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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朱子와 王陽明 및 丁若鏞의 大學說 小考 / 華嚴行 ◑

화엄행 2009. 3. 27. 20:04

2006/01/06 오 전 3:38

◐ 朱子와 王陽明 및 丁若鏞의 大學說 小考 / 華嚴行 ◑

 

朱子와 王陽明 및 丁若鏞의 大學說 小考

(三綱領과 八條目을 중심으로)

2002년 6월 20일 - 華嚴行 小考 


목 차

Ⅰ. 序論

Ⅱ. [大學]의 名稱解釋에 관한 3人의 比較

1. 朱子의 解釋

2. 王陽明의 解釋

⑴ 朱子와 王陽明의 心學的 比較 ⑵ 王陽明의 '大學'解釋

3. 丁若鏞의 解釋

Ⅲ. 三綱領과 八條目에 대한 3人의 解釋

1. 三綱領에 대한 3人의 比較 ⑴ 明明德 ⑵ 親民 ⑶ 止於至善

2. 八條目에 대한 3人의 比較

⑴ 朱子의 格物과 致知 ⑵ 王陽明의 格物과 致知

⑶ 朱子와 王陽明의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⑷ 丁若鏞의 六條目說

Ⅳ. 結論





★ 본 자료는 실생활의 실천을 강조한 유가의 논리를 {대학}이란 편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밝혀본 것입니다.   이 자료와 합께 불교의 수행원리와 어떻게 그 차이가 있는 가에 대한 해답은 인연있어 읽어주시는 님들의 판단으로 남겨둡니다.

★ 본 자료의 주석과 참고문헌은 본행의 부족함으로 인해 생략하였읍니다.






Ⅰ. 序論


[大學]은 儒學의 사상과 학문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낸

經書이다. [古本大學]은 본래 [禮記]에 들어 있었으나

宋代에 司馬光이 [大學廣義]를 지어서 독립시키고 程伊

川이 그것을 四書의 하나로 삼은 것에 뒤이어 朱子가

[大學章句]를 지어 章次를 새로이 하였다.
주자에 의하

면 [대학]은 본래 250자의 經1章과 1,546자의 傳10章으

로 구성한 것인데 [예기] [대학]에 있어서는 전체의 구

성이 혼란하게 되어 버린 데다 그 속에 또 字句나 文章의

顚倒와 탈락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朱子는 이

것을 철저하게 改正하여 본래의 면목으로 바꾼다고 하였

다.
즉 주자의 [대학장구]는 정이천이 [고본대학]에 錯

簡과 闕文이 있다고 하여 일부개정한 것을 주자가 다시

자기의 사상적 입장에 따라 대학경문의 위치를 바꾸고

또 格物致知의 補傳을 지어 大學全文을 經1장과 傳10장

으로 나눔으로써 [古本]의 면목을 改新한 것이다. 주자

가 정이천의 뜻을 계승하여 [대학장구]를 개신한 때부터

송대 이후 최근까지 [대학]의 闕落 여부와 章次에 대한

논란은 계속 있었다.



宋代에 象山이나 五峰은 주자적인 경전해석에 반대하고

독자적인 訓釋방법을 취하고 있으며, 明代에 내려와서는

이러한 시도가 더욱 표면화 되었다. 명대에 王陽明(수인,

1472-1528)은 대학경문에는 闕文과 錯簡이 없으며, 또 經

과 傳으로 나눌 것이 없다고 함으로써 [고본]을 존중하

고 주자의 설에 반대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晦齋 李彦迪을 비롯해 白湖 윤휴, 西溪

박세당, 星湖 李瀷, 茶山 丁若鏞 등이 새로운 견해를 표

명하였다. 특히 다산은 前人의 의견을 참작하여 [대학]

을 豫備帝王之學으로 규정하여 考證學的 방법을 토대로

대학의 경문을 實踐倫理學적 입장에서 硏討를 가해 집대

성함으로써 그의 독자적 論旨를 수립하였다. 다산은 주

자와는 다른 입장에서 대학을 이해하려고 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陽明과 맥락을 같이 하고는 있지만, 내용면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영향을 받았는지의 여부는 불분명

하다.



茶山은 경전 해석의 방법으로서 訓?的 實證을 중요시하

는 漢學 내지 淸朝 考證學的인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 다

산의 학문관은 객관적 사실을 분석적으로 인식하는 考證

的 내지 實證的인 태도를 학문의 기초적인 방법으로 중

요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實證의 방법을 통하여 實用의

 목적을 추구하는 데 특징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經學 체계에서도 고증학적인 방법을 도입하지만 청조 고

증학의 漢學風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가치질서의 해명에

관심과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經學은 그

자신의 시대 현실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인 實用的 요구

에 기반을 두고 경전을 해석하고, 아울러 새로 전래된 西

學의 과학적 사고나 신앙적 체계에서 받은 영향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實學的 經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을 수용하여 그의 大學觀을 논술한 것이 [大

學公議]이다. [대학공의]는 辛亥年(1791년 다산 30세)에

있었던 內閣月課親策에 대한 대책과 {熙政堂大學講義}

를 저본으로 하여 한가로운 康津流配地에서 탈고한 것으

로 [대학]의 註釋書이다.



본 고에서는 주자의 [대학장구]에서 설한 三綱領과 八條

目을 중심으로 하여 왕양명의 해석과 정약용[대학공의]

의 해석을 각각 비교적으로 알아보는 데 초점을 맞추어

전개하고자 한다.







Ⅱ. [大學]의 名稱解釋에 관한 3人의 比較


1. 朱子의 解釋



주자는 北宋代 당시의 學界의 폐단이던 好古欲速(; 높이

되는 것을 좋아하여 독서를 할 때에도 빨리 속성으로 학

문의 첩경을 구하고자 하였으며, 經典을 설함에 있어서

도 겸허하게 경전의 本意를 구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단지 경전 본문 밖에서 그 뜻을 구하려고 힘씀)

과 博雜務廣(; 이것 저것 폭넓게 익히고 여러 분야에 힘

씀)의 학문성향에 반대하여 '循序致精'(; 순서에 따라 정

밀하게 함)하기 위한 '下學上達'(; 아래의 일상적인 인간

의 일을 공부하여 위의 높고 심오한 이치까지 통달한다

는 의미)의 정신과 '博學守約'(; 학문으로 넓혀 주며 지키

고 단속한다는 의미)의 學文精神으로 수립하되었으며,

배우려는 자들을 교화하는데 그의 학문정신을 활용하였

다.



