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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史 金正喜의 藝術論 硏究, PDF

화엄행 2009. 8. 23. 10:55

이은혁, 秋史 金正喜의 藝術論 硏究, ezPDF

학위논문(박사)--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한문학과,2007년 10월 

http://dcollection.sungshin.ac.kr/jsp/common/DcLoOrgPer.jsp?sItemId=000000005294

 

Ⅰ. 緖論 = 1
1. 問題의 提起 = 1
2. 硏究의 範圍와 方法 = 9
Ⅱ. 秋史 藝術論의 形成背景 = 11
1. 生涯와 交遊關係 = 11
2. 朝鮮後期 思想과 文藝的 傾向 = 27
1) 朝鮮後期 思想的 背景 = 27
2) 朝鮮後期 文藝的 動向 = 43
3. 考證學과 碑學의 盛行 = 57
Ⅲ. 秋史의 詩?書?畵 門逕論 = 71
1. 門逕論의 形成과 意義 = 71
2. 學詩門逕論 = 73
1) 學詩論의 成立 = 74
2) 學詩門逕論의 展開 = 75
3) 由蘇入杜 = 80
3. 學書門逕論 = 81
1) 學書論의 成立 = 81
2) 學書門逕論의 展開 = 83
3) 由唐入晉 = 102
4. 學畵門逕論 = 103
1) 學畵論의 成立 = 103
2) 學畵門逕論의 展開 = 106
3) 蘭畵論 = 122
Ⅳ. 秋史 藝術論의 展開 = 127
1. 詩論의 展開 = 127
1) 窮而工說 = 127
2) 性靈格調具備論 = 130
3) 詩法論 = 140
2. 書論의 展開 = 141
1) 書派論 = 142
2) 漢碑論 = 146
3) ?帖攷와 墨法論 = 149
4) 筆法論 = 154
3. 畵論의 展開 = 160
1) 天機論 = 161
2) 文氣論 = 162
3) 畵法論 = 165
4. 詩?書?畵?禪 一體意識의 確立 = 167
Ⅴ. 藝術論의 歷史的 位相과 現代的 意義 = 171
1. 審美意識의 鼓吹 = 171
2. 書畵論의 位相定立 = 175
Ⅵ. 結論 = 177
參考文獻 = 181
ABSTRACT = 190

 

 

