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소림사 (少林寺)항
功夫出少林-嵩山少林寺 <<천하의 무공은 소림에서 나온다>>
1. 소림사의 내력. 소림사에 대한 원문
- 위치
소림사는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封縣)에 있는 숭산(嵩山)의 소실봉(少室峯)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소림사'라는 이름 자체가 '소실봉의 북쪽 숲(林)속에 있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 창건
흔히 소림사는 달마(達磨)대사가 창건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사실은 약 천 오백년전에 북위(北魏)의 효문제(孝文帝)때(495년) 인도에서 온 발타선사(跋陀禪師)가 창건한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발타선사는 여섯 명의 친구와 함께 출가했는데 친구들은 모두 성불(成佛)을 하고 발타만 부처가 되지 못하였다. 그래도 낙망하지 않고 구도의 길을 떠난 발타는 마지막으로 중국에 이르러 효문제를 만나게 되고, 효문제의 명으로 소림사를 세웠다. 그는 삼십 년간 소림사에 머물다가 떠났다고 한다. 이 소림사의 창건에 대한 역사는 <위서석노지(魏書釋老志)>, <배최비(裴 碑)>,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등에 기록되어 있다.
- 달마
그 얼마뒤인 효명제(孝明帝) 3년(527년:발타선사가 소림사를 떠난뒤 불과 이 삼년후에), 그 유명한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소림사를 찾는다. 중국무술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신승(神僧) 달마는 석가모니의 이십 팔 대 제자인데 원래는 남천축(南天竺)에 있는 향지국(香至國)의 셋째 왕자였다. 그는 인도를 떠나 바닷길을 통해 동쪽으로 와서 제일 먼저 광동성(廣東省)의 광주(廣州)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그는 불법(佛法)을 전파하며 양자강을 건너 소림사로 왔는데, 그때 그는 갈대잎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는 신통력을 보여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일위도강(一葦渡江)'의 전설이었다. 달마는 숭산의 오유봉(五乳峯)위에 있는 천연석굴에서 면벽(面壁) 구년의 수도에 들어간다. 깊이 두 장(丈) 반(약 7미터), 너비 한 장(약 3미터) 남짓한 이 동굴은 그로 인하여 달마동(達磨洞)이란 이름을 얻었다. 면벽 구년동안 달마가 마주보고 앉았던 돌에는 달마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버렸다고 전해진다. 거무스름한 빛이 도는 흰 돌(白石)에 좌선하는 달마상(達磨像)이 검은 색으로 찍혀진 이 '면벽석(面壁石)'은 높이가 석 자쯤 되는데 나중에 동배전(東配殿:아미타전에 해당되는 소림의 전각)으로 옮겨져 유리상자 안에 모셔지게 되었다. 달마대사는 후에 보리유지(菩提流支)와 광통율사(光統律師)의 질투로 독살당한 뒤 관속에 신발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런데 그 후에 인도에 갔다 오던 위(魏)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인도로 돌아가는 사후(死後)의 달마대사를 만났다고 한다.