[大學]은 원래 [禮記]49편 중의 제 42편에 속한다. 그 명

칭에 대하여 古來로 異說이 있다. 하나는 [대학]을 治者

의 學이라하고 또 하나는 大人의 學이라고 해석하는 것

이다. 鄭玄은 [대학]의 명칭에 대하여 '名大學者 以其記

博學 可以爲政也'(대학이라 이름한 것은 박학으로서 위

정할 수 있음을 기록한 것이다.)라 하였으니 곧 [대학]을

修己治人之書로 보되 그 중에서도 治人쪽에 의미를 두어

治者의 學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와 반대로 朱子는 [大學章句]序에서 '大學之書 古之大

學 所以敎人之法也'(대학의 서는 옛날 태학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대학]이란 옛날 太

學敎科書名이된다. 또 '大學者 大人之學也'라 하여 小人

之學에 대한 大人之學의 뜻으로 해석하였다. 즉 夏殷周

三代에 이미 학교가 있어 나이에 따라 小學과 大學에 입

학시켰는데, 大學之書란 그때 대학에서 교육하는 법을

말한 것이요, 또한 대학이란 天子로부터 일반 庶民의 준

수한 맏아들에 이르기까지 입학하는 학교로서 그 교육내

용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으며 사람을 다스리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학의 발음도 '大舊音泰 今讀如

字'라 하여 글자대로 대학으로 읽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와같은 주자의 '대학'에 대한 해석을 세가지로 나누어

본다면, 첫째 학교로서 '小學'에 대칭되는 고대 중국에서

고등교육을 실시하던 최고 학부인 교육기관으로서의 '大

學'이라는 점이다. 둘째 書名으로서 유교적인 실천철학

의 방법을 제시한 책이며 德治主義의 槪論書라 할 수 있

다. 셋째 학문의 한 영역으로 '大人'이란 德을 갖춘 사람

을 말하며, 이는 '君子'나 '聖人'과 같은 의미의 사람으로

有德者는 동시에 有位者(권력을 갖은 자)이기도 하며, 결

국 이러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治國爲民의 자리에 나아

갈 수 있는 자질을 갖춘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학문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와같이 주자의 '대학'해석에서 '下學上達'과 '博學守

約'의 學文精神을 통해 治國爲民의 理想政治를 실현하는

데 있음을 볼 수 있다.







2. 王陽明의 解釋


⑴ 朱子와 王陽明의 心學的 比較



일반적으로 新儒學은 두 주요 학파로 분류해 왔다. 보통

程朱學派와 陸王學派로 호칭된다. 이 두 학파의 가장 큰

차이점은 心性論에 있는데, '心卽理'와 '性卽理'의 두 명

제로 요약할 수 있다. 따라서 양자가 모두 표방하는 心學

의 각도에서 대별하면, 朱子는 '性卽理' 즉 '性只是理'라

하여 性만이 理라 했으므로 理는 心의 本質이다. 즉 그의

리는 사물을 초월해 있는 原理로서 사물에 앞서 獨存하

는 것이다. 그래서 만물을 떠나서도 그 리는 저마다 존재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물마다 존재하는 법칙을 '分殊

의 理', 개개의 리 즉 본질을 통괄하는 통일적인 본질을

즉 '理一'이라 한다. 이처럼 主觀的 心과 客觀的 理는 분

화되는 二元的 입장이 성립된다. 즉 心에 대하여 物이 있

는 것이다. 그러므로 事事物物에 있는 개별적 본질을 객

관적으로 구명한다. 따라서 그의 기본입장은 客觀的 外

向的 二元的이된다.



한편 王陽明은 超越的 絶對的인 哲學作業이 아니라 늘

일정한 상황에 얽힌 인간의 삶을 主觀的으로 파악한다.

주자와는 달리 心이 있으므로 物도 있다는 것이다. 理란

心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心안에 있다고 하였다. 즉 理란

사물에서 구할 객관적이치가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知覺

判斷 實行하는 心的主體인 理이다. 그래서 '心卽道 道卽


天 知心卽 知天' '性一而已 自己形體也 謂之天. 主宰也

謂之帝. 流行也 謂之命. 賦於人也 謂之性. 主於身也 謂之

心.'이라 하고, '聖人之道 吾性自足 何之求理於事物者 誤

也'라 했다. 이것은 陸象山의 '心 一心也. 理 一理也. 至

當歸一 精義無二 此心此理 實不容有二'라 한 것과 맥락

이 통한다. 이처럼 陽明의 기본입장은 內向的 主觀的이

된다.



이상의 양자의 차이를 理氣 心性의 측면이 아닌 認識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朱子는 인식의 성립은 주관 객관의

二元的으로 철저히 분석해서 조명하는 입장이므로 主知

主義가 된다. 陽明에 있어서 인식의 성립은 주관과 객과

이 모두 心으로 통일된다고 하는 一元論의 입장을 취하

므로 誠意 正心 修身 등 實踐的인 倫理의 문제로 치중하

는 反主知主義의 입장이 됨을 알 수 있다.






⑵ 王陽明의 '大學'解釋


위와같이 주자의 사상은 왕양명 사상의 형성에 중심적인

역할을하여 왕양명은 朱子學을 연원으로 하여 이를 따르

면서 새로이 자기의 학설을 수립하기에 이른다. 왕양명

이 학문적으로 주자의 생각을 따르거나 반대하거나 간에

그는 주자학의 세계에 젖어있었던 것이다. 왕양명이 한

평생동안 수립한 학설의 근본을 살펴보면 그의 학문이

[대학]에 모두 응집되어 있다. [대학]은 그의 사상을 성

립시킨 책이기도 하다.



