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의 향기 ♣>/♧ 문화와 예술 ♧

적의(翟衣)

화엄행 2010. 5. 6. 21:00

 

중요민속자료 제54호 (지정일 1979.01.23)

 

적의(翟衣)는 조선시대 후(后), 비(妃), 빈(嬪)이 대례복(大禮服)으로 착용한 포(袍)로 국왕이 면복을 입을 때 왕비와 왕세자비가 입던 법복이다. 적의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고려시대 공민왕(恭愍王) 19(1370)년에 명나라의 태조 고황제(高皇帝)가 왕의 면복(冕服)과 원유관복(遠遊冠服)을 내려주었고, 효자황후(孝慈皇后)가 왕비에서 관복을 사여한데서 비롯되었다. 이때 받은 왕비의 관복은 관(冠), 적(翟衣), 중단(中單), 폐슬(蔽膝), 상(裳), 대대(大帶), 패옥(佩玉), 청석(신발), 청말(버선) 등이었다. 조선조에 적의가 하사된 것은 태조3(13940년 인데 궁중에서는 적의의 착용법을 몰랐다고 한다. 세종대 『오례의』에서도 왕비의 관복에 관한 언급이 없어 조선전기까지도 왕비의 관옷은 뚜렷한 법도가 정립되지 않은 듯하다. 조선말기 고종이 황제가 되고 왕비가 황후로 불리게 되면서 적의를 횡으로 12등분하여 친애(親愛)와 해로(偕老)를 의미하는 적문(翟紋:꿩무늬)을 직성(織成)한 12등 적의를 입게 되었고, 황태자비는 9등 적의를 입었다.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황후와 황태자비의 적의는 심청(深靑)색, 왕비는 대홍(大紅)색, 왕세자빈과 왕세손빈은 아청(鴉靑)색이었다.

적의라 불리는 이유는 청, 백, 홍, 흑, 황의 5색을 두루 갖춘 꿩무늬를 9층으로 수놓기 때문이다. 꿩의 5색은 동서남북중앙의 오방을 상징하는 색이면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행(五行)을 지녔다고 여겼다. 이것은 곧 적의를 입은 왕비가 오덕을 두루 갖춘 후덕한 여성이 되길 기원하는 것이다.

적의는 상하 동일한 색이지만 가례(嘉禮)때 왕비는 붉은색, 대비는 자주색, 세자빈은 검은색 적의를 입었다. 적의의 앞, 뒤에는 발톱이 다섯 개인 오조룡보를 붙이며, 세자빈은 사조룡보를 붙였다.

적의에는 여러 가지 장엄을 더하여 예의를 갖추어 입었는데 손에는 옥으로 만든 규(圭:홀)를 들고, 어깨에는 금박의 봉황문이 찍힌 하피를 걸어 늘어뜨리며 허리에는 꿩무늬를 수놓은 폐슬(蔽膝)을 착용하였다. 그 위에는 대대(大帶)를 매고 다시 민옥으로 만든 옥대(玉帶)를 띠고, 양옆구리에는 오색구슬을 연결한 패옥(佩玉)을 늘어뜨렸으며, 신발(예복에 착용한 푸른비단으로 만든신)과 적의와 동일한 색의 버선을 신었다. 적의는 조선시대 여성 최고의 신분의 복식으로 상하 신분이 뚜렷한 계급사회에서 신분과 권위의 상징이 되었다.

 

 

황후적의(전)

황후적의(후)

황후 적의 중요민속자료54호

소 재 지; 서울 광진구 군자동 산2

 

적의는 비빈의 대례복으로서 가례시에는 책비의, 친영의, 동뢰연에 입는 법복이다. 역대 《가례도감의궤》에 보면 왕비의 적의 색은 모두 대홍색(大紅色)이며, 왕세자빈의 적의 색은 모두 아청색이고, 왕세손빈의 적의도 아청색이며, 황태자비의 적의는 심청색이다.

