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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 후기유학과 종밀(宗密)의 <원인론 原人論』 비교 - 리기용

화엄행 2009. 3. 27. 20:22

唐代 후기유학과 종밀(宗密)의 <원인론 原人論』 비교 - 리기용

2006/02/24 오 전 12:45

 

당대 후기유학과 종밀(宗密)의 <원인론 原人論』 비교


작성자 : 리기용
작성일자 : 1995년
소속대학교 : 백련불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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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代後期儒學과 宗密의『原人論』比較

리  기  용*

*철학박사, 연세대 강사·연세대 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栗谷 李珥의 人心道心論 硏究」,「栗谷의 更張論 硏究」,
「栗谷의 學問觀 硏究」



Ⅰ. 序 論

Ⅱ. 唐代後期 儒·佛의 道

Ⅲ. 唐代後期 儒學의 天 論爭과 理學的 思惟의 萌芽

Ⅳ. 宗密의『原人論』에 나타난 氣論的 特性과 理事

Ⅴ. 結 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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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序 論


당대 후기는 중국철학에서 기론적 사유가 발전·정립되는 한편, 理에 대한 사유체계의 맹아가 싹트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 문제를 고찰하기 위해서 韓愈에 의해 제기된「原道」와 天命에 대한 논변과 宗密의『原人論』을 비교하려고 한다. 특히 한유의「原道」와 종밀의『原人論』은 각기 당시 유학과 불교에 대한 입장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들을 비교함으로써 당시 儒·佛의 이론들과 상호의 영향과 발전에 대해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위에서 제기한 문제를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논의를 구체화시키기에 앞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 문제는 한유의 불교 비판과 종밀의 유가 비판의 구체적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인 작업이다. 한유의 불교 비판은 당시 불교의 말폐에 대한 비판으로 지엽적·현상적 층차에 머무르고 있었을 뿐, 당시의 발달된 불교사상 즉 종밀 이전 理事法界 등의 화엄사상에 대한 엄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종밀의 유교 비판도 선진유가의 천명이나 동중서의 천인감응 등 피상적 이해선상에서 제기되고 있을 뿐 당시 한유에 의해서 대표되는 유학이론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는 점이 그것이다. 이것을 확인하는 이유는 기존의 일부 연구성과에서 唐代의 儒·佛思想을 비교하면서도 韓愈(768∼824)와 李 (772∼841), 柳宗元(773∼842), 劉禹錫(772∼819) 등에 의해서 대표되는 당시의 유학과 法藏(643∼712), 澄觀(760∼820), 宗密(780∼841) 등에 의해서 대표되는 화엄이론을 비교해 주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송대 이학가들에 의해 해석된 이학의 원조·비조로서의 한유와 이고의 사상을 서술하면서 당시 불교에 의해서 발달된 측면을 간과하거나 송대 이학의 불교 비판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이학적 맥락에서 제기되었던 불교 비판의 문제를 가지고 종밀의 사상을 비판하는 데 논의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둘째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한유의「원도」와 종밀의『원인론』의 선후를 밝혀야 하는데, 바로『원인론』의 저작시기에 이견이 있다는 점이다.『원인론』이 종밀 초기의 저작이라면 당연히 논의는 종밀의『원인론』에 나타난 유가 비판과 그에 대한 한유의 불교 비판의 수순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종밀 후기의 저작이라면 논의의 수순은 바뀌어야만 한다. 이것은 종밀의 유교 비판 이면에 깔려 있는 세계에 대한 그의 기론적 사유방식이 元和年間(806∼820)의 天命에 대한 논의보다 이론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原道」와『原人論』으로 논의의 수순을 설정한 것은 원인론의 저작시기에 대한 고증적 결과를 토대로, 종밀의『원인론』사상과 理事法界論 등이 한유의 유학을 한층 제고시킴으로써 程·朱理學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중국 지성사의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구명하기 위해서이다.

