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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所行饌

화엄행 2009. 4. 8. 01:58

불소행찬 佛所行饌

목차

1. 불소행찬의 유래

2. 사상적인 면

3. 행찬의 원래 명칭

4. 구성내용

5. 기술된 내용

6. 불소행찬의 차례

참고자료

1.불소행찬의 유래

 

불소행찬(佛所行讚)은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등 많은 부처님에 관한 전기(傳記)중에 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써 불교계의 시인 마명(馬鳴: Asvaghosa)이 전래되던 부처님의 일 대기에다가 그의 해박한 지식들을 배경으로 하여 문학적으로 윤색을 가한 것이다. 마명은 종래의 자료에 기초하면서도 역사적인 사실을 중시하고 적당하게 이상화시키어 아름다운 시 로써 부처님의 생애와 그의 가르침 및 인품 등을 찬탄함으로써 인격적인 감화를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불러 일으키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러한 이 책은 1세기경에 만들어졌는데, 장편 의 대서사시로써 마명의 또 다른 대표작인 사운다라난다(Saundaranandd)와 함께 그 문학성 이 높은 작품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불소행찬은 불교인이 쓴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산스 크리트문학의 주류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이 행찬만큼은 거기에 포함되고 있는 예외의 작품 인 것이다. 그것은 매우 유려한 필치로 부처님의 일생을 그리고 있으며, 문학사적으로는 궁 정시(宮廷時)의 선구적인 위치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인도문학의 최고 걸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작품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2. 사상적인 면

 

대승불교적인 요소보다는 오히려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등의 소승적인 교의의 색채가 겉으로 드러나고 있 는데, 이러한 경향은 사운다라난다 즉 ‘단정한 난다’등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마명 작품의 전반에 흐르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으로서 그의 저술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대승적인 입장이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내용 때문에 대승기신론 사상과도 연관이 있어서 초기의 대승불교사상사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문헌으로 사운다라난다와 함께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관심이 가는 것은 저자 마명에 관한 문제로써, 이 마명이 대승불 교의 시조로 불리우고, 또한 대승불교의 입문서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저자 마명과 그 이름이 같기 때문에 불교계에서는 일찍부터 두 사람이 동일인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그 해명이 잘 되지 않고 있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대체적으로 이 불소행찬의 저자 마명과 대승기신론의 마명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것도 하루 빨리 해결되어야 할 불교학의 과제 라고 할 것이다. 즉 대중성 있는 대승기신론을 누가, 언제 지었는가 하는 문제가 지금도 확실하게 판명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의 파장에 의해서 불소행찬의 저자에관한 것도 분명 하게 밝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3. 행찬의 원래 명칭

 

붇다차리타(Buddhacarita)로서 이 는 ‘부처님의 생애’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한역된 것은 5세기 때의 보운(寶雲)이라고 하거 나 412년에서 421년 사이에 북량(北凉)의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하였다는 종래의 설도 있어 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쨌든 이 역문은 아름다운 운문(韻文)으로서 그 격조는 높고 장엄하며, 문구는 곱고 아름답게 쓰여져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유롭게 한문과 한시의 운률을 구사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서 번역작품이라고 하기보다는 어떤 하나의 독립된 훌륭 한 문학작품이라고 함이 더 적절하다는 논평도 있다.

 

 


4. 구성내용

 

현존하는 산스크리트 어 본은 17장까지가 있는데, 이 가운데 서 14장의 후반부터 17장까지는 후대에 부가된 부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마명(馬鳴)이 직접 쓴부분인 14장의 전반부까지에서는 왕가인 카필라성의 묘사로부터 시작하여 부처님의 탄생과 성장 시절, 그리고 인생에 대한 고뇌, 출성(出城)및 출가, 빔비사라왕과의 회견, 두 선인을 방문한 일, 항마(降魔)까지의 과정 등이 일목요연하게 서술되고 있어서 보는 사람들의 이해를 빠르게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에 비하여 한역본을 산스크리트본과 비교해 볼 때에 다소(多少)의 증감은 있지만 대체로 산스크리트본에 충실하게 번역한 것이라고 하겠는데, 원본에 없는 14장 이하 28장까지가 이에 덧붙여져서 완벽하게 부처님의 일대기를 정리해 놓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내용이 티벳역과 일치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서 본래 원작도 완벽하게 일대기를 서술해 놓았던 것이 오랫 동안에 걸쳐서 유통되다가 그 후반부가 도중에 분실되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추측을 강하게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중앙 아시아에서 발굴된 이 행찬의 산스크리트어 본 사본(寫本)의 단편이 한역본의 제 3 장과 제 16 장에 완전히 합치(合致)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서 이러한 가정이 상당히 타당한 것으로 판명 되고 있으며, 동시에 이것이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진 사실도 함께 알 수 있는 것이다.