- 혜가
중국 선종(禪宗) 불교의 시조(始祖)가 되는 달마의 법통은 제이조(第二祖)인 혜가(慧可)에게로 이어진다. 혜가는 달마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여 달마가 거처하는 달마정(達磨亭)밖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이때 마침 눈이 내려 무릎까지 쌓였다. 달마는 혜가에게, '흰 눈이 붉은 색으로 변하면 제자로 받아 들이겠다.'라고 그의 신심(信心)을 시험하였다. 그러자 혜가는 스스로 왼팔을 잘라 피를 흘리니 흰 눈은 금새 붉은 색으로 물들고, 달마는 그를 제자로 거두었다. 달마정이 입설정(立雪亭)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눈이 무릎까지 쌓이도록 서 있었다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입설정 앞 오른쪽에 혜가가 팔을 자른 자리에는 '입설정'이라고 쓴 자그마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후 소림의 제자들은 한 손밖에 쓸 수 없는 혜가를 기리기 위해 한 손만을 바로 세우는 독특한 예법을 행하며, 가사(袈裟) 한 쪽 자락으로 왼쪽을 가리는 옷차림을 즐겨한다. 무협영화를 즐겨보는 독자라면 몇 번씩이나 보아왔던 소림고수들의 특이한 인사자세와 복장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기 536년 어느 날, 달마는 제자들을 불러모아 그들로 하여금 각자 깨달음의 경지에 대해 말해 보도록 하였다. 도부(道副)라는 제자가 먼저 말했다. "저의 소견으로는 우리는 문자(文字)에 집착하지 말고 그렇다고 문자를 버리지도말아, 다만 문자를 일종의 구도(求道)하는 도구로서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들은 달마는 이렇게 핀잔을 주었다. "너는 겨우 나의 껍질(皮)만 얻었구나." 다음은 총지(聰持)라는 비구니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아난타(阿難陀)가 아크쇼비아(阿 :석가 이전의 부처)의 불국토(佛國土)를 본 것과 같습니다. 한 번 보고는 다시 못보았으니까요." 달마의 대답은 이러했다. "너는 나의 살(肉)을 얻었다." 도육(道育)이라는 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의 사대(四大)는 본래 공허한 것이며 눈(眼), 코(鼻), 귀(耳), 혀(舌), 몸(身)의 오온(五蘊)은 모두 실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선 자리에서 보면 불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 달마는, "너는 겨우 나의 뼈(骨)를 얻었구나." 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혜가가 절을 하고는 그냥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 달마는 혜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야말로 나의 진수(眞髓)를 얻었다." 이렇게 해서 혜가는 선종의 이조(二祖)가 되었던 것이다.
- 혜능
신심이 두터웠던 혜가는 달마의 법통을 이어받아 각지에서 포교하다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처형되고 선종의 법통은 삼조(三祖) 승찬(僧璨), 사조(四祖) 도신(道信), 오조(五祖) 홍인(弘忍)으로 내려오다가 육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남북 양파로 갈라지게 된다. 달마대사만큼이나 유명한 인물이었던 육조 혜능은 선종의 법통을 단순히 이어받는데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의 혁신을 주장했다. 정통을 고수하기를 주장하던 신수(神秀)는 혜능과 갈라졌는데 신수의 유파를 북종(北宗)이라 불렀고, 수행법의 혁신을 주장한 혜능이 창시한 것을 남종(南宗)이라 부른다. 신수는 혜능보다 먼저 오조 홍인의 문하로 들어온 사람으로 혜능에게는 대선배라 할 수 있다. 그는 박학다식하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는데 그와 혜능의 사상적 차이를 잘 나타내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홍인이 제자들을 불러 계송을 지으라고 했다. 신수가 먼저 계송을 지었다.
"신시보리수(身是菩提樹), 몸은 보리의 나무요,
심여명경대(心如明鏡臺),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나니
시시근불식(時時勤佛拭),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막사유진애(莫使有塵埃).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이에 대해 혜능은 이렇게 계송했다.
"심시보리수(心是菩提樹),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신위명경대(身爲明鏡臺).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나니
명경본청정(明鏡本淸淨),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하처염진애(何處染塵埃). 어느 곳이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오조 홍인은 혜능의 이 계송을 듣자 그에게 곧 자신의 의발(衣鉢)을 전수하며 육대조사로 임명했다고 한다. 혜능의 사상은 훗날 임제(臨濟), 의현(義玄_에 의해 임제종(臨濟宗)으로 꽃피게 된다. 소림사가 선종불교의 본산(本山)으로 이름이 높은 것은 바로 달마-혜가-혜능의 선맥(禪脈)에서 비롯된 임제종의 가람(伽藍)인 까닭이다.
