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紫霞 申緯 연구 3종 - 畵論 & 漢詩 & 禪과茶 Pdf.

화엄행 2009. 8. 31. 02:16

紫霞 申緯의 文人畵論 硏究 : 題畵詩를 中心으로

 김성희

학위논문(박사)--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한문학과,2008년 2월

http://dcollection.sungshin.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5302

  

 Ⅰ. 序論 = 1
  1. 硏究의 目的 = 1
  2. 硏究現況 = 2
  3. 硏究範圍와 方向 = 7
 Ⅱ. 申緯 文人畵論의 源泉 = 11
  1. 『文心彫龍』 ?神思?의 創作理論 = 11
  1) 神思의 定意 = 11
  2) 作家의 修養 = 17
  3) 神思의 運用 = 26
  2. 宋代 文人畵論 = 31
  1) 文人畵와 神似의 槪念 = 31
  2) 宋代 文人들의 詩畵一律觀 = 37
  3) 文同과 蘇軾의 神似的 文人畵論 = 48
  3. 神思와 神似의 關係 = 68
 Ⅲ. 申緯 題畵詩에 發顯된 文人畵論 = 72
  1. 朝鮮後期 文藝的 動向과 諸家의 評 = 72
  2. 申緯의 畵意와 寫意 = 77
  3. 寫生과 神似의 一律觀 = 85
  1) 寫生과 神似 = 85
  2) 申緯의 一律觀 = 97
  3) 胸有成竹論 = 109
  4) 傳神論 = 116
  5) 士氣와 逸氣 = 121
 Ⅳ. 申緯 文人畵論의 文藝的 意義 = 131
 Ⅵ. 結論 = 137
 참고문헌 = 145
 ABSTRACT = 152

 紫霞 申緯(1769~1845)는 當代나 후인들에게 ‘由蘇入杜’의 詩學을 위주로 盛唐의 풍모까지 바라본 詩人이였으며, 중국의 文人畵論을 받아들여 文人畵家로 활약했던 격조 높은 詩書畵 三絶이라는 평을 받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그의 文藝에 대한 그간의 연구들에서는 詩論을 중심으로 언급하면서 詩畵一致의 畵趣를 언급하거나, 그의 예술을 다루더라도 창작이론에 대해 미흡했던 점이 발견된다. 이에 필자는 이러한 점에 착훌臼? 문예이론이 체계적으로 규명되어져야 詩書畵를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申緯의 文藝도 보다 밝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本稿에서는 그의 題畵詩를 중심으로 文人畵論을 연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이를 통하여 申緯가 간직했던 文藝에 대한 作家精神과 創作에 대한 觀點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별도로 畵論書를 집필한 것이 없으며, 대체적으로 題畵詩로써 화론의 면모를 용해시킨 것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申緯의 수많은 시들 중, 특히 題畵詩장르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한편 이 속에는 대부분 宋代에 발전하기 시작했던 神似의 畵論이 투영되어 있는데, 이것을 東洋古代의 대표적 문학이론서인 『文心彫龍』의 ‘神思’와 대비하여 논하였다. 