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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央增伽大學論文集 (1996~1999) 권5~8호 논문선별Pdf.파일

화엄행 2009. 3. 27. 20:38

中央增伽大學論文集 (1996~1999) 권5~8호 논문선별Pdf.파일

2006/08/11 오후 11:44

 

澄觀의 儒道批判 - 盧在性 [1996].pdf

 

초록
自尊心이 강한 中國人에게 佛敎를 뿌리내리게 하기 위하여 中國의 고전에 맞추어 불교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格義佛敎에서 알 수 있듯이 中國佛敎를 바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유가와 도가를 비롯한 중국 고전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이는 不可能하다(반대로 불교 전래 이후의 도가와 유학 역시 불교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진정한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전래 초기부터 佛典을 중국인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중국고전을 많이 인용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이 중국 성인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儒佛道一致設을 주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佛敎의 特徵을 주장하여 불교의 우수성을 주장함으로써 중국불교를 정착시켰다.
예를 들면 불교의 五戒는 儒宋의 五常과 거의 같은 것이라고 말함은 붓다의 가르침이 중국의 傳統倫理에 어긋나지 아니함을 주장한 것이고, 宇宙인생의 生成論에서 自然·道·太極 等 第一原理를 내세우는 儒道와는 달리 불교가 因緣을 주장하는 것은 불교의 특징을 강조한 것이다.
小論은 중국 화엄 4조인 淸凉澄觀이 본 三敎觀과 儒道批判을 儒道의 중요 논쟁의 하나인 因緣說과 自然設로써 對比시키고 儒彿의 五戒와 五常을 중심의로 고찰하였다.



목차 Ⅰ. 서론
Ⅱ. 澄觀의 三敎觀
1. 澄觀의 佛道觀(因緣과 自然)
2. 澄觀의 儒彿觀(五常과 五戒)
Ⅲ. 澄觀의 儒道批判
1. 慧苑의 四敎判에 있어서 儒道批判
2. 澄觀의 十宗判에 있어서 儒道批判
Ⅳ. 맺음말

 

 


淸凉澄觀의 傳記에 대한 再考 - 盧在性 [1997].pdf

 

초록
우리나라의 佛敎專門講院의 大敎科 敎材는 淸凉澄觀이 지은『華嚴經疏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傳記와 思想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상태이다. 오히려 이웃나라인 일본에서 여기에 관한 연구가 많고 특히 鎌田茂雄박사는 이 연구를 통하여 東京大學에서 학위를 받았다. 오늘날에 이르도록 이 연구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후에 새로운 자료도 발견되고 견해를 달리하는 점도 눈에 띔으로 이에 새로운 각도에서 澄觀傳을다시 한번 조명하여 보고자 한다. 다만 지면의 제한이 있음으로 중도에서 그치게 됨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澄觀傳의 자료문제
Ⅲ. 澄觀의 生年 出生地 및 그의 家系
Ⅳ. 출가 득도 및 구족계의 수지
Ⅴ. 澄觀의 受學과 그의 學系

 

 


澄觀의 五臺山 入山과 『화엄경소초』의 著作 - 盧在性 [1998].pdf

 

초록
本 논문은 本校 『論文集』 제6집에 수록한 拙論 「淸凉澄觀의 傳記에 대한 再考」의 연속이다. 소론은 『華嚴經』 諸善薩住處品의 經文에 인도되어 五臺山에 올라 17年 間이나 산 속에 묻혀 참회와 기도 속에서 『華嚴經疏』를 짓고 그것을 다시 해석하는 『演義초』를 짓게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저술에 임하는 그의 마음가짐과 著述의 當爲性을 주장하는 열 가지 이유를 요약하여 놓았다. 여기서 澄觀이 말하는 著述의 當爲性은 주로 慧苑의 『續華嚴經略疏刊定記』를 비판하면서 자신이 『華嚴經疏초』를 짓는 것은 慧苑의 잘못을 바로잡아 法藏의 古義를 回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澄觀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얻어 한때 크게 유행하던 『續華嚴經略疏刊定記』는 점점 빛을 잃게 되어 著者인 慧苑은 華嚴宗의 列祖로부터 밀려나고 澄觀은 華嚴宗 第四祖로 자리 매김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近世 日本의 佛敎學者인 坂本幸男에 의해서 慧苑과 그의 저서는 再評價되고 있음을 紹介하였다.
목차 Ⅰ. 五臺山 入山과『華嚴經疏』의 著作
1. 五臺山에 오름
2. 『華嚴經疏』의 著作
Ⅱ. 『演義초』의 著作에 대해서
Ⅲ. 著述의 當爲性