2. 소림사의 구조
고루(高樓)는 원(元)나라때의 초조암(初祖庵)이며, 본전(本殿)은 송(宋)나라때의 목조건축이다. 본전의 내부에는 인왕(仁王), 용(龍)등을 부각한 석주(石柱)가 있다. 그 밖에 다수의 당송(唐宋)이후의 석비, 동위(東魏)의 삼존불(三尊佛), 북제(北齊)의 조상(彫像)등이 있다. 본전의 앞에는 소림사의 승려들이 권법을 수련했다는 상석(床石)이 있고, 경내의 깊숙한 곳에는 역대 고승들의 묘와 석탑이 숲의 나무처럼 서 있는 탑림(塔林)이 있다. 이 외에도 각종 무공비급과 불교의 경전들을 보관한 장경각(藏經閣), 소림사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접대하는 지객당(知客堂), 소림사의 노승(老僧)들이 보다 높은 불법을 수도하는 계지원(戒持院)의 양심당(養心堂), 소림의 제자들의 규율을 감독하는 계율원(戒律院), 소림사의 장문인이 기거하는 방장실(方丈室), 방장실을 앞뒤로 에워싸고 있는 팔대호원(八大護院), 영화로도 익히 알려진 소림고수들의 무공연습실인 소림삼십육방(少林三十六房), 소림의 절정고수들인 십팔나한(十八羅漢)들의 거처인 나한전(羅漢殿)등이 많이 알려진 장소들이다. 이외에도 작가, 혹은 작품에 따라 선대 고승들의 유골과 유품을 모아 놓은 조사전(祖師殿), 장로원 격인 장생전(長生殿), 계율을 어긴 승려들을 가두는 참회동(懺悔洞)등이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3. 소림사의 조직.
소림사의 장문인(掌門人)은 방장(方丈)이라고 부른다. 방장이라는 칭호는 원래 천축의 유마거사(維摩居士)가 처음 호칭한 말로, 불법을 많이 닦은 고승들이 주로 사방 한 장(丈:3미터) 정도 되는 좁은 밀실에서 도를 수련한다는데서 유래된 것이다. 대체로 방장 밑에는 그를 호위하는 팔대호원(八大護院)이 있는데 그들중 우두머리는 감원(監院)이라고 한다. 사대금강(四大金剛)이나 십팔나한(十八羅漢)은 자주 등장하는 것이고, 그들외에 십계십승(十戒十僧)이 있다. 십계십승이란 불교에서 승려들이 지켜야할 열 가지 계율(戒律)을 관리하는 열 명의 승려들을 말하는데 이들의 절 안에서의 위치는 상당히 높았다. 십계란 살계(殺戒), 투계(偸戒), 망어계(妄語戒), 기어계(綺語戒), 음계(淫戒), 주계(酒戒), 악구계(惡口戒), 탐계(貪戒), 진욕계(嗔欲戒), 치계(痴戒)의 열 가지로, 이를 주관하는 승려들을 각기 살계승, 투계승.....등의 명칭으로 불렀다.
4. 소림사의 배분(輩分)
소림사의 배분은 엄격해서 윗 배분의 인물들에게는 절대 복종하였다. 명나라부터 청나라 순치(順治)년간까지의 소림승려들은 대부분이 현(玄)자 배를 썼다는 기록이 있으나 확실치는 않고 무협소설에서는 각기 다른 배분이 나오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느 자 배분이 우선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대체로 무협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소림사의 배분을 가나다 순으로 기술하면 아래와 같다.
- 각(覺), 계(戒), 공(空), 광(廣), 굉(宏), 담(曇), 대(大), 덕(德), 도(道), 료(了), 명(明), 묘(妙), 무(無), 방(方), 백(百), 범(凡), 법(法), 보(普), 불(佛), 심(心), 연(緣), 영(靈), 오(悟), 운(雲), 원(元), 원(圓), 언(園), 이(怡), 일(一), 자(子), 정(丁), 정(靜), 종(宗), 지(智), 지(知), 천(天), 해(海), 현(玄), 혜(慧), 혜(惠), 홍(洪), 홍(弘),
5. 영약(靈藥)및 신물(信物)
소림사의 영약으로는 무림제일의 성약(聖藥)이라고 까지 불리우는 '대환단(大還丹)'과, 그보다는 조금 떨어지지만 역시 놀라운 성능을 지닌 '소환단(小還丹)'이 있다. 소림장문인의 신물은 녹옥(綠玉)으로 만든 지팡이인데 흔히 '녹옥불장(綠玉佛杖)'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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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ompy.buddhapia.com/homepy/dhamaline/content/0000000273_2250_0000130627.asp
달마대사는 타협이나 방편을 쓰지 않고 직설로서 부처님의 핵심을 가르친 선종의 종조다.