왕양명은 '대학'을 '大人의 學'이라고 여겼다. 왕양명은

'대학'에 대하여 주자와 字意 및 그 의의에 있어서도 서

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주자가 '大人'을 '정치를 장

악하고 있는 나라의 임금'으로 보았고, 왕양명은 '대인'을

'修養이 극치에 도달한 聖人'으로 보았다. 그리고 '대

학'은 '대인'의 학문에 어떻게 하면 도달할 수 있는지를

설명한 학문이며, '大人之學'이란 수양으로 聖人의 학문

세계를 이룩하는 것으로 그 실질적인 것은 사람이 능히

자기의 明德을 밝히는 데에 있다고 보았다. 왕양명은 人

心을 仁으로 보고, 이 仁을 기초로 삼는다면 천지만물이

일체가 되는 것을 보는 것이 '大人'이며, 만약 욕망에 동

요되거나 私慾에 가리워져서 너와 나를 나누게 되면 이

인심은 나뉘고 막히며 좁아지고 더러워지니 이는 곧 '小

人'이라 보았다. 즉 [대학]은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明明

德하여 천지만물이 一體인 본래의 참모습을 회복하는가

를 언급한 修養에 관한 책이라고 보았다.






3. 丁若鏞의 解釋



茶山은 주자가 [대학]을 大人之學의 敎本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자신이 撰한 小學과 대비를 이루려고 하는 견해

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다산

은 {예기} {춘추좌씨전} {서경} {주례} {주역} 등을 인

용하여 {대학}의 명칭에 관하여 광범위하게 논증하고 있

다.



첫째 대학이란 國學이며 帝王과 卿大夫의 胄子들을 가르

치는 곳이므로 大學의 道는 胄子들을 가르치는 道라고

주장한다.



둘째 주자가 小學과 대비되는 大人之學으로 이해한 것은

잘못인데, 왜냐하면 朱子의 大人이란 冠을 쓴 成人을 일

컫고 있지만 관을 써서 성인된 자를 옛날에 대인이라 호

칭하지 않았다. 옛날에 대인이라 호칭한 예는 ① 지위가

높은 사람 ②인격이 높은 사람 ③ 父親 ④ 몸집인 큰 사

람, 이 네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누구도 대인이라 부

를 수 없다고 보았다.



셋째 발음상에 있어서 大는 泰로 발음되어야 옳은 것인

데 大로 발음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예기}

[학기편]에 의하면 '太學의 道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說

服시키고 먼데 있는 사람을 안아 들인다.' '태학의 敎는

時敎로 반드시 正業이 있는 것이다.' '태학의 법은 감정

이 나타나기 전을 단속하는 것이다.' 따라서{예기}에서

는 太로 읽고 대학에서는 大로 읽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

이다.



넷째 {대학}이라는 편의 이름이 {예기}의 [王藻編]이나

[檀弓編]처럼 내용이 아닌 그 편 첫머리 글자로 이름을

삼은 것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이것을 太로 읽어야 할 것

이다. 여러 廟 가운데에서 가장 존귀한 것을 '太廟'라 하

고...... 學宮 가운데 가장 존귀한 학궁을 '太學'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저기서는 太라 읽고 여기서는 大라 읽는

다면 공정한 명칭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섯째 朱子가 [대학장구]序에서 대학이란 책을 가지고

태학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이라고 하였는데 대학은 책

이 아니라 學宮으로서 태학에서 생활하면서 교육받던 道

인 것이다.



여섯째 太學은 맏아들을 가르치는 학부이다. 천자의 맏

아들과 그밖의 아들들도 모두 가르쳤지만 三公과 諸侯이

하는 그의 맏아들로서 세대를 이어받을 자만이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기록이 [王制編]과 [書經大傳]에 나

타나 있다. 따라서 하찮은 집안과 천한 종족들은 옛날 법

에도 원래 司徒에 속해 있었고 대학과는 관계가 없었다

는 것이다.




이와같이 다산은 대학의 명칭을 발음상의 문제, 내용상

의 문제, 교육제도상의 문제, 용어상의 문제등의 상호관

련성 속에서 博證하여 太學이라 하는 것이 옳다는 견해


를 분명히 하였다. 따라서 대학의 道는 胄子의 道를 가르

킨 것이지 만백성의 도를 가르킨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당시 대학의 도가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치는 것인가를

밝혔다. 즉 대학의 도는 胄子의 도로서 다음 세대를 이어

맡을 왕공 귀족들의 맏아들에게 治國 平天下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볼 때 대학의 도를 萬

人의 窮理 正心 修己 治人之道로 일반화하는 朱子의 입

장과 胄子의 治國 平天下의 道라고 특수화 하는 茶山의

입장과의 차이는 兩人의 대학에 있어서의 갈림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에 있어서는 貴賤이 없으니 이

經 [대학]에 의하여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

라는 말을 茶山은 잊지 않는다.







Ⅲ. 三綱領과 八條目에 관한 3人의 解釋



朱子가 大學 全文을 經 1장과 傳 10장으로 나누고 다시

經1장을 三綱領과 八條目으로 나누어 이를 대학의 뼈대

가 되는 總論이라 하였다. 삼강령은 경1장 첫 절의 '大學

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新民)하며 在止於至善'이라

고 한 明明德 親民 止於至善을 가르키고, 八條目은 그 중

간의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에 나오는 格物 致知 誠

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를 가르킨다. 본 장에서는

이것을 위주로 하여 朱子와 王陽明 및 丁若鏞의 해석을

비교하고자 한다.







1. 三綱領에 대한 3人의 比較



⑴ 明明德



明明德은 三綱領 가운데 第一綱領으로서 이에 대한 이해

는 大學 전체를 해석하는데 관건이 된다.






① 朱子


明明德에 대해 朱子는 '明德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

으로 虛靈하고 어둡지 않아서 重理를 갖추고 있고 萬事

에 응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이 '虛靈不昧'는 明德의 體

이며 곧 명덕의 本質이다. 그리고 '具重理而應萬事'는 명

덕의 用이다. 이러한 이유는 人과 物이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 性인데 이 性을 보려면 理가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性은 직접 사람의 행동을 지휘하지 않고 身을

主宰하는 것이 心이다. 朱子는 心性이 스스로 분별이 있

다고 인식을 하고 '靈의 바탕에 있는 것이 心이요 실제로

바탕에 있는 것이 곧 性이니, 性은 理이며 心은 곧 용기

에 꽉 차게 쌓아 갖춰서 실어놓은 것을 나누고 베풀어 쓰

기 시작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에서 理이다. 이로써 주

자의 明德은 心과 性 두가지를 모두 통합한다. 한 번 명

덕의 端緖를 만나면 마땅히 그 發하는 바에 따라서 마침

내 밝게 되어 그 본래의 참모습을 회복하게 된다.