 

 


澄觀의 五臺山 信仰 - 盧在性 [1999].pdf

 

초록
本 論文은 拙論 「澄觀의 五臺山 入山과 『華嚴經疏??』의 著作」(본교 『論文集』 제7집. 1998年, 중앙승가대학교, p.47~64)과 密接한 關係를 갖는다. 즉 지난 號에서는 澄觀이 『華嚴經』의 諸菩薩住處品의 經文을 보고 發心하여 五臺山으로 들어가서 17년 간이나 山 속에 묻혀 懺悔와 祈禱 속에서 『華嚴經疏』를 짓고 많은 講師의 要請에 의하여 다시 『演義??』를 짓게 되는 過程을 살펴보았다. 이번 號에서는 澄觀의 五臺山 信仰의 本質을 그가 「諸菩薩住處品」을 註釋한 『華嚴經疏』와 그것을 다시 자세하게 說明한 『演義?』에 依據하여 考察하고, 그것이 後代에 미친 影響과 澄觀이 住錫하였던 大華嚴寺 즉 오늘의 大顯通寺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목차 1. 序言
2. 澄觀이 말하는 經典上의 五臺山 信仰
3. 聖靈이 머문 곳
4. 五臺山의 聖跡
5. 皇室의 歸依와 外國僧의 參拜
6. 五臺山 參拜의 勸함
7. 唐末 五代의 五臺山 信仰
8. 大顯通寺
9. 맺는 말

 

 


龍樹의 念佛思想에 대한 一考察 - 李正模 [1996].pdf

 

초록
용수는 150-250년의 인물로서 소승불교와 대승불교를 독파하여 대승사상을 정립시킨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그를 여덟 종파의 조사라고 부르고 있다. 그가 남긴 저시 17종류는 대부분이 空사상을 밝히기 위한 것이며, 또한 어떻게 하면 부르게 수행하는가를 밝힌 것이다. 이 논문은 17종류의 저서 중 실주비바사론>과 <대지도론>에서 염불을 어떻게 논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용수는 불교 가운데 있는 여러 가지 수행을 어려운 수행문[難行門]과 쉬운 수행문[易行門]으로 교관하여 염불을 이행문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권하였는데 이는 그의 택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상은 후대 중국의 담랑·도작·선도가 이어받아 정토교를 대성시켰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문명의 행도와 득익에 대해서 논했다. 즉 부처님 명호를 누가 찬탄하는 소리를 어떤 사람이 듣고 어떻게 실천하며 얻어진 이익은 무엇인가를 논하였고, 이러한 사상은 정토경전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를 규명하였다.
다음 염불에서는 염불의 자세·방법·득익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특히 용수가 말한 색신염불·범신염불·실상염불·십호염불의 정의와 용수의 본의를 규명하였고 청명염불의 칭과 염불의 염의 전후관계를 밝혔다. 그리고 이 논문은 칭명염불할 때 갖추어야 할 공경심과 執持之心의 의의와 정토경전과의 관계를 밝혀 용수 염불관의 특색을 규명한 것이다.
목차 Ⅰ. 龍樹의 生涯와 著書
Ⅱ. 閱名의 行道와 得益
1. 閱名의 行道와 得果
2. 閱名과 稱名
Ⅲ. 念佛
1. 念의 자세
2. 念佛方法
3. 十號念佛
4. 稱名念佛
5. 念佛의 得益
Ⅳ. 結論

 

 


華嚴經類의 戒學에 관한 연구 - 陳永裕 [1997].pdf

 