대사는 원래 남인도 향지국왕(香至國王)의 세째아들로 태어났다. 그당시 석존(釋尊)의 27대 제자인 반야다라(般若多羅)존자가 나라제일의 보물을 보여주며 왕자들의 지혜를 가늠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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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이런 보석은 감히 최상의 보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보물은 단지 가지고 있는 사람만을 기쁘게 할 뿐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가는 보물은 여러 가지 법중에서 부처의 가르침이고, 사람이 지닌 뛰어난 능력 중에서는 지혜가 가장 두드러지며, 그리고 지혜중에서는 마음의 지혜가 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가지 보물이 가장 훌륭한 보물일 것입니다."
이때부터 그의 비범함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반야다라존자에게 40년동안 사사 받고 마침내 스승에게서 나와 수만번 단련을 받은 큰 그릇으로서 각 종파의 대사들 사이에 내놓여졌다.
그는 14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정법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길을 떠나 3년만에 천만리 떨어진 중국에 도착한다. 한편 달마대사의 모습에 대해서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가기 위해 배를 타려고 항구에 이르자 수 백년 묵은 큰 물고기가 배가 드나드는 길목에 와서 죽어있어 배가 그 길목을 통과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으며, 차츰 썩어서 냄새가 인근에 진동하여 주민들의 불편이 컸다. 이에 대사는 숲 속에 들어가 조용히 선정에 들어서 그 정신이 몸에서 벗어나 신력으로 고기시체를 먼바다에 내다버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숲에 돌아와 보니 자신의 몸은 온데간데 없고 어떤 괴이한 몸이 하나 있었다. 대사가 혜안으로 가만히 살펴보니 그 나라의 이름 높은 오통선인이 숲 속에 대사의 수려한 몸이 있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몸을 그 자리에 벗어두고 대사의 몸을 바꾸어 가지고 갔던 것이다.
갈길이 바쁜 대사는 하는 수 없이 그 선인의 괴이한 몸으로 들어 갈 수 밖에 없었다. 달마의 용모는 원래 빼어났는데 그 바꾼 몸은 배가 불뚝하고 눈이 파랗고 수염이 많아서 괴상하게 되었다. 후대에 전해지는 달마도의 모습이 괴상하게 그려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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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긴 여정을 거쳐 중국에 도착한 대사는 구불교의 폐해에 빠진 중국의 백성들을 구제한다는 일념으로 무제(武帝)를 알현한다. 여기서 그 유명한 문답이 벌어졌다. 양무제가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절을 짓고 경전번역도 했으며 또한 많은 승려를 육성했소.
그리고 수없이 많은 시주를 했는데 이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이에 대사는 "所無功德, 황제의 공덕은 하나도 없다"라고 대답했다. 대사는 아직 그 나라에 자신의 불교를 널리 퍼트릴 분위기가 성숙하진 않은 것을 깨닫고 양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향했다. 이 때 달마가 갈대를 꺽어 양자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는 유명한데 그것은 대사의 신통력을 보여주는 일화인 듯 하다.
그렇게 하여 달마는 위나라 소림사(小林寺)로 들어가 면벽좌선하면서 때가 성숙하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혜가(蕙可)가 팔을 잘라 가르침을 구함으로서 비로소 가사와 '능가경'을 전해주며 법을 전수하게 되었다. 이 후 그의 가르침은 널리 퍼져 당송시대(唐宋時代)이르러 극성하게 된다.