그 發하는 바에 따라서 마침내 밝게 되는 과정에는 두가

지 주의 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明德의 修養을 명백히 하여 '모두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자기 스스로의 공부이며 남의 손

을 빌릴 수가 없는 것이다.



둘째 '이 하늘의 明命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이는 때에

관계없이 꾸준히 힘쓰는 것으로 그렇게 하면 '하늘이 나

에게 주어서 내가 덕으로 삼은 것'이 언제나 밝지 않음이

없다. 이와 같이 명명덕은 두가지 방면의 공부를 가지고

있다. 첫째 '自明己德'이고 둘째 '明天下人之德'이다. 自

明己德은 곧 修己하는 것으로, 이것은 일종의 개인의 修

養工夫이다. 그리고 明天下人之德은 곧 백성을 새롭게

하는 新民의 工夫인 것이다.






② 王陽明


왕양명은 心을 '心之虛靈明覺 卽所謂本然之良知也'라 하

고 '虛靈不怡 重理具而萬事出. 心外無理 心外無事'라 했

다. 즉 明德은 心을 가리키므로 주자와 같이 '虛靈不

昧'하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그러나 陽明의 '重理具'(중

리가 갖추어져 있다)와 주자의 '具重理'(중리를 갖추고 있

다)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心卽重理라 할 수 있다면 후

자는 心有重理라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마음자체가 理

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음이 理를 가지고 있다는 말도 되

므로 양자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드러난다.




또한 주자의 '應萬事'(마음이 만사에서나온다)와 양명의

'萬事出'(마음에서 만사가 나온다)란 말에서도 전자는 心

이 萬事와 분리되어 二元的일 뿐 아니라 受動的이며 心

은 事事物物에 順應 또는 對應하여 그 이치를 궁구해 나

가는 것일뿐 自發性을 갖지 못하는 것이 된다. 이에 반하

여 후자는 심과 만사가 一元的인 것은 물론 심에서 사사

물물이 나오기 때문에 心의 能動性 自發性 및 創造性까

지 예상할 수 있다. 이상의 논지에서 明德은 心이라 했으

므로 朱子의 心은 둘로 갈라진 認識心이고, 陽明의 心은

孟子와 같은 本心을 말한다.







③ 丁若鏞


주자가 心性論的으로 해석한데 반해서 茶山은 實際的이

고 倫理的인 德目인 孝 弟 慈로 해석한다. 이 이유는 大

學經文에 근거한 해석으로 周禮에서 大司樂은 中 和 祇

庸 孝 友의 六德目으로써 胄子를 가르쳤고 孟子도 學은

人倫을 밝히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였으며 [堯典]에서

는 父義 母慈 兄友 弟恭 子孝의 五敎를 폈다는 典據를 들

어서 太學에서 胄子들을 가르치던 덕목은 孝悌慈의 三德

으로 총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실제적인 윤리를 강조하는 입장에서 茶山은

朱子의 明明德에 대한 心性論的인 해석을 비판하고 있

다. 즉 朱子의 明德 해석에 등장하는 虛靈不昧 心統性情

理氣明昏 등의 개념은 태학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제목이

아니고 태학에서 교육을 한 제목은 孝弟慈 뿐이라는 것

이다. 주자의 해석은 대학경문의 본지에 어긋나는 것이

며 불교의 坐禪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다산에

게 있어서는 명명덕은 인륜을 밝히는 것이고, 이 인륜의

기본적인 덕목이 孝弟慈이므로 明德은 실제 행위의 실천

과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心의 本體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⑵ 親民


① 朱子


朱子는 '親當作新'(親은 마땅히 新으로 보아야 한다)고 한

程伊川의 설에 따라 新民이라 하고 해석하기를, '新者 革

其舊之謂也. 言 旣自明其明德 又當推以及人 使之亦有以

去其舊染之汚也'(新이란 옛 것을 고침을 이른다. 新民이

란 이미 스스로 그 明德을 밝혔으며, 또 마땅히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쳐서, 그로하여금 또한 옛날에 물든 더러

움을 제거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즉 하늘

에서 얻은 마음속의 光明正大한 인간의 본성인 明德을

밝히고 나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萬人共有의 명덕

을 밝혀 舊染之汚를 버리게 하는 것이 백성을 새롭게 하

는 소위 新民이라는 것이다.







② 王陽明


양명은 親民 그대로 백성을 친한다고 읽는데 , 그것은 명

명덕의 해석에서 직선적으로 나온다. 양명의 명덕은 本

心, 즉 良知이므로 명명덕은 致良知라 말할 수 있다. 따

라서 그는 '明明德은 천지만물 일체의 體를 세우는 것이

며, 親民은 천지만물 일체의 用을 達하는 것이다'고 한

다. 또한 " '君子賢其賢而親其親'과 '如保赤子' '民之所好

好之 民之所惡惡之'라고 한 것은 모두 親이란 글자 그대

로 해야만 뜻이 서로 연관된다. 孔子가 {논어}[憲問]에

서 '修己以安百姓'이라고 한 것도 修己는 明明德이고, 安

百姓은 백성을 친하는 것에 다를 것이없다. 백성을 친한

다고 말하면 가르치는 것과 기른다는 뜻을 겸하게 되지

만, 새롭게 한다고 하면 뜻이 한정되는 것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고 [傳習錄]上에서 말하고 있다.







