行을, 마지막 重閣講堂會는 證을 說하는 것이라고 法藏은 설명하고 있다.

『華嚴經』 六十卷의 내용은 중생이 부처가 되어 가는 과정을 說한 것이며, 그 과정은 믿음(信)과 이해(解) 그리고 실천행(行)과 깨달음(證)의 4단계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본고에서「보살의 구체적인 실천행」이란 이 4단계 중에서 “行”을 말한다. 이 行을 설명함에 있어 總論 各論 結論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하는 것이 이해가 빠르리라 생각된다.

 

1. 총론적인 실천행

 

총론적인 보살의 실천행이란 “上求菩提하고 下化衆生하는 行”이라 할 수 있다.

「盧舍那佛品」에

무량겁(劫)동안 공덕을 닦아

온 법계 모든 붓다께 공양 올리고

한량없는 중생들을 교화하시어

노사나붓다는 정각 이루셨네.

비로자나붓다가 정각을 이루신 유래의 설명이다.

① 오랜 세월동안 공덕을 닦았다 함은 자리행(自利行)의 실천이고,

② 모든 붓다를 공양했다 함은 이타행의 실천이다. 그리고

③ 수많은 중생들을 교화(敎化)했다 함은 보살행의 실천이다. 노사나붓다는 확고한 신심을 바탕으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와 보살의 원만행(圓滿行)을 실천함으로써 마침내 정각을 이루셨다는 것이다.

같은「노사나불품」에

모든 불자들아, 마땅히 알아라. 이 연화장세계는 비로자나붓다께서 본래 보살행을 닦을 때에 아승지(阿僧祗)세계에서 미진수겁(微塵數劫)에 걸쳐 장엄한 곳이니라. 낱낱 겁마다 세계해의 티끌 수 붓다를 공경하고 공양하였으며, 낱낱 붓다 계신 곳에서 세계해의 티끌수 행원을 닦았느니라.

이 연화장엄 세계는 더없이 맑고 깨끗한 세계인데, 그렇게 아름다운 세계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노사나붓다께서 옛날 아주 먼 구원겁(久遠劫) 전에

① 한량없이 많은 여러 세계에서, 한량없이 오랜 세월동안, 한량없이 많은 여러 붓다를 공경하고 공양했으며,

② 보살의 행을 닦았기 때문이라고 보현보살은 설명하고 있다.

요약하면 노사나불이 정각을 이루게 된 것이나 연화장장엄세계가 만들어진 것은 자기완성을 위한 上求菩提와 중생구제를 위한 下化衆生의 실천행을 닦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화엄경에 있어서의 총론적인 실천행은 上求菩提行과 下化衆生行이라 할 수 있다.

 

2. 각론적인 실천행

 1) 일상생활에서의 실천행

 

둘째 各論的인 보살의 行인데 이것은 대단히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이다.

『華嚴經』에는 보살의 실천행에 대해 너무나 복잡하게 說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하나 하나의 行相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第七「淨行品」에 나오는 140가지의 菩薩의 願行에 대해 살펴보자. 140가지의 願行이란, 보살은 身ㆍ口ㆍ意의 三業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가. 身ㆍ口ㆍ意 三業을 어떻게 순화시키면 大自在의 智慧를 얻을 수 있는가라고 하는 智首菩薩의 질문에 文殊菩薩이 대답한 내용이다.

 

140가지의 願行을 내용에 따라 분류하면,

(1) 집에 있을 때의 11願

(2) 출가할 때의 15願

(3) 명상 수행처에서의 20願

(4) 일상 생활에서의 57願

(5) 걸식하거나 식사할 때의 22願

(6) 예배, 독송할 때의 15願

등 6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淨行品」에 나오는 140가지의 願行을 다 설명할 수는 없고 앞의 6가지 항목에서 몇 가지씩만을 뽑아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집에서의 염원(念願)

① 보살이 집에 있을 때에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들이 일체의 어려움에서 벗어나

공법(空法)에 들기를!

② 부모를 섬기고 효도를 할 때에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들이 보호함을 받아

영원히 크게 편안하기를!

③ 처자와 함께 있을 때에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들이 애욕의 지옥에서 벗어나

연모의 마음이 없어지기를!

재가불자가 身ㆍ口ㆍ意의 삼업(三業)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문수보살은 11가지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 3가지만을 소개해 보았다.

 

(2) 출가할 때의 염원(念願)

① 믿음을 내어 출가할 때에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들이 세상일을 버리고

마음에 집착함이 없기를!

② 속복을 벗을 때에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들이 도리를 이해하고

덕을 닦음에 게으름이 없기를!

③ 삭발을 하고 수염을 깎을 때에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이 번뇌를 끊고

구경의 적멸에 이르기를!

집을 떠났다고 출가가 아니며, 승복(僧服)을 입었다고 출가가 아니다. 가사를 입었다고 해서 출가가 아니며, 삭발(削髮)하고 경(經)을 본다고 해서 출가가 아니다. 보살의 청정한 출가는 세상일에 집착을 끊고, 올바른 도리를 배우고, 덕을 쌓으며, 번뇌망상을 재워 안온한 상태에 사는 삶이다. 그리고 욕망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끊어 법열(法悅) 속에 살며, 이웃의 모두를 내 몸과 같이 아껴 더불어 사는 삶이 진정한 출가라 정의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이상이「정행품」에서 문수보살이 말하는 출가 보살의 청정행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출가의 생활이며, 보살이 삼업을 청정하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3) 수계할 때의 염원(念願)

① 깨끗한 계를 받을 때에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이 계행을 잘 받아

배우고 닦아 몸에 익히기를!

② 아사리의 가르침을 받을 때에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이 위의를 구족해서

행하는 일이 진실하여 지기를!

③ 화상의 가르침을 받을 때에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이 무생(無生)의 지혜를 얻어

깨달음의 저 세계에 도달하도록!

수계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이상과 같이 설명한 후 대중 처소에서의 마음가짐, 지켜야할 규범에 대해 문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4) 대중방에서의 염원(念願)

① 대중 방에 들어갈 때에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이 더없이 좋은 건물에 살게 되고

불퇴전의 경지에 이르기를!

② 평상을 깔고 앉을 때에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이 선한 법을 널리 펴서

진실한 모양을 모두가 보도록!

③ 몸을 바르게 하고 단정히 앉을 때는

마땅히 염원하라.

모든 중생이 (붓다의 정각을 이루신) 보리수 밑에 앉아

마음에 집착이 없어지기를!

대중 방에 들어갈 때는 모든 중생들이 이와 같이 좋은 건물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염원하고, 좌선을 하기 위해서 자리를 펴고 앉을 때에는 그저 생각 없이 앉을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이 지금 자리를 펴듯 착한 법을 널리 펴기를 염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몸을 가다듬어 자리에 앉을 때에는 붓다께서 저 인도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정각을 이루시어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신 것과 같이 모든 중생 또한 그와 같이 모든 집착에서 해탈되기를 염원해야 하며, 가부좌를 하고 앉을 때와 풀고 일어설 때는 모든 중생들의 선근이 견고하여 지기를 염원하고, 일체 만법이 생멸변화 하는 무상(無常)의 진리를 깨닫기를 염원하는 것이 보살의 길이며, 불자의 생활 태도라는 것이 문수보살의 주장이다.

 

(5) 일상생활에서의 염원(念願)

도량(道場) 안에서 일상의 생활 중에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하는가?

문수는 13가지의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발을 내리고 앉을 때, 아래옷을 입을 때, 옷을 정돈할 때, 웃옷을 입을 때, 가사를 걸칠 때의 마음가짐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면

 

① 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잡을 때에는

마땅히 염원해라.

모든 중생이 모두 묘한 법을 얻어서

마침내 모두 청정하여 지기를!

문수보살은 승가의 생활에서 양치질할 때의 마음가짐을 위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수집양지(手執楊枝)」, 즉 손으로 버드나무가지를 집다라는 의미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양지(楊枝)는 버드나무가지를 뜻한다. 이 버드나무가지 토막은 입 안을 깨끗하게 하는 도구다. 그러므로「수집양지」는 현대어로 표현하면 양치질을 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옛날부터 인도인들은 버드나무가지를 잘라 입안을 깨끗하게 하는 도구로 사용했다고 한다. 버드나무가지를 잘라 끝을 뾰족하게 해서 치아(齒)를 문지르기도 하고 씹기도 하면

첫째, 치아가 깨끗해지고

둘째, 담이 없어지고

셋째, 입에 냄새가 없어지고

넷째, 음식맛을 잘 알게 되고

다섯째, 소화가 잘 된다.

이것을「양지오리(楊枝五利)」라 한다고 한다.

지금도 인도인들이 이를 닦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버드나무가지(楊枝)에 관한 얘기가 『화엄경』「정행품」에 나오고 있으니, 그 수집양지(手執楊枝)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버드나무가지를 가지고 양치를 하면 청정감을 맛볼 수 있듯이, 양치를 할 때에는 일체 중생이 미묘한 법을 깨달아 모두 청정하게 되기를 염원해야 한다고 문수는 설하고 있다. 계속해서 문수는 대소변을 볼 때, 대변 후 손을 씻을 때, 얼굴 씻을 때, 목욕을 할 때에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문수는 계속해서 일상의 생활 속에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② 길을 갈 때

길을 걸을 때는 청정한 법계를 걷는 듯 생각하여 마음의 장애로부터 떠나겠다.

오르막길을 걸을 때는 그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라 생각하고 미혹의 세계를 초월하겠다.