셋째 문제는 종밀의『원인론』에 나타난 유학에 대한 비판이 도가에 대한 비판과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유학과 도가의 내용·입장 등의 커다란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儒·道의 내용을 구분하지 않고 비판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비판의 대상이 다소 모호하게 보일 수도 있다. 즉 비판의 엄밀성이 다소 결여되어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밀이 추구했던 것이 비판에 있지 않고 삼교의 융합·조화였다는 점과 종밀의 사상이 기론적 사유의 발전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그가 당시의 기론적 사유를 포괄적으로 이해, 발전시키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때문에 이 문제는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논의의 전개에는 무리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상의 문제들을 전제로 당대 후기의 유학의 불교 비판과 불교의 유학 비판을 통해서 어떠한 문제들이 발전했는가를 고찰할 것이다. 따라서 韓愈의 불교 비판, 宗密의 유가 비판이라는 관점을 가급적 지양하고, 韓愈를 중심으로 한 당대 후기의 유학이 宗密에 미친 영향을 밝히는 데 논의의 초점을 맞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道에 대한 유·불의 입장과, 둘째, 天에 대한 논변과 이해를 중심으로 당시의 기론적 사유의 발전과 理에 대한 맹아의 단서를 찾아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유·불의 시비를 논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지성사적 맥락에서 유·불의 논의가 어떻게 전개, 발전되었는지에 대해서 밝혀 보려고 한다. 이 논의를 통해서 그 동안 상징적으로 신유학의 선이해상에서 이해되었던 당대 후기의 유학과 불교사상에 대한 새로운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Ⅱ. 唐代後期 儒·佛의 道


한나라 말기 牟子의『理惑論』이 불교를 옹호하는 내용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는 한나라 때부터 유학의 불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불교에 대한 비판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구체적으로 전개된다. 육조 范鎭(445?∼515?)의『神滅論』은 당시 불교 비판적 견해를 담은 대표적 불교 비판서이다.『神滅論』은 불교의 영혼불멸설과 인과응보를 정면적으로 비판한 것으로서, 남조의 梁武帝 簫衍이 불교만을 正道로 인정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 이후 불교 비판의 모델이 되었다. 당대 유학의 불교 비판은 傅奕(555∼639)을 필두로 더욱 구체화된다. 傅奕의 견해에 동조하여 李仲卿은『十異九迷論』을, 劉進喜는『顯正論』을 저술하여 불교 비판의 이론을 전개한다. 한편 유교의 불교 비판에 대하여 불교의 교판론은 이미 언급한 牟子의『理惑論』에서부터 나타나며, 唐代儒學의 정면적 불교 비판에 대해 法林(572∼640)은『破邪論』·『辨正論』을, 李師政은『內德篇』등을 저술하여 유학의 이론에 대해 반박한다. 이와 같은 유학의 불교 비판과 불교의 유학 비판은 당시의 정치적 현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제기된 것이지만, 양자는 서로 비판하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 그 이론을 더욱 체계화시키게 된다.

당대 후기 유·불의 비판은 더욱 첨예화한다. 韓愈의「原道」와 宗密의『原人論』은 각기 당시의 대표적인 유학의 불교(·도가) 비판서와 유학의 불교(·도가) 비판서이다. 그런데 이 저작들은 비판적 측면을 가질 뿐만 아니라, 각기 당대 후기의 유가와 불가의 입장을 단적으로 잘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당시 불교의 유가 비판과 유가의 불교 비판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지양하기 위하여 서로의 비판에 대해서 그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道의 내용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것들은 비판보다는 그에 대한 자가의 입장을 전개하는 데 더욱 치중하게 되며, 그 결과 이론적 체계의 발전을 가져온다.

그러면 유·불의 비판적 입장, 즉 韓愈의「原道」와 宗密의『原人論』을 통해 그들이 밝히고자 했던 道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原道」와『原人論』은 제목상의 차이는 있으나, 그것의 구체적 내용은 유가와 불가의 서로에 대한 비판과 함께 儒·佛이 주장하고 있는 본래의 도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한유는 노자나 불교의 도와 유학의 도를 구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의 도가 쇠퇴하고 공자가 세상을 떠나니 진에서 (서적이) 불에 타고 한에는 황로사상에 (가려졌고), 위진양수 사이에 불교가 유행하였다. 그들 중 도덕인의를 말하는 자는 양주에 들어가지 않으면 묵적에 들어갔으며, 노자에 들어가지 않으면 불교에 들어갔다.
내가 말하는 이 도는 전에 노자와 불교가 말하는 도가 아니다. 요는 이것을 순에게 전했고 순은 이것을 우에게 전했고 우는 이것을 탕에게 전했고 탕은 이것을 문무주공에게 전했고 문무주공은 이것을 공자에게 전했고 공자는 이것을 맹자에게 전했다. 맹자가 세상을 떠나고는 그것이 전하여지지 못했다.

