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과 선의 돈교논쟁》에 대한 논평
계환(동국대 교수)
I.
주지하다시피 華嚴의 同別二敎가 절대판으로 간주되어온 데 비해 五敎判은 상대적인 교판으로서, 화엄사상과 다른 교학을 비교하여 화엄교학의 우수성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오교판은 智儼에게서 시작된 것이지만 이를 대성시킨 이는 바로 賢首法藏이다. 그러나 ������화엄경������을 頓敎에 배대한 최초의 인물은 劉宋의 慧觀(?~453)으로서, 그는 頓漸二敎에서 돈교는 화엄계통으로 보살을 위하여 구족하게 이치를 나타낸다고 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
그 후 光統律師 慧光(468-537)은 頓․漸․圓이라는 三敎判에서 ������화엄경������을 圓敎에다 적용시키지만, 지엄은 ������화엄경������을 "頓圓二敎의 所攝"이라고 하여 ������화엄경������을 頓圓二敎에 배대하였다.
그러나 법장은 ������화엄경������을 "圓敎이자 別敎一乘"으로만 규정짓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지엄이 원교와 함께 돈교에 ������화엄경������을 배대하였다는 것은 남북조시대로부터 수당시대에 이르기까지 ������화엄경������에 대한 관점을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법장은 소위 남북조시대의 ������화엄경������에 대한 관점으로부터 탈피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스승의 五敎判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고 달리 四敎判을 세운 慧苑의 학설은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다시 이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을 가한 澄觀의 주장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그리고 선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보조가 징관을 어떤 입장에서 비판하게 되었는가, 하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살펴본 인경스님의 「화엄과 선의 돈교논쟁」은 매우 중요한 과제를 다룬 논문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화엄종 내지 화엄교학에서 이단시되고 있는 혜원에 대한 평가는 坂本선생의 연구 이후, 부진한 편이였는데 이번에 인경스님의 논문은 혜원교학에 대한 관심과 재평가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화엄과 선의 통로에 대한 시도라는 점에서 크게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혜원과 같이 頓敎를 부정하는 일이 과연 타당한가! 그리고 혜원은 무엇 때문에 전면적으로 頓敎를 부정한 것일까?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즉 오교판은 불교교법의 분류를 중심으로 한 교판이기 때문에 言敎로 표현된 바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만약 離言의 言을 敎로서 세운다고 한다면 終敎나 圓敎도 모두 頓敎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言敎를 끊어 이를 초월하고 있는 頓敎를 오교의 하나로 세운다는 것은 불합리하지 않는가? 라고 혜원이 비판한 것이다.
사실 頓敎의 정의로 보면 “敎를 나무라고 벗어날 것을 권하며, 相을 부수고 心을 없앤다”라고 하는데 이를 또다시 세워서 ‘敎’라고 하는 것은 일단 모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더욱더 깊이 천착해보면, 그것이 설사 遮遣的 표현이라 하더라도 이미 표현된 이상, 무언가의 所詮을 나타내는 것이 되므로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일종의 ‘敎’라고 이름 붙이지 못할 이유도 없다. 이와 같이 보면 혜원이 전면적으로 頓敎를 부정하였다는 것은 지나친 견해일 것이다.
다만 ‘敎’에 ‘頓’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頓敎가 종래 거의 化儀의 일종으로서 생각되던 관계상,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쉬운 표현이었던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하겠다.
II.
논자는 선과 화엄의 갈등관계를 화엄의 敎判論, 특히 頓敎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즉 지엄이 시도하고, 法藏이 체계화한 五敎判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고 비판한 혜원과 다시 혜원을 비판하면서도 오히려 그의 영향을 받고 있는 징관과의 돈교논쟁을 고찰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법장의 직제자인 혜원이 법장의 五敎判에서 頓敎에 문제가 있음을 제기하고서 四敎判을 세웠는데 논자는 혜원이 밝힌 돈교의 성격을 ������刊定記������를 인용하여 ‘亡詮顯理’로 이해하고, 이러한 관점을 能詮과 所詮, 그리고 根機라는 세 가지 입장에서 고찰하고 있다.
