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답사 <1> - 190716 - 월성, 첨성대, 황룡사지,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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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월성(慶州 月城)은 신라시대에 궁궐이 있었던 곳의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여 신월성 또는 월성이라 불렀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고도, 재성(在城)은 조선시대부터 반월성이라고 불려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1]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명칭[편집]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1]
역사[편집]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년)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전한다.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1] 문무왕 때에는 안압지·임해전·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다.
성을 쌓기 전에는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어렸을 때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한다. 남해왕이 그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았으며,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전설도 전한다.[1]
형태[편집]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동, 서, 북쪽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1]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다. 누각, 관청, 왕궁과 같은 여러 건물들이 있었다.[1]
복원[편집]
2025년까지 복원을 위해 국비 1천890억원, 지방비 810억원 등 2천700억원을 투입한다. 우선 2017년까지 140억원을 투입해 월성 발굴 조사 및 기초 학술 연구를 진행하고 궁궐 핵심의 복원에 착수한다. 경북도와 경주시는 발굴 조사 성과를 토대로 복원 가능한 유구(옛 물건) 등의 복원을 추진할 예정이다.
발굴 일정[편집]
1단계(2014∼2018년/5개년)로 월성 중앙부 시굴조사와 정문으로 추정되는 북문지와 동문지, 남문지, 서문지를 발굴 조사 하고, 2단계(2019∼2023년/5개년)로 원지와 기타 유구 확인지역을 발굴하며, 학술대회 개최 및 발굴 종합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각주[편집]
참고 자료[편집]
황룡사탑 모사탑 1,2
현대건축기법을 응용하여 빌딩으로 올리고 황룡사탑을 음각으로 모사한 것으로, 여성을 상징하고, 옛 황룡사탑을 그대로 상징화한 건축으로, 남성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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