언덕길을 내려 갈 때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 붓다의 깊은 가르침으로 들어가겠다.

험한 길을 걸을 때는 인생의 나쁜 길을 버리고 그릇된 견해로부터 떠나겠다.

똑바로 난 길을 걸을 때는 정직한 마음을 가져 거짓으로부터 떠나겠다.

③ 여러 가지 자연 풍경을 대했을 때,

즉 큰 수목을 볼 적에는 다투는 마음을 버리고 성내고 원망하는 생각에서 떠나겠다.

높은 산을 보았을 때는 궁극적인 깨달음을 지향해서 불법의 정상에 오르겠다.

가시나무를 보았을 때는 삼독의 가시를 빼어 버려 남을 상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겠다. 무성한 숲을 볼 때는 불도의 그늘을 만들어 선정삼매에 들어가고자 생각하겠다.

과일이 풍성하게 익는 것을 볼 때는 더욱 더 보살도에 힘내서 더없는 진리의 과일이 익도록 하겠다.

흐르고 있는 물을 볼 때는 진리의 흐름에 배를 저어 불지(佛智)의 대해(大海)로 나아가겠다.

우물을 볼 때는 다함이 없는 불법의 물을 마심으로써 가장 큰 덕을 닦겠다.

산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볼 때는 티끌이나 때를 씻어 버리고 맑은 마음을 내겠다.

다리를 볼 때는 불법의 다리를 만들어서 끊임없이 사람들을 피안으로 건너게 하겠다.

위와 같이 마음속에 念願해서 일상 생활 속에서 공덕을 쌓으면 하늘이나 마군이나 아수라들도 결코 침범하지 못한다고 한다.

 

1) 보살도의 계위상(階位上)에서의 실천행

菩薩道란 菩薩이 自利와 利他의 行을 實踐함으로써 佛地로 향해 가는 道라 할 수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衆生은 發菩提心에 依해서 菩薩이 되는데, 그 菩薩이 十信ㆍ十住ㆍ十行ㆍ十廻向ㆍ十地등의 實踐行을 닦음으로써 等覺位ㆍ妙覺位에까지 이르는 길을 菩薩道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華嚴經』의 根本思想에서보면 그와 같은 差別的인 階位는 있을 수 없다. 중생이 發菩提心하는 그때가 곧 究竟의 正覺位며,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본래 差別이 없다. 마음이 곧 부처요 부처가 곧 중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論理는 無上正等正覺을 성취한 理的인 면에서 본 境界일 뿐 事的인 衆生의 世界에서 보면, 衆生界와 佛界와의 사이에는 天과 地의 差가 있으며 菩薩位와 佛位 사이에는 분명히 52位가 있는 것이다.

十信位로부터 妙覺位까지 52位의 단계를 설정해 놓고 그 각각의 단계에서 행해야 하는 實踐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華嚴經』에서 말하는 菩薩道의 構造인 것이다.

그러나 法藏이 지적하고 있는 바와같이 信에는 階位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십신행을 제외하고, 等覺ㆍ妙覺의 단계도 이미 佛陀의 地位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十信位와 二位의 行을 제외하면 菩薩行은 결국 十住로 부터 十地까지의 40位의 行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40位의 各位마다에는 보살이 행해야 할 實踐行이 十種 이상씩 說해지고 있기 때문에 보살의 실천행은 모두 합하면 400가지 이상이나 된다.

이 經의 各品에 說해지고 있는 菩薩行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10住․10行․10迴向․十地보살의 實踐行 중에서 各位의 실천행 10가지 중 한 두 가지씩만 소개하고자 한다.

 

(1) 십주위 보살의 실천행

『화엄경』에 설해지고 있는 보살의 10주란 무엇인가.

①초발심주(初發心住) ②치지주(治地住) ③ 수행주(修行住) ④ 생귀주(生貴住) ⑤ 방편구족주(方便具足住) ⑥ 정심주(正心住) ⑦ 불퇴주(不退住) ⑧ 동진주(童眞住) ⑨ 법왕자주(法王子住) ⑩ 관정주(灌頂住) 등을 말한다.

 

① 初發心住 보살의 실천행

첫째, 모든 붓다를 공경하고 언제나 모든 붓다께 공양할 것(恭敬供養諸佛).

둘째, 모든 보살들을 찬탄할 것(讚嘆諸菩薩).

셋째, 중생의 마음을 잘 살펴 상하지 않게 할 것(護衆生心).

넷째, 어질고 눈 밝은 선지식을 가까이 할 것(親近賢明).

다섯째, 불퇴전의 법을 찬탄할 것(讚不退法).

여섯째, 붓다의 공덕을 부지런히 닦을 것(修佛功德).

일곱째, 붓다의 나라를 찬미하고 그곳에 나기를 발원할 것(稱揚歡美生佛前).

여덟째, 방편으로 고요한 삼매를 닦고 익힐 것(方便修習寂靜三昧).

아홉째,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남을 찬탄할 것(讚嘆遠離生死輪廻).

열번째,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할 것(爲苦衆生作歸依處) 등이다.

 

② 치지주(治地住) 보살의 실천행

말 그대로 불법에 발심한 보살이 그 마음을 잘 갈무리해서 다스리는 단계가 치지주다. 모든 중생에게 큰 자비심(慈悲心)ㆍ대비심(大悲心)ㆍ안주심(安住心)ㆍ환희심(歡喜心)ㆍ여래심(如來心) 등의 열 가지 마음을 베풀며,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단계를 치지주라 한다. 이「치지주」의 보살도 역시 꼭 배워 행해야만 하는 열 가지 실천도가 있다.

첫째, 먼저 부지런히 배우고 많이 들을 것(先當勤學專求多聞).

둘째, 모든 욕망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삼매를 닦을 것(修離欲定).

셋째, 선지식을 가까이 하고 그 가르침에 순종할 것(近善知識不違其敎).

넷째, 법을 물을 경우는 그 때를 잘 선택할 것(善知時語).

다섯째, 마음에 두려움을 없애는 법을 배울 것(學無所畏).

여섯째, 붓다가 설하신 바 미묘한 진리를 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것(明解深義).

일곱째, 정법을 완전히 배워 익힐 것(了達正法).

여덟째, 올바른 수행법을 선택해서 행할 것(知堅固行).

아홉째, 어리석음을 멀리 여의할 것(遠離癡冥).

열번째, 편안히 머물러 동하지 말 것(安住不動).

등의 열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 선지시어(善知時語)라는 경구가 나오는데, 시어(時語)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선지식에게 법을 청하거나 질문할 때는 그 시기를 잘 선택할 줄 알아야지 아무때나 가볍게 청문(請問)해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이 부분을『80화엄경』에서는 말할 때는 반드시 그 때를 알아야 한다고 되어 있고, 현수법장(賢首法藏)은 때가 아닐 때는 청문하지 말 것으로 풀이한 것을 보면, 상기의 해석은 크게 잘못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이 치지주의 보살이 행해야 할 열 가지 실천행 중에 “청법의 때를 잘 구별해 아는 것”도 하나의 수행이라는 지적은 재미있는 일이다. 또 하나 여덟 번째 지견고행(知堅固行)의 해석 또한『80화엄경』과 법장(法藏)의 해석을 참고로 했다.

 

(2) 십행위 보살의 실천행

『화엄경』에 설해지고 있는 보살의 10행은

① 환희행(歡喜行) ② 요익행(饒益行) ③ 무애한행(無恚恨行) ④ 무진행(無盡行) ⑤ 이치란행(離癡亂行) ⑥ 선현행(善現行) ⑦ 무착행(無着行) ⑧ 존중행(尊重行) ⑨ 선법행(善法行) ⑩ 진실행(眞實行) 등이다.

이 열 가지의 보살행에 대한 설명이 아주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알기 쉽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환희행(歡喜行)위 보살의 실천행

환희행이란 일체의 중생들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평등하게 베풀어 주어 모든 중생들을 환희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화엄경』「명법품(明法品)」에서 말하는 청정한 단바라밀(檀波羅蜜)에 해당하며,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육바라밀(六波羅蜜)중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에 해당된다. 이 환희행을 법장은 물질적인 것을 베풀어주는 재시(財施)와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주는 법시(法施)의 둘로 나누고 있다. 이 십행품에서 환희행(歡喜行) 중 재보시(財布施)를 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공덕림보살은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① 보시할 때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마음으로 할 것.

② 보시한 뒤에는 후회하지 말 것.

③ 보시하고 난 후 과보를 바라지 말 것.

④ 그 보시로 인하여 어떠한 명예도 구하지 말 것.

⑤ 그 보시공덕으로 내세에 좋은 곳에 나기를 구하지 말 것.

⑥ 보시한 후 그것을 핑계로 어떤 이익도 구하지 말 것.

⑦ 오직 모든 사람들을 잘 보살펴서 이익되게 할 것.

⑧ 모든 붓다가 닦으시던 행(行)을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배우고 익혀 행하도록 할 것.

⑨ 모든 붓다가 닦으신 행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할 것.

⑩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일체의 고락(苦樂)에서 벗어나도록 할 것.