한유는 유학에서 말하는 본래의 도에 대한 이해를 위해 당시까지의 세태를 정리하면서 노장과 불교에 의해 인의도덕의 학문이 전해지지 않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것은 맹자 이후 올바른 도가 전해지지 않았다는 그의 도통론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도통론을 통해서 유학의 가치관념이 불교나 노자와 같지 않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여기서 그가「原道」를 펴내게 된 목적을 엿볼 수 있는데, 맹자 이후 당시까지의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여 유학의 道를 주장하기 위해서 저술된 것이 바로「원도」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楊·墨, 道·佛의 도덕에 대해서 유가의 도덕이 진리이며 그것들이 유가의 도덕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음을 밝히려는 강한 문제의식이「原道」의 기본 입장이라는 것이다.
한유의「원도」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바로 선진유가에서 제창되었던 仁義道德에 다름아님을 다음의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도는 자기네들이 도로 삼는 것을 도로 여긴 것이지 내가 말하는 도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덕은 자기네들이 덕으로 삼는 것을 덕으로 여긴 것이지 내가 말하는 덕이 아니다. 무릇 내가 말하는 도덕이란 것은 인과 의를 합하여 말한 것이다.

한유는 도가와 불교의 道에 대하여 仁義를 중심으로 하는 유가의 道를 말하고 있다. 노자는 도덕을 말했지만 인의를 버렸으며, 불교는 이적의 법으로 倫常을 폐기하므로 불합리한 것으로, 이것들은 유가에서 말하는 仁義의 道德과는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는 유가의 道의 구체적 내용인 仁·義, 道·德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풀이하면서 이것들을 각각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널리 사랑하는 것을 仁이라 하고, 행하되 합당하게 하는 것을 義라 하며, 옳은 것에 말미암아 나가는 것을 道라 하며, 자기에게 넉넉하게 있어 밖에 의존함이 없는 것을 德이라 한다.

이 구절은「原道」篇에 2회에 걸쳐 언급되는 것으로, 그가 말하는 佛·道와 구분되는 儒學의 道에 대한 정의인 동시에 그 구체적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仁 . 義 . 道 . 德에 대해서 각기 살펴보면, 仁은 사람들을 널리 사랑하는 것이며, 義는 행위의 당위원칙이며, 道는 인의를 실천하거나 그것으로 나가는 길이며, 德은 인의를 돈독히 행할 때 바랄 것이 없이 스스로 갖는 性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다시 위에서 말한 仁·義와 이것을 설명하면서 제시된 道·德과 연관시켜 본다면 仁 . 義는 도덕의 특정한 내용이며, 道·德은 仁·義의 원리와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노자와 불교의 비판적 맥락에서 총체적으로 파악하여 말하면, 인의를 실질 내용으로 갖고 있지 않은 어떤 도덕도 헛된 것이 되어버리며, 도덕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인의가 나올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한유는 仁·義, 道·德을 현실에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성으로 해석해 내면서 유가의 도덕은 원리상에서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 백성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용적 원칙이어야 함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옛날의 이른바 마음을 바르게 하여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장차 유위로써 하려는 것이다. 이제 그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지만 천하국가를 도외시하는 것은 그 天常을 없애는 것이다.