인조 16년(1638)에 치른《인조장열후가례도감의궤》에 보면 왕비의 적의는 대홍필단 1필에 안감으로 대홍필단 5척5촌이 들었으며, 오채화운봉문흉배 1쌍을 가슴과 등 그리고 양 어깨에 달았으며 그 아래로 쌍운봉원문 36개를 그려 넣었다. 영조 25년(1749)에 제정된 《국혼정례》와 영조 28년(1752)에 제정된 《상방정례》에서 대홍색 향직 35척에 내공으로 대홍향직 5척5촌이 들어간 것을 보아 홑옷으로 단처리만 마무리 한 것임을 알 수 있고 적계화성니금이 되어 있다. 《국조속오례의보서례》에 보면 왕비의 적의는 대홍단으로 깃 앞에서 좌우가 서로 상대하여 내려와 배자처럼 보이나 뒷길이가 약 1척정도 더 길고 적의 앞 뒤에 금수 오조원룡보를 달며 보 밑에 수원적 51개를 수놓게 되어 있다. 고종 3년(1866)에 행해진 《고종명성후가례도감의궤》에도 왕비의 적의는 대홍향직 35척에 내공으로 대홍향직 5척5촌이 들어가고 적계화성니금이 되어 있다. 왕세자빈의 적의는 같은 아청색으로 되어 있으며 형태는 왕비의 적의와 같다. 「국혼정례」와 「상방정례」에 기록된 적의의 횡성, 별의, 내의, 수, 폐슬, 대대, 하피, 상, 수, 면사, 흉배, 적말, 적석으로 되어 있다.

고종이 황제에 오르자 황후의 적의로 심청색 적의를 입게 되었다. 이는 대한제국 칭제에 따라 고종황제가 중국의 황제와 같은 신분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면복에 12장문을 표현한 것과 같은 것으로서 황후의 적의에는 12등분하여 적문 154쌍의 직문하였으며 황태자의 적의에는 9등분하여 적문을 직문하였다.

세종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적의는 심청색단에 적문을 12등분하여 154쌍의 적문과 그 사이에 소륜화문을 직문한 것으로 보아 황후의 대례복인 적의이다. 꿩의 직문은 녹색, 홍색, 황색, 흑색의 사로 짜여져 있다. 깃, 도련, 수구에 홍색선을 둘러 대어 적의와 같은 모양으로 홑겹으로 만들었는데 크기는 적의보다 미소한 차이로 적게 만들어 적의 속에 끼워 넣고 군데군데 징그었다. 보는 오조원룡보 1쌍을 가슴, 등, 양 어깨에 달았는데 바탕은 적의와 똑같은 심청색단에 금사로 수놓은 것이다. 하피는 흑색단에 봉황문과 운문을 번갈아 배치하였는데 각각 26개씩 금박되어 있으며 이 운봉문 양옆에 2줄씩 직선을 금박하여 하피의 윤곽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폐슬은 적의와 같은 옷감인 심청색단에 적문 6쌍이 3등분되어 서로 마주보게 배치되고 그 사이에 소륜화문 8개가 4등분되어 직문되어 있으며 그 갓에 홍색 선이 둘러져 있다. 대대는 홍색단에 운봉단이 금박되어 있으며 옆에는 두줄의 직선을 금박하여 마무리 하였다. 이 대대에 폐슬이 부착되어 있다. 고름은 선과 같은 홍색단으로 만들었고, 대를 고정시키는 겨드랑 밑에 근도 고름과 같은 홍단이다. 어깨 위에는 하피가 흘러내리지 않게 매듭 단추로 고정시켰으며 등뒤의 보 위에서도 하피를 고정시키는 매듭 단추가 있어 긴 하피를 고정시키는 매듭 단추가 있어 긴 하피가 등뒤에서 자연스럽게 늘어지게 되어 있다. <자료제공 : 문화재청>

 

 

 

대한제국(大韓帝國) 적의(翟衣)는 심청색

김민수 기자  2010-05-03 09:24:26

http://www.koreadigitalnews.com/board/view.php?&bbs_id=sub_06&doc_num=1145

 

 

적의(翟衣)는 친애, 해로(偕老)를 의미하는 꿩무늬 적문(翟紋)을 짜넣은 포(袍)이며 대한제국 황후,황태자비,의친왕비(義親王妃)와 조선 왕비,왕세자빈이 대례복(大禮服)으로 착용하였던 적의(翟衣)는 종묘 참배,가례(嘉禮) 등의 중요한 행사 때에 착용하였으므로 화려한 것이 특징이고, 여기에 딸리는 부속품이나 머리 장식물들이 복잡하다.

적의를 착용할 때는 머리에 각종 비녀와 금란대(마리삭금댕기)로 장식한 대수(大首)를 장식하는데 위보다 아래가 넓은 삼각형 형태의 대수(大首)를 어깨 높이까지 곱게 빗어내리고 양끝에 봉(鳳)이 조각된 비녀를 꽂으며, 뒷머리 가운데에는 숱이 많은 머리를 두 갈래로 땋아 자주색 댕기를 늘이고 머리 위 앞부분에 떨판자,봉잠으로 장식한다.