김정희는 19세기 조선의 사상계와 예원을 주도한 실학자이다. 그는 정조 10년(1786)에 태어나 순조?헌종조를 거쳐 철종 7년(1856)까지 격변의 시대를 살았다. 사색당파로 얼룩진 정치현실에서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한때 벼슬이 참판에까지 이르렀으나, 결국 당쟁의 희생양이 되어 濟州와 北靑에서 긴 유배 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소년 시절에 북학자 朴齊家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익히며 개방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었다. 약관 시절에는 冬至使로서 燕行을 떠나는 부친 魯敬의 子弟軍官으로 청나라에 들어가 청의 문물을 접하고, 翁方綱?阮元 등 많은 문사들과 학연을 맺었다.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로 淸學을 적극 수용하여 자신의 학문과 예술세계를 구축하였으며, 일생동안 민족문화의 정체성 확립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는 실사구시 이념을 토대로 하고 고증학적 자세를 일관하여 조선후기 사상계와 예술계에 새로운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한중 문화교류의 주역으로서 큰 역할을 하였다.
본고는 김정희의 예술론을 분석한 것이다. 예술론은 詩論?書論?畵論으로 나누어지며, 그것들은 각각 門逕論과 創作論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경론은 단계적 학습법을 설명한 것이며, 창작론은 창작 기법과 예술의 본질을 논한 것이다. 문경론은 法古를 위주로 하며 창작론은 創新을 목표로 한다.
김정희의 예술론은 기본적으로 淸學의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김정희의 學詩 문경론에서 由蘇入杜를 명제로 제시하였다. 이것은 송나라 蘇軾의 시를 경유하여 당나라 杜甫로 들어간다는 논리로서 시의 전범을 시대별로 제시하며 설명하고 있다. 學書 문경론에서는 由唐入晉을 명제로 제시하였다. 初唐 3대가의 서법을 통하여 晉韻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으로, 法에서 韻으로 나가는 서예학습법을 제시하였다. 초당의 3대가는 진나라 왕희지 글씨를 전범으로 삼아 완전한 법칙적 전형을 이룬 서예가이다. 또 그들은 왕희지의 眞跡 <蘭亭?>를 임모한 인물들로서 그들을 통해서만 진운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學畵 문경론에서는 당나라 王維의 詩中有畵 畵中有詩의 경지를 목표로 삼았다. 詩?書?畵 문경론에서 공히 청으로부터 출발하여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階梯的 溯源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
창작론에서는 창작 기법과 예술론이 제시되었다. 詩論에서는 歐陽修의 ‘窮而工’설을 수용하였는데 ‘빈천의 궁’만이 아닌 ‘부귀의 궁’까지 논하였다. 또 시에는 性靈과 格調가 구비되어야 한다는 설을 제기하였다. 書論에서는 南北書派論을 수용하여 北碑을 우선하는 碑學派의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漢碑의 古拙美를 창작의 중요한 조건으로 중시하고 있다. 그리고 筆法에 앞서 墨法의 중요성을 피력하였다. 집필법과 운필법, 九生法, 結構法, 陰陽論 등 전통적인 필법들이 체험을 위주로 설명되어 있다. 서예비평도 하나의 중요한 이론으로 자리한다. 畵論에서는 文字香과 書卷氣를 중시하였다. 이것은 士人?에서 중시하는 文氣를 확대한 것으로 독창적인 주장이다. 이와 더불어 김정희 화론이 갖는 또 하나의 특징은 사인화로서 蘭畵를 중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형상보다는 의취를 강조하는 남종문인화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無自欺’와 ‘文字香 書卷氣’를 강조함으로써 寫意的 화풍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그려낸 <歲寒圖>와 <不作蘭圖>는 김정희 화론의 실제적 구현으로서 학예일치를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김정희는 詩畵一致, 畵理通禪, 書畵一理 등의 개념으로 상호 유기적 관련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예술이라는 하나의 범주 속에서 논하였다. 어떤 특정한 예술적 개념을 특정한 장르에 한정하지 않고 詩書畵論에 고루 적용함으로써 예술의 일체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통합적 사고는 그가 사상적으로 구애됨이 없는 通儒의 입장에 있었던 것과 다르지 않다.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을 논하고, 거기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하였던 것이다.
김정희의 학문과 예술은 실사구시 정신을 바탕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의 예술론은 법고를 통한 독자적인 창신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기저에 存古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존고는 전통주의라 할 수 있다. 전통론에서는 고전적인 고졸미를 추구하지만 창작론에서는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怪를 추구한다. 이것이 김정희의 예술론에서 나타나는 양면성이며 兼의 미학이다. 고졸미에서는 온축된 내면의 미의식을 강조하지만 파격미에서는 미의식의 파격적인 표현을 강조한다. 고졸미가 내용적인 것이라면 파격미는 형식적이다. 김정희는 이처럼 대립적인 美 개념을 자신의 예술세계에 융화시켰다.
김정희는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로서 심미의식을 고취하여 높은 예경을 이룩하였다. 실학자로서 博學을 실천하며 철저한 고증을 토대로 자신에게 터득된 것을 생생하게 전달하였다. 그가 갖추어야 할 심미의식으로 가장 강조하였던 문자향 서권기는 표현을 제일로 여기며 예술지상주의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도 매우 유효한 것이다.
김정희는 사색당파의 치열한 政爭 속에서 벗어나 方外에서 또 다른 세상을 주도하였다. 비록 정치적으로 견제와 통제의 압박을 피하지 못하였지만 예술을 통하여 현실을 超克함으로써 절대자유의 경지를 실현하였다. 김정희가 학문적 이념으로 삼았던 실사구시의 실학사상은 정치적 견제와 압박이 커다란 자극제가 되어 치열한 예술의 실천으로 작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김정희에 있어서는 ‘예술에 대한 철저한 자기 성찰과 끊임없는 실천’이 곧 실학이었으며, 그것을 통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절대자유를 획득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실학의 궁극적 목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