그는『大學』의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誠其' 云云하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유학의 도는 治心을 전제로 밖으로 治國 . 平天下, 즉 治人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治心의 논의에 국한되어 그 실용적 측면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天常'을 없애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유가의 도덕이 楊·墨, 道·佛과 구분되는 실용적 학문임을 밝히는 것으로, 특히 현실적으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한, 어떤 도덕을 말하더라도 헛된 것으로 전락된다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한편 종밀은『원인론』에서 儒·道의 道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불교의 道에 대한 내용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비판의 내용도 제목에서 보이는 것처럼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사물의 현상 및 그 본원에 대한 것까지를 포함한다. 이것은 그의『原人論』序를 살펴봄으로써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즈음 지식인들은 각기 한 가지 종지에만 얽매여 부처님을 스승으로 섬기는 이들도 진실한 이치를 모르고 만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인간과 만물 속에 있는 가장 근원적인 원리를 밝혀 내지 못한다. 나는 이제 (불교의) 內外의 교리에 근거하는 것에 돌아가 모든 법칙을 미루어 궁구할 것이다.
종밀이『원인론』에서 밝히고자 하는 '原人'의 본래 의미는 '推窮萬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원인론』 序에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가『원인론』에서 말하려는 '推窮萬法'은 유·도의 영향을 받아 현실세계의 구체적 원리에 대한 해명이라는 문제를 불교적 입장에서 해명하는 한편, 유학의 불교 비판에 대한 문제를 종식시키고 화엄으로 대표할 수 있는 불교의 본래 취지를 드러내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종밀의 유학 비판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외교(儒·道)의 종지는 다만 몸에 의하여 수행법을 세웠을 뿐이요, 몸의 근본원리를 궁극적으로 구명하지 못하였고, 그 만물을 말한 것도 현상을 초월한 것을 논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비록 대도를 가리켜 근본이라고 말했으나 그 順逆 . 起滅 . 染淨의 인연을 갖추어 밝히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을) 배우는 자가 그것이 임시방편(權)인 줄을 알지 못하고 완전한 가르침(了)이라고 고집한다.
여기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종밀은 外敎 즉 유학과 도가의 내용을 구분하지 않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비판의 대상이 다소 모호하게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는 논의의 전개를 위해서 유학 문제에 대한 비판의 의미만을 따져 볼 것이다. 종밀은 유학에서 주장하는 것이 현상적인 자기 몸에 대한 수행만을 말했을 뿐 몸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근본 자체를 밝혀 내지는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만물에 대해서 나름대로 설명은 하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을 초월한 궁극적 실재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고 비판하였다. 따라서 그의 견지에서는 유학의 가르침은 임시방편(權)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화엄)에서는 수행의 문제와 현상적으로 드러난 인간과 만물의 근본에 대해서 밝혀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상을 초월한 궁극적 실재에 대해서 밝혀 주고 있는 완전한 가르침(了)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러한 비판을 전제로 종밀은『원인론』에서 밝히고자 하는 道에 대한 논의가 완전한 가르침이라고 하며, 현상과 그 궁극적 실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생명을 가지고 꿈틀거리는 모든 존재는 그 근본이 있으며, 만물은 무성하나 각기 돌아가야 할 근원이 있다. 근본이 없고 끝가지만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삼재 중에서도 가장 신령스런 인간이 어찌 그 본원이 없으랴. '남을 아는 것은 智이지만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明'이라고 한다.

종밀은 모든 생명의 존재 근원에 대해 인정하고 있으며, 그 인식의 주체인 인간의 본원에 대해서 老子의 '智'와 '明' 개념을 빌어 설명하고 있다. '智'는 대상에 대한 인식을, '明'은 주체에 대한 인식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서, 인간이 인식의 주체임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종밀이 밝히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기론적 세계이해와 그 본원에 대한 문제이며, 둘째는 그 인식의 주체인 인간의 앎의 문제(智·明)에 있다.

그러나 그는 原人의 문제를 현실적 세계와 인간의 문제에까지 확대시켜 해석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治人의 논의로 발전시키지 않고 개인의 앎(智·明)의 문제 즉 治心의 문제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라는 한계를 스스로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상적인 것뿐만 아니라 현상을 초월한 궁극적 실재에 대해서 파악하려는 점에서, 한유의 실천 중심적인 가치론적 문제를 앎의 문제로 전환시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유의 사상을 이론적으로 제고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유·불 공통의 관심사는 治心이다. 그러나 유학의 현실 중심적 문제의식과 불교의 출세간적 사유라는 틀은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유는 그 관심을 治心의 논의를 전제로 천하의 문제 즉 治人에까지 확대시키면서 그 실용성을 강조하지만, 宗密은 대상 세계의 이해와 그 본원에 대한 문제까지 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초점을 그 인식 주체인 인간의 治心에 국한시키게 되는 차이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Ⅲ. 唐代後期 儒學의 天 論爭과
            理學的 思惟의 萌芽


종밀의『원인론』에 나타난 유가 비판은 주로 韓愈의 天命·天人感應 등의 설에 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한다면 그의 비판은 한유의 그것보다는 선진유가의 천명과 동중서의 천인감응설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종밀의 비판은 유종원과 유우석의 견해를 반영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유에 대한 이해도 피상적이라는 한계를 갖게 된다. 이러한 한계는 당시 한유에 의해서 제기되었던 天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그에 대한 유종원·유우석의 반박에 대한 종합적 이해 없이, 선진유가의 천명론 혹은 동중서의 천인감응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여 왔다는 일부의 연구성과에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다.