소승불교(小乘佛敎)뿐만 아니라 모든 석학홍유(碩學鴻儒)들도 선화(禪化)시켜 달마를 종조로 삼는 선종(禪宗)은 각방면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사의 면벽구년(面壁九年)의 연묵(淵默)은 무궁한 뇌성을 울리게 했고, 진인(眞人)의 법력이 종횡으로 치달아 서로 교통하게 하니 대사의 눈은 각지를 꿰뚫어 신령스런 기운을 천지간에 충만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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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 達磨
범어 : 인도의 베다에서 사용되는 모든 法이라는말이며 천칙(天則) 자연의 법칙.
인간계의 질서. 진실. 정의 등으로 사용되는 말이다.
불교계에서는 불타의 가르침. 진실. 佛法. 諸法. 등의 뜻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達磨
달마는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왕자이고 이름은 보리다라 였다.
성장하면서 대승불교의 승려가되어 禪에 통달 하였습니다.
달마대사의 스승은 ?
般若多羅존자 이시다.
반야다라존자는 457년경 동인도사람 佛如密多의 법을받아 승려가 되었다.
뒤에 향지국에와서 (보리다라) 왕자를 교화하여 보리달마 라 이름을 짖고 법을 전해주였다.
보리달마(菩提達磨)을 약칭하여 達磨라함
達磨祖師
언제동양에 오셨는가 ?
달마는 중국 南北朝時代의 禪僧으로 中國禪宗의 始祖이다.
반야다라존자의 법맥을 이은뒤 맹골만에서 배로떠나 중국 廣東에 이르렀다.
그후 지금의 남경인 金陵에가서 양무제를 만났다. 그때 달마대사의 나이는 130세라고 기록한다. 당시 중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었다.
北쪽인 낙양(洛陽)에는 북위(北魏) 위나라가 도읍을 정했고 南쪽에는 양나라때입니다.
황제 양무제는 불심이 돈독하여 佛心天子라하였다
양무제는 항상 국사에서 가사를 정대하고 방광반야경 (放光般若經)을 강의했고 오경의주(五經義注)200권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는 달마대사를 만나자 짐(朕)나라를세우고 (나라짐자) 절을 세우고 經을 간행하며 승려를 교육하고 불법을 전하니 그공덕이 얼마나 되겠오 하고 무르하니 달마대사는 공덕이요 하고 잘라말했다.
그후 달마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로갖다.
그리고는 소림산에 소림토굴에서 9년간 면벽 친묵을했다.
그후 달마선법을 6조의 한사람 2조 헤가(慧可)에게 전하였다.
禪이란 ?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달마대사로 부터 시작된다.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마음과 마음으로 전한 삼처전심(三處傳心)과 영산회상에서 점화미소(?花微笑)하고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부처님과 자리를 나누며 쌍림(雙林) 에서 관밖으로 발을 내보이므로부터 달마대사가 중국에 건너와 소림굴에서 9년간 면벽한후 혜가에게 법을 전한데서 시작된다.
선의 원조는 부처님이요. 종조는 달마 2조는 慧可. 3조는 僧璨. 4조는 道信. 5조는 弘忍. 6조는 慧能으로 하여금 달마의 선법이 전해지게 되었다.
달마안심(達磨安心)이란. 禪宗의話頭이다.
오등회원(五燈會元)이란?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이분들의 도풍(道風)을 말하는 것입니다.
달마선사
행적에는 여러 가지 설이있다.
양무제와 회견하며 문답한 이야기.
보리유지(菩提流支)와 광통율사(光統律師)의 질투로인해 독살당한뒤 관속에 두짝의신만 남겨놓고 서천으로 돌아갖다는 이야기와 또 인도 여행에서 돌아오던 宋 雲이라는 사람이 귀국도중 인도로 돌아가는 死後의
달마를 만난이야기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지만 현대에와서 돈황출토(敦煌出土)의 자료에 의하면 二入四行을 설교한 것이 사실로 밝혀졌는데 그것은 달마의 근본사상으로 理入은 正師의 가르침을 받고 중생의 일체가 同一眞性을 本有하는 사실을 믿는것을 말하며.