등의 열 가지가 보살마하살의 환희행이며, 동시에 환희행의 마음가짐이다. 이런 마음으로 보시하면 일체중생은 크게 환희하게 되며,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보시하고, 마침내는 육신의 살까지도 보시해도 아깝다거나 그로 인하여 그 무엇인가를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것이 환희행의 보살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좋은 이익을 얻었도다. 나의 보시를 받은 저들 중생은 나의 복(福)밭이며, 나의 좋은 친구다. 내가 청하지도 않고 구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지도해 주는구나. 나로 하여금 보시의 마음을 내게 하고, 나로 하여금 불도를 수행하게 하니, 나는 마땅히 닦고 배워서 널리 모든 사람들을 환희하게 하리라.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가진 모든 것을 베풀어주었다는 상(相)을 내거나 어떤 과보를 바라기는커녕 오히려 상대방에게 감사를 하고 있다. 당신이야말로 내가 복을 심어 가꿀 수 있는 복밭(福田)이 되어 주었으며, 나로 하여금 발심하여 공부하게 해주는 선우(善友)이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② 요익행(饒益行)위 보살의 실천행

요익행이란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명난품(明難品)」에서 말하는 청정한 시바라밀(尸波羅蜜)에 해당하며, 육바라밀(六波羅蜜) 중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이 그것이다. 계율을 청정하게 지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앞에서 설명한 환희행보살의 마음가짐 열 가지와 비슷하지만, 요익행보살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경문 그대로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① 계행을 청정하게 지킬 것.

② 오온법(五蘊法)에 마음을 집착하지 말 것.

③ 널리 중생을 위해서 집착에서 벗어나는 법을 설할 것.

④ 사람의 몸을 받기를 구하거나 하늘에 태어나거나 존귀한 집에

나기를 구하지 말 것.

⑤ 어떠한 이익도 구하지 말며

⑥ 좋은 몸매를 구하지 말고

⑦ 帝王의 지위를 구하지 말라.

⑧ 오직 깨끗한 계율을 굳게 지킬 것.

⑨ 모든 번뇌망상과 근심걱정을 떨쳐 버리고 중생을 버리지 말 것.

⑩ 모든 붓다를 환희하게 하고 마침내 큰 진리를 깨달을 것.

등이 보살이 행해야 할 제 2 요익행이다.

요익행(饒益行)이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계행을 청정하게 가지는 것을 말한다. 계행이라고 하는 것은 재가자나 출가자나 가져야 할 일종의 행동규범이다.

 

(3) 십회향위 보살의 실천행

보살은 일체중생을 구호하기 위해서 큰 원을 세우고 삼세의 모든 붓다들이 행한 열 가지의 회향을 닦고 배워야 한다고 하는데, 그 열 가지의 회향이란

 

① 일체 중생을 구호하면서도 중생이라는 상(相)을 떠난 회향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② 깨뜨릴 수 없는 회향(不壞廻向)

③ 모든 붓다와 평등한 회향(等一切佛廻向)

④ 온갖 곳에 이르는 회향(至一切處廻向)

⑤ 다함이 없는 공덕장회향(無盡功德藏廻向)

⑥ 평등한 선근에 수순하는 회향(隨順平等善根廻向)

⑦ 수순해서 평등하게 일체중생을 관하는 회향(隨順等觀一切衆生廻向)

⑧ 진여의 모양과 같은 회향(如相廻向)

⑨ 속박도 없고 집착도 없는 해탈회향(無縛無着解脫廻向)

⑩ 법계에 들어가는 무량한 회향(法界無量廻向)

등이다. 보살이 행해야 하는 열 가지 회향의 이름을 열거해 보았지만, 그 이름만으로는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알기가 어렵다.

우선 회향이라는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그것은 “방향을 돌려 향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할 때의 회향은 자기가 닦은 선근(善根)을 중생에게 돌려 중생들이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지엄(智儼)은『수현기(搜玄記)』에서 실제회향(實際廻向)과 중생회향(衆生廻向)과 보리회향(菩提廻向)의 셋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중생회향이란 큰 자비로써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말하며, 보리회향이란 자기가 닦은 선근을 더없이 깊은 진리로 향하게 하는 것이며, 실제회향이란 모든 상(相)을 버리고 진리(眞理)에 증입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보살이 행해야만 하는 열 가지의 큰 행(行)을 설명한 것이 십회향품(十廻向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금강당보살이 말하는 열 가지의 회향(廻向)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인가.

 

① 구호일체중생리중생상회향(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位 보살의 실천행

여기서 말하는 구호일체중생리중생상회향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가 닦은 모든 선근을 회향해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경문에 따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기가 닦은 모든 선근을 회향해서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 또 이 선근에 의해서 모든 중생들이 지옥ㆍ아귀ㆍ축생ㆍ염라왕으로서 받는 무량한 고통을 소멸시켜 주는 것이다.

이것이 구호일체중생리중생상회향이다. 그러면 이 회향을 실천하기 위해서 보살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행해야 하는가. 경문에는 여러 가지의 실천덕목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을 정리 요약하면 실천적인 보살행과 중생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의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실천적인 보살행 열 가지가 있다.

 

① 모든 중생의 집(舍)이 되어 괴로운 일을 면하게 하고

② 모든 중생의 구호(護)가 되어 모든 번뇌에서 해탈케 하고

③ 모든 중생의 귀의(歸依)할 바가 되어 모든 공포를 여의게 하고

④ 모든 중생이 나아갈 바(趣)가 되어 편안한 곳을 얻게 하며

⑤ 모든 중생의 안락처(安樂處)가 되어 편안한 곳을 얻게 하며

⑥ 일체중생의 광명(光明)이 되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의 빛을

얻게 하며

⑦ 일체중생의 횃불이 되어 무명의 어둠 속에서 벗어나게 하며

⑧ 일체중생의 등불(燈)이 되어 가장 청정한 곳에 주하게 하며

⑨ 일체중생의 안내자(導)가 되어 방편법에 들어가게 하며

⑩ 일체중생의 대도사가 되어 걸림이 없는 깨끗한 지혜를 얻게

하는 것

다시 말하면 이 회향(廻向)을 실천하는 보살은 자기가 닦은 선근 공덕을 모두 회향해서 근심과 걱정속에서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위해서, 그들의 집이 되어주고 보호자가 되어주고, 의지할 바가 되어주고 빛이 되어주고, 안내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② 불괴회향(不壞廻向)位 보살의 실천행

불괴회향이란 무엇인가. 깨어지지 않는, 깨어짐이 없는 회향이란 뜻인데, 무엇이 깨어지지 않는다는 말일까. 그것은 믿음(信)을 말한다. 깨어지지 않는 믿음, 흔들림이 없는 믿음, 불퇴전의 초발심 때의 믿음을 말한다. 붓다(佛)와 그 가르침(法)과 그리고 스님(僧) 등 삼보(三寶)에 대한 믿음이다. 삼보에 대한 견고한 믿음을 가짐으로써 얻어지는 선근(善根) 공덕(功德)을 일체지(一切智)에 회향하는 것을 불괴회향이라 한다. 이 불괴회향을 실천하는 보살은 또한 다음과 같은 열 가지의 원을 버리지 않는다.

 

① 모든 붓다를 항상 뵈오며

② 선지식을 가까이 하며

③ 보살들과 함께 머물며

④ 모든 지혜를 염(念)하여 잠시도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하며

⑤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 지녀 마음에 항상 호법심(護法心)을 일으키며

⑥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성숙하게 하며

⑦ 마음으로 항상 출세간의 길에 회향하며

⑧ 모든 법사들을 공양하고 수호하며

⑨ 모든 법을 분명하게 이해하며

⑩ 모든 원을 잘 닦아 만족하기를 원한다.

이상과 같은 원을 세우고 닦아 나가면서도 이 불괴회향을 실천하는 보살은 도중에 마음이 흔들려 물러나거나 게으르지 않으며, 또한 그에 집착하거나 의지하지 않는다고 한다.

 

(4) 십지위 보살의 실천행

화엄경에서 말하고 있는 보살의 十地란

①환희지(歡喜地) ②이구지(離垢地) ③명지(明地) ④염지(焰地) ⑤난승지(難勝地) ⑥현전지(現前地) ⑦원행지(遠行地) ⑧부동지(不動地) ⑨선혜지(善慧地) ⑩법운지(法雲地) 등을 말한다.

 

① 歡喜地位 보살의 실천행

보살의 길에 처음으로 들어선 환희지보살(歡喜地菩薩)이 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실천행이 바로 願을 세우는 것이다. 환희지보살의 십대원(十大願)에 대한 설명이 經文에는 길고 복잡하게 설해지고 있다.

현수법장(賢首法藏)의 설명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공양원(供養願) ― 모든 붓다께 供養하겠다는 원.

② 수지원(受持願) ― 수승하고 미묘한 붓다의 바른 法을 항상 受持하

겠다는 원.

③ 전법륜원(轉法輪願) ― 붓다의 진리를 전하겠다는 원.

④ 수행원(修行願) ― 보살의 바른 행을 닦아 행하겠다는 원.

⑤ 성취원(成就願) ― 여기서 말하는 성취란 교화(敎化)의 뜻이라고

법장(法藏)은 설명하고 있으므로 성취원이란 이 세상의 모든 중생

들을 교화하겠다는 원을 말한다.

⑥ 승사원(承事願) ― 모든 불국토에 가서 붓다를 친견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섬기며 바른 법을 듣고자 하는 원

⑦ 정토원(淨土願) ― 청정한 국토에 정법을 일으켜 중생들이 수행할

수 있게 하겠다는 원.

⑧ 불리원(不離願) ― 항상 불(佛)보살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원.

⑨ 이익원(利益願) ― 항상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되 조금도 집착함

이 없게 하겠다는 원.

⑩ 정각원(正覺願) ― 모든 중생과 더불어 無上 보리를 이루겠다는 원.

등이 환희지보살의 10대원(十大願)이다.