초록
본 논문은 『화엄경』에 관계되는 제반 경전 및 논서에서 戒學에 관련된 부분을 검토하여 『화엄경』속에 戒學思想을 고찰한 논문이다. 『화엄경』에서 집중적으로 계학을 고찰할 수 있는 곳은 「정행품」 「십행품」 「십무진장품」 「십회향품」 「십지품」 「리세간품」 「입법계품」등이며, 이에 관련된 단행본의 경전과 논서 들이다. 특히 「정행품」에서는 보살 원행이 곧 보살계학임을 살필 수 있었고, 「십무진장품」에서는 요익계, 부주계등 10종계가 주목되며,「 십회향품」의 삼취정계의 명칭과 10종 戒香, 「십지품」의 십선도계, 「리세간품」의 10종계와 10종 청정계, 그리고 「입법계품」善住비구의 법문 중에 20종의 계목이 화엄의 대표적인 계학이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화엄의 계학은 십선도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대승계학을 대표하는 삼취정계사상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으며 『보살영락본업경』에서 대승 보살의 독자적인 계학을 형성하는 데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살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화엄의 계학은 십선도를 토양으로 하여 삼취정계의 계학을 꽃피움에 있어서 그 계학의 성격을 善行계학, 空行계학, 慈行계학으로서 특징 지울 수 있으며, 이는 곳 보살도의 願行과 화엄계학이 不二의 관계에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목차 I. 문제의 소재
Ⅱ. 화엄경류의 개요
1. 화엄경류의 원형경전
2. 화엄경 관련경전의 계학
Ⅲ. 화엄경류에 나타난 계학의 특성
1. 화엄계학의 명칭적 특성
2. 화엄계학의 사상적 특성
Ⅳ. 결론

 

 


華嚴敎學의 法界義의 고찰 - 陳永裕 [1998].pdf

 

초록
화엄교학에서 매우 중요시하는 용어 중의 하나인 '法界'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자신에 대한 단순한 질문이 이 논문을 정리하게 된 동기이다. 이 논문은 법계의 의미를 정리하는데 4단계의 고찰을 거치고 있음을 밝힌다.
그 첫째는 '법dharma'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둘째는 '계dha^(-)tu'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 첫째는 '법계dharma-dha^(-)tu'의 일반적인 의미, 넷째는 화엄의 법계의 의미이다.
마지막은 화엄교학의 법계의 의미를 고찰하는데, 먼저 『화엄경』 중의 법계의 용례를 정리하였고, 다음은 화엄 관계의 문헌을 통하여 화엄교학에서 법계가 가지고 있는 多義的인 의미를 검토하였고, 나아가서는 법계 연기사상의 형성 및 전개의 사상적 흐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의적인 법계 연기 사상의 전환점과 같은 역할을 한 교의로서 一心 및 一眞法界를 검토하였고, 결론으로 법계의 의미는 대승불교의 空性의 개념과 같이 하나의 개념으로 한정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포괄적인 상징의 용어로서 이해하여야 함을 밝혔다.
목차 Ⅰ. 서론
Ⅱ. 法의 의미에 대한 탐구
Ⅲ. 界의 의미에 대한 탐구
Ⅳ. 法界의 용어에 대한 정의
Ⅴ. 화엄교학의 법계의 의미
Ⅶ. 결론

 

 

 

相卽論의 思想史的 考察 - 陳永裕 [1999].pdf

 

초록
본 논문은 三論의 吉藏과 華嚴의 法藏이 그들의 불교 사상을 구축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은 '相卽論'을 중심으로 하여 두 사상을 비교 검토한 것이다. 三論의 상즉론의 근본은 般若思想에 기인한 二諦中道에 있고, 華嚴은 圖敎를 一實諦라 하여 相卽相入에 의한 원융무애의 세계관을 확립하고 있다. 그리하여 교리적으로 般若에서 三論, 그리고 華嚴으로 이어지며, 인물은 吉藏과 法藏이 대비된다.
그러나 여기에 法藏시대의 義湘과 法藏의 관계만으로도 韓半島의 불교학의 동향을 무시할 수 없고, 義湘에게는 또한 元曉라는 거목이 옆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法藏이 활약한 600년대에는 한반도의 新羅 불교가 융성기에 있었고 元曉의 和諍一心 사상은 吉藏에 이어서 法藏의 敎學 형성에 커다란 가교 역할을 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法藏이 華嚴의 法界緣起를 표방하는 圓融無碍의 敎學을 확립하는 데에는 吉藏의 二諦相卽과 元曉의 和諍 一心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을 정리하여 보았다.