 

 


5. 기술된 내용

 

다른 부처님의 전기에서처럼 너무나 과장하지도 않고, 또한 단편적이거나 간략하지도 않으면서도 역사적인 사실들에 치중하여 체계적으로 상세하게 쓰여져 있으며, 이러한 가운데서도 부처님의 평상시 가르침이 교묘하게 기술되어 있고, 그의 언행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이 걸으신 고뇌의 도정(道程)과 각자(覺者)로서 살아 온 길이 있는 그대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불전에서 느낄 수 없는 진솔한 감동을 일반 독자들은 이를 읽음으로써 감득(感得)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 사상은 아직 초기불교의 것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더라도 이 불소행찬은 부처님의 전기에 관한 문헌만으로써 귀중한 것이 아니라 불교의 진수와 묘리를 간결하게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싯구(詩句)로 표현되어 있어 어떤 다른 경론에서도 볼 수 없는 큰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6. 불소행찬의 차례

 

제 1탄생(生品), 제 2궁중생활, 제 3싫어하고 근심함, 제 4애욕(愛慾)을 떠나다, 제 5성을나가다, 제 6찬다카 돌아오다, 제 7고행림에 들다, 제 8궁중은 슬픔, 제 9태자를 찾아가다, 제 10빈비사라왕이 태자에게 나아가다, 제 11빈비사라왕에게 대답하다, 제 12두 선인을 찾다, 제 13악마들을 깨뜨리다, 제 14부처가 되다, 제 15법바퀴를 굴리다, 제 1 빈비사라왕과 모든 제자들, 제 17큰 제자들 집을 나오다, 제 18고독급 장자를 교화하다, 제 19부자가 서로 만나다, 제 20기원정사를 받다, 제 21술취한 코끼리를 항복받다, 제 22암마라너 부처님을 뵈옵다, 제 23신력으로 수에 머무르다, 제 24리차아비를 떠나다, 제 25열반에 다달아, 제 26열반에 드시다, 제 27열반을 한탄함, 제 28사리를 나누다.

 

 

 


불소행찬(佛所行讚){{불소∼}}

 

 

5권. K-980(29-638). T-192(4-1). 북량(北?) 시대(A.D. 414∼426) 번역. [역] 담무참(曇無讖). [저] 마명(馬鳴). [범] Buddhacarita-n ma-mah k vya. [장] Sa s-rgyas-kyi spyod-pa shes-bya-ba i s an-d ags chen-po. [별] 불소행찬경(佛所行讚經), 불소행찬전(佛所行讚傳).

근래 역자는 담무참이 아니라 보운(寶雲)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범본은 14장 32송까지만 남아 있다. 14장 33송부터 17장까지는 후대에 부가된 부분이다. 한역의 경우는 전체 28품으로 되어 있는데 티베트 역본과 일치하고 있다. 범본 역시 처음에는 완전한 것이었으나 뒤에 후반부를 상실하였다.

운문으로 이루어진 서사시이므로 번역본 또한 시로서 옮기고 있다.

제 1 생품(生品)은 싯다르타 태자의 출생을 기록하면서 그의 타고난 덕을 찬탄한다. 싯다르타 태자는 석가족의 가장 우수한 왕인 정반왕(淨飯王)을 아버지로, 의지가 굳고 마음이 깨끗한 마야 부인을 어머니로 태어났다. 그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중생들이 마음을 의지할 곳을 찾고 온갖 욕심에서 벗어나 어두운 이 세상을 멀리하고 안온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제 2 처품(處品)은 화려했던 궁중 생활을 묘사한다. 싯달타 태자가 탄생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 마야 부인이 죽자, 이모가 태자를 양육하였다. 자라서는 야쇼다라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았다. 또 아버지 정반왕은 즐거운 생활을 하도록 궁전을 새로 지어 주기도 하였다.

제 3 염환품(厭患品)은 거리에 나갔다가 늙은 사람, 병자, 시체 등을 만남으로써 인간 세상을 싫어하고 집을 떠나 수행하려는 마음을 지니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제 4 이욕품(離欲品)은 여자에 대한 욕망(慾望)을 떠났음을 말한다. 정반왕이 새로운 궁전을 마련하여 준 것은 애욕에 빠져서 쾌락을 즐기고 집을 떠나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태자는 태어남(生), 늙음(老), 병(病), 죽음(死) 등의 한계 상황(狀況)을 목격하였으므로 그 같은 무상(無常)한 욕락(慾樂)에서 벗어나는 출가(出家)의 길을 생각하게 되었다.

