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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심명 강설(信心銘 講說) 1 - 三祖 僧璨大師

화엄행 2009. 12. 29. 15:35

1.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지도무난     유혐간택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지극한 도(道)란 곧 무상대도(無上大道)를 말합니다. 이 무상 대도는 전혀 어려운 것이 없으므로 오직 간택(揀擇)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간택이란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말함이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으면 지극한 도는 양변(兩邊), 즉 변견(邊見)에 떨어져 마침내 중도의 바른 견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간법(世間法)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취해도 불교가 아니며, 마구니(魔軍)를 버리고 불법을 취해도 불교가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취하거나 버릴 것 같으면 실제로 무상대도에 계합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참으로 불법을 바로 알고, 무상대도를 바로 깨치려면 간택하는 마음부터 먼저 버리라 한 것입니다.


2.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단막증애     통연명백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

미워하고 사랑하는 이 두 가지 마음만 없으면 무상대도는 툭트여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부처는 좋아하고 마구니는 미워하며, 불법을 좋아하고 세간법은 미워하는 증애심(憎愛心)만 버리면 지극한 도는 분명하고 또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무상대도를 성취하려면 간택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즉 증애심입니다. 이 증애심만 완전히 버린다면 무상대도를 성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의 네 귀절이 바로 [信心銘]의 근본 골자입니다.
이제 정맥으로서 낭야각(瑯揶覺)선사라는 큰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에게 어느 재상이 편지로 "신심명은 불교의 근본 골자로서 지극한 보배입니다. 이 글에 대하여 자세한 주해(註解)를 내려주십시요"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낭야각선사가 답하기를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하는 첫 귀절만 큼지막하게 쓰고, 그 나머지 뒷 귀절들은 모두 조그맣게 써서 주해로 붙여버렸습니다.

그렇게 한 뜻이 무엇일까요? [신심명]의 근본 골수는 크게 쓴 귀절 속에 다 있으므로 이 귀절의 뜻만 바로 알면 나머지 귀절들은 모두 이 귀절의 주해일뿐 같은 뜻이라는 말입니다. 낭 야각선사가 앞 네 귀절만 크게 쓰고 뒤절은 주해로 써서 답장한 이것은 [신심명]에 대한 천고의 명 주해로서, 참으로 걸작이라는 평을 듣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신심명]을 바로 알려면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증애심만 떠나면 중도정각 (中道正覺)입니다. 대주스님은 [돈오입도요문(頓悟入道要門)]에서 '증애심이 없으면 두 성품이 공하여 자연히 해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첫 네 귀절이 [신심명]의 핵심이고 뒷 귀절들은 주해의 뜻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3.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호리유차     천지현격
   毫釐有差하면 天地懸隔하나니

"지극한 도는 어렵지않다. 취하고 버리는 마음과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버리라"고 하니, "아 그렇구나, 천하에 쉽구나!"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이뜻을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게 되면 하늘과 땅 사이처럼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쉽다는 것은 간택심 증애심만 버린다면 중도를 성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성불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으며, 무상대도를 성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지만, "이 간택심을 버린다, 증애심을 버린다"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뜻을 털끝만큼이라고 어긋나게 되면 하늘과 땅 사이 만큼이나 벌어진다고 하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4.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욕득현전       막존순역
   欲得現前이어든 莫存順逆하라

"무상대도를 깨우치려면 따름(順)과 거슬림(逆)을 버리라"한 것입니다. '따름'과 '거슬림'은 상대법으로서, 따른다 함은 좋아한다는 것이고, 거슬린다 함은 싫어한다는 것이니, 이는 표현은 다르나 '싫어하고 좋아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는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데, 지극한 도를 얻으려면 따름과 거슬림의 마음을 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5. 어긋남과 다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위순상쟁   시위심병
   違順相爭이 是爲心病이니

어긋난다, 맞는다 하며 서로 싸운다면, 이것이 갈등이 되고 모순이 되어 마음의 병이 된다는 말입니다.

■ 신심명 강설(信心銘講說) ② 로... ■
※ 출처 : 佛紀 2545. 8 .19일. 법보종찰 해인사


※ 게제자 註 : 신심명(信心銘), 승찬스님의 저술로 선의 극치를 불이중도(不二中道)로 보아 모든 대립과 차별, 시비와 득실의 망념을 떠나 평등 자재한 경지에 머무른 것을 설한 운문이다. 선승들에게 널리 읽혀 초기 선사상 형성에 기여했다.

선종의 3조(三祖) 승찬(僧璨)대사의 작품. <삼조승찬대사신심명(三祖僧璨大師信心銘)>을 줄여서 <신심명>이라고 한다. 모두 4언 146구 584자로 되어있다. <신심명>은 승찬대사가 선사상의 궁극적인 경지를 간략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제목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믿음과 마음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담고 있는데, '도에 이르기란 어렵지만은 않으니, 오직 차별을 짓지 말 것이다.'라는 구절로부터 시작해서 '언어가 끊어지니 오고 감이 지금에 있지 않다.'라는 구절로 끝맺고 있다.

차별과 대립으로 이루어진 현상세계를 뛰어넘어 마음의 본성을 되찾는 길은 바로 차별하는 마음에서부터 벗어나서 평등자재의 경지에 머물러야 된다는 것을 표현했는데, 선종문학의 효시가 되는 작품이다.

선종 특유의 직관적이고 전체적으로 간결한 언어에 중국적인 선사상의 세계를 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산문이지만 시에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승찬대사의 <신심명>은 중국 불교문학사뿐만 아니라 초기 선종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초기 선종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후대 선승들의 수행에도 많은 지침을 주어서 선종의 발전과 함께 교단의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은 작품이다.

승찬대사의 <신심명>은 그와 비숫한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선종의 5가 중에 하나인 조동종을 개창한 석두희천(石頭希遷)의 <참동계(參同契)>도 <신심명>의 영향을 받은 작품 중의 하나다. <참동계>는 5언 44구 220자로 쓰여져서 삼라만상의 평등한 실상을 읊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신신명>을 이야기할 때는 영가현각(永嘉玄覺)의 <증도가(證道歌)>를 빼놓을 수 없다.  영가현각은 육조혜능대사의 제자로 <증도가>는 그가 증득한 깨달음의 세계를 시로 표현한 것이다. <증도가>는 오도송(悟道頌)의 백미라고 일컬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명법천(南明法泉)선사가 계승한 <증도가> 320수 중에서 세종대왕이 30여 수를 골라 직접 번역하고, 수양대군으로 하여금 우리말로 옮기게 해서 <증도가남명계송언해(證道歌南明繼頌諺解)>를 펴냈다.

(자료출처 : 불교백과사전)

출처 : 유리산 무량사
글쓴이 : 천상천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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