목차 Ⅰ. 緖論
Ⅱ. 相卽의 論理的 構造
1. 相卽의 對立 개념
2. 相卽의 融通 개념
Ⅲ. 相卽의 思想的 展開
1. 二諦中道의 相卽
2. 和諍一心의 相卽
3. 圓融無碍의 相卽
Ⅳ. 結論

 

 

 

唐代 景敎의 傳來와 佛敎 - 吳弘禪 [1998].pdf

 

초록
景敎란 기독교 사제인 네스토리우스(Nestorius)의 敎設과 그 주장을 따르는 일파에 대한 中國式 명칭이다. 네스토리우스는 이단으로 몰려 이집트의 오아시스 마을에서 사망하고 그 추종자들은 시리아로 피신하여 거기서 정착하고 傳道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景敎라고 하는 이단으로 몰려 본거지인 콘스탄티노플 지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기독교의 일파가 唐朝에 中國에 들어온 사실은 여러 文獻 근거들을 통해서 볼 때 믿을 수 있다. 그러나 景敎寺院이 長安에 있있고, 신라 留學僧들도 長安에 있었다는 이유로 신라시대 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왔다는 주장까지 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본 고에서는 景敎와 佛敎가 관계되는 사안과 당시의 佛敎에 대한 왜곡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들을 염두에 두고 연구를 진행하려 한다. 『景敎』의 잘못된 부분들을 일일이 지적하거나 직접 비판하는 가능하면 일은 피하려 한다. 그럴 가치나 연구의 성과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목차 이끄는 말
Ⅰ. 長安의풍경
Ⅱ. 唐代의 西域 경영과 少數民族 관리
Ⅲ. 大素寺時의 발견
Ⅳ. 大素景敎流行中國碑頌 幷序 註解
Ⅴ. 景敎僧 景淨
Ⅵ. 般若 三藏과 六波羅蜜經
Ⅶ. 贊寧이 보는 異國 宗敎
맺는 말

 

 


唐朝의 純密盛行과 入唐 新羅 密敎僧들의 思想 - 全東赫 [1996].pdf

 

초록
우리는 곧잘 高麗佛敎를 秘密佛敎, 儀禮佛敎, 祈禱佛敎로 평가를 한다. 무엇이 고려불교를 이렇게 성격짓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것을 密敎라 생각한다. 곧 밀교야말로 고려불교의 핵심으로서 고려불교를 규명하는 열쇠로서의 위상을 가짐과 동시 나아가서는 廢佛期 조선조 500년이란 冬眠의 역사를 지탱케 해준 등불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密敎의 韓國的 展開硏究는 한국불교의 실상을 규명하는 우리 모두의 숙제가 될 것이다.
본고는 그 논제가 말해 주듯 한반도에서 純密思想 受容 및 그 전개사에 대한 고찰로서 《釋門儀範》 속의 純密思想 규명은 물론 한반도에서 성립된 二大 密敎宗派 神印宗과 總持宗의 法脈考察 내지는 思想展開史이다. 중국 및 일본사서에는 不可思議·玄超·의林을 비롯하여 慧超·惠日·悟眞 등 신라 밀교승들의 이름이 보인다. 모두가 金·胎 兩部 純密思想의 수학을 위해 神印宗과 總持宗에서 파견한 입당 신라 밀교승들이다. 곧 총지종 승려인 불가사의·의림·현초 등은 입당 후 태장계밀법의 대가 선무외삼장의 제자가 되어 胎藏界密法을 부촉받았으며, 역시 총지종 승려였던 혜일·오진 등은 金·胎 兩部 密法의 대가인 혜과화상으로부터 金·胎양부밀법을 부촉받았으며, 《왕오천축국저》으로 그 이름을 세상에 떨친 바 있는 혜초는 신인종 승려로서 입당하여 금강지·불공 兩 密敎三藏의 제자가 되어 금강계밀법을 부촉받았던 것이다. 이들 신라 밀교승들은 어떠한 사상을 가진 밀교승들이었을까? 불가사의는 《大日經供養次第法疏》를 남길 만큼 태장계의 事相法에 능통한 밀교사상가였으며, 일본 진언종 개산조인 흥법대사 공해와 함께 혜과화상으로부터 금강계·태장계·소실지법 등의 三部密法을 부촉받은 혜일은 《불공견삭다라니경》의 제17품 <不空견索心印品>을 남겨놓을 만큼 결인(Mudra)의 대가였다. 혜초는 금강지·불공 양삼장을 스승으로 모실 만큼 밀법에 심취해 있었다. 그가 남긴 《千鉢經》序文은 금강지삼장을 비롯한 밀교대가들의 동태파악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한 그가 스리랑카에서 將來해 온 그리고 어쩌면 그가 변역했을지도 모르는 《千鉢經》은 밀교경전의 교리발달사 연구에 없어서는 아니 될 귀중한 경전이기도 하다. 그 밖에 선무외삼장의 부촉제자로서 당나라 승 順曉아사리와 惠果和尙의 스승이었던 義林과 玄超스님이 있다. 이렇다 할 유작이 발견되지 않아 현재로선 사상파악이 어려운 상태이나 언젠가는 규명되어야 할 신라 밀교승들인 것이다.
목차 Ⅰ. 新羅 純密僧의 動態
Ⅱ. 新羅 純密僧의 思想
1. 不可思議의 사상
2. 慧超의 사상
3. 惠日의 사상