그리고 혜원의 이러한 주장을 강력히 비판한 징관의 돈교관에 대해서는, 頓敎란 단순하게 언어를 벗어난다고 하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이치를 단박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징관은 돈교를 언어에 의해서 그 이치를 드러낼 수 있다고 이해한 반면에, 혜원은 반대로 돈교란 언어를 벗어날 때만이 성립한다고 이해한 것이다. 또한 所詮이 무엇인지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대하여 "마음이 곧 그대로 佛"이라는 선종의 이념을 제시하고, 근기로는 "선종에 순응하는 자"라고 하여 현실적 불교계의 상황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이와 같은 징관의 돈교관을 비판한 보조의 주장에 대해서는, 먼저 징관이 理性에 대해 ‘頓詮此理’라고 했다면, 보조는 ‘離言絶慮’의 의미로 이해한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보조는 선가의 고승대덕들이 깨달은 내용은 한결같이 화엄의 ‘無盡緣起’ ‘事事無 法界’임을 밝히면서 돈교와는 결코 같지 않다고 한다. 또한 그는 선을 단순하게 돈교로 이해함은 부당하며, 더욱이 禪門에서는 以心傳心을 귀중하게 여길 뿐, 각 敎說의 義理分齊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선의 깨달은 내용(所詮)이 돈교의 眞空絶相이 아니라 원교의 사사무애법계임을 논증하는 보조선의 교학적 기초가 바로 화엄사상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지적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다.
그리고 보조는 선문의 언구가 돈교와 유사한 점이 있지만 양자는 서로 다른 언어관에 기초한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화엄이 의미를 발생시키는 인식과 대상의 대응구조를 전제한다면, 선은 그 의미의 대응구조 자체를 타파하고 해체시킨다는 점에서 그 관점을 달리한다고 본 것은 논자의 탁견이 아닐 수 없다.
III.
그러면서도, 화엄교학에 있어서의 돈교논쟁과 보조선이라는 입장에서의 돈교논쟁을 다룰 때, 이러한 점들도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몇 가지 점을 드는 것으로 평자의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첫째,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이 법장의 五敎判 가운데 頓敎이므로 법장 자신의 돈교에 대한 해석을 다소 다루어 주었더라면, 돈교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더욱 분명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징관의 돈교에 대한 비판을 다루면서 똑같은 시대적 배경에서 활동한 종밀의 반박은 오히려 더 선종적인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제외시킨 의미는 무엇인가?
더구나, 이들 논쟁에 대한 후대의 비판으로서 宋나라 화엄의 四大家 혹은 二水四家라고 일컬어지던 長水․晉水와 道亭․觀復․師會․希迪의 견해를 다루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의 하나이다. 그 한 예를 들면, 觀復의 ������折薪記������에서는 법장․징관의 돈교론과 종밀의 돈교론을 엄격히 구별하고, 더구나 일본의 鳳潭은 징관이 법장을 변론하는 것은 마치 견습공이 대목을 대신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격이라며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혹평을 가하기도 하였다.
둘째, 오교판에 그대로 적용되는 十宗判에서 징관은 終․頓敎의 순서를 바꿀 뿐만 아니라, 그가 비판한 혜원의 영향에 의한 명칭까지 나타나고 있는데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논자의 견해를 듣고 싶다.
셋째, 보조의 입장은 事事無碍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圓敎的인 입장일 터인데도 불구하고 돈교논쟁에 굳이 보조를 개입시킨 것은 어떤 의미에서인지 물어보고 싶고, 또한 결론에서 선과 화엄의 세 가지 차이점을 제시하면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는 각자에게 맡긴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논자 자신은 어느 쪽인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논제의 일관성에서 본다면 중국화엄의 돈교논쟁을 거론하다가 갑자기 한국의 보조선이 나오는 것은 너무 비약하지 않았나 싶고, 목차내용상으로 보더라도 제2장과, 제3장이 二元化된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전체 원고의 5분의 3을 차지하는 제3장의 내용을 서론과 결론에서는 전혀 거론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징관과 혜원과의 사상적 차이점을 분명히 가리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혜원과 보조 그리고 징관과 보조의 돈교관을 비교 고찰했더라면 훨씬 설득력 있는 주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논자가 지적했듯이, 선의 독자성을 확보하려는 보조의 비판적 입장을 부각시키려 한 의도는 시사하는 바가 많으나, 선 그 자체가 지니는 특성상 언어관은 별도로 하더라도 심성론은 性起思想으로, 실천론은 四法界說로 귀결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돈교논쟁이라기 보다는 선사상의 배경으로서의 화엄사상을 다루고 있는 듯한 느낌이 없지도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화엄사상에서 선과 염불에로의 통로를 찾고자 하는 시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시도되어왔으나 아직 그 결말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화엄과 선의 통로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을 생각하는데 많은 시사를 받았음을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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