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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朝鮮 八景에 하나인 우두산(牛頭山,伽倻山)의 이야기

화엄행 2015. 8. 14. 21:07


 가야산 운해

                     朝鮮 八景에 하나인 우두산(牛頭山,伽倻山)의 이야기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사이에 있는 산. 주봉인 상왕봉(象王峰, 1430m)·두리봉(1133m)·남산(南山, 1113m)·단지봉(丹芝峰, 1028m)·매화산(梅花山) 등 연봉과 능선이 둘러 있고, 복판에 한국 3대사찰 가운데 하나인 해인사가 있다. 가야산을 만드는 산맥을 보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덕유산에 이르러 원줄기는 남쪽의 지리산으로 향하는 한편, 하나의 지맥이 동쪽으로 뻗어 대덕산(大德山, 1290m)·수도산(修道山, 1316m)과 단지봉을 거쳐 가야산에 이르러 크게 산세를 이루어 동쪽과 남쪽으로 洛東江(낙동강) 본류와 황강(黃江)을 굽어본다. 伽倻山(가야산) 상왕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서쪽으로는 德裕山(덕유산)이, 남쪽으로는 智異山(지리산)이 멀리 보인다. 伽倻山(가야산)은 예로부터 <朝鮮八景> 또는 <12대명산>의 하나로 꼽혀왔다.


伽倻山(가야산) - 이름의 유래


伽倻山(가야산)의 이름에 대한 由來(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海印寺가 들어서며 불교의 성지로 추앙받아 왔기 때문에 석가모니가 성도한 부다가야(인도 가야시 근처)의 가야를 불교와 관계있는 절 가(伽), 나라 이름 야(倻)로 음차해서 ‘가야’로 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공교롭게도 伽倻山(가야산)의 머리가 소머리처럼 생겨 우두산(牛頭山)이라고도 불렀고 소를 범어로 가야(kata)라고 한다. ‘가야’는 인도의 범어 내지 불교와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다른 견해로는 伽倻山(가야산) 지역이 옛날 伽倻國(가야국)이 있었던 곳이고, 이 산이 伽倻國(가야국)에서 가장 높고 훌륭한 산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야의 산, 가야산이라고 불려지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海印寺(해인사) 일주문 현판에 적힌 가야산(伽倻山)의 ‘야(倻)’자가 우리나라에만 쓰는 한자로 伽倻國(가야국) 즉, 나라 이름에 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가야산(伽倻山)은 1966년 6월 24일 史蹟(사적) 및 名勝地(명승지)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1972년 10월 13일 國立公園(국립공원) 제9호로 지정되었다. 가야산(伽倻山)은 慶尙南道와 慶尙北道가 서로 잇대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뚝 솟은 象王峯(상왕봉,1430m)은 일명 牛頭山(우두산)으로도 불리며, 해발1,430M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곳은 옛부터 해동의 10승지 또는 朝鮮八景(조선팔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우리나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八萬大藏經(팔만대장경)을 봉안한 法寶宗刹(법보종찰) 海印寺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海印寺 앞자락을 굽이쳐 도는 紅流洞 계곡은 우리나라 팔경 가운데 으뜸이라 했으며 新羅末 亂世를 비관하여 그 한을 달래기 위하여 산문에 들어가 선화(仙化)한 대학자 孤雲 崔致遠 선생의 자취가 남아있는 籠山亭, 學士臺등의 유적과 1995년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국 불교의 상징인 팔만대장경과 經板殿을 보유하고 있다 고기(古記)에 의하면 '산형은 천하에 절승 중 제일이다'라고 극찬하였으며,五臺山(1,563M),小白山(1,439M),과 더불어 왜적의 전화를 입지 않아, 三災(삼재.火災(화재),水災(수재),風災(풍재)가 들지 않은 곳으로 알려지고 있으며,四溟大師(사명대사.1544-1610)께서도 이곳에서 말년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옛 선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新羅 말 崔致遠(최치원:857-?)은 ‘가야산 독서당에 쓴 시(題伽倻山讀書堂)“에는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


狂噴疊石吼重巒  人語難分咫尺間

광분첩석후중만  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

상공시비성도이  고교유수진롱산


물살이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뿜어 나와.

말소리를 지척에서도 분간하기 어렵구나.

속세의 시비 소리가 혹시라도 귀에 이를까 봐

흐르는 물로 하여금 산을 에워싸게 한 것이리라.


휴정(休靜, 1520-1604), 유가야(遊伽倻)


落花香滿洞 啼鳥隔林聞

낙화향만동 제조격림문


僧院在何處 春山半是雲

승원재하처 춘산반시운


지는 꽃 내음 골짝에 가득

숲 저편에선 우짖는 새들.