 

 

 

密敎經典의 新羅 傳來考 - 全東赫 [1999].pdf

 

우리는 곧잘 고려불교를 秘密佛敎, 儀禮佛敎, 祈??佛敎로 평가를 한다. 무엇이 고려불교를 이렇게 성격 짓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것을 密敎라 생각한다. 곧 밀교야말로 고려불교의 핵심으로서 고려불교를 규명하는 열쇠로서의 위상을 가짐과 동시 나아가서는 廢佛期 조선조 500년이란 冬眠의 역사를 지탱케해준 등불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密敎의 韓國的 展開 硏究는 한국불교의 실상을 규명하는 우리모두의 숙제가 될 것이다
본 고는 그 논제가 말해주듯 密敎經典의 新羅 傳來에 대한 고찰로서, 이것을 통해 당시 開宗되어있던 二大 密敎宗派 神印宗과 總持宗의 所依經典의 실태 파악은 물론 아직 그 실체를 확실히 규명해 놓고 있지 못한 신라 밀교의 구체적 실상 파악, 그리고 나아가서는 그 당시(신라 중기 : 654~780) 중국, 신라, 일본 삼국간에 펼쳐진 文化의 受容 내지 傳來史를 새롭게 정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일본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日本書紀(奈良時化의 역사서)에는 <祈羅道> <新羅送使> <遣新羅使> <遣新羅學問僧>이란 단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당시(나라시대)의 시대 상황을 대변해 주는 일종의 키워드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곧 당시의 일본의 對外文化 輸入의 窓口는 唐이 아닌 新羅였다는 것을 잘 나타내고 있는 단어들이다. 당시는 신라불교의 황금기로서 元曉, 義湘, 圓測, 勝莊, 憬興, 道倫 등의 명승들이 활약하던 시대, 바꾸어 말하면 불교문화의 본거지인 唐과 거의 동등하리 만큼 수승한 불교문화를 가지고 있던 그런 시기였다. 다시 말해 신라불교의 移植佛敎 그것이 바로 당시의 나라불교였던 것이다. 곧 <신라도>를 통해 <견신라사> <견신라학문승> <신라송사)들이 신라에 전래되고 있던 경전들과 法具 그리고 불교의식이나 신앙들까지도 나라불교에 이식시켰던 것이다.
중국 및 일본 史書에는 不可思議, 玄超, 義林, 惠超, 惠日 등 신라 밀교승들의 이름이 보인다. 모두가 金胎兩部 純密思想의 수학을 위해 神印宗과 總持宗에서 파견한 입당 신라 밀교승들이다. 곧 불가사의, 의림, 현초 등은 태장계 밀법의 大家인 善無畏三藏의 부촉 제자들이며, 혜일은 양부밀법의 부촉자인 惠果의 제자이며, 『왕오천축국전』으로 이름을 세상에 남긴 혜초는 金剛界 密法의 大家인 金剛智, 不空 兩 三藏의 제자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황금기의 시대 그 당시 신라시대에는 어떠한 경전들이 전래되어 있었을까?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어마어마한 경전들, 말하자면 唐에서 역경된 대부분의 현, 밀경전들이 전래되어 있었을 것이다. 신라불교의 이식불교인 奈良佛敎가 이토록 엄청난 많은 경전들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하물며 傳授者 신라는 이보다 못하겠는가?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당시 신라의 經典 傳來 실태나 또 어떠한 경전들이 전래되고 있었는지는 거의 알 수 없는 것이 현금의 실상이다. 본 고는 이러한 의문점에 문제를 느끼고 그 해결책을 찾고자 시도된 논고이다. 본 고의 결론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당시 신라에는 당시 나라시대에 전래되어 있던 경전들의 전체 상황을 알리는 『정창원문서』에 수록된 경전 以上의 顯密經典들이 전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곧 앞에서 거론한 신라 밀교승들을 비롯한 <입당신라유학승>들에 의해 직ㆍ간접으로 당나라에서 역출된 경전들 대부분이 신라에 장래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목차 Ⅰ. 문제의 소재
Ⅱ. 통일신라 전후기 삼국의 정세
1. 신라와 당의 관계
2. 신라와 일본의 관계
3. 일본과 수·당의 관계
Ⅲ. 奈良朝 일본사서에 보이는 밀교경전
1. 『日本書紀』에 보이는 밀교경전
2. 『續日本紀』에 보이는 밀교경전
3. 『正倉院文書』에 보이는 밀교경전
4. 『審詳和尙所藏錄』에 보이는 밀교경전
Ⅳ. 신라사서에 보이는 밀교경전
1.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보이는 경전전래기사
2.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보이는 밀교경전
3. 불교 미술품에 보이는 밀교경전
4. 諸 章??錄에 보이는 신라승 저작의 밀교 논서
Ⅴ. 중국사서에 보이는 신라밀교승
Ⅵ. 결론