물론 피상적으로 볼 경우 한유의 天에 대한 이해가 천명론이나 천인감응론으로 이해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天에 대한 이론을 엄밀하게 분석하면 그 가운데 기론적 세계의 이해방식과 객관적·보편적 원리로서의 天, 즉 理에 대한 이해가 제시되고 있는 맹아를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元和年間(806∼820)에 이루어졌던 韓愈·柳宗元(773∼842)·劉禹錫(772∼819) 간의 天命에 대해서 論辨에 나타난 그들의 天論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당시 유학의 기론적 사유가 정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理에 대한 개념이 소박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韓愈의「原道」와 宗密의『原人論』을 중심으로 당시 유학의 논의가 어떻게 불교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밝히기 위해서 韓愈와 柳宗元·劉禹錫의 天論에 대한 문제들을 고찰하고, 이를 토대로 다음 장에서 宗密의『原人論』에 나타난 유학에 대한 비판과 불교, 구체적으로는 화엄학의 이론 전개 속에 나타난 기론적 사유의 발전과 그 전개인 理事法界의 문제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 먼저 말하면 한유의 천명에 대한 논의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 종밀의『원인론』과 그의 법계론을 하나의 발전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논의를 분명히하기 위해서 먼저 유우석의 견해를 빌어 당대 후기 유가의 天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기로 한다. 유우석은 당시 天에 대한 해석을 크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陰 說과 自然說이 그것이다.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陰 說은 천과 인간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天與人實影響), 즉 하늘이 사람의 길흉화복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고, 自然說은 천과 인간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天與人實相異) 입장이다. 전자는 한유의 견해로 天人感應을, 후자는 유종원과 유우석의 견해로 天人不相預의 입장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입장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한유는 유종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인이 어떻게 감응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음은 유종원의 천설에 나타난 한유의 견해를 인용한 것이다.

내가 그대에게 하늘의 이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네. 지금 사람들은 질병으로 시달리거나 고생스럽고 춥고 배고픔이 심할 때면 하늘을 우러러 '백성을 괴롭히는 자는 득세하고 백성을 돕는 자들은 도리어 재앙을 당하고 있습니다'라고 울부짖으며 '무엇 때문에 이런 큰 고난에 빠뜨리십니까'라고 하늘을 향해 하소연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모두 천리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 이제 인간들은 이러한 하늘의 이치를 모르는 탓에 하소연도 하고 원망도 한다. 나는 만약 하늘이 그들의 하소연과 원망을 듣는다면, 하늘에 공로가 있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고 하늘에 공로가 없는 자에게는 큰 벌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대(유종원)는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유는 유종원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람은 고통이 있을 때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고 하늘은 그 소리를 들은 후에 상과 벌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결국에는 하늘에 공로가 있고 없고에 따라 상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천에 대한 견해를 천명적으로 혹은 천인감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게 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한유의 천에 대한 견해를 天命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왜냐하면 吉凶禍福이 무조건적으로 天命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천인감응적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의 천인감응에 대한 견해는 동중서의 그것보다 객관화된다. 즉 天이 意志를 가지는 주체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절대법칙처럼 나타나 있으며, 이러한 기준에 합당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감응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파괴를 말하면서 인간의 제 행위들이 벌레만도 못한 행위라고 다음과 같이 비난하고 있다.

인간의 원기음양에 대한 파괴도 더욱 심해진다. 황무지를 개간하고, 산림을 벌채하고, 샘을 뚫어 우물물을 마시고, 묘를 파서 죽은 이를 장사지내고, 구덩이를 파서 변소를 만들고, 담이나 성곽·망루·놀이터를 축조하고, 하천·도랑·연못을 파고, 나무를 부벼 불을 지피고, 금속을 녹이고, 질그릇을 굽거나 돌을 다듬고 하기에 황폐화되어 온 세상의 만물은 그것의 情(본성)을 얻지 못한다. 분노에 차서 바삐 왔다갔다 하면서 나머지도 모두 없애는 것을 그친 적이 없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이 원기음양을 해치는 것은 벌레가 하는 것보다 심하지 않은가.