이상의 열 가지 願 가운데 (1)―(3)까지는 자리행을 나타내는 것이고, (4)―(8)까지는 이타행을 나타내는 것이며, (9)와 (10)은 자리와 이타를 구족하면서 이 둘을 초월한 願이라고 한다. 환희지보살의 10대원의 끝에는

이 큰 원은 광대하기가 법계와 같고, 끝없음이 허공과 같아 오는 세월이 다하여도 쉼이 없으리라.

고 하는 서원문(誓願文)이 붙어 있다. 이것과 비슷한 내용으로

만일 중생계가 끝나면 나의 이 원도 끝나겠지만, 중생계가 다 끝날 수 없기 때문에 나의 원도 다함이 없다.

고 금강장보살은 말한다. 다함이 없는 청정한 원을 세워 실천해 가는 것이 환희지보살의 임무라 할 수 있다.

 

② 이구지(離垢地)位 보살의 실천행

보살도에 있어서 이구지(離垢地)란 어떤 단계를 말하는가.

이구지란 번뇌망상의 잡념에서 벗어난 단계를 말한다. 세간적인 생활에서 출세간적인 생활에 눈이 열린 환희지보살이 열 가지의 원과 열 가지의 마음가짐을 실천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단계를 말한다. 이것을 용수(龍樹)는 열 가지의 선법(十善法)을 닦아 일체의 더러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청정한 계율을 지켜야함을 강조하는 곳이 이구지이다.

이구지보살(離垢地菩薩)의 실천행은 무엇인가. 금강장보살은 보시(布施)ㆍ애어(愛語)ㆍ이타(利他)ㆍ동사(同事)의 4섭행(四攝行)과『화엄경』에서 말하는 10바라밀(十波羅蜜)의 실천을 주장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도 이구지(離垢地)의 보살이 반드시 행해야 할 것은 애어섭(愛語攝)과 계바라밀(戒波羅蜜)이라고 한다. 부드러운 말로 중생을 攝受하는 것과 청정한 계율을 지키는 것이 離垢地菩薩의 가장 중요한 실천행이다.

이 이구지보살(離垢地菩薩)이 제3 명지(明地)에 들어가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열 가지의 마음가짐(十種之深心)이 있으니

① 정심(淨心) ― 깨끗해서 티없이 맑은 마음이다. 염심(染心)이나 망

심(妄心)의 반대되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② 맹리심(猛利心) ― 스스로 대승법(大乘法)에 주(主)하므로써 마음이

견고하여 흔들림이 없는 마음을 맹리심이라고 현수법장(玄首法藏)

는 해석하고 있다.

③ 염심(厭心) ― 미래의 욕구를 버리는 것.

④ 이욕심(離欲心) ― 현재의 욕망을 버리는 것.

⑤ 불퇴심(不退心) ― 물러나지 않는 마음이다. 한번 일으킨 보리심을

끝까지 유지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후퇴하지 않는 마음이다.

⑥ 견심(堅心) ― 견고한 마음을 말한다.

⑦ 명성심(明盛心) ― 지혜가 눈 앞에 나타나서 出入이 자재한 마음을

말한다.

⑧ 무족심(無足心) ― 아무리 많은 선근 공덕을 쌓아도 그것으로 충분

하다고 느끼지 않는 마음.

⑨ 승심(勝心) ― 큰 지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번뇌에 물들지 않는

마음이다.

⑩ 대심(大心) ― 큰 자비로써 중생을 교화하되 끊임이 없는 마음.

제2 이구지(離垢地)의 보살은 이상과 같은 열 가지의 깊은 마음(十種深心)을 실천함으로써 제3 명지(明地)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3. 결론적인 실천행

 

화엄교학에서 보살의 수행계위는 10信․10住․10行․10迴向․10地․等覺․妙覺의 52단계로 되어 있다. 그러나 각 階位의 실천행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10住位의 실천행이나 10行․10迴向․10地位의 실천행은 하나로 통일 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明法品」에 설해지고 있는 “淸淨十波羅蜜行”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菩薩道의 階位와 실천행과의 관계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十 住

十 行

十 廻 向

十 地

淸淨十波羅蜜

1

初發心住

歡喜行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歡喜地

檀波羅蜜

2

治地住

饒益行

不壞廻向

離垢地

尸波羅蜜

3

修行住

無恚恨行

等一切佛廻向

明地

羼提波羅蜜

4

生貴住

無盡行

至一切處廻向

焰慧地

毘梨耶波羅蜜

5

方便具足住

離癡亂行

無盡功德藏廻向

難勝地

禪波羅蜜

6

正心住

善現行

隨順善根平等廻向

現前地

般若波羅蜜

7

不退住

無着行

隨順等觀一切衆生廻向

遠行地

方便波羅蜜

8

童眞住

尊重行

如相廻向

不動地

願波羅蜜

9

法王子住

善法行

無縛無着解脫廻向

善慧地

力波羅蜜

10

灌頂住

眞實行

法界無量廻向

法雲地

智波羅蜜

 

화엄교학에 있어서 다양한 菩薩行은「明法品」에 나오는 “淸淨十波羅蜜”行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면 그 十波羅蜜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1) 淸淨檀波羅蜜行

『華嚴經』의「明法品」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悉捨一切 滿衆生意

普爲一切群生類故 悉能捨離內外所有

而未曾起慳吝之心 是名淸淨檀波羅蜜

이것이 淸淨檀波羅蜜行이며, 布施波羅蜜行이다.

즉 淸淨檀波羅蜜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베풀어주어 중생들의 뜻을 만족시켜 주면서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 行이다. 그러면 그와 같은 布施行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 있을 수 있을까.

第18「十無盡藏品」에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의 布施 창고인가? 그 보살은 열 가지의 布施를 닦고 行한다. (열 가지란) 이른바 修習施法ㆍ最後難施法ㆍ內施法ㆍ外施法ㆍ內外施法ㆍ一切施法ㆍ過去施法ㆍ未來施法ㆍ現在施法ㆍ究竟施法 등이다.

라 설하고 있다. 즉 보살이 行해야 하는 施藏에 修習施, 最後難施, 內施, 外施, 內外施, 一切施, 過去施, 現在施, 未來施, 究竟施의 十種施가 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열 가지의 布施法을 열거한 후 十種施에 관해 구체적으로 說明하고 있는데 처음의 修習施法만을 소개하면,

어떤 것이 菩薩修習施法인가. 이 보살은 과거로부터 平等한 布施를 닦아 익힌다. 그리하여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자기만이 탐착하지 않고 一切 衆生에게 布施하며, 그 밖의 다른 물건도 그와 같이 한다. 음식을 남에게 보시한 후 자기가 먹으면서도,「나는 이 음식을 내 몸 안에 있는 八万의 戶蟲을 위해서 먹나니 내 몸이 안락하면 저들도 안락할 것이요, 내 몸이 굶주려 괴로우면 저들도 굶주려 괴로울 것이다」라고 念한다.

는 것이다. 이것이 修習施法이다. 음식을 먹되 자기를 위해서 보다 자기 몸 안에 있는 수많은 벌레(蟲)들을 위해서 먹으며, 먹고 난 후에도 자기 몸 안에 있는 벌레들이 굶주려서 괴롭지 않기를 생각하고 배불리 먹어 즐거워라고 말하는 念施와 言施가 바로 修習施라는 것이다. 第33「離世間品」에서는

菩薩摩訶薩 有十種淸淨施 何等爲十 所謂 平等心施 無惡衆生故 隨意施 滿一切願故 無亂心施 不退轉故 隨應供施 分別了知福伽羅故 不選擇施 不求果報故 一向施 於一切物心無著故 內外一切施 究竟淸淨故 廻向菩提施 遠離有爲無爲故 敎化成就衆生施 乃至道場不捨離故 三種圓滿淸淨施 施者 受者財物平等 淸淨如虛空故

라고 설한다. 이 品에서 平等心施․隨意施․無亂心施․隨應供施․不選擇施․一向施․內外一切施 ․廻向菩提施․敎化成熟衆生施․三種圓滿淸淨施 등의 十種施를 말하고는 있으나 그 내용상의 구별은 명료하지 않다. 이 十種施 중에서 第十 三種圓滿淸淨施란 三輪淸淨의 布施라 하고, 그것은 能施, 所施, 施物의 淸淨을 말하는 것이다.

法藏이나 龍樹는 布施의 종류를 보다 간단하고 명료하게 말하고 있다.

龍樹는『大智度論』에서 布施의 종류를 物施와 供養恭敬施 그리고 法施의 셋으로 나누고 이 세 가지의 布施가 원만하게 행해진 것을 檀波羅蜜이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반해 法藏은『探玄記』에서, 布施에 財施와 法施 그리고 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華嚴經』에 十種의 布施가 說해지고 있지만, 그것을 요약하면 財施ㆍ法施ㆍ無畏施 혹은 財施ㆍ法施ㆍ供養恭敬施의 세 가지가 되며, 이 세 가지를 원만하게 실행하는 것이 곧 구체적인 檀波羅蜜의 實踐行이라 할 수 있다.