行入은 隨緣行. 無所求行. 칭법행(稱法行). 보원행(報?行).등을 말하지만 달마는 4권 능가경(楞伽經)을 주시하고 [ 二入. 즉 理入. 行入과 四行의 가르침을 설파하여 당시의 가람불교(伽藍佛敎)와는 전혀다른 坐禪을 통하여 그사상을 실천하는 새로운 불교를 강조한 성인이였다.
二祖 慧可
(487 - 593) 중국 승려
이름 神光 속성은 희(姬) 낙양(洛陽) 사람이다.
낙양 용문의 향산에서 출가하고 여러곳으로 다니면서 불교와 유교를 배우고 32세에 향산에 돌아와 8년동안 좌선하고 40세에 숭산 소림사에 菩提達磨를 찾아가서 눈속에 앉아 가르침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으로 자신의 왼팔을 잘라 求道心을 확인시켜 달마대사의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
서기 552년에 僧璨에게 법을 전하고 수나라 개황13년 3월16일 107세에 입적하였다.
당나라 태조께서 시호를 (正宗普覺大師)라 하였다.
三祖 僧璨
徐州 사람으로 선종 제3조인 중국스님
선종 제2조인 혜가의 宗要를 잇고. 서주환공산에 隱居한다.
後周의 무제가 불교를 탄압할때에는 일정한 주거없이 사공산을 왕래하며 은익생활로 10여년을 지낸다.
서기593년 도신(道信)에게 의발(衣鉢)를 계승한다.
그후 僧璨선사는 환공산에서 크게 불교를 교화하였으며 저서 신심명(信心銘) 대업 (大業)등 많은 가르침을 남기셨다.
입적은 서기 606년 10월에 입적하셨다.
당나라 현종이 시호를 감지선사(鑑智禪師)라 내렸다.
四祖 道信
중국의 승려 속성은 사마(司馬)이다.
14세에 승찬선사를 스승으로 9년간 섬기고 의발(衣鉢)를 전수받고 대중을 거느리고 여산의 대림사(大林寺)에서 정진하고 624년에 근주(?州)에 들어가 파두산(破頭山)에서 사대부를 교화하시고 달마 5조 弘忍에게 법을 전하고 太宗이 불렀으나 나가지 않이하고 72세에 입적하였다.
시호는 대의선사(大醫禪寺)라 내렸다.
五祖 弘忍
홍인은 중국 당나라 승려 602년 675년
홍인선사는 황매현(黃梅縣)사람으로 4조 道信선사를 만나 심인(心印)을 받아 佛法의
선풍을 일으키고 671년 6조인 慧能에게 법을전하고 74세에 입적 하였다.
시호는 대만선사(大滿禪師)이다. 입적후 제자들이 중국 황매산 동산에 탑을세워
홍인선사의 법을 계속전하고 있습니다.
六祖 慧能
헤능 638년 713년 76세 입적 중국 당나라때 승려
중국 선종의 대선사로서 南海신흥사람 속성은 盧씨 3세 부사망
당나라 함형때 황매산에서 弘忍 선사에게 법을 이어 받았다.
스승 홍인이 묻기를 너는 어디서 왔느냐 영남에서 옵나다. 하니 홍인선사가 다시
말하기를 영남사람은 불성이 없느니라. 하시니 혜능이 답하기를 사람은 남북을 구분
하지만 불성이 어찌 그와 같겠습니까. 이대답에 홍인선사는 허락하여 의발(衣鉢)을
전수하고 법을 전하였다.
혜능선사는 676년 남방으로가서 불법을 펴다가 조계산으로 들어가 정혜불이(正慧不二)를 설하며 坐禪보다 견성(見性)을 중요시 하였으며 동문신수(同門神秀)북점(北漸)
의 종풍에 대립하여 돈오돈수(頓悟頓修)적인 남돈(南頓)의 禪風을 선양하였다.
당나라 4002년 8월에 76세로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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