한유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모든 행위는 자연 파괴 행위이고, 따라서 天의 관점에서는 벌의 대상이다. 때문에 이러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인간이 인간 중심적 잣대에 의해 하늘을 원망하는 것은 天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왜 이러한 이해의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이유는 다음의 인용과 함께 대비시켜 보면 한유가 생각하고 있는 天의 의미가 보다 분명해진다.

조물주의 궁극적인 의도가 결국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의 好惡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것은 아닐까. …… 같은 사람이라도 호오가 이와같이 다른 것을 놓고 볼 때 하늘과 인간은 반드시 호오가 다를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늘과 일치되면서 인간과 괴리되는 생활을 한들 무슨 해가 되겠는가.

즉 한유의 견해에 따르면 사람들 간의 好惡가 같지 않듯이 天과 사람의 好惡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사람의 好惡가 天의 의도와 합치되면서 일상과 괴리되는 삶의 문제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것은 세계의 이해 방식으로서의 기론적 사유에 윤리도덕의 의미가 도입되는 사유의 전환적 이해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한유의 天에 대한 이해를 오늘의 현실 문제와 견주어 보면 그의 천에 대한 이해는 더욱 분명해진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제반의 여건들이 축적된 결과 자연(환경)의 파괴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더 이상 인간은 자신의 편리만을 위해서 자연을 파괴시키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즉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보편리로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가 말하고 있는 天 개념의 의미는 우주 자연의 보편리라고까지 해석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天에 대한 문제를 천인감응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동중서의 천인감응론이 객관화되고 있으며, 天 개념은 뒷날 理 개념으로 정립되는 과도기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한유의 천에 대한 견해에 대해 유종원은「天說」을 지었는데, 그는 천지가 초목과 같은 자연물인데 어떻게 상벌을 줄 수 있는가라고 반박하면서 공을 이룬 사람은 스스로 공을 이룬 것이고 화를 당한 사람은 스스로 화를 부른 것이니 하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天人不相預의 견해를 주장하게 된다.

…… 온 천지는 커다란 과실수이고 원기는 (그 나무에 돋아난) 커다란 옹이덩어리이며 음양은 커다란 초목이다. 그런데 어떻게 잘한 일에는 상을 주고 잘못한 일에는 벌을 줄 수 있는가.

유종원의 주장에 의하면 천지만물의 본원은 무형이면서 물질적인 원기이다. 삼라만상은 음양의 이기가 부단히 자기 운동하는 형태에 불과하다. 하늘이 인간에게 상벌을 내리는 일은 없으며 공적도 과실도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것이다. 하늘은 자연의 생성변화를 주관할 수는 있으나 예의를 제정할 수 없고 의지를 포함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은 예의를 제정하고 의지를 가지지만 사계절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재앙을 복으로, 굽은 것을 곧은 것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천명에 달린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인간의 힘에 달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종원의 이러한 견해는 유우석에 의해 보다 발전된다. 유우석은 유종원의 견해를 지지하면서「天論」을 지어 天人交相勝의 견해를 주장한다.

세상이 다스려지는 것은 인도가 밝아서 그 유래하는 바를 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덕과 원망이 하늘에 돌아가지 않는다. 난리가 일어나는 것은 인도가 어지러워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은 모두 하늘에 돌린다.

모든 사물은 자신의 작용이 있고, 하늘과 사람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작용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하늘의 작용은 사람이 할 수 없고 사람의 작용도 하늘이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天이 능한 바는 만물을 행하는 데 있고, 사람이 능한 바는 만물을 다스리는 데 있다"고 말함으로써 하늘의 현상과 인위적 행위들을 구분하고 있다. 그는 더 나아가 사람이 하늘을 이길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사람이 하늘을 이길 수 있는 것이 법이다. 법이 크게 행해지면, 옳은 것은 모든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며 그른 것은 모든 사람이 그르다고 여기는 것이다. 천하 사람들이 도를 실천하면 반드시 상을 주고 선을 어기면 반드시 벌을 준다.

