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御眞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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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어진은 없습니다 자료는 김홍도가 그린것으로되어있지만 현재 소장분은 없습니다
조선왕 5분만 있습니다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3/Gojong-King_of_Korea-by.Hubert_Vos-1898-detail.jpg/190px-Gojong-King_of_Korea-by.Hubert_Vos-1898-detail.jpg)
![순종](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ko/thumb/6/65/Emperor_Sunjong.jpg/220px-Emperor_Sunjong.jpg)
이 초상화는 임금이 쓰는 모자인 익선관과 곤룡포를 입고, 정면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있는 전신상으로 명나라 태조 초상화와 유사하다. 곤룡포의 각진 윤곽선과 양다리쪽에 삐져나온 옷의 형태는 조선 전기 공신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또한 바닥에 깔린 것은 숙종 때까지 왕의 초상화에 사용된 것으로, 상당히 높게 올라간 것으로 보아 오래된 화법임을 알려준다. 의자에 새겨진 화려한 용무늬는 공민왕상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고려말에서 조선초까지 왕의 초상화에서 나타나고 있다. 익선관은 골진 부분에 색을 발하게 하여 입체감을 표현하였고, 정면상임에도 불구하고 음영법을 사용하여 얼굴을 표현하였다.
고종 9년(1872)에 낡은 원본을 그대로 새로 옮겨 그린 것인데, 전체적으로 원본에 충실하게 그려 초상화 중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정면상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소화해 낸 작품으로 조선 전기 초상화 연구에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영조어진(英祖御眞) ㅣ 보물 제932호 ㅣ 국립고궁박물관
이 그림은 51세 때 모습을 그린 것으로, 가로 68㎝, 세로 110㎝ 크기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렸다.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인데, 머리에는 임금이 쓰는 익선관을 쓰고, 양어깨와 가슴에는 용을 수놓은 붉은색의 곤룡포를 입고 있다. 얼굴에는 붉은 기운이 돌고 있고 두 눈은 치켜 올라갔으며 높은 콧등과 코 가장자리, 입의 양끝은 조각처럼 직선적으로 표현되었다. 가슴에 있는 각대 역시 위로 올라가 있고, 옷의 외곽선을 따로 긋지 않는 등 조선 후기의 초상화 양식이 보인다.
이 초상화는 영조 20년(1744)에 장경주, 김두량이 그린 그림을 1900년에 당대 일류급 초상화가들이 원본을 보고 그린 것이다. 비록 원본은 한국전쟁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원본을 충실하게 그린 것으로 현존하는 왕의 영정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정조어진
이 상은 영조 21세(1714년) 때 진재해(?-1735 이전)가 그린 것으로 영조 21년(1745)에 慶熙宮 泰寧殿에 봉안되었다가 정조가 즉위하자 잠시 景賢堂에 두었다가 정조 2년(1778년) 3월에 선원전으로 이봉되었다. 이 본은 가장자리가 불에 타서 1/3이 결손되었으나 얼굴, 흉배, 관대, 족좌 부분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당시의 초상화의 기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전하는 조선시대 어진은 전주 慶基殿의 태조어진, 고궁박물관 소장의 철종어진과 익종어진 등 극소수만이 남아 있는 실정이라 이 상은 영조가 연잉군 시절의 초상이라 할지라도 어진 연구에 참고 자료가 된다. 특히 1713년(숙종 39년) 肅宗御眞圖寫에 主管화사였으며, 이후 조영석의 형 <趙榮福像> 등 사대부들의 초상화 제작에도 참여한 진재해의 초상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또한 이 상은 보물 589호로 지정된 <강현상>과 함께 18세기 초기 정장관복형식의 초상화의 형식을 대표하는 기준작으로 평가된다.
ㅇ 규격(세로x가로) : 183×87㎝
이 <철종어진>은 임금이 具軍服으로 입고 있는 초상화로는 유일한 자료이다. 그리고 군복의 화려한 채색, 세련된 선염, 무늬의 정세한 표현 등에서 이한철과 조중묵 등 어진 도사에 참여한 화원 화가들의 필력을 확인할 수 있는 점 등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ㅇ 규격(세로x가로) : 202×93㎝
고종어진
어진(御眞)이란 왕의 초상을 지칭하는 용어로 어진 외에도 진용(眞容)·진(眞)·수용(晬容)·성용(聖容)·영자(影子)·영정(影幀)·어용(御用)·왕상(王像)·어영(御影) 등 다양하다. 어진이라는 명칭은 1713년(숙종39) 숙종 어진을 그릴 당시 어용도사도감도제조(御容圖寫都監都提調)였던 이이명(李頤命)의 건의에 따라 ‘어진’이라는 명칭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정에 의해 쓰이게 되었다. 그러나 어용 역시 조선말기까지 빈번히 함께 사용되어왔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어진 제작 과정이나 진전봉안체제에 관한 세부적인 사실기록은 전하고 있으나, 작품으로는 전주 경기전(慶基殿)의 태조어진, 국립고궁박물관의 영조어진·철종어진·익종어진, 그리고 영조의 연잉군(延礽君) 때의 도사본만이 현존하고 있다. 이 작품은 조선왕조 24대 임금인 고종의 어진으로 강사포(降紗袍)를 입은 전신좌상으로 얼굴은 정면관(正面觀)이다. 배경을 휘장으로 장식한 것이 특징적이며, 발 아래에도 화문석 대신 휘장과 비슷한 무늬의 천을 깔았다.
광무황제 49세 때의 모습(光武皇帝四十九歲御容)
순종어진
순종어진
조선조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 2세 황제 순종황제입니다. 어릴 적 모후이신 명성황후께서는 일본 낭인에게 시해 당하시고 아버지인 고종황제(광무태황제)는 황위에서 강제 퇴위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자식이 없으셔서 정통 황손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金殷鎬 作 - 흥영군 이우 초상 興永君 李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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