제 5 출성품(出城品)은 출가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부왕은 "집을 떠나 도를 닦기에는 아직 이르다."라고 하면서 출가의 뜻을 포기하도록 만류하였다. 그러나 태자는 세상에서의 삶이 곧 불이 난 집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궁녀들이 모두 잠든 사이에 시중을 드는 차닉(車匿)과 함께 몰래 궁을 빠져 나와 출가하였다.

제 6 차닉환품(車匿還品)은 태자를 모시던 차닉이 홀로 왕궁으로 돌아간다. 태자는 차닉에게 스스로 가지고 있던 보배 구슬을 풀어 주면서 "왕에게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인정을 버리라고 말씀드려라. 나는 태어나고, 늙고, 죽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 숲속에 들어왔다."라고 말했다. 이에 차닉은 태자의 옷을 바꾸어 입고 왕궁으로 돌아갔다.

제 7 입고행림품(入苦行林品)은 태자가 숲 속으로 들어가 고행자들과 함께 생활한다. 숲속의 고행자들이 닦는 고행은 속세에서 나지 않는 맑은 찬물을 마시기도 하며, 나무 뿌리 줄기 잎 꽃 열매를 먹기도 하고, 사슴이 먹는 풀을 먹기도 해야 한다. 물 속에 있으면서 고기의 흉내도 내야 한다. 이러한 고행들을 통하여 인간 세상의 안락이나 죽은 다음에 하늘에 태어나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태자는 "고행으로 얻는 것이 인간의 안락이나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것이라 한다면 작은 괴로움은 면할 수 있으나 마침내는 더욱 큰 괴로움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비판(批判)하고 고행자들을 떠났다.

제 8 합궁비우품(合宮悲愚品)은 태자가 출가한 뒤 온 왕궁이 슬픔에 잠겼음을 이렇게 말한다. "차닉과 백마가 절망 속에서, 통곡하며 돌아오는 모습 보고서, 흐느끼고 울부짖는 소리, 마치 부모 잃은 초상집 같다."

제 9 추구태자품(推求太子品)은 왕의 지시로 태자(太子)를 찾아나선 두 대신의 이야기다. 태자를 찾은 두 대신은 왕이 매우 슬퍼하고 괴로워한다고 말하면서 왕궁으로 돌아가자고 청하였다. 이에 대하여 태자는 "나를 왕으로 만들기 위하여 애쓰는 아버지의 사랑을 어기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것은 환자에게 맞지도 않는 약을 먹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차마 높은 곳의 어리석은 자리에 앉아 사랑하고 미워하는 속세(俗世)의 일을 따라 갈 수 없다."라고 거절하였다.

제 10 병사왕예태자품(甁沙王詣太子品)은 석가족(釋迦族)의 태자가 집을 떠났다는 소문을 듣고 병사왕 즉 빔비사라 왕이 태자를 찾아간다. 그 역시 자기 나라의 절반을 줄 용의가 있음을 말하면서 출가를 만류하고 있다. 태자의 출가에 대한 이 같은 만류는 "늙으면 그 기운 허하고 약하리니, 그때 가서 도(道)를 닦으라."라는 것이다. 이 같은 만류는 태자의 출가가 노년에 출가하는 브라만교의 출가와는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 11 답병사왕품(答甁沙王品)은 병사왕의 권유(倦游)에 대답하는 내용이다. "젊어서는 경솔하고 조급하므로 늙어서 도를 닦으라 하지만, 늙은 사람은 힘이 모자라 견디지 못하고, 뜻도 굳세지 못하여 소원(所願)을 이루지 못한다."라고 대답한다. 태자를 설득하려던 병사왕은 오히려 태자의 논리에 설득(說得)을 당하고 말았다.

제 12 아라람울두람품(阿羅藍鬱頭藍品)에서는 아라람 즉 아라다와 울두람 즉 웃다카라는 두 선인(仙人)을 찾아가서 문답(問答)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먼저 찾아간 아라람과의 문답이 주된 것이며, 뒤에 찾아간 웃다카와의 문답은 간략(簡略)하게 제시되어 있다. 아라람의 견해(見解)는 수론(數論) 학파가 정립한 전변설(轉變說)의 초기 형태를 보여 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싯다르타 태자는 궁극적 자성(自性)이 있다면 그 역시 연기(緣起)의 이치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에서 아라다의 견해를 비판한다.