 

(2) 淸淨尸波羅蜜行

尸波羅蜜이란 戒波羅蜜을 말하는 것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戒波羅蜜行은 菩薩의 十行位의 行 중 第2 饒益行 바로 그것이다. 饒益行에 대해

「十行品」에서는

佛子들이여 菩薩摩訶薩의 제2 饒益行이란, 이른바 그 보살은 戒를 淸淨하게 지녀, 色 聲 香味 觸 法 등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없고, 모든 중생을 위해서 집착하지 않는 법을 說해주며, 人間이나 天上에서 훌륭하고 부귀한 곳에 태어 나기를 구하지 않고 이익도 구하지 않으며, 단정하기를 구하지도 않고 帝王이 되기를 구하지도 않으며, 다만 깨끗한 계율을 굳게 지키면서「나는 깨끗한 계율을 지켜 일체의 얽매임과 번뇌의 화염과 근심이나 슬픔 또는 고 뇌에서 벗어나 중생들을 저버리지 않고 모든 부처님네를 기쁘게 하며 究竟에는 無上의 菩提 를 成就하리라」하고 念願한다.

고 한다.

功德林보살은 尸波羅蜜行 즉 戒波羅蜜行이란, 첫째 戒를 淸淨하게 지니는 것, 둘째 물질이나 소리 냄새 맛 느낌 등 五官의 作用에 집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생들에게 染箸함이 없는 法을 가르쳐 주는 것, 셋째 安樂處에 나기를 구하거나 용모가 단정하기를 바라거나 王位에 오르고자 하지 않는 것 등이며, 그런 후에 모든 煩惱에서 벗어나 衆生을 위하고 부처님을 기쁘게 하며 마침내는 진리를 成就하는 것, 그것이 戒波羅蜜行이라 定義하고 있다.

구체적인 戒行을 열거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戒波羅蜜行을 說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戒波羅蜜의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離世間品」에서는 不壞菩提心戒․離聲聞緣覺地戒․饒益觀察一切衆生戒․令一切衆生住佛法戒․一切菩薩學戒戒․一切無所有戒․一切善根廻向菩提戒․不著一切如來身戒등의 열 가지 戒를 說하고는 있으나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에 관한 설명은 없다.

「菩薩十無盡藏品」에 보면

불자들이여 어떤 것이 보살 마하살의 戒行인가. 이 보살은 饒益戒 不受戒 無著戒 安住戒 不諍戒 不惱害戒 不雜戒 離邪戒 離惡戒 淸淨戒를 成就한다.

고 十種의 戒를 열거하고 있다.

여기서 饒益戒란 衆生들을 이롭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것을 말하며, 不受戒란 外道의 戒를 받지 않고 三世의 모든 부처님의 平等하고 淸淨한 계율을 받아 잘 지키는 것을 말한다.

無著戒란 欲界의 戒와 色界의 戒 그리고 無色界의 戒 중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安住戒란 淸淨하여 의심이 나거나 뉘우침이 없는 行을 하는 것이며, 不諍戒란 이미 있는 戒를 그르다 비방하지 아니하며, 戒律을 다시 만들지도 아니하며, 마음을 항상 涅槃으로 向하게 하는 계율을 따르되 그 戒를 잘 지녀 범하지 말며, 그 戒로 인하여 중생들을 괴롭히거나 다투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다음 不惱害戒란 그 戒를 가짐으로써 어떤 呪術이나 藥草를 사용하는 法을 배워 衆生들을 괴롭히거나 해치지 않는 것을 말하며, 不雜戒란 斷見이나 常見을 떠나 난잡한 戒를 지니지 않고 다만 12緣起만을 관찰하고 淸淨한 戒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離邪戒란 깨끗한 戒를 가지면서도 남에게는 알리려 하지 않고 안으로 진실한 德이 없으면서도 있는 체하여 밖으로 나타내지 않으며, 다만 깨끗한 계율을 지키며, 한결같이 法을 구해 일체의 智慧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다음 離惡戒란 스스로 잘난 체하여 나는 戒를 지킨다고 말하지 않고 戒를 犯한 사람을 보고도 그를 경멸하거나 비판해서 그를 괴롭히지 않는 것을 말하며, 淸淨戒란 殺生ㆍ도둑질ㆍ사음ㆍ거짓말ㆍ나쁜 말ㆍ추한 말ㆍ두 가지 말ㆍ잡된 말과 탐욕ㆍ분노ㆍ사견 등을 버리고 열가지의 善한 행을 모두 행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十善戒 즉, 不殺生ㆍ不偸盜ㆍ不邪淫ㆍ不妄語ㆍ不綺語ㆍ不兩舌ㆍ不惡口․不貪欲ㆍ不瞋恚ㆍ不邪見 등은 위에서 말한 十種戒 중 제일 마지막 淸淨戒 바로 그것임을 알 수 있다.

위에서 말한 十種의 戒는 戒의 종류를 나타냄과 동시에 구체적인 戒波羅蜜行을 나타내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法藏은『探玄記』에서 饒益行의 부분을 說明함에 있어, 戒의 종류를『文殊師利問經』에 說해지고 있는 十戒를 들고 있다. 이 經에 說해 지고 있는 十戒는 沙彌의 十戒로 잘 알려져 있는 不殺衆生ㆍ不盜他財ㆍ不非梵行ㆍ不起妄語ㆍ不飮諸酒ㆍ不著香花ㆍ不歌舞作樂ㆍ不坐臥高廣大床ㆍ不過中食ㆍ不捉金銀 등인데, 이것을「十無盡藏品」에 說하고 있는 十種戒 중 제일 마지막 淸淨戒와 비교해 보면, 前者는 出家沙彌의 일상생활의 규범을 경계하고 있음에 반해 後者는 보살의 身ㆍ口ㆍ意 三業의 淸淨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으로 미루어 보아도『華嚴經』에서 說하고 있는 구체적인 戒波羅蜜行은 바로「十無盡藏品」의 十種戒임을 알 수 있다.

 

(3) 淸淨羼提波羅蜜行

이것은 菩薩의 忍波羅蜜行 바로 그것이며, 菩薩의 十行位의 行 중 제3 無恚恨行에 해당하는데 無恚恨行에 대해서는

「十行品」에

何等爲菩薩摩訶薩 第三無恚恨行 此菩薩常能修習忍辱之法 謙卑恭敬 和顔愛語 不自害不害他亦不俱害 不自擧不擧他亦不兩擧 不自是不是他亦不兩是 不自讚歎 但作是念 我當常爲衆生說法 離一切惡 斷貪恚癡憍慢亂心慳嫉諂曲 以大忍法 而安立之

라 설하고 있다.「十行品」에서 말하는 忍辱行은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謙卑恭敬 和顔愛語라는 語句로 요약된다. 여기서 謙卑와 和顔이라는 어구는 自身에 대한 行이요, 恭敬과 愛語는 他人에 대한 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自身을 항상 겸손하게 하는 마음(心)과 부드러운 얼굴 모습(身)을 가지는 것과 사랑이 담긴 말(口)로 상대를 대하는 行을 忍辱行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자기를 너무 내세우지도 말고 상대를 지나치게 칭찬하지 않으며, 옳다 그르다 是非를 떠나는 것이 忍辱行이며,

셋째는 衆生들에게 法을 說하여 그들이 모든 惡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등이다.

忍의 種類를 살펴보면,「離世間品」에서는 ① 他辱悉能堪忍 ② 他力杖加害亦能堪忍 ③ 至一切瞋恚忍 ④ 自在處忍 ⑤ 衆生歸趣忍 ⑥ 遠離我慢忍 ⑦ 割裁肢節忍 ⑧ 一切惡事忍 ⑨ 煩惱忍 ⑩ 隨順一切衆生方便智忍 등의 十種을 열거하고 있다.

「離世間品」에 十種忍이 설해 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忍辱行의 설명은 없다.

 

(4) 淸淨毘梨耶波羅蜜行

이것은 보살의 十行 중 第四 無盡行을 말하며, 곧 精進波羅蜜行을 말한다. 精進波羅蜜行을「明法品」에서는

勇猛精進方便修習 其心堅固而不退轉 究竟成就佛智慧門 是名淸淨毘梨耶波羅蜜

고 定義를 내리고 있다. 精進波羅蜜行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不放逸行 바로 그것이다.

精進의 種類를「十行品」에서는, ① 精進 ② 勝精進 ③ 最勝精進 ④ 第一精進 ⑤ 大精進 ⑥ 微妙精進 ⑦ 上精進 ⑧ 無上精進 ⑨ 無等精進 ⑩ 無等等精進의 十種으로 說하고 있으며,

「離世間品」에서는 ① 淨身業精進 ② 淨口業精進 ③ 淨意業精進 ④ 淨直心精進 ⑤ 淨深心精進 ⑥ 行不虛妄精進 ⑦ 降伏一切衆生魔怨敵精進 ⑧ 滿足慧光淨精進 ⑨ 無所染著淨精進 ⑩ 具足成就法明淨精進의 十種 精進으로 說하고 있다.

法藏은『探玄記』에서 ① 被甲精進 ② 加行精進 ③ 無厭足精進의 三種 精進을 말한 후 ①은 修行의 처음 단계며, ②는 그 다음 단계의 정진이고, ③은 究竟의 修行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면 구체적인 精進의 實踐行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앞의「離世間品」에 나오는 十種의 精進, 그것을 바로 精進行으로 볼 수 있다.

經文에 依하면,

첫째 淨身業의 精進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을 공경하고 공양하여 공급하고, 福田을 존중하는 것이 깨끗한 身의 精進이요,

둘째 淨口業의 精進은 부처님의 正法을 듣고 如來를 찬탄하며, 들은 바의 法을 남에게 說하되 고달파 하지 않는 것이 깨끗한 입으로 하는 口의 精進이며,

셋째 淨意業의 精進은 묘한 方便으로 慈悲喜捨의 四無量心과 禪定의 解脫三昧에 깊이 들어가 물러나지 않는 것이 깨끗한 뜻(意)의 精進이며,

넷째는 淨直心의 精進은 아첨하지 않고 정직하게 해서 어떠한 일이나 方便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것이 깨끗하고 곧은 마음(直心)의 精進이며,

다섯째 淨深心의 정진은 항상 수승한 곳에 가서 無上의 지혜와 깨끗한 法을 쌓는 것이 깨끗하면서도 깊은 마음(淨深心)의 精進이다.