이러한 이유는 ‘神思’와 ‘神似’가 讀音뿐만 아니라, 의미상에서도 상당한 근접성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이와 함께 申緯는 1812년 燕行에서 翁方綱을 만난 이후 ‘由蘇入杜’의 詩學으로 더욱 매진함과 함께, 申緯의 詩가 완숙기에 들어갔을 시기인 1827년에『文心彫龍』을 언급한 시를 남겼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누구나 인정하는 대표적 문학이론서인 『文心彫龍』의 창작원리와의 관계를 논함으로써, 그의 문인화론이 갖는 源泉的 要素를 考究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文人畵論과 文學論간의 유사한 精神性과 創作觀을 알아봄으로써, 그가 題畵詩로 發顯시킨 文藝에 대한 觀點을 考察하려 하였다. 또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申緯와 朝鮮後期文藝에대해 논하는 기존의 ‘神韻’ 및 ‘神氣나 神’ 등등 다소 모호한 논리들보다, 좀 더 확실한 文藝觀을 언급할 수 있으며, 문예적 의의를 밝히는 데 一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文心彫龍』의 神思(신사)는 志?氣를 體와 用으로 제어시킨 虛靜의 수양을 통해 형성된 ‘思理爲妙’로 핵심을 잡고, ‘?資博練’의 학문적 공부와 수사적 수련이 필요함을 밝혔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莊子가 齋戒를 통한 以天合天의 경지에 도달하듯이, 無功之功의 작품으로 탄생하게 됨을 밝혔다.
 이와 함께 中國繪?에 있어서 宋代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한 畵論인 ‘神似’는 畵家의 내면에 갖춘 ‘寫意’적 精神理想世界를 표현해 내는데 중심을 갖은 것이며, 문장과 그림에 대한 창작원리가 다르지 않다는 一元論的 사고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志’와 ‘氣’를 體用관계로 하여 神思인 思理爲妙를 양성하고자 했던 劉?의 이론과 유사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宋代 文人들이 주로 논했던 ‘神似’는 藝術的 차원에 더 중심이 쏠렸던 의미임을 밝혀보았다.
 그리고 申緯는 그의 ‘由蘇入杜’의 學詩 태도만큼이나 題畵詩를 통해, 특히 文同과 蘇軾의 畵論을 기묘하게 換骨奪胎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天然의 寫生과 神似를 바탕으로 한 寫意와 畵意 를 추구함으로써, 자연의 妙味를 얻고 말 밖의 旨趣가 있는 眞自家의 意境이 모여진 실다운 境界를 추구하고자 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예의 궁극을 『詩經』에 두었는데, 이것은 宋代 문인들보다 더욱 확고한 儒家적 자세를 바탕으로 以天合天의 조화를 추구하였던 劉?의 문학이론과 닮았음을 밝혔다.
 이렇게 文學理論과 文人畵論을 종합적으로 博學하게 흡수한 申緯는, 자신만의 詩書畵禪 一律을 실천하고자 했던 東方 眞自家의 文藝人이였으며, 그의 문예정신은 현대의 문예창작에서도 실천할 가치가 높은 이론임을 밝히면서, 그의 題畵詩에 담긴 文人畵論의 文藝적 意義를 두고자 하였다.

