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의 향기 ♣>/♧ 고전의 향기 ♧

관례(冠禮)의 전통과 절차

화엄행 2009. 10. 20. 20:41

관례(冠禮)

  관례는 원래 소년이 처음으로 어른의 의복을 입고 관(冠)을 써서 성인(成人)이 되는 의식(儀式)으로 아이에게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서 자부(自負)와 책임(責任)을 갖게 하는 갓(冠巾)을 씌우는 의식이다. 갓을 머리에 얹음으로써 어른임을 표시한다. 관으로는 복건(복巾), 초립(草笠), 사모(紗帽), 탕건 등의 모자가 쓰였던 것이다.
  관례가 행해지기 전까지는 동자(童子)이지만 이 관례를 치르고 나면 어엿한 어른으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어른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결혼도 이 후에라야 할 수 있다. 성인이 되면 거기에 따르는 권리가 부여되지만 또 책임도 지워진다는 사실을 당사자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관례의 본 뜻이다.
  관례란 중국의 영향을 받은 의식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있어왔는지 확실하지는 않으나 문헌상으로는 고려 광종(光宗) 16년에 왕자에게 원복례(元服禮)가 행하여졌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부터 행하여 졌다고 보고 있으며 관례가 없어진 것은 개화기 이후 근세의 일이라고 한다.
  관례를 받는 사람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른이 된 시기, 즉 생리적인 변화기, 대체로 15∼20세 사이에 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조 시대 이후에는 10살 전후에 관례를 행하였는데 이것은 조혼(早婚)의 풍습에 따라 자연적으로 관례도 빨리 베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관례는 빈(賓, 주례자)의 주관하에 거행되며 이 때의 주 의식(主儀式)은 삼가례(三加禮)이다. 초가(初加), 재가(再加), 삼가(三加)가 그것이다.
⑴ 초가에서는 관례를 받는 사람의 쌍상투를 합해서 쪽지고 망건에 관을 씌우고 삼규삼(三 衫)을 벗고 심의(深衣)를 입힌다.
⑵ 재가에서는 초가에서 쓴 관건(冠巾)을 벗기고 사모(紗帽)를 씌우고 심의 대신에 조삼(早衫)에 가죽띠(革帶)를 매고 계혜(繫鞋)를 신게 한다.
⑶ 삼가에서는 복두( 頭)를 씌우고 난삼( 衫)에 띠를 띠고 가죽신을 신긴다. 이 세의식은 일정한 격식에 따라 엄숙하게 행해지며 그 의식은 엄숙하고 그 때마다 빈은 축사를 낭독한다. 그 축사의 내용은「오늘 좋은 때를 맞아 관례를 행하니 오늘부터는 어린 뜻을 버리고 순조롭게 덕(德)을 이룩하여 오래도록 수(壽)하고 많은 복을 받으며 잘 살라」는 뜻이다. 지금껏 아이 취급을 받다가 관례날에 예복을 갖추고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그 마을에서는 가장 학덕(學德)이 있다고 알려진 어른에게서 이와 같은 내용의 축사를 듣고나면 마음에 다짐하는 바가 달라진다고 한다. 또 이 때 주례자는 관례를 치룬자에게 자(字)를 지어 주는데 이 때부터 남들이 자를 부르고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삼가례가 끝나면 사당에 가서 고(告)하고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관례의 절차는 끝난다. 그러나 부모가 기년(朞年) 이상의 상중(喪中)일 때에는 관례를 행하지 않는다.


계례( (비녀계) )

  옛날에는 여자도 혼인을 정하거나 나이 14세 이상이 되면 비록 혼인을 정하지 않았더라도 계례를 행한다. 계례란 비녀를 꽂는 의식이며 어머니가 주장을 한다. 주례에는 친척 중에서 어질고 예법에 밝은 부인으로 정해서 주례가 비녀를 꽂아 주면 방으로 가서 배자(背子)를 입는다.
  준비는 관례 때와 같으나 옷으로는 배자를 준비한다. 배자는 소매가 없는 친의( 衣, 내의같이 속에 입는 옷)로서 빛깔이 있는 비단이나 명주로 만들고 길이는 치마 길이와 같게 한다. 차례로 설 때는 어머니가 주인의 자리에 선다. 이어서 제사를 지내고 자(字)를 부르고 나면 사당에 데리고 가서 참배를 시킨다. 끝으로 손님을 대접한다.

관례(冠禮)의 전통과 절차

  관례식은 전통사회에서 남자들의 성인의식으로 서양의 성년식(成年式)과 같다. 관례를 치르고 나면 어엿한 어른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어른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고 책임도 무거워진다.
  우리나라의 관례의식은 중국 가례(家禮)의 유입과 더불어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전의 성인의식 비슷한 신라시대의 원화(源花)나 화랑제도가 있었고, 고려사에는 광종, 예종, 의종때에 왕태자의 관례를 행한 기록이 보인다. 이로보아 고려왕실에서도 유교적 관례를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에서는 예서를 따라 관례를 행하였지만, 대부분의 경우 예서보다 간소하게 행하였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1894년 갑오경장 이후 단발령을 내려 머리를 깍았기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관례는 사라지게 되었다.
  의식의 절차는 택일(擇日) - 준비 - 시가례(始加禮 혹은 初加禮) - 재가례(再加禮) - 삼가례(三加禮) - 초례(醮禮) - 자관자례(字冠者禮)의 순서이다.