절집은 대체 어디에 있나

봄 산 반 너머 구름뿐일세.



방송간은사(訪松間隱士소나무 숲 속 은자를 찾아)-휴정(休靜)


自悅松間屋 松間亦有臺

자열송간옥 송간역유대


客來不掃石 惟恐損蒼苔

객래불소석 유공손창태

소나무 사이 집이 절로 반갑고

소나무 사에는 돈대도 보이는구나

손님이 와도 돌을 쓸지 않으니

다만 푸른 이끼가 없어질까 두려운 게지


휴정(休靜) -선시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눈 쌓인 벌판을 걸어갈 때에는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이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이 되리니.


휴정(休靜, 1520-1604)은 조선 중기의 스님, 승병장.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 자는 현응(玄應), 멸호는 백화도인(白華道人), 풍악산인(楓岳山人), 두루산인(頭流山人), 묘향산인(妙香山人), 조계퇴은(曹溪退隱), 병노(病老), 성은 최(崔), 본관은 완산. 속성은 최(崔)이다. 그리고 자는 현응(玄應)이며 호는 청허(淸虛)·서산(西山)이다. 아명은 여신(汝信)이고 안주(安州) 출생이다. 1534년 진사시(進士試)에 낙방하자 지리산(智異山)에 입산, 숭인(崇仁) 문하에서 승려가 되어 《전등록(傳燈錄)》과 《화엄경(華嚴經)》 《법화경(法華經)》 등을 배웠다. 그 후 일선(一禪)에게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영관(靈觀)의 법을 계승하였다

                        
                                               사명대사 비석에 땀이 흐르는 모습

四溟大師(사명대사)는

朝鮮 중기의 高僧. 풍천 임씨.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 경상남도 密陽出身.


1604년 2월 오대산에서 스승 休靜(휴정)의 부음을 받고 妙香山(묘향산)으로 가던 중 선조의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가서 일본과의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받았다. 1604년 8월 일본으로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덕천가강)]를 만나 8개월 동안 노력하여 성공적인 외교성과를 거두었고, 전란 때 잡혀간 3, 500 여명의 동포를 데리고 1605년 4월에 귀국하였다. 그해 6월 국왕에게 복명하고 10월에 妙香山에 들어가 비로소 休靜의 영전에 절하였다.

그 뒤 병을 얻어 海印寺에서 요양하다가 1610년 8월 26일 설법하고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였 다. 제자들이 다비하여 홍제암(弘濟庵) 옆에 부도와 비를 세웠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덕천가강)]은 일본 전국을 통일하고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할 때 먼저 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명대사를 조롱하는 시를 보냈다.


石上難生草  房中難起雲

석상난생초  방중난기운


汝彌何山鳥  來參鳳凰群

여미하산조  내참봉황군


돌맹이 위에는 풀이 살기 어렵고

방에는 구름이 일어나기 어려운데

그대는 어느 산에 이름 없는 새이기에

감히 봉황이 노는 무리 속에 찾아왔느냐


사명대사는 즉석에서 붓을 잡아서


我本靑山鶴  常遊五色雲

아본청산학  상유오색운


一朝雲霧盡  誤落野鷄群

일조운무진  오락야계군


나는 본래 청산에 학이어서

항상 오색찬란한 구름 위에 놀았는데

하루아침에 구름과 이슬이 살져서

한낱 들새의 무리 속으로 잘못 떨어지고 말았구나.

 

상대의 마음을 看破(간파)하고 위축됨이 없이 肺腑(폐부)를 찌르는 名文에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고개를 숙였다 고하는 四溟大師가 병을 얻어 海印寺에서 요양하다가 1610년 8월 26일 說法하고 結跏趺坐(결가부좌)한 채 入寂(입적)하였다.

 

  
                                                            땀나는 비의 비각
 

차낙천당(次樂天堂.낙천당에 차운하여)-사명대사(四溟大師)


不?人間人不知  豈愁軒冕到吾遲

불온인간인부지  기수헌면도오지


樂夫天命稱君子  伯玉何須四十非

낙부천명칭군자  백옥하수사십비



남이 나 알아주지 않음을 성내지 않는데

어찌 내게는 벼슬이 더디 온다 근심하는가.

천명을 즐기는 자를 군자라 하니

거백옥은 어찌 인생 사십이 그릇되었다 고민 해야는가.