 

 

 

紫霞 申緯의 飮茶生活에 관한 考察 : 『警修堂全藁』를 중심으로

탁효영

학위논문(석사)--성신여자대학교 문화산업대학원:문화산업학과 예절다도전공,2004

http://dcollection.sungshin.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1656

 논문개요 = ⅰ
 목차 = ⅲ
 Ⅰ. 서론 = 1
  1. 연구 목적 = 1
  2. 연구 범위와 내용 = 3
 Ⅱ. 신위의 생애(生涯)와 다시(茶詩) = 6
  1. 신위의 생애(生涯) = 6
  2.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의 개관 = 15
  3.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의 다시 = 16
 Ⅲ. 다시(茶詩)를 통해 본 신위의 음다생활 = 22
  1. 다사(茶事)의 내용 = 22
  2. 차의 종류 = 22
  3. 다구(茶具) = 29
  4. 팽다법(烹茶法) = 37
  5. 품다(品茶) = 42
  6. 물과 땔감 = 45
  7. 팽다(烹茶)의 주체(主體) = 52
  8. 음다 시간 = 55
  9. 음다 공간 = 62
  10. 배치물 = 68
 Ⅳ. '茶'를 통한 문화적 교유(交遊)와 다회(茶會) = 70
  1. 사회적 배경 = 70
  2. 여러 다인들 = 74
  3. 그 밖의 교유 인물 = 80
  4. 다회(茶會) = 83
 Ⅴ. 신위의 음다 정신 = 86
 Ⅵ. 결론 = 89
 참고문헌 = 93
 ABSTRACT = 97
 우리의 음다풍속이 7세기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사료는, 『삼국 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차는 선덕여왕(632-647) 때부터 있었다."라는 기록으로 적어도 647년에는 차나무나 음료로서의 차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신라시대에 성행된 기록이 있는 한국의 다도문화는 고려시대에는 더욱 번성하였다가 조선시대에 와서 불교의 쇠퇴와 함께 조금 쇠퇴하였으나 선비들과 승려들에 의하여 그 맥을 유지해 오다가 근대에 이르러 차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현재까지 향유하는 인구가 급증하고 있으며 한국 전통 생활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선후기 다문화(茶文化)가 중흥되던 시기의 인물인 자하(紫霞) 신위(申緯: 1769-1845)는 차(茶)에 관한 시를 100편 이상 남겼으며 차(茶)를 사랑한 대다인(大茶人)이다. 그동안 신위에 관한 연구물이 많이 나왔지만 거의 대부분이 시·서·화 삼절을 다루는 내용에 중점을 둔 연구물들이었고 그의 음다 생활에 관한 연구는 없었다.
 본 연구는 신위의 시집인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에 있는 다시들을 통해 신위의 음다 생활에 중점을 두어 그의 다생활을 고찰하였다.
 그의 다사(茶事)를 살펴보면 차의 종류로는 용척다병(龍脊茶餠), 보림백모(寶林白茅), 학원차(壑源茶), 단차(團茶)와 월단차(月團茶) 등의 떡차와 말차 및 혼합차인 매화차를 즐겨 마신 기록이 있다.
 다구(茶具)로는 탕관, 찻잔류, 차 화덕과 다반(茶盤)이 있으며, 차를 끓일 때의 용어로 팽다(烹茶), 전다(煎茶), 점다(點茶), 약다 등을 썼으며, 차의 보관법과 팽다법에 관한 기록도 있다. 신위는 차의 맛을 단맛과 쓴맛으로 나타냈으며, 향과 색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다. 또 차를 끓일 때 물의 중요성에 관한 것과 땔감에 관해서 언급했다.
 그리고 그는 손수 차를 끓이기도 했으나 주로 다동(茶童)이 끓여 주는 차를 마신 기록이 많으며 특별한 절기인 중양절, 칠석, 섣달그믐에 끽다한 기록이 있다.
 음다 공간은 다옥(茶屋)과 다실, 감옥, 별장 등에서 차를 마셨다고 했으며, 신위 주변의 다인으로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초의(艸衣) 장의순(張意洵)을 비롯해 미산(米山) 권영좌(權永佐)와 청나라 사람인 란설(蘭雪) 오숭량(吳嵩梁)에 관한 기록이 있다.
 18·9세기의 시(詩)·서(書)·화(畵)로 유명했던 그는 생애 후반에 불교에 관심을 가지면서 선승들 특히 초의(艸衣) 장의순(張意洵)과 가깝게 지내면서 차(茶)를 통해 선(禪)에 도달했다고 말하고 있다.
 자하 신위는 한국 다도문화사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오늘날 다인들은 다사(茶事)나 음다 정신에서 본 받을 바가 많다.
 
 

 

紫霞 申緯의 漢詩 연구 : 禪思想과 茶文化를 중심으로

탁효영

학위논문(박사)--원광대학교 일반대학원 :한국문화학과,200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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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서론 1
 Ⅱ. 생애와 교유관계 5
  1. 시대적 배경 5
  2. 생애와 저술 7
  1) 家系 7
  2) 生涯 8
  3)『警修堂全藁』의 개관 17
  3. 교유관계 20
  1) 국내인사와의 교유 20
  2) 국외인사와의 교유 39
 Ⅲ. 申緯의 文學觀과 詩論 52
  1. 성립 배경 52
  1) 明?淸 문학사조의 영향 52
  2) 실학적 문학사조의 영향 56
  3) 새로운 文風의 대두와 그 영향 59
  2. 申緯의 文學觀과 詩論의 기본 관점 61
  1) 神韻說의 受容과 비판 61
  2) 肌理說의 영향 64
  3) 神似論 受容 74
 Ⅳ. 申緯의 漢詩를 통해 본 禪思想과 茶文化 82
  1. 詩에 내재된 禪思想 82
  1) 禪思想에의 침잠배경 82
  2) 詩禪一如의 意境 98
  2. 시에 나타난 서정적 자연관조 117
  1) 자연물에의 移情 117
  2) 서정적 詠物詩 120
  3. 詩에 나타난 茶文化 131
  1) 茶와 詩 131
  2) 詩의 소재 134
  3) 茶文化 136
  4) 茶禪一味 165
 Ⅴ. 결 론 174
 參考文獻 177