③ 丁若鏞


明德을 孝弟慈로 보는 茶山은 王陽明의 '親字不誤'설에

따라 '親民'이라하고, 親民은 윗사람이 孝弟慈의 덕을 실

천함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효제자하는 기풍을 일으키

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산은 程伊川의 '親當作新'이라는

설에 반대하고 親자가 틀리지 않았다는 왕양명의 설을

긍정하면서도 실제로는 孝弟慈의 三目에 근거하지 않고

親이니 新이라 하는 주장을 만족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親과 新 두 글자는 서로 통용할 수 있는 뜻을 가

지고 있지만 大學之道는 親民하는 데 있으므로 新으로

고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다. 즉 明明德과 親民은 다같

이 治者의 孝弟慈의 실천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⑶ 止於至善



① 朱子와 王陽明


주자는 " '止'란 반드시 이에 이르러 옮기지 않는 뜻이요,

'至善'이란 사리의 당연한 極(표준)이다. 그리고 '止於至

善'은 明明德과 親民이 다 마땅히 至善 (지극한 선)의 경

지에 멈추어 옮기지 않음을 말한 것이니, 반드시 天理의

極을 다함이 있고, 一毫라도 人慾의 사사로움이 없는 것

이다."라고 하였다.



주자에 의하면 至善은 事理當然의 極으로서 인간의 행위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規範原理가 된다. 그러므로

明明德과 親民이 다 그와 같은 至善을 실천하는 것이 止

於至善이다.



한편 왕양명은 '格物是止至善之功, 旣知至善 卽知格物

矣'라 하였듯이 格物致知에서 살피고자 한다.







② 丁若鏞


다산은 至善을 인륜의 至德으로서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실천적인 규범일 따름이다. 또 止於至善은 經에서 말한

윗사람 자신이 至於孝, 至於敬, 至於信, 至於慈하는 自修

요 , 백성들이 止於至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다산에 의하면 '止於至善'은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지 남을 다스려서 至善에 머물게 하는것인 新民이

아니며 治者 자신이 이미 至善에 이르면 백성들은 그에

따라 저절로 孝弟慈의 도를 일으켜 至善에 이르게 된다

는 것이다.



따라서 다산은 治心繕性(마음을 다스리고 본성을 바로

잡는 것)하는 일은 진실로 요긴한 일이며, 心性의 論이

비록 高妙하고 精微하다 하더라도 대학의 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예전 성인들도 治心繕性

을 하였지만 그것은 매양 일을 실천함에 있었고, 일을 실

천하는 것은 人倫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인륜을 떠나서 마음만으로 지극한 善에 그치기를 요구한

다는 것은 예전 聖人들의 본래의 방법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본 중에서 丁若鏞의 해석을 중심으로 三綱領을

정리한다면, 治者 자신이 人倫關係에 있어서 孝弟慈의

德을 밝히는 것을 明明德이라 하고 이를 백성들이 그대

로 본받아 孝弟慈의 도리로서 親愛하는 것을 親民이라

하였으며 治者가 지극한 정성으로 孝弟慈의 德을 실천하

여 지극한 善에 이르는 것을 止於至善이라 하였다.








2. 八條目에 대한 3人의 比較


⑴ 朱子의 格物과 致知



朱子가 [古本]을 개편하여 {大學章句}를 편집함에 있어

서 소위 格致補傳이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 넣음으로써

그의 格物致知說이 주자 학설의 중요한 부분으로 정립되

었다. 일찍부터 주자의 格致補傳의 필요성 여부 그리고

그의 격물치지설에 대하여 역대 諸儒의 논란이 많았다.

이들 諸儒들 가운데 주자의 格致補傳에 관하여 비판적인

입장에 서는 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格物에 대한 추

상적인 해석보다는 고대의 太學에서 교육의 근본취지를

강조하여 誠意, 正心, 修身 등 실제적인 윤리실천 문제와

의 연관 아래에서 대학을 볼 것을 강조한다.



주자의 {대학장구}에 의하면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

身의 五條는 明明德의 일이고 齊家, 治國, 平天下의 三條

는 親民의 일이다. 즉 八條目의 次序는 格物, 致知하여

誠意하고 誠意하여 正心하고 正心하여 修身하며 修身하

여 齊家 治國 平天下를 이룬다는 것이다. 따라서 팔조목

중에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인간의 앎을 이룬다고

한 格物致知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주자는 認識主體인 知를 밝히려 하면, 인식대상인 사물

에 나아가 그 관계속에서 밝혀야 한다고 하였다. 인간에

게는 선천적 靈知가 있고 사물에는 理致가 내재하여 主

客이 분리하지 않고 만나서 작용할 때에 인식이 성립된

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갑자기 이루어 지는 것이 아

니라 오랜 노력을 통하여 그 사람의 力量에 따라 성취되

어 지는 것으로 어느 날을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眞

理란 인간의 先天的 理性과 外界의 객관적 사물의 이치

와의 貫通을 뜻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주자에 있어

서는 格物致知에 의해서 至善의 원리는 밝혀지게 되므로

격물치지를 이룬 후에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

天下 할 수 있게 된다.
즉 朱子는 客觀的 知識推究를 중

요시하는 主知主義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⑵ 王陽明의 格物과 致知



왕양명은 '誠意的工夫, 只是格物致知'라고 하여 格物은

바로 誠意正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古本大學]

을 그대로 취하여, 즉 誠意 正心 修身 등 실천적인 윤리

에 입각함으로써 주자에 비하면 反主知主義이며 實踐的

이라고 할 수 있다.



왕양명은 내 마음이 없다면 인식의 성립이 있을 수 없다

고 한다. 따라서 그의 物은 弟子 徐愛의 말처럼 사물의

이치가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

래서 '身之主宰便是心 心之所在便是意 意之本體便是知

意之所在便是物. 如意在於事親 卽事親便是一物 意在於

事君 卽事君便是一物'이라 했다. 즉 意가 소재한 것이 物

이라 했으므로 그에 있어서는 物은 意가 된다. 따라서 양

명은 주자처럼 物에 일일이 나아가(卽物) 이치를 궁구하

는 것이 아니라, 意가 진실되어지면(성의) 되기 때문에

'格者 正也 正其不正 以歸於正也'라 한다. 다시말해 陽明

의 格物은 性 心 意 知 物이 一體임을 회복하는 것이고

이 회복의 구체적인 방법은 바로 意의 不正을 바로 잡는

것이다. 즉 陽明의 格物은 主意主義라고 할 수 있다.