그는 하늘은 의지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법칙과 시비를 견지할 수 있으면 하늘을 이길 수 있다고까지 주장하게 된다. 여기서 유우석의 천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인간의 주체의식을 엿볼 수 있으며, 이것은 한유가 제기한 문제의 연장선에서 발전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구분해 설명하면 한유가 天의 개념을 보편 법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만을 제시하였다면, 유우석은 그것을 구체적인 法이라는 개념으로 풀이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法이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理라는 개념도 사용하는데, 理로 생각하면 만물은 하나로 관철된다고 말하는 것은 天 개념을 法으로 풀이한 것과 함께 理學의 확립이라는 발전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Ⅳ. 宗密의『原人論』에 나타난
            氣論的 特性과 理事


종밀의『원인론』은 당대 후기 유학에서 나타나고 있는 천지만물에 대한 이해를 구체화시키는 한편, 그의 理事法界論까지를 고려한다면 당시 유가의 천명 . 천인감응설에서 전개되는 객관적 사물 이해로 나타난 天·法·理 등의 개념을 발전시켜 理 개념을 확립시켜 주고 있다.

종밀은 불가적 입장에서 유가 . 도가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의 비판의 초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기론적 세계 이해와 천명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그는 유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요즈음 유교나 도교를 말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인간의 근원에 대한 주장을 볼 것 같으면 다음과 같다. 즉 외면적으로는 내 몸은 부모로부터 그 부모는 또 그 위의 부모에게 이어서 육신을 물려받아 이 몸이 생기게 된 것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깊이 들어가서는 원초적으로 커다란 기운이 존재하는데 이 기운이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고 이 둘이 하늘·땅·사람 셋을 만들어 냈으며 그 셋이 어우러져 모든 만물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사람은 모두가 기를 근본으로 한다고 한다.

종밀의 유학에 대한 비판은 기론적 이해 방식에 대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세상의 모든 존재와 사람은 모두 원초적인 기운을 근본으로 한다는 점과 그 기의 聚散을 문제삼는다. 물론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의 비판은 주로 도가에 더 맞추어져 있다. 그렇다면 그의 유학에만 국한된 비판은 결국 천명에 관한 것으로 국한시켜 생각할 수 있으며, 유학의 기론에 대한 비판 역시 天의 개념이나 논의를 전개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제시된 것이라는 점이라고 보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유학과 도교에서는 사람과 동물 따위는 모두 아무런 형태도 없는 위대한 도가 낳아 주고 길러 준다고 말하면서, 도는 자연을 본받는 것으로 원기에서 생겨나고 원기가 (나누어져) 하늘과 땅이 생겨나고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한 인간의 어리석음·지혜로움·천함과 가난·윤택함·괴로움·즐거움 따위는 모두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며 때와 천명에 달린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뒤에는 다시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고 형태도 없는 위대한 도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종밀은 위의 인용에서『원인론』序에서 비판하고 있는 유·도에 대한 내용을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 주는데, 앞에서 살펴본 당대 후기 유학의 天에 대한 논의들과 연관시켜 보면, 그의 유학에 대한 비판이 때와 천명(時·命)에 관한 것임이 분명해진다. 그런데 당대 후기 유학에서의 天 개념은 천명과 천인감응으로 이해하기에는 객관화된 방식을 견지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종밀의 유학에 대한 비판이 무엇인가라는 내용보다 종밀이 자신의 견해가 무엇인지를 개진시켜 나가는 부분이다.

성이 선한 사람은 보시와 지계 등을 행해서 심신이 이 선업을 싣고 중음에서 운용하다가 모태 가운데 들어간다. 기와 질을 품수하면 기는 문득 사대를 갖추고 점차로 諸根을 이루며, 심은 문득 사온을 갖추고 제식을 이룬다. 10개월이 차서 나오면 사람이라고 부르니 지금 우리들의 몸과 마음이 그것이다. …… 그러나 품부 받은 바 기를 전전 추본한즉 혼일한 원기요, 일어나는 바 마음을 전전 궁원하면 곧 진일한 영심이다. 궁극적으로 말해서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고 원기 또한 심이 변하는 바를 좇아 앞의 전식이 드러낸 경에 속하는 것이며 아뢰야식에 포섭되는 것이다.