적의(翟衣)는 속에 중단(中單)을 착용하였으며, 겉에 상(裳), 대대(大帶), 후수(後綬), 폐슬(蔽膝), 패옥(佩玉), 하피(霞奸), 옥대(玉帶) 등으로 장식하고, 청석(靑舃)을 신는다.적의(翟衣)는 조선 영조 대에는 대홍단(大紅緞)으로 지었으나 대한제국(大韓帝國) 고조 광무제 대의 적의(翟衣)는 심청색이며 대한 황실 문장 이화문(李花紋)과 봉문이 있다.

적의 앞뒤에 금실로 수놓은 오조원룡보(五爪圓龍補)를 붙이고 앞면의 보 아래에서 옷단에 이르기까지 수놓은 원적(圓翟)을 좌우 7개 씩 붙이고 뒤 길에서도 옷단에 이르기까지 원적을 좌우 9개 씩 붙이는데, 옷단 가운데에 원적 1개를 더 붙였다. 좌우 소매 뒷면 부리에도 원적을 각각 9개 씩 수놓았다. 황후의 12등 적의는 꿩 154쌍을 수놓았고,황태자비,의친왕비,조선 왕비의 9등 적의는 꿩 138쌍을 수놓았다.

대대(大帶)는 겉은 대홍단(大紅緞)이며, 안은 흰 색 비단이고, 둘레에 옥색 비단으로 가선(加線)을 둘렀다. 끈은 남색 실로 꼬아 만들었으며 끝 부분에 같은 색의 술을 달았고 대한제국 황후(皇后)의 것은 안팎이 청.홍으로 되어 있다.후수(後綬)는 홍, 백, 표(옥색), 녹 4채의 굵은 색실로 조직을 짰으며 상단에 2개의 금환(金環)이 부착되어 있다. 대한제국 황후는 홍, 백, 표(옥색), 녹, 황색의 5채를 썼다.

패옥(佩玉)은 2개를 양 옆에 늘어뜨린다. 홍, 백, 표, 녹의 4채로 짠 소수(小綬)가 하단에 달려 있다. 소수(小綬)는 윗 부분에 금속 고리 2개가 부착되어 있어 대(帶)에 걸게 되어 있다. 패옥은 형(珩) 1, 여기에 옥주를 꿴 3개의 줄에 의해 연결된 우(瑀)1, 거 1, 충아(衝牙) 1, 황(璜)이 있다. 형(珩)에서 연결된 두 개의 옥화(玉花) 밑에 옥적(玉滴) 2개가 달려 있다.

폐슬(蔽膝)은 적의(翟衣)와 같은 색이고 적문(翟紋)을 황후는 3등분, 왕비는 2등분으로 나누어 소륜화(小輪花) 6송이를 배치하였다. 적문(翟紋)은 좌우 쌍이 대칭이 되며 마주 향하고 있는 형태이며 홍색으로 연을 더하였는데 대한제국(大韓帝國) 황후는 운룡문(雲龍文),황태자비,의친왕비(義親王妃)와 조선 왕비는 운봉문(雲鳳文)을 정교하게 짜넣었다.

적의(翟衣)를 입을 때 목에 걸어 늘이는 하피(霞奸)는 흑색 공단에 분홍색 안을 넣었다. 금실로 운하(雲霞) 28개, 적문(翟紋) 26개를 수놓았고, 둘레에 두 줄의 금선을 둘렀다.대한제국 황후,황태자비,의친왕비의 적의(翟衣)는 봉문(鳳紋)을 수놓았다. 옥대(玉帶)는 적의(翟衣)와 같은 색으로 겉을 싸고, 안쪽 뒷부분은 옥색 무늬비단이다. 정면의 금속대구에 붙인 옥판에 금선을 더하여 장식한 사이에 도금한 꽃 장식을 배치하고 후면에 네모난 민옥(珉玉) 5개를 연속으로 부착했다.

대한제국(大韓帝國) 황후,황태자비,의친왕비(義親王妃)의 법복(法服)에 착용했던 신발 청석(靑舃)은 적의(翟衣)와 같은 재질로 만들었으며, 석(舃)의 뒤꿈치와 양쪽에 검은 색 고리를 달았고 여기에 끈을 꿰어 발등에 매도록 되어 있다. 신발의 앞부분에 홍녹색 실로 꽃무늬 3개를 붙였는데, 대한제국 황후(皇后)는 구슬 5개를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