여섯째는 布施ㆍ持戒ㆍ忍辱ㆍ多聞 및 不放逸을 계속하는 것이 허망하지 않은 行虛妄의 精進이며,

일곱 번째는 貪ㆍ瞋ㆍ癡의 三毒 煩惱와 邪見 그리고, 모든 얽힌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 모든 마구니와 원수를 항복 받는 깨끗한 精進이요,

여덟 번째는 하는 일마다 잘 사유해서 함으로 마음에 후회되는 바가 없으며, 모든 일을 마침내 완성하는 행이 지혜의 光明을 만족시키는 깨끗한 精進이며,

아홉째 마음의 경계와 몸ㆍ입ㆍ마음 그리고 相과 非相을 모두 떠나 깊은 法門으로 경계를 널리 관찰해서, 진실한 如如를 아는 것이 어느 곳에도 집착함이 없는 깨끗한 精進이며,

열 번째는 一切地에 들어가 부처님에게서 法王의 수기를 받고 구경에는 普賢의 行을 원만히 이루는 것이 法의 밝음을 모두 성취하는 깨끗한 精進이라고 한다.

이것보다도 보다 구체적인 精進波羅蜜行에 대해서는

 

「明法品」에서

菩薩摩訶薩 有十種法 得不放逸 何等爲十 一者持戒淸淨 二者遠離愚癡淨菩提心 三者捨離諂曲哀愍衆生 四者勤修善根得不退轉 五者常樂寂靜遠離在家出家 一切凡夫 六者心不願樂世間之樂 七者專精修習諸勝善業 八者捨離二乘求菩薩道 九者常習功德心無染汚 十者善能分別自知己身

라고 한다.「明法品」에서 보살이 부지런히 精進해야 할 바의 十種精進行은

① 계율을 깨끗하게 가지는 것이다.

②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보리심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③ 아첨을 버리고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다.

④ 善根을 부지런히 닦고 물러나지 않는 것이다.

⑤ 항상 고요함 속에서 在家人이든 出家人이든 凡夫를 멀리하는 것이다.

⑥ 마음속에 세상의 쾌락을 求하지 않는 것이다.

⑦ 오직 뛰어난 일체의 善業만을 닦는 것이다.

⑧ 二乘을 버리고 菩薩道를 구하는 것이다.

⑨ 항상 공덕을 짓되 집착하는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다.

⑩ 자기자신을 잘 분별해서 아는 것이다

등이 보살의 十種 精進波羅蜜行이다.

 

(5) 淸淨禪波羅蜜行

「離世間品」에서는 생각이 올바르기 때문에 散亂하지 않은 것이 禪波羅蜜이다 라고 說하고 있으며, 法藏은 菩薩의 十行 가운데 제5 離癡亂行, 즉 우치함과 산란함에서 벗어난 行이 禪波羅蜜이다라고 定義하고 있다.

「明法品」에서는

捨一切欲 離生喜樂 淸淨次第 入於正受 而無所染 燒滅煩惱 生無量定 具大神通 次第超越 入於無量 諸三昧門 於一三昧門 入無量三昧 悉知一切三昧境界 漸具諸佛智慧之地 是名淸淨禪波羅蜜

이라고 禪波羅蜜을 定義하고 있다. 이와 같은 定義는「十行品」의 第五 離癡亂行의 說明과도 대개 일치하고 있다.

그러면 禪波羅蜜行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가.

 

「離世間品」에서는

불자야, 보살 마하살에게는 열 가지의 깨끗한 禪이 있다. 그 열 가지란 항상 출가하기를 즐거워하는 깨끗한 禪이니 모든 소유를 버리기 때문이요, 阿練若處를 즐거워하는 깨끗한 禪이니 나라는 생각 내 法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또 농담하고 시끄러운 곳을 떠난 禪이니 모든 감각기관이 산란하지 않기 때문이요, 智慧가 寂靜하고 깨끗한 禪이니 어떤 소리나 禪定의 가시도 산란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七覺과 八道의 깨끗한 禪이니 모든 智의 경계에 智慧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味禪 등과 같은 모든 번뇌의 더러움에서 벗어나 깨끗한 禪이니 欲界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通明 속의 깨끗한 禪이니 모든 중생의 모든 根性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요, 조그만 방편으로 현재 유희하는 신통의 깨끗한 禪이니 如來의 三昧는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불자들아, 이것이 보살 마하살의 열가지 깨끗한 禪이다.

라 說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十種禪을 요약하면

① 常樂出家淨禪 ② 親近善知識淨禪 ③ 樂阿練若處淨禪 ④ 離言戱憒鬧處淨禪 ⑤ 心柔軟淨禪 ⑥ 智慧寂靜淨禪 ⑦ 七覺八道淨禪 ⑧ 離味禪等諸煩惱垢淨禪 ⑨ 諸通明內淨禪 ⑩ 以少方便現前遊戱神通淨禪 등이다.

이「離世間品」에서는 十種의 禪名을 열거하면서 그 禪의 실천행을 說明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첫번째, 常樂出家淨禪이란「모든 소유를 버리기 때문이다」라 했고, 두 번째 親近善知識淨禪이란「正法을 묻고 닦아 익히기 때문이다」등등으로 說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禪의 종류인 동시에 구체적인 禪의 實踐行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일체의 모든 소유물을 버리는 것이 禪波羅蜜의 실천행이며 善知識에게 正法을 묻고 正法을 닦아 익히는 것이 禪波羅蜜行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華嚴經』에서 說하고 있는 禪波羅蜜行은 中國 禪宗의 初祖와 二祖로 알려져 있는 菩提達摩나 慧可가 실천했던 大乘壁觀이나 坐禪의 實踐行과는 그 意味를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6) 淸淨般若波羅蜜行

이것은 十行位 중 第6 善現行에 해당하며, 十地位에서도 역시 第六 現前地에 해당하는 것으로 智慧波羅蜜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華嚴十波羅蜜 중 맨 마지막 열번째도 淸淨智波羅蜜이다. 그러면 第六과 第十이 모두 智波羅蜜인 셈이 되는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第六의 般若波羅蜜과 第十의 智波羅蜜은 어떻게 다른가.

筆者는「華嚴經에 나오는 法身佛思想」이라는 論文에서 法身佛을 衆生態 法身佛과 光明態 法身佛의 두가지로 나누어 論證한 바가 있다.

前者는「寶王如來性起品」에, 一切衆生은 착각된 妄想에 덮혀 있어 不知ㆍ 不見ㆍ不生信心 하지만, 本來로 如來의 智慧를 具足하고 있는「衆生態」의 부처를 말하며, 後者는 如來의 智慧와 더불어 衆生救濟의 同體大悲까지를 具足한「光明態」의 부처를 뜻한다고 述한 바가 있다.

『華嚴經』의 十波羅蜜 중 第六 般若波羅蜜은 衆生態의 智波羅蜜에 해당하며, 第十 智波羅蜜은 光明態의 智波羅蜜에 해당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第六의 般若波羅蜜은 十行位의 善現行에, 十地位의 現前地에 해당하는데, 이 行位와 地位는 곧 般若智의 慧眼이 열리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世親은 이 地를「大智가 (눈)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現前地라 이름한다」고 說明하고 있다.

이에 반해 第十 智波羅蜜은 十行位의 眞實行에, 十地位의 法雲地에 해당하는데, 이 行位와 地位는 如來의 智慧와 大悲가 具足된 단계라 할 수 있다.

세친은 三種의 般若, 즉 無分別加行의 般若, 無分別의 般若, 그리고 無分別後得의 般若를 해석함에 있어 聞ㆍ思ㆍ修의 三慧를 얻어 分別想의 空에 들어가는 智를 無分別加行般若라 하고, 三無性에 들어가는 智를 無分別智라 하며, 無分別智의 觀에서 나온 후 스스로 사유하거나 他人을 위해서 說하는 智를 無分別後得般若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十波羅蜜 중 第十 智波羅蜜은 곧 覺과 行이 圓滿한 無分別後得般若라 할 수 있다.

法藏도 智波羅蜜에 해당하는 眞實行을 설명함에 있어,「眞實行의 體性은 後得智의 作用과 大悲로서 性을 삼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眞實行은 十行 중 最高位의 行이며, 이것은 十地位의 마지막 階位인 法雲地에 해당하고, 이 兩位의 行은 十波羅蜜의 第十 智波羅蜜인데, 이 智波羅蜜은 後得智의 作用과 同體大悲를 그 性으로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十波羅蜜 중 第六 般若波羅蜜과 第十 智波羅蜜의 차이를 살펴보았는데 그러면 第 六淸淨般若波羅蜜을『華嚴經』에서는 어떻게 說하고 있을까.

「離世間品」에서는,「一切法이 如如함을 觀하는 것」이 般若波羅蜜이라 說하고 있다. 즉 眞如의 모습을 관하는 것, 一切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般若波羅蜜이라는 說明이다.