한편 知는 '知是心之本體' '良知者 心之本體'라 했으므로

바로 良知이다. 이 良知란 말은 孟子의 '人之所不學而能

者 其良能也 所不慮而知者 其良知也'에 유래된 것이다.

즉 良知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진 고유한 본성이요, 배

우지 않고도 본래 가지고 있는 知性이요, 곧 天理이다.

따라서 陽明에 있어 致知는 致良知가 된다. 양명의 致知

는 내재하는 본성인 良知를 그대로 발휘하기만하면 되는

것으로, 주자와 같이 객관적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

과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양명은 '致吾心之

良知者 致知也'라 한다. 따라서 그의 주자에 대한 비판은

자신의 良知學을 완성하는 길이 되었다.







⑶ 朱子와 王陽明의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① 朱子



주자는 八條目 가운데에서 格物과 誠意를 가장 중요한

공부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格物, 致知, 誠意 세가

지를 기르면 正心과 修身은 쉽다는 것이다. 性이 발하면

情이되고, 性은 원래 善한 것이므로 마치 수레나 배와 같

다. 마음이 발하면 意가 되는데, 意에는 善함과 不善함이

있다. 그래서 情은 마음이 발한 바의 情을 통제하니 意는

수레나 배를 조종하는 사람에 해당한다. 이 때에 誠 공부

를 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치우치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래서 誠은 곧 誠實함이다.



正心공부는 마음의 작용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잘 살피

는 것이다. 그것들로 하여금 마음 속에서 웅거할 방법이

없게 한다면 마음이 깊은 虛脫과 靜寂을 갖게 되어 사물

을 접하고 따름에 있어 거울과 같다고 할 수 있다. 喜 怒

와 같은 감정은 판에 박은 것과 같은 원칙이나 기준이 있

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 뿐이

다. 修己에서 治人 까지의 과정에서는 '正心'이 축의 중

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과 같아서, 格物 致知 誠意 모두

正心 공부이며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도 모두 正心에서

나온다.



修身은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몸은 곧 主宰가 없

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안보이

고 들어도 안들리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 그러므로 존

심의 요체는 공경스러워야 하고 곧게 있어야 한다. 즉 敬

이 수신의 要諦임을 말하는 것이다.



주자는 修身 이후에 接物하고 待人해야 한다고 하였다.

게다가 마음 자리의 다름도 말하였으나 중요한 근본 이

치는 하나라고 했다. 그러므로 身은 齊 治 平의 근본이

다.



齊家는 修身에 있다고 했으며, 齊家의 가장 중요함은 사

랑에 빠지는 것(溺愛)과 얻는 것에 탐내는 것(貪得)의 방

지에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수신을 해서 편벽됨을 방

지해야 하며, 제가의 방법으로는 편벽됨을 방지하여 공

정하게 일을 처리하게 하는 것과 가정교육을 잘하는데에

있다.



治國함에 있어서 교화는 풍속을 이루는 수단이 되기 때

문에 백성은 임금을 표본으로 삼으며 치국의 실마리는

임금에게 달려있다. 君子는 수신을 함에 있어서 마땅히

'자기에게 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선을 하라고 꾸짖을 수

있고 자기에게 惡이 없은 뒤에야 남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 治國의 道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자는 가정

요육에서 벗어나지 않고 국가의 교육을 이루는 것이다.'
 

平天下의 도와 治國의 도는 서로 비슷하다. [대학]에서

는 평천하의 도를 '?矩'로 나타내었다. ?矩之道는 바로

자기의 마음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으로, 여기서 한 걸은 더 나아가 자신이 서고자 함에 남

도 서게 하며 자신이 통달하고자 함에 남도 통달하게 하

면 자연히 일의 대강을 파악하고 일에 대하여 폭넓게 알

게 되어 천하를 잘 다스릴 수가 있다. 이 혈구지도 이외

에 또한 치국에 있어서 明明德을 근본으로 하여 백성을

교화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상과 같은 주자의 팔조목으로 [대학]의 本末과 厚薄의

관계를 보면 本은 修身이며 末은 天下 國家이다. 배우는

자는 마땅히 각고의 노력을 하여 스스로 수신하도록 힘

써야 한다. 治人함에 있어서 厚하게 하고 薄하게 하는 것

은 있을 수 있는 일인데, 厚하게 해야 할 곳은 집(家)이

다. 나라와 천하는 집보다는 薄하게 하는 곳이다. 이는

집이 중심이기 때문에 나눈 것으로 본말은 修身의 중요

함을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이며, 厚薄은 齊家가 중요함

을 사람에게 가르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학]의 要體는 明明德에 있으며 그 用은

新民에 있다. 또 그 體用의 準則은 止於至善에 있다고 하

겠다. 그리고 그 用力의 방도는 知와 行에 있다. 格物致

知는 知에 속하는 일이요, 誠意 正心 修身은 行에 속하는

일이다. 行은 知를 우선으로 여기고 知는 行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는 것이 정밀하면 행하는 것도 더욱 빠르게 도

달할 수 있고 행함에 힘이 있으면 아는 것 또한 더욱 발

전이 있다. 格物 致知하고 誠意 正心하여 修身하면 본래

밝은 나의 덕을 밝히는 데 최선을 다하게 되고 나아가 내

몸이 至善의 경지에 머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게 된

다.






② 王陽明


㈀ 誠意, 正心, 修身



왕양명은 마음이 발하는 바를 意라고 여겼다. 知와 意의

관계를 통과해야 비로소 '誠意는 人慾을 제거하고 天理

로 복귀함을 이컫는 것이다.'라는 생각이다. 誠意의 工夫

는 格物과 致知에 있다. 그리고 良知는 능히 생각(意念)

의 善과 不善을 자세히 살피는 것이다. 良知가 알고 있는

바의 善惡에 능하면 좋은 것에 정성을 다하거나 혹은 악

한 것에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성의 하고자 하

면 뜻이 있는 곳의 일에 格해야 한다. 그러면 양지가 그

일 속에 있어 얻을 수가 있으며 이것이 바로 誠意工夫이

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성의공부의 실제가 格物에 있음

을 알게 되고 이를 행하면 누구나 모두 堯舜과 같은 聖君

이 될 수 있다.