 

 


經典信仰의 成立에 관한 一考察 - 吳光赫 [1996].pdf

 

초록
經典信仰의 原初的 바탕은 神을 인식하는 단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經典信仰을 성립시킨 직접원인은 經典과 經典의 流布, 佛敎에의 歸依, 그리고 中國文化에 깊이 자리하고 있는 經書에의 敬畏心들을 들 수 있다.
中國文化의 한 特色이라 할 수 있는 經書에의 敬畏心도 결국은 인간의 神의 인식과 괘를 같이하고 있다. 언어·文書는 神과의 관계에서 발달되었다고 한다. 祝詞詛呪가 그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中國만의 경우가 아니다. 인도의 경우 그러한 경향은 더욱 현저하고 확고하다. Veda 문학이 그러하고 음운학 文法學 등이 발달되는 때에 宗敎的 의미의 말(言·語)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언어의 신비력이 발전되어 진언의 신비력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paritta의 명칭으로 불교에 수용되며 대승불교의 實踐修行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금번의 연구는 이러한 宗敎의 原始初라고도 할 수 있는 言·語·文書의 神秘한 呪力을 믿었던 근거들을 찾아보고 그 思想의 변화의 과정들을 살펴보려 한다. 동시에 印度哲學의 큰 흐름이 聲韻論이라 할 수 있는데 言語에 관한 神秘力에 초점을 맞추어 眞言으로의 발전을 보고 싶다. 言·語의 詛呪力을 믿는 행위와 그러한 순박한 믿음의 근거 위에 성인의 말씀이라는 당위가 주어지면서 경전신앙은 더욱 힘이 실리게 된다. 이러한 소박한 신앙은 또한 소박한 신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전번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목차 Ⅰ. 序-가르침의 기억과 명상의 象徵性-
Ⅱ. 宗敎와 言·語·文字(書)
1. 言(말)의 呪術性
2. 言語(聲)의 信仰
3. 文字의 神秘性
Ⅲ. 神秘思想의 佛敎的 受容
1. Paritta의 成立
2. Paritta 成立 以前
3. Paritta 成立 以後
Ⅳ. 庶民佛敎와 講經僧(講經僧과 經典信仰)
1. 庶民的 佛敎의 受容
2. 庶民佛敎의 기수들-講經僧-
Ⅴ.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