남명 조식(南冥 曺植선생이 사명당에게 시를 지어 준 시의 제목은 ‘유정산인에게 줌(贈惟政山人)’이다. 산인(山人)은 중에 대한 존칭이다. 南冥(남명)이 나이가 43살이나 적은 승려 惟政(유정)에게 이같이 정감 어린 시를 준 것은 斷俗寺(단속사;경남산청 단성면에 있었던 절)에서의 서로의 만남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花落槽淵石 春深古寺臺

화락조연석 춘심고사대


別時勤記取 靑子政堂梅

별시근기취 청자정당매


조연 돌 위에 꽃 떨어지고

옛 절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

이별할 때를 잘 기억해 두게나.

정당매 푸른 열매 맺었나니



차운하여 해인사에 쓰다(次韻題海印寺)-백분화(白賁華)


石徑幽深鳥伴行  滿軒烟月放歡情

석경유심조반행  만헌연월방환정


幢幡掩映溪涵影  鐘梵?洋谷答聲

당번엄영계함영  종범장양곡답성


坐久洞雲生又滅  談餘籠燭暗還明

좌구동운생우멸  담여롱촉암환명


許多風物堪收拾  作記吾今愧李程

허다풍물감수습  작기오금괴이정


돌길 깊숙하여 새를 친구하여

마루에 가득한 안개 속 달에 즐거운 정 쏟는다

깃대는 빛을 가려 개울물에 그림자 일고

종소리 울리니 골짜기에 메아리 소리

오랫동안 앉으니 골짝구름 피었다 사라지고

끝없는 이야기에 둘러앉은 촛불 어두웠다 밝아진다.

허다한 풍물 다 수습하려니

글을 쓰는 내가 지금 이정에 부끄럽구나.



가야산 속에서 짓다(伽倻山中作)-이항복(李恒福)


蒼然暮色來霜藤  新月出林西日下

창연모색래상등  신월출림서일하


問爾山中老樹精  今宵應見孤雲過

문이산중로수정  금소응견고운과


창연한 저문 빛은 서리 낀 등나무에 내리고

초승달은 숲에서 나오고 서산의 해가 진다.

묻노니 너 산중의 늙은 나무의 정령

오늘 밤 응당히 최 고운이 지나는 것 보리라.

 

 

    
                                                               해인사 일주문


 

   陶隱 李崇仁 漢詩(도은 이숭인 한시) 伽倻山

 

倻山行寄息谷上人(야산행기식곡상인)

 

倻山千萬重   圖畵應難窮

야산천만중   도화응난궁

            

煙雲浩冥?   松檜寒??

연운호명몽   송회한천총

                

絶壁屹立撑蒼穹  流泉直瀉拖白虹   

절벽흘립탱창궁  유천직사타백홍

        

春朝折芳秋賞月  夏日飮氷冬看雪   

춘조절방추상월  하일음빙동간설

        

倻山四時有誰識  廉公好事凌??

야산사시유수식  렴공호사릉락학

        

京都亦有崧   蟠勢龍虎雄   

경도역유숭   반세용호웅

                

人家?綴封   濃翠明??   

인가의철봉   농취명창롱

                

冠蓋曾無愛山客 山自媚悅輸翠色    

관개증무애산객 산자미열수취색

        

二年役役塵土惡  淸夢每夜天南極

이년역역진토악  청몽매야천남극

        

佳哉倻山信希有  況是星州我鄕曲

가재야산신희유  황시성주아향곡

        

先生?屋山之東  上人蓮社山之中

선생묘옥산지동  상인연사산지중

        

?詩說法兩淸絶  何當握手慰飢渴

아시설법양청절  하당악수위기갈

        

        

가야산 천만 겹을

그림으로 그려내려 해도 응당 다하기 어려우리.

        

연기와 구름은 넓어 어둑어둑하고

솔과 회나무는 서늘하게 울창하네.

        

절벽은 우뚝 서서 푸른 하늘을 떠받치고

폭포는 곧게 쏘아 흰 무지개를 끌어오네.

        

봄 아침에 꽃을 꺾고 가을에 달을 구경하며

여름날에 얼음 마시고 겨울에 눈을 보네.

        

가야산의 사시사철 누가 있어 알겠는가?

염공은 일을 좋아해서 산이 험함 개의치 않네.

        

서울에는 또한 송악산이 있어서

서린 형세가 용호처럼 씩씩하네.

        

인가는 개미가 쌓은 집과 같고

무르녹는 푸른빛은 창문에 밝구나.

        

벼슬아치 일찍이 산 좋아하는 사람 없어도

산은 저절로 기뻐하며 푸른빛을 실어 오네.

        

이년간 진토 열악한 곳에서 골몰하나

맑은 꿈은 매일 밤에 남쪽 하늘 꿈을 꾸네.

        

아름답구나! 가야산 같은 것이 진실로 드무니

하물며 이 성주가 내 고향임에랴!

        

선생의 띠집은 가야산 동쪽에 있고

선사의 절간은 가야산 가운데에 있네.