 

「十行品」의 第六 善現行에서는

如如性離業報 善方便出生離生 不生不滅 寂靜涅槃等 非有說有 語言道斷 離一切世間 無所依住 長養菩薩所起善根 入離虛妄無縛無著法門 入眞實法門 入離世間法門 分別一切世間法

이라고 설명되고 있다. 眞如의 本性은 일체의 業報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生滅의 변화나 有無의 상태를 벗어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言說로는 표현할 수 없다. 다만 방편에 의해서만 生滅을 보이기도 하고 有無를 說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善現行位의 보살은 善根을 길러 出世間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으며, 또 世間法도 잘 분별해 알 수 있다. 그것은 般若智에 의한 힘의 작용이며 이것이 곧 般若波羅蜜行인 것이다.

 

「明法品」에서는

모든 佛法을 듣고 受持하며, 善知識을 恭敬하고 親近히 하되 게으르지 않으며, 항상 다른 法을 즐겨 듣되 충분하다 생각지 않고 들은 바 모든 法을 바로 관찰하며, 진실한 禪定에 들어 모든 착각된 邪見을 버리고 뛰어난 方便으로 諸法에는 自性이 없음을 분별해서 알며, 如來는 깊은 지혜문을 닦고 익혀 모든 智慧의 힘을 구족해서 그 智慧의 문을 타고 모든 智慧의 門에 들어가는 것, 이것을 淸淨般若波羅蜜이라 이름한다.

라 설하고 있다. 여기서 精進慧보살이 말하는 般若波羅蜜의 정의도「十行品」의 그것과 大同小異함을 알 수 있다.

즉 般若波羅蜜이란 諸法을 바르게 관찰하고, 바른 禪定에 들어가서 諸法에는 自性이 없어 如如함을 아는 것, 如來의 智慧를 具足해서 智慧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어서 般若波羅蜜의 종류를 살펴보면 法藏은『成唯識論』에 依해, 慧를 生空의 慧, 法空의 慧 그리고 具空의 慧 등 세 가지로 나눈 후,「離世間品」의 十種慧를 소개하고 있다.

「離世間品」의 十種 淨慧는 ① 知因淨慧 ② 解一切緣淨慧 ③ 解一切法不常不斷淨慧 ④ 拔出一切邪見淨慧 ⑤ 解一切衆生心心所行淨慧 ⑥ 諸辨勝智淨慧 ⑦ 降伏衆魔及諸外道出過聲聞緣覺淨慧 ⑧ 見一切法皆慈寂滅見一切世界皆悉虛空淨慧 ⑨ 攝取一切陀羅尼弁諸波羅蜜巧方便淨慧 ⑩ 一念相應金剛智覺一切法平等淨慧 등이다.

 

이상의 十種 淨智 중에서 ①은 因을 아는 지혜고 ②는 緣을 아는 지혜며 ③은 一切法은 常도 斷도 아님을 아는 지혜며 ④는 모든 邪見을 모두 뽑아 낼 수 있는 지혜며 ⑤는 중생들의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아는 지혜를 말한다 ⑥은 모든 변재와 뛰어난 지혜를 가진 지혜며 ⑦은 모든 악마와 외도들을 항복받는 성문 연각보다 뛰어난 지혜며 ⑧은 일체 법의 적멸함을 보고 일체 세계가 다 허공과 같음을 보는 지혜를 말하며 ⑨는 일체의 다라니와 변재와 바라밀과 묘한 方便을 가진 지혜며 ⑩은 一念과 相應하는 金剛智로 一切法은 平等함을 아는 지혜라고 한다.

지혜를 証得하는 구체적인 般若波羅蜜行은 經文에 說示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7) 淸淨方便波羅蜜行

여기서 우선 方便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無性은『攝大乘論釋』에서

方便善巧란 生死를 버리지 않고 涅槃을 구하는 것, 이것을 方便善巧라 이름한다. 앞의 六波羅蜜多를 행해서 얻어진 善根을 모든 有情과 함께 한다고 하는 것은, 有情을 饒益하게 하기 위해서 有情을 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마땅히 알지어다. 이것이 곧 生死를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이것을 회향해서 無上正等菩提를 求한다고 하는 것은 佛陀의 無上菩提를 증득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마땅히 알아라. 이것이 곧 涅槃을 希求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즉 善巧方便이란 生死를 버리지 않고 涅槃을 求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生死란 六波羅蜜의 善根과 功德을 중생들에게 돌려 그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을 말하며, 涅槃이란 無上菩提을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요약해서 말하면 善巧方便이란 六波羅蜜을 실천하고 그에 의해 얻어진 善根과 功德을 회향해서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菩提를 구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 無性菩薩의 설명이다.

方便波羅蜜에 대해「明法品」에서는

世間의 모든 威儀를 나타내 보이고 衆生들을 敎化하되 고달파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중생의 근기에 따라 그 몸을 나타내 보이고, 어떠한 行에도 집착함이 없으며,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의 行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고, 生死와 解脫의 문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고, 한량없이 장엄한 일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며, 모든 生命態에 들어가 중생들이 행하는 바를 모두 아는 것 이것을 方便波羅蜜이라 한다.

고 說한다. 즉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때로는 세간적인 위엄이나 격식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生死를 보이기도 하고 解脫의 門을 보이기도 하며, 때로는 중생들과 더불어 살면서 중생들의 생활을 모두 아는 것을 方便波羅蜜이라 한다는 것이다.

生死를 버리지 않고 즉, 중생들 속에 더불어 살면서 眞理를 구하는 것이 方便善巧라고 하는 無性의 解釋과 거의 같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方便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法藏은「唯識論」에 의해 廻向方便과 拔濟方便의 두 가지를 말하고 있음에 반해「離世間品」에는 十種方便이 說해 지고 있다. 여기에 說하고 있는 十種의 方便은 종류를 나타냄과 동시에 方便行을 나타내고 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布施方便이다. 일체를 다 버리고도 그 과보를 구하지 않는다.

② 淸淨方便이다. 남을 무시하지 않는다.

③ 一切衆生諸惡方便이란 나와 남이라는 생각을 모두 버리는 것을 말

한다.

④ 精進不退方便은 身ㆍ口ㆍ意의 業을 완전히 청정하게 하는 것.

⑤ 一切諸禪三昧解脫通方便운 모든 五欲과 煩惱에서 벗어 나는 것.

⑥ 正向智慧方便이란 모든 공덕을 쌓아 나가되 마음에 족하다는 생각

이 없는 것.

⑦ 大慈方便이란 一切衆生은 衆生이 아님을 說하는 것.

⑧ 不捨大慈方便이란 一切法은 自性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⑨ 十力覺悟方便이란 걸림이 없는 智慧를 모든 중생에게 보여 주는 것

을 말한다.

⑩ 轉不退法輪方便이란 중생의 마음을 살펴 아는 것을 말한다.

다음에 구체적인 方便波羅蜜行은 十種의 方便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첫째 布施方便이란 모든 것을 베풀어주고도 그 과보를 바라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그와 같은 行이 方便波羅蜜行이며, 열째 轉不退法輪方便이란 중생의 마음을 살펴 아는 것을 말하는데, 역시 그것을 方便波羅蜜의 行으로 볼 수 있다. 菩薩의 十行 중 第七 無著行이 方便波羅蜜行에 해당하는 것은 물론이나 無著行의 내용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8) 淸淨願波羅蜜行

「十地品」에서는 뛰어난 지혜를 구하는 것으로 보고 있고,「離世間品」에서는 普賢菩薩의 願行을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願波羅蜜이라 說하고 있다.

「明法品」에서는

일체세계를 끝까지 장엄하고, 모든 부처님을 끝까지 공양하며, 모든 法을 끝까지 알아 아무런 장애가 없으며, 法界에 가득한 行을 모두 닦으며, 영원한 未來劫에 住하되 한 찰라 같이 하며, 구경의 未來劫을 一念 같이 하며, 모든 것의 成과 壞를 완전히 알며, 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모두 나타내 보이며, 諸佛의 智慧를 속히 성취하는 것, 이것을 願波羅蜜을 具足하는 것이라 이름한다.

고 說한다. 즉 願波羅蜜이란 중생의 세계까지도 모두 장엄하고, 成住壞空의 현상과 영원한 未來劫의 시간과 佛法을 완전히 알아서 如來의 지혜를 成就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願에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일반적으로 菩薩의 願은 上求菩提의 願과 下化衆生의 願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自覺 覺他의 二願이라 할 수 있는데,『成唯識論』에서는 上求菩提願과 利樂他願의 二種願을 말하고 있다. 前者는 上求菩提의 自利願이라면, 後者는 下化衆生의 利他願이라 할 수 있다.

『華嚴經』에서 願을 說하는 品은 여러 곳이 있으나「普賢行願品」에 나오는 열 가지 願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普賢行願品」의 十種願이란

그 열 가지란 하나는 부처님께 禮敬함이요, 둘은 부처님을 讚歎함이요, 셋은 여러 가지로 供養함이요, 넷은 業障을 참회하는 것이요, 다섯은 남의 功德을 따라 기뻐함이요, 여섯은 法輪이 영원하기를 청함이요, 일곱은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함이요, 여덟은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요, 아홉은 중생의 뜻에 늘 따라 줌이요, 열은 모두 회향함이다.

라 說하고 있다. 普賢菩薩은 한량없는 如來의 功德을 성취하기 위해서 마땅히 닦아야 하는 광대한 願으로 이상의 열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9) 淸淨力波羅蜜行

「離世間品」에서는 力을 神力으로 表記하고,「모든 神通한 힘(力)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며,「十地品」에서는「어떠한 마구니나 外道도 결코 파괴할 수 없는 힘을 力波羅蜜이라 한다」고 定義하고 있다.