왕양명은 일을 바르게 하여 (格物) 致良知하는 것이 誠意

라고 하였다. 그 誠意가 明明德이며 이 明明德을 大學工

夫의 核心으로 생각하였으니 결국 왕양명에게 있어서 誠

意는 대학공부의 핵심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 공부가 처

음부터 순조롭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한 동안은 힘들

것임을 '만약에 誠意로 主를 삼아 格物致知의 공부에 임

하면 바로 공부가 처음에는 下落함이 있다'고 말하였다.



한편 왕양명은 視 聽 言 動을 몸의 네가지 큰 중요한 것

으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修身은 이 네 가지를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니, 몸은 마음을 운용하기 때

문에 이 네 가지를 이루려면 '몸은 자신의 心身에 해당하

니 항상 넓고 크게 公的으로 일을 하여 사소한 不正이 없

게 해야 한다.'고 하고, 그의 시각에서 전체적으로 보면

意 知 物은 마음의 발현이므로 '사람의 마음은 본래 하늘

과 같고 깊은 연못과 같은 것이며 마음의 본체는 포용하

지 않은 바가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心은 왕양명의 사

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人心은

私慾의 막힘을 당하고 마음의 본체는 마음의 이치를 잃

어버렸는데 正心은 바로 이 본체를 회복하는 것이다.



또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정

성스럽게 해야한다'고하여 誠意는 뜻과 생각이 天理에

합치하게 하는 것이며 正心은 心의 天理를 정확하게 표

현하고 행사하는 데 있으니 뜻이 정성스러워야(意誠) 마

음이 바르게 된다.(心正) 그는 이론상으로는 正心을 중요

시하였으나 실행에 있어서는 誠意를 중요시 하였다. 실

제로 格 致 誠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여 나눌 수가 없다.







㈁ 齊家, 治國, 平天下


왕양명은 이 세가지를 親民의 공부로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사람의 마음이 넓고 크며 公的이기를(廓然大

公) 바라는 기대가 있으며 사람이 明明德했으면 하는 것

에 대한 기대도 있다. 이러한 마음이 넓고 크며 공적이면

스스로 齊 治 平할 수가 있으며, 마음이 넓고 크며 공적

으로 되기 위한 공부는 바로 修身하여 致良知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親民으로 明明德을 하고 明

明德으로 親民을 하는 것이며, 따라서 齊 治 平을 하는데

필요한 공부가 바로 致良知이다.



왕양명은 평생동안 [대학]을 학문의 중요한 綱領으로 여

겼다. 그러나 八條目 가운데 格物 致知 誠意 正心 修身에

대해서는 언급을 많이 하였으나 齊家 治國 平天下에 대

한 언급은 매우 적다. 따라서 그가 [대학]에서의 중점을

治人보다는 修己에 두고 있음도 알 수가 있다.








⑷ 丁若鏞의 六條目說



① 格物致知論과 六事六物



다산은 주자가 格物致知를 八條目에 넣어서 설명하고 있

는 것과는 달리 格物致知와 六條目으로 분리하여 '格致

六條'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格致란 格物致知를 말하

고 六條란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를 의미

한다.



다산은 주자의 격물치지의 해석과는 달리 '格致事物論'이

라는 견해를 제시하여 격물치지를 설명한다. 이런 견해

는 '物有本末 事有終始'에 대한 해석에서 "物은 '有物有

則'이라는 物과 같이 읽으니 물이란 意, 心, 身, 家, 國,

天下라 하고 事란 誠, 正, 修, 齊, 治, 平이다. 本과 始는

먼저 할 바이고 末과 終은 뒤에 할 바이다." 그리고 致知

在格物에 대하여 "致란 이른다(至)는 것이요 格은 量度이

다.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지극히 아는 것이 이 致知요

物의 본말을 量度함이 格物이다."고 하여 주자의 팔조목

을 격물치지와 六物, 六事로 나누어 놓았다. 여기서 六物

이란 意, 心, 身, 家, 國, 天下를 말하며 六事란 誠, 正,

修, 齊, 治, 平을 말한다. 육물 중에 意, 心, 身은 本이고

家, 國, 天下는 末이다. 六事 중에 誠, 正, 修는 始이고,

齊, 治, 平은 終이다. 格物한다는 것은 六物의 本과 末을

量度하는 것이며 致知란 六物과 六事의 本과 始를 먼저

하고 末과 終을 뒤에 할 줄 아는 것을 말한다. 즉 다산에

있어서 格物致知는 六物과 六事의 本末終始를 헤아려 명

확한 앎을 이루는 것이며 이것이 誠意 正心하고 修身하

며 齊家 治國 平天下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茶山은 六事六物論에 의거하여 [古本]자체에서 格物致

知에 대한 해석을 찾으려 하여 "知止而後有定 以下에서

이 節까지는 모두가 격물치지에 관한 말이지만 격물치지

를 별도의 一章으로 마련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知止

而後有定'이하에서 此謂知之至也 까지가 격물치지에 관

한 설명으로 또 다시 格物致知章을 만들 이유가 없다고

보아 格物補傳을 부정하고 격물과 치지의 系圖를 작성하

였다.
즉 그는 格物致知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誠意가 더

욱 절실하고 효과적인 착수처라고 보았다.







② 六條目의 핵심공부 誠意



茶山은 格物致知를 六條目에서 분리시키고 육조목 가운

데 誠意를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공부방법으로 들고 있

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산의 대학해석에서 성의는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誠意는 止於至善을 위한 출발인

동시에 至善은 誠意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 知

와 行은 다른 성질의 공부가 아니고 知止(知)와 誠意(行)

은 같은 공부라는 것이다.



다산은 이와 같이 知와 行을 동시에 진행해야 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王陽明의 知行合一論과 유사한

사고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誠은 하나의 적

극적인 규범윤리로 상정하고 이것으로 상하 모든 것(意

心身)에서 家國天下까지을 관철하고 있다. 즉 "誠이란 것

의 됨됨은 始終을 관철하여 誠으로써 誠意하고 誠으로써

正心하고 誠으로써 修身하고 誠으로써 治國家하고 誠으

로써 平天下하는 고로 中庸에서 말하기를 '誠이란 物의

終始'이다."라고 한 것이다.



