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의 향기 ♣>/♧ 문화와 예술 ♧

澗松미술관 - 澗松文華

화엄행 2010. 9. 21. 02:48

http://cafe.daum.net/hanvelove/NdEi/128?docid=1GVu1|NdEi|128|20100913095226&q=%B0%A3%BC%DB%20%B9%CC%BC%FA%B0%FC&srchid=CCB1GVu1|NdEi|128|20100913095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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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병합 이후 활동했던 쟁쟁한 화가들의 작품을 모은
근대 회화전이 열리고 있는 간송미술관을 찾았다.
16일 부터 30일까지 전시되는 올 봄 정기 전시회에는
[조선망국 100주년 추념전]이 전시되고 있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으므로,
올해 2010년은 조선왕조가 멸망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
나라를 잃었을 당시 국내 화단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전시다.


이번 전시회에는 근대 한국화의
형성과 변모, 완성 과정을 훑어볼 수 있는
조선의 마지막 화원 안중식, 조석진은 물론
당시 60세였던 서병건부터 마흔살 아래로
근대 한국화의 서막을 알린 고희동,
추사 문인화풍을 계승 발전시킨 지운영, 민영익, 김규진 작품까지
대표작 100여점이 한꺼번에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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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전시된 작품은
이토 히로부미의 수행원을 지냈고 매국에 앞장섰던
황철의 [해산추범(海山秋帆 - 해산의 가을 돛배)]에서는
나무나 집 표현에 일본풍이 강하게 반영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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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식 / 성재수간(聲在樹間) / 52.8*140.5cm] 

 


이번 전시회 작품중 최고인 안중식의 [성재수간(聲在樹間)]은
1910년대 근대 한국화의 백미라 불릴만했고,
구양수가 밤에 책을 읽다가
가을 소리에 놀란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대작이다.


심전의 [한산충무(閑山忠武)]는
1915년 잡지 [청춘]에 실린 삽화작품이라고 하는데
대가의 작품치고는 유치하기 짝이 없어 보였고,
심전의 인물화는 대부분 중국화풍을 모방해서인지
기괴하기 짝이 없어 보여 실망만 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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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진의 [달빛 아래 잠든 개(月下睡狗)]는
달빛 아래 풀밭에 처량한 모습으로 자고 있는 개의 묘사로
망국기 화가의 무기력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듯 하다.


이에 비해 석촌 윤용구를 비롯해
추사의 문인화풍을 계승하며
문인화의 전통을 굳건히 지킨 작가들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문인화의 여유롭고 간결한 맛이 느껴진다.


나라 잃은 부끄러움을 가슴에 품고
관악산 백련봉에 은둔한 지운영!
일제가 제안한 작위를 거절하고
서울 근교 장위산 밑에 은거하며
추사(秋史)의 문인화풍을 이은 고졸한 서화를 내놓은 윤용구!


두 화가의 그림은 그 자체가 그들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사람을 알아보기 쉽다고 하지 않았던가...
만약 다시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모습은 어떨까?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석파란법을 계승한 나수연,
난죽을 현대적 화법으로 승화시킨 김규진,
묵죽으로 항일 의지를 묘사한 김진우등
강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여러 작품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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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외손으로 은일했던 윤용구의 묵죽을 보면
힘에 겨운 듯 고개 숙인 댓잎에서
당시 조국의 슬픈 운명을 감지할 수 있다.
반면 김진우의 묵죽은 대담한 구도와 거침없는 필법으로
항일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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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승 / 부귀호접 / 48.5*15.2cm] 

 


어지러운 세상과 절연하는 것도
화가들이 택했던 또 하나의 길이었다.
이경승이나 서병건 등은 복잡한 세상사와
등을 돌린 채 나비 그림을 그리며 지냈다.
나비그림하면 조선말의 남계우를 떠올리게 되지만
처음 접하게 된 서병건과 이경승의 작품은
훨씬 자연스럽고 난만한 자태로 사랑을 속삭이거나
꽃에 앉은 온갖 색 나비들이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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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익 / 묵란(墨蘭) 31.8*105.8cm]

 


민영익은 난의 끝을 뭉툭하게 처리한 것이 특징인
이른바 [운미란(云楣蘭)]이라 불리는 고유한 묵란화를 개척해
추사 계통의 묵란화와 다른 난법을 확립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간송 전형필의 스승이자 최초의 한국인 서양화가였던
고희동의 작품도 전시되었지만 별 감흥은 느끼지 못했다.


그림은 한 시대의 문화적인 역량을 총체적으로 반영한다며
그림을 통해 한, 일 병합 이후의 혼란했던 시대적 상황을 읽을 수 있다.
당시 전통 회화작품은 혼란과 갈등, 단절과 모색,
고뇌와 절망, 참여와 은둔 등 복잡한 양상을 보여준다.


500년 조선왕조가 망할 때 화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뭘 그리고 있었을까?
간송미술관이 봄 정기기획전의 주제로 삼은 질문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당대의 그림들 속에서
조선이 왜 망했는지 찾아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화가 노쇠하면서 그림에서 생동감이 떨어지고
방만, 해이, 나태, 무기력한 도식적인 그림들이 많다고
간송미술관 최완수 실장은 말하고 있다.


조선말기 등잔 앞에 흔들리는 시대상황을 반영한 그림은
당대의 혼란과 고뇌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전통 계승에 목숨을 건 화가,
현실에 부응해 팔리는 그림을 그린 화가,
화업(畵業)을 독립운동 삼은 화가,
일제에 붓으로 아첨한 화가,
세상에서 돌아앉아 자연 속에 은둔한 화가등등...
복잡 미묘한 개인 노선들이 춤을 춘다.
주도 이념 없이 밀려오는 서구 문명 앞에서
갈팡질팡한 세태가 그림에 고스란히 표출되어 있다.

 


[그림을 스캔한 78회째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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