人間의 상상이나 能力을 초월하는 신통스런 힘이기 때문에 어떤 외도라도 그 힘을 꺾을 수 없는 그것을 力波羅蜜이라 보고 있다.

「明法品」에서는

스스로 바른 힘을 갖추고 모든 煩惱에서 벗어나 완전히 淸淨하고 다른 사람을 바르게 하되 완전히 (힘을)성취하여 누구도(그 힘을) 꺾을 자가 없으며, 大悲의 힘(力)을 완전히 갖추고 大悲의 힘(力)이 평등하여 모든 衆生을 다 구호하고 陀羅尼力으로 모든 方便의 뜻을 이해하며, 묘한 모든 변재의 힘으로 모든 중생을 모두 기쁘게 하며, 갖가지 波羅蜜의 힘(力)과 한량이 없는 부처님의 神力을 갖추어 일체의 중생을 救護하나니, 이것을 淸淨한 力波羅蜜이라 한다.

라 말하고 있다. 앞의「離世間品」이나「十地品」에서 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力波羅蜜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明法品」에서는, 大慈力ㆍ大悲力ㆍ陀羅尼力ㆍ弁財力ㆍ波羅蜜力ㆍ誓願力ㆍ佛神力 등을 갖추어 모든 중생들을 救護하는 것을 力波羅蜜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 그와 같은 力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世親은『攝大乘論釋』에서 힘(力)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즉 力에는 思擇力과 修習力이 있다는 것이다. 思擇力이란, 法에는 어떤 허물이 있으며, 어떠한 功德이 있는가를 바르게 생각하는 것을 말하고, 修習力이란 그 法을 반연으로 해서 마음속에 觀行을 짓고, 마음을 그 法과 화합시켜 하나로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世親이 二種力을 說하고 있음에 비해

 

「離世間品」에서는 ① 直心力 ② 深心力 ③ 方便力 ④ 智慧力 ⑤ 願力 ⑥ 行力 ⑦ 乘力 ⑧ 遊戱神通力 ⑨ 菩提力 ⑩ 轉法輪力 등의 十種의 힘(力)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 이 力波羅蜜을 성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行은 무엇인가.

그것은 보살의 十行 중 第九 善法行으로 볼 수 있다. 善法行位의 보살은 열가지의 몸(十種身)을 성취한 후 다음과 같은 열가지의 실천행을 한다고 한다.

① 모든 중생의 입이 된다.

② 일체 중생의 救護者가 된다.

③ 일체 중생의 귀의처가 된다.

④ 일체 중생의 길잡이가 된다.

⑤ 일체 중생의 스승이 된다.

⑥ 일체 중생의 등불(燈)이 된다.

⑦ 일체 중생의 빛(明)이 된다.

⑧ 일체 중생의 횃분(炬)이 된다.

⑨ 일체 중생의 광명(光)이 된다.

⑩ 일체 중생의 나아가는 길의 등불(燈)이 된다.

이상의 열가지 행을 실천하는 것이 보살 마하살의 善法行이다. 다시 말하면 구체적인 力波羅蜜行이 되는 것이다.

 

(10) 淸淨智波羅蜜行

「十地品」에서는 모든 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說할 수 있는 지혜로 해석하고 있고, 「離世間品」에서는 명칭을 法波羅蜜이라 부르고 있는데 일체의 法을 攝取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明法品」에서는 한순간에 중생의 마음과 그 마음의 활동작용을 모두 알며, 중생들이 希望하는 바를 알고, 모든 法의 진실을 알며, 부처님의 깊은 지혜의 힘을 알고 일체 法界의 문을 다 아는 것, 이것을 淸淨智波羅蜜이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결국『華嚴經』에서 말하는 淸淨智波羅蜜이란 사물의 實相을 실상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 또는 중생들의 마음을 모두 파악해서 알 수 있고, 그 마음의 작용까지도 모두 알 수 있으며, 나아가서 如來의 지혜의 힘이 얼마나 깊고 큰 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지혜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와 같은 智의 종류를「十行品」에서는 다음과 같이 열 가지로 설하고 있다.

 

① 是處非處智

② 衆生未來現在一切業報智

③ 衆生諸根具足不具足智

④ 衆生種種性智

⑤ 衆生種種欲智

⑥ 衆生一切至處道智

⑦ 一切禪定解脫三昧正受垢淨起時非時轉智

⑧ 過去一切世界成壞智

⑨ 無障礙天眼智

⑩ 漏盡智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 이상과 같은 十種智, 즉 淸淨智波羅蜜을 성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實踐行은 무엇인가.

 

이 智波羅蜜에 해당하는 것으로 十行位의 第十 眞實行이 있는데, 法藏은 이 眞實行의 體性과 業用에 대해서『探玄記』권6에서

體性은, 後得智의 (作)用을 性으로 삼고, 또 大悲等을 그 性으로 한다. 業用이란,「梁攝論』에 의하면 生死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 이 智의 (作)用으로서, 凡夫와 聖人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 이 智의 功德이다.

라 說하고 있다. 眞實行, 즉 智波羅蜜行은 後得智의 作用과 衆生 救濟의 同體大悲를 그 본성으로 하며, 그 智波羅蜜行은 生死에도 涅槃에도 집착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凡夫와 聖人을 이익되게 하는 行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華嚴經』의 十波羅蜜에는 第六 般若波羅蜜과 第十 智波羅蜜이 있다. 그러므로 智波羅蜜이 두 번 겹치는 듯한 감이 든다. 그러나 이 두가지 智의 내용은 서로 다르다.

 

다시 말하면 第六 般若波羅蜜은 無分別智로 自受用智라면, 第十 智波羅蜜은 後得智로 衆生救濟의 他受用智라 할 수 있다. 이것을 十智에 대비해 보면, 第六 般若波羅蜜은 十地중 第六 現前地에 해당하며, 第十 智波羅蜜은 第十 法雲地에 해당하는데, 現前地에서는 般若智가 앞에 나타나며, 法雲地에서는 般若智를 바탕으로 해서 同體의 大悲가 나타나는 단계다. 그러므로 十波羅蜜중 第六 般若波羅蜜은 주관과 객관의 相을 벗어나 평등하게 작용하는 無分別智라 볼 수 있고, 第十 智波羅蜜은 無分別智보다도 후에 얻어지는 衆生 救濟의 後得智라 할 수 있다.

이 後得智를 얻을 수 있는 智波羅蜜行을 十行 중 第十 眞實行位의 보살은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十行品」에 의하면

若未度此等先成正覺是所不應 我當滿足大願然後成佛 令一切衆生志求菩提究竟無餘涅槃何以故 非衆生請我發菩提心行菩薩行 我自發心普爲衆生 欲令究竟得一切種智

라고 說하고 있다. 즉 眞實行位의 菩薩은, 일체의 중생이 菩提를 구하여 成佛하기 전에는 결코 成佛하지 않겠다고 常念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同體의 大悲行이며 淸淨智波羅蜜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보살의 淸淨十波羅蜜의 名稱과 定義 그리고 種類 및 구체적인 行에 관해 주로 『華嚴經』의 經文에 依해서 살펴 보았다. 이 波羅蜜行은 菩薩萬行의 要體며 諸佛智에 들어가는 根本行이라 할 수 있다.

 

 

 

Ⅳ. 결어

 

종교에 있어서의 실천행은 강을 건너는 뗏목이나 지붕에 오르는 사다리와 같다.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실천행은 계율이라고 할 수 있다. 자력교, 타력교를 막론하고 계율이 없는 종교는 없다.

그런데 자력교, 그 중에서도 불교에는 참으로 다양한 실천행이 제시되고 있다. 왕생극락에는 칭명염불행이, 즉신성불에는 주력행이, 견성성불에는 좌선행이 제시되고 있다. 이 밖에도 불교의 실천행으로써 팔정도행, 사섭법행, 육바라밀행 등이 있다.

불교의 경전 중에도 화엄경은 자력 실천행을 설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이라 할 수 있다. 화엄경을 문수경과 보현경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보현경이란 보살의 만행을 설하는 경이라는 뜻이라. 화엄경의 보살의 만행으로써 염불과 보현행원과 청정십바라밀행을 들 수 있는데, 화엄경에서의 염불은 그 대부분이 염불, 염법, 염승과 같은 뜻으로써 憶念 내지 관념의 뜻으로 설해지고 있어 미타정토교학에서의 칭명염불과는 다르다. 화엄경에 설해지고 있는 미타정토 사상적인 어구들, 예를 들면 念佛, 念佛三昧, 往生, 極樂世界, 淨土, 無量寺, 無量共과 같은 어구들은 그 대부분이 觀念, 華嚴淨土, 法身共明의 뜻으로 설해지고 있다.

미타정토 교학적인 사상과 보현행원이 화엄경에 설해지고는 있으나 그것은 사십화엄경에만 설해지고 있는 것으로서 대본화엄경에는 설해지고 있지 않다.

본고에서는 1. 화엄교가의 정토관과 2. 사십화엄경이 아닌 대본화엄경에 나타난 실천행만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화엄교가들은 미타정교학적인 교설을 말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열자를 위한 방편설 내지 미타와 자나의 불이 내지, 화장과 극락의 무이의 의미로 설하고 있다. 단 중국의 지엄으로부터 신라의 의상등에 이르러 미타 정토교학적인 사상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화엄경에 나타난 실천행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염원행과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위 보살의 실천행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그것들은 종합적으로 묶으면 청정십바라밀행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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