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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의 시호, 묘호 구별은 어떻게 할까?

화엄행 2009. 10. 20. 20:31
조선시대 왕의 시호, 묘호 구별은 어떻게 할까?

조선시대의 왕은 사후에 자신이 살았던 일생을 평가받는다. 시호(諡號)와 묘호(廟號)가 그것이다. 시호는 살았을 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올리는 칭호이며, 묘호는 왕의 일생을 평가하여 정하며 종묘에서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태조(太祖), 정종(定宗), 태종(太宗), 세종(世宗) ... 등의 칭호가 묘호(廟號)다. 묘호의 뒤에는 조(祖)와 종(宗)이 붙는데, 보통 조는 공(功)이 탁월한 왕에게 붙이고, 이에 비해 덕(德)이 출중한 왕에게는 종(宗)을 붙인다.
대체로 나라를 세웠거나 변란에서 백성을 구한 굵직한 업적이 있는 왕이나 피바람을 일으킨 왕들이 조(祖)가 된다고 할 수 있다. 태조(太祖) 이성계를 비롯하여 세조(世祖), 선조(宣祖), 인조(仁祖), 영조(英祖), 정조(正祖), 순조(純祖) 등이 그에 해당한다.
그리고, 앞선 왕의 치적을 이어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문물을 융성하게 한 왕은 대개 종(宗)자로 부른다.

「예기」의「공(功)이 있는 자는 조(祖) 되고, 덕(德)이 있는 자는 종(宗)이 된다」는 데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27 왕 가운데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등 7명만 조(祖)字를 썼다. 죽어서 왕으로 대접받지 못한 연산군과 광해군을 제외한 나머지 왕들은 모두 종(宗)을 쓴다.
태조는 나라를 처음 세웠기 때문에 조가 붙었다. 나머지 조 자 왕은 큰 국난을 극복했거나(선조, 인조), 반정을 통해 왕에 오른 경우(세조)이다. 영조, 정조, 순조는 숨지고 바로 종(宗)을 썼지만, 후에 조(祖)자로 바뀌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조(祖)와 종(宗)을 나누는 기준이 불투명해졌다.
조(祖)와 종(宗)은 원래 격에서 차별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祖)가 종(宗)보다 나은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바람에 이런 이름 바꾸기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심한 경우에는 이미 정한 묘호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선조의 경우 처음의 묘호는 선종이었다고 한다. 공보다는 덕이 앞선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허균과 이이첨이 주장하여 이를 선조로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커다란 공이 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또 중종의 경우는 연산군을 몰어낸 큰 공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여 중조로 하자는 주장이 인종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료들의 반대로 그냥 종을 붙이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폐위된 왕에게는 군(君)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왕으로서 조선시대 유교적 질서에서 크게 벗어난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른 군주에게 붙여졌다. 연산군과 광해군이 그들이다. 이들은 왕의 자격을 박탈당한 군주이기에 종묘상의 묘호도 없다.

살았을 때와 다르게 왕들에게 이런 이름을 만들어 붙이는 것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왕실 사당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쓰기 위해서이다. 이런 이름을 묘호(廟號)라고 부른다. 조와 종으로 죽은 왕을 부르는 것은 삼국시대에 신라 무열왕이 사용했고, 고려는 태조 왕건 이후 죽 사용하다가 원의 간섭으로 쓰지 못했다. 조선에서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칭원법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