제 13 파마품(破魔品)은 보리수(菩提樹) 아래에서 수행하는 태자에게 악마 파순(波旬)이 독 화살, 갖가지 흉기로 무장한 악마(惡魔)의 무리, 여자들을 동원하여 방해하였으나 모두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제 14 아유삼보리품(阿惟三菩提品)에서 아유삼보리는 위없이 높고 바른 깨달음이라는 의미이다. 태자는 악마를 항복받은 뒤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하고 깊은 명상에 들어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 결과 마침내 12인연의 이치를 깨달은 것이다.

제 15 전법륜품(轉法輪品)은 최초(最初)의 설법(說法)을 담고 있다. 부처님은 바라나시로 가서 과거 함께 고행했던 교진여( 陳如) 등 5비구(比丘)에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양 극단을 떠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中道)를 얻어야 한다고 설하였다.

제 16 병사왕제제자품(甁沙王諸弟子品)은 병사왕과 여러 제자들을 교화(敎化)한 일을 서술한다. 부처님은 장자의 아들 야사(耶舍)를 비롯한 54명을 교화하였다. 부처님은 이들을 각처로 보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게 하였다. 그런 뒤 스스로 병사왕을 찾아가서 모든 고통의 근원은 나와 내 것에 집착하는 데 있으므로, 열반을 얻으려면 나와 내 것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설하셨다.

제 17 대제자출가품(大弟子出家品)은 병사왕이 마련해 준 죽림 정사에서 지혜가 가장 뛰어난 제자 사리불(舍利弗), 신통력이 가장 뛰어난 제자 목련(目連), 검소한 생활에 철저하였던 가섭(迦葉) 등을 교화한 인연을 서술하였다.

제 18 화급고독품(化給孤獨品)은 급고독 장자를 교화한 일을 서술한다. 죽림 정사에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급고독 장자가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사위성(舍衛城)에 기원정사(祇園精舍)를 세우겠다고 발원한다.

제 19 부자상견품(父子相見品)은 부처님이 정반왕을 만난 일을 서술한다. 부처님이 애욕으로 인하여 생사(生死)의 길을 윤회함을 설하자 왕족 대신 귀족 출신의 여러 사람들이 다투어 집을 떠나 비구가 되었다.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도 그 후 집을 떠나 불도를 닦게 되었다.

제 20 수기원정사품(受祇洹精舍品)은 급고독 장자가 세운 기원정사를 헌납(獻納)받고, 파사닉왕(波斯匿王)과 그 나라 사람들을 교화한 일을 서술한다.

제 21 수재취상조복품(守財醉象調伏品)은 제바달다(提婆達多)가 부처님을 해치기 위해서 술에 취한 코끼리를 내몰았으나 부처님의 설법으로 술에 취한 코끼리가 감복한 이야기이다.

제 22 암마라녀견불품(菴摩羅女見佛品)은 재물(財物)과 덕망(德望)과 미모를 겸비한 여인, 암마라(菴摩羅)를 교화한 일을 서술한다.

제 23 신력주수품(神力住壽品)은 세상에서 할 일을 다한 부처님이 악마 파순과 3개월 뒤에 열반(涅槃)에 들겠다는 약속을 하고 신통력으로 목숨을 부지하였음을 말한다.

제 24 이차사별품(離車辭別品)은 부처님은 열반에 들겠다는 말을 듣고 슬퍼하는 아난을 위로하고 이차(離車) 즉 릿차비족과 작별한 일을 서술한다. 이차족의 장자(長者)들은 부처님과의 작별을 몹시 슬퍼하며 세상의 일을 한탄하고 있다.

제 25 열반품(涅槃品)은 부처님의 열반 이전의 여러 가지 일을 말하고 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위하여 비사리 즉 바이샬리를 떠난 일, 순다(純陀)의 마지막 공양, 아난이 부처님의 열반을 위하여 행한 여러 가지 일을 서술하였다.

제 26 대반열반품(大般涅槃品)에서는 부처님의 열반을 기록한다.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계율(戒律)을 스승으로 삼아라.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므로 방일(放逸)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설법하셨다.

제 27 탄열반품(歎涅槃品)은 부처님의 열반을 맞은 제자들이 슬퍼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가섭과 아나율(阿那律)을 비롯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의 열반을 슬퍼하였다.

제 28 분사리품(分舍利品)은 부처님을 화장(火葬)한 뒤 사리(舍利)를 서로 가지려는 왕들이 많아서 사리를 공평하게 8등분하였음을 서술한다.

불전 문학 중 백미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불전 중에서 비교적 완벽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불본행경(佛本行經), 보요경(普曜經) 등은 모두 불소행찬의 영향을 받아서 성립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