1. 택일(擇日) : 가례(家禮)나 사례편람(四禮便覽)에 의하면, 남자는 15세에서 20세 사이에 관례를 행하였다. 이는 15세 이상이 되어야 예(禮)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조건은 부모가 기년(朞年) 이상의 상중이 아니어야 된다고 하였다. 즉, 조부모나 백숙부의 상은 기년상(朞年喪)이기 때문에 이런 친족의 상중에는 관례를 행할 수 없었다. 또한, 대공복(大功服)을 입는 상을 당해서 아직 장사를 지내지 않았으면 관례를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택일에 대하여는 좋은 날짜를 가려서 예를 행하되, 여의치 않으면 정월에서 날을 정하라고 되어있다. 그때를 놓치면 4월이나 7월 초하루에 하도록 되어 있다. 그 이유는 관을 쓰는 것이 인도(人道)의 출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준 비 : 관례일 3일 전에 주인은 사당에 고하는데, 이때 축문을 읽는다. 다음은 관례일 전에 빈을 청하는 절차이다. 관례에서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은 빈이다. 예서에는 종손의 친구 가운데 어질고 예법을 잘 아는 사람을 골라 빈으로 삼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관례일 하루 전에는 대청의 동북쪽에 휘장을 쳐서 관례를 올릴 장소를 마련한다. 관례일이 되면 진설(陳設)을 하며, 아침 일찍 관복(冠服)을 꺼내어 준비를 한다. 그뒤 주인 이하는 차례대로 서서 빈(賓)을 기다린다. 빈이 찬자(贊者)와 함께 도착하면 주인은 그를 맞이하여 방으로 안내한다.

3. 시가례(始加禮) : 처음 행하는 예를 시가례라고 한다. 시가례는 빈객이 관례자에게 읍을 하면서 시작된다. 관례자는 쌍계(雙 :쌍상투)를 하고 예복인 사규삼(四규衫)에 늑백(勒帛)이라는 띠를 두르고, 채리(彩履:무늬 있는 신)를 신고 자리에 나와 꿇어앉는다. 옆에 시중을 하는 찬자가 관례자의 머리를 빗겨 상투를 틀고 망건을 씌우면 주례가 치포관(緇布冠)을 들고 나와 관례자 앞에서 축사를 읽은 뒤, 치포관을 씌우고 계( )를 꽂는다. 이어 찬자가 관례자에게 띠를 둘러주면 관례자는 방으로 들어가 사규삼을 벗고 심의(深衣)를 입으며, 큰 띠를 두른 다음 그 위에 수(修:실로 된 흰 띠)를 더하고 검은 신을 신고 방에서 나와 남쪽을 보고 앉는다.

4. 재가례(再加禮) : 관례자가 정해진 장소에 앉아 있으면 빈객이 관례자 앞에 나아가 축사를 한다. 찬자는 치포관을 벗기고 빈객이 갓[笠子]을 씌운다. 이어 관례자는 방으로 들어가 심의를 벗고 조삼( 衫)과 혁대를 두르고 혜(鞋)를 신고 나온다.

5. 삼가례(三加禮) : 관례자가 정해진 자리에 꿇어앉아 있으면, 빈객이 나아가 축사를 하고, 찬자가 갓을 벗기면 빈객이 유건(儒巾)을 씌워준다. 관례자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조삼을 벗고 난삼( 衫)을 입으며, 혁대를 두르고 신을 신고 나온다.

6. 초례(初禮) : 술을 마시는 의례이다. 관례자가 정해진 자리에 남향을 하고 앉아 있으면, 빈객이 관례자 앞에 나아가 축사를 한다. 관례자가 두 번 절하고 술잔을 받으면, 빈객이 답례를 한다. 관례자가 상 앞으로 나아가 잔을 상위에 놓았다가 이것을 다시 들고 물러나 맛을 본 다음, 찬자에게 주고 빈객에게 두 번 절하면 빈객이 답례한다.

7. 자관자례(字冠者禮) : 관례자에게 자(字)를 지어주는 의례이다. 빈과 관례자가 마당으로 내려가서 빈이 관례자에게 자를 지어주고, 이어 자를 부를 때 축사를 한다. 관례자가 간단한 답사를 하고 절을 하면, 빈은 절을 받되 답례를 하지 않는다.
  이상으로 관례는 모두 끝났으나 예서(禮書)에 의하면, 주인이 관례자를 데리고 사당에 가서 조상에게 알리면서 고사(告辭)를 읽으면 관례자는 두 번 절한다. 그런 다음 친척들과 빈객에게 두 번 절한 뒤, 밖으로 나와 선생과 아버지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절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