        

시를 읊고 설법함이 두 가지가 청절한 일이니

언제 손을 잡고 기갈한 사람을 위로하겠는가?


陶隱(도은) 자신의 고향에 있는 伽倻山(가야산)을 올라가면서 자기의 所懷(소회)를 읊어 息谷上人(식곡상인)에게 준 詩로 伽倻山(가야산)은 陶隱(도은)에게 신앙의 대상과도 같은 존재로 인식되어 언제나 자신의 흐트러지려는 마음의 중심을 잡아 주는 지주로


登伽倻山(등가야산) 이란 글은

作鎭星州界  流形陜郡東

작진성주계  유형합군동


蒼根蟠厚地  翠色滿晴空

창근반후지  취색만청공


猿鶴經年別  煙霞自昔同

원학경년별  연하자석동


我來登絶頂  第一望夫崧

아래등절정  제일망부숭


성주의 지경에 진산을 지어

형승을 합천의 동쪽으로 흘리네.

푸른 묏뿌리는 두터운 땅에 서려 있고

푸른빛은 갠 공중에 가득하네.

원학은 이별한 지가 오래이지만

연하는 예로부터 한가지라네.

내가 찾아와 꼭대기에 올라가서

제일 먼저 송악산을 바라보네.


자료<안동어문학 제4집, 안동어문학회(1999.11.)

陶隱 李崇仁 漢詩에 있어서 伽倻山의 意味-姜求律>


기이도은(寄李陶隱이도은에게)-정추(鄭樞)


伽倻山下日斜時  憶子淹留攀桂枝

가야산하일사시  억자엄류반계지


?愴胸中無限思  相逢無語卽分離

추창흉중무한사  상봉무어즉분리


가야산 아래 날이 저무는데

그대 잡아 두려 계수 가지 잡아당긴다.

쓸쓸한 마음속에 한없는 생각

만나면 말없이 다시 곧 헤어지다니


도은 이숭인(陶隱 李崇仁,.1349∼1392)

고려 말기의 학자로 본관 성주(星州). 자 자안(子安). 호 도은(陶隱).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 숙옹부승(肅雍府丞)이 되고 곧 장흥고사(長興庫使) 겸 진덕박사(進德博士)가 되었으며 명나라 과거시험에 응시할 문사(文士)를 뽑을 때 수석으로 뽑혔으나 나이가 25세에 미달하여 보내지 않았으며, 우왕 때 김구용(金九容)·정도전(鄭道傳) 등과 함께 북원(北元)의 사신을 돌려보낼 것을 주청하다가 한때 유배, 그 후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어, 정당문학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실록(實錄)을 편수하고 동지사사(同知司事)에 전임하였으나 친명(親明)·친원(親元) 양쪽의 모함을 받으며 여러 옥사(獄事)를 겪었다. 그리고 조선이 개국할 때 정도전의 원한을 사서 그의 심복 황거정(黃巨正)에게 살해되었다. 문장이 전아(典雅)하여 중국의 명사들도 탄복하였다고 한다. 저서에 《도은집(陶隱集)》이 있다.

 

                        
                                           홍제암  사명당 비

 

홍제암 사명당비=慈通弘濟尊者四溟松雲大師石藏碑『보물1301호』


1943년 합천경찰서장 다께우라가 민족혼발생을 염려해 4조각으로 깨뜨린 다께우라는 그 자리에서 급살즉사했다고 깨뜨려 진 비는 해방 후 복원되었다.

비문의 書體(서체)는 광해왕 4년, 1612년 12월  許均(허균)의 필체

弘濟庵(홍제는 공:익호)-壬辰倭亂(임진왜란)과 丁酉再亂(정유재란)때 큰공을 세우신 四溟大師(사명대사)께서 入寂(입적)하시기 전에 은거하시며 수도하시던 곳으로, 1614년(光海王6년) 공의제자 慧球大師(혜구대사)께서 공의 眞影像(진영상)을 봉안하기 위하여 影堂(영당)을 건립한 사찰이라 한다.


가야산 두리봉 갈대밭 - 임성조


오늘따라 달빛이 익은 달빛이

가야산 두리봉 갈대밭

갈대꽃밭에 내려

내 마음 복판에 노닐고 있네


뉘라 알리

비어 있는 갈대의 먼 기억 같은

비어 있는 가슴의 울림을 안고

한밤내 속삭이는 고요의 귀여


오늘따라 내 마음은

갈밭 안에 감기는 달빛만 같네

갈밭 안에 조용히 저를 흔드는

흔들리는 갈대 안의 숨결만 같네.


 

 

출처 : 재령이씨 인자 조 후손
글쓴이 : 운봉(雲峰:밀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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