 紫霞 申緯(1769-1845)는 정조 때 출생하여 순조 헌종 년간에 주로 활동한 저명한 문인으로서 시․서․화 삼절로서 평가받은 인물이다. 그는『警修堂全藁』에 4, 069수의 한시를 남긴 시인이며 서화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예술가였다.『警修堂全藁』에는 신위의 시서화 예술에 관한 전반적 내용들이 충분히 담겨져 있어 그의 예술사상을 파악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申緯는 名門世家로 이름난 平山 申氏 家門에서 태어나 높은 관직을 두루 엮임 하였으며, 원만한 성품으로 의연하면서도 적극적인 교유를 가졌다. 신위의 교유관계 통로는 주로 차와 시였다. 국내적으로는 당색과 종교를 초월하고 국외적으로는 국경을 초월한 교유를 하였다. 국내의 인사로는 차를 비롯한 예술세계까지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던 金正喜와, 신위의 회화에 영향을 미친 姜世晃, 시뿐만 아니라 음다 생활까지 영향을 받을 만큼 각별했던 丁若鏞, 차․시․서․화는 물론 선사상에까지 영향을 주고받은 선승 張意洵과의 관계가 주목할 만하다. 국외 인사로는 시․서․화에 있어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청의 대학자였던 翁方綱 父子와 吳嵩梁과 蔣煃와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중국학계의 거두들과 지적인 교유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1812년 신위가 서장관 자격으로 중국에 다녀온 후 부터이다. 국내 인사뿐 아니라 국외 인사들과의 빈번한 증답은 詩壇에서의 당시 신위의 위치를 말해 주고 있다.
 신위가 처한 시대는 정치적으로 당쟁이 계속되는 혼란한 시기였으며 학문적으로 실학사상이 기존의 성리학을 대신하여 활발히 전개되어 자생적이며, 자주적인 사상으로 정착되어 갔다. 문학방면에서는 민족 고유의 문학을 찾으려는 노력과 청조 문화의 유입이 교차하는 시기였다. 이때 그는 詩作에 있어 내용과 형식의 조화, 정신세계와 표현방법의 조화 등을 주장한 옹방강의 기리설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는 신위의 시세계의 전면적인 변화를 갖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그는 作詩에서 외형의 修飾이나 格律, 聲調보다는 妙悟, 興趣 등의 내면의 詩精神을 중요시 하였다.
 문화사적으로 볼 때 신위는 시․서․화․차․자연물 등의 예술세계와 선사상을 결부시켜 하나로 조화시켰다. 그는 유교적 가문에서 성장했으나 그의 시에는 불교어 및 불전에 관한 시어가 많이 보이며 또한 선승들과 주고받은 작품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인생관은 불교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불교적 세계관은 부인 조씨가 타계한 1827년부터 더욱 견고해졌다. 만년에 많은 선승들과 교유함으로서 선과 시의 정신적 원천에 있어서의 상통성을 인지하고 시의 내면에 선의 정신을 함축하였다. 특히 草衣 張意洵과는 차를 통해 참선을 추구하기도 하였다. 그는 시․서․화에 선과 차를 결부시켜 하나로 조화 시킨 참다운 차인이었다. 그는 또 인간 감정의 양상을 자연물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하였고, 이 자연물에 의탁하여 내면세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였다. 인생에 대한 生成消滅의 감정을 秋柳를 통하여, 비애의식은 柳絮를 통하여, 환생의식은 梅花를 통하여 구체화 시켰다.
 신위는『경수당전고』에 약 100여 수가 넘는 다시를 남겼다. 그의 茶문화를 살펴보면 차의 종류로는 龍脊茶餠, 寶林白茅, 壑源茶, 團茶와 月團茶 등의 떡차와 말차 및 혼합차인 매화차를 즐겨 마신 기록이 있다. 茶具로는 탕관, 찻잔류, 차화덕과 茶盤이 있으며, 음다공간과 다화, 차를 끓일 때 물의 중요성, 차를 마시는 때에 관한 내용을 시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부와 명예보다는 소박한 생활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茶생활을 하였으며 시․서․화․차를 통해 선에 이르고자 하였고 자연물을 통해 인간 내면세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申緯는 다도생활의 깊이와 성취를 통해 다도관과 선을 새로운 작품세계의 창작의 원동력으로 삼았으며 많은 茶詩를 남김으로써 茶文化史에서 조선후기의 大茶人으로서 역사적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