나아가 誠意는 茶山의 생활 전부를 지배하여온 용어이기

도 했다. 다산에 의하면 誠意와 正心은 人倫을 실천하는

큰 條目이 되므로 실천적 行事를 통한 治心繕性(마음을

다스리고 본성을 바로잡는 것)에 의해서만 인륜의 至善

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옛 성인들은 治心繕性은 항상 行

事에 있었으며, 行事는 人倫을 벗어날 수 없었던 까닭에

진실한 마음으로 부모를 섬기는 것이 誠意와 正心으로

孝를 이룬 것이며, 진실한 마음으로 어른을 섬기는 것이

성의와 正心으로 弟를 이룬 것이며 진실한 마음으로 어

린이를 사랑하는 것이 성의와 정심으로 慈를 이룬 것이

며, 성의와 정심으로 齊家하고, 성의와 정심으로 治國을

하고 성의와 정심으로 平天下하는 것이다."라 하였다. 따

라서 다산에 있어서는 인륜관계에 있어서 實踐規範인 孝

弟慈없이는 誠意 正心은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

로 다산은 實踐倫理學적 입장에서, 至善의 원리를 고요

한 心性에서 찾는 禪家的인 誠意 正心의 이론을 "誠意 正

心이 비록 배우는 사람들의 지극한 공부이기는 하지만

매양 일(事)로 인하여 성의를 다하고 일(事)로 인하여 정

심하는 것이지 禪家처럼 벽을 마주보고 앉아서 마음을

들여다보며 스스로 虛靈한 本體를 검사하고 湛然히 허공

처럼 밝아 티끌하나 섞이지 않는 것, 이것을 성의 정심이

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성의를 다하는 이

유는 일을 실행하는 가운데 있는 것이다. 단지 뜻만 갖고

있는 것을 精誠이라 말할 수 없고 마음에만 가지고 있는

것을 바르다(正)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비판하

였다.



즉 다산에 의하면 인간은 한갓 뜻만으로 정성스럽고 한

갓 마음만으로 올바를 수 없으며 매양 사물을 접하고 일

을 실행하는 가운데 성의와 정심이 있다고 한다. 그러기

에 佛家의 禪學처럼 가만히 않아서 虛靈한 마음의 본체

를 觀照하는 것은 誠意가 아니라 한 것이다.







Ⅳ. 結論

 

이상으로 [대학]에 대한 論點을 [大學章句]를 쓴 北宋代

朱子와 明代 王陽明 및 朝鮮後期 實學者인 丁若鏞의 [大

學公議]를 통해 간략히 大別해 보았다. 특히 주자와 왕

양명이 전 생애에 걸쳐 [대학]에 대한 연구를 놓지 않았

을 만큼 중요한 經이였다. 그들의 論旨를 축약시켜 보고

가장 중심을 둔 것이 무엇이였는가를 大別함으로써 本稿

의 마무리를 삼고자 한다.


먼저 '大學'이란 名稱에 관한 論旨는 다음과 같다.


① 朱子

㉠ '小學'에 대칭되는 고대 교육기관으로서의 '大學'이란

점.

㉡ 書名으로서 儒敎的 실천철학의 방법이 제시된 德治主

義의 槪論書이다.


㉢ 有德者인 君子나 聖人과 같은 의미의 '大人'이란 이상

적 자질을 갖추고 治國爲民할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下學上達' '博學守約'의 정신이 함유된 學問이다.




② 王陽明

인격적으로 하열한 '小人'에 대칭되는 의미로서 聖人인

'大人'의 學으로,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明明德하여 천지

만물 본래의 참모습을 회복하는가를 언급한 修養에 관한

책이라고 봄.



③ 丁若鏞

朱子이론에 대해 발음상 문제, 교육제도상 문제, 용어상

문제, 내용상 문제 등으로 반론하였다. 그 중 가장 중심

되는 논지는 '대학'이란 옛 교육기관인 太學에서 다음세

대를 이어갈 왕공귀족들의 맏아들에게 治國 平天下하는

길을 가르치던 '胄子의 道'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三綱領과 八條目을 통틀어서 나타난 대표적 論

旨를 大別해 본다.



① 朱子 ; '自明其德'과 '明天下人之德'이란 의미를 내포

한 '明明德'이란 修養을 통해 新民시키고 나아가 止於至

善의 궁극으로 가며, 八條目으로 나누고 性卽理라는 二

元的 心學에 기초한 客觀的 知識推究를 중요시하는 主知

主義的 입장의 格物致知를 통해 誠意를 중심으로한 修養

段階를 설했다.



② 王陽明 ; 心의 能動性 自發性 및 創造性을 함유한 一

元的 認識인 '心卽理'라는 主意主義的 입장에서 '誠意'를

갖춘 '明明德'을 修養의 根底로 삼고 일체만물과 하나로

통하는 本體의 理를 證得한 聖人의 단계인 '止於至善'을

목표로하는 논리전개를 한다.




③ 丁若鏞 ; 實際的이고 倫理的인 德目을 '孝 弟 慈'에

두고 그 실천방법으로 '明明德'을 治者 자신이 인륜관계

를 밝혀가서 '止於至善'의 궁극에 달하는 근본적 修養法

으로 풀었고, 朱子와는 달리 '格致事物論'이라는 견해를

제시하여 六事六物의 本末終始를 제대로 아는 윤리적 차

원의 格物致知로 해석하였으며, 八條目을 六條目으로 보

고 '성의'를 중심으로 한 그 실질적 實踐方法을 論했다.


이와같이 朱子와 王陽明은 心學을 바탕으로 하여 [대학]

을 서로가 相異하게 논했다면, 丁若鏞은 인간의 道德倫

理 특히 治者의 도덕윤리에 초점을 두고 心學的 풀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 3人의 大學者의 [대학]풀이는 그 기본관점에 따라 살

핀다면 모두가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治者的 입

장이던 庶民의 입장이던 간에 人類의 가장 근본 목적은

'止於至善'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라 할 때, 自己自身이

어떠한 性向에 더 가까운가를 살핀 후 위 세분의 논리를

모델로 하여 誠意를 다해 修養함이 관건이라고 보면서

本稿를 마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