종밀은 객관화된 세계를 일원기와 같은 것으로 보고 기개념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종밀 자신이 사람이 품부받은 기의 근본을 추구하면 혼일한 원기이며, 일어나는 바의 마음의 근본을 궁구해 보면 靈心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기의 주체인 靈心 즉 불성이 본체라는 것인데, 그것은 일원기 자체가 대상세계를 인정하면서도 선과 앎의 주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기의 개념을 궁극적으로는 윤리도덕의 문제와 心의 인식 문제에까지 확대시켜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마음(心)과 대상(境)이 모두 空이라는 불교의 기본이론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부분적으로는 유학(·도가)의 원기론을 받아들인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종밀이 한유에 의해서 단적으로 드러났던 대상세계에 대한 기론적 이해를 윤리도덕의 영역으로까지 확대시킨 것에서 진일보하여 인식의 영역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다시 기론적 맥락에서 心과 境을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진여의 일념이 움직이기 시작한 최초의 상태로부터 나누어져 心과 境 둘이 되는데 心은 이미 세밀한 것으로부터 조잡한 것에 이르러 끊임없이 망령되이 헤아리고 업을 짓는 데 이른다. 境 또한 미미한 것으로부터 확연히 드러나는 것에로 이르러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이에 하늘과 땅이 되기에 이른다. …… 이에 근거하면 심식이 변화한 境은 두 부분이 되는데 하나는 심식과 화합한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심식과 화합하지 않은 하늘과 땅, 산과 강, 나라와 도읍이다.

여기서 그는 元氣가 전식에 포함되는 것, 즉 감각적·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상으로 대상계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아뢰야식에 포섭되는 것이라고 파악한다. 다시 말하면 元氣는 대상계와 8식이 변화하여 드러내는 대상계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종밀은 心과 境은 주관과 객관이며 인식주체와 대상을 설정하면서도 그 주체는 인식주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그는 종국에는 영심의 인식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여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방식은 인식의 대상세계인 경을 다시 둘로 나누어 심식과 화합한 인간과 심식과 화합하지 않은 천지만물을 구분한다. 그렇다면 종밀은 유·도의 원기설을 불교의 심식이론 속으로 편입시키면서도, 기의 세계의 객관성을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종밀은 출세간적인 불교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대상세계의 객관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상세계에 대한 기론적 논의를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식주체인 인간의 의식에 머물고 마는 한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그의 性起論이나 理事法界論까지를 의식한다면 인식 주관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지성사적 맥락에서 볼 때 理라는 개념을 정립·제시하는 데까지 심층적으로 발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평가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제시한 화엄의 理나 事는 심식이 대상세계를 객관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실제 객관세계를 표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객관세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인식된 그 불성 자체를 객관화시킨 것이 理라고 한다면 理·性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도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말하면 인식된 대상은 사람의 인식 밖에 독립한 절대적 존재가 아니며, 단지 주관적 인식대상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객관적 대상세계는 인식의 기초이며, 인식의 주체는 대상세계의 주체이다. 이렇게 볼 때, 의식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인식대상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종밀의 이사론은 대상세계와 인식주체인 氣가 그 원리인 理와 그에 대한 지각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본체론·심성론이 일관된 체계로 설명되는 데에는 이학적 사유를 기다려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대상세계뿐만이 아니라 그 본체론적 이해, 인식주체인 인간의 심성정까지를 포괄하는 이론적 체계로의 정립은 정주이학에 이르러야 비로소 해명된다는 것이다.




Ⅴ. 結 論


이상에서와 같이 당대 후기의 유학사상과 종밀의『원인론』을 중심으로 유·불의 道와 天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기론적 사유의 발전과 理에 대한 사유체계의 맹아가 싹트고 있음을 사상의 발전이라는 지성사적 맥락에서 고찰하여 보았다. 이 고찰을 통해서 단편적이나마 유·불의 비판이 지엽적·피상적이었다는 한계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당시 유·불의 정확한 이해 결여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유의 비판뿐만 아니라 종밀의 비판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그러나 상호 비판과 견제는 유교와 불교의 이론 정립에 자극제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사상사적으로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정리해 보면 첫째, 당대 후기의 유학은 대상세계에 대한 기론적 전개를 통하면서 天의 개념에 理的 요소를 가미시킴으로써 氣 개념을 윤리도덕의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元和年間의 天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소박한 형태의 理 개념이 도출되고 있음을 보았다. 종밀은 이것을 인식의 문제로 환원시켜 해석함으로써 윤리도덕의 문제를 인식의 영역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도 마련해 주었다.

둘째, 유학의 현실 중심적인 사고와 불교의 출세간적 사고에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조가 상호 영향을 주며 발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종밀의 대상세계와 그 인식주체로서의 氣에 대한 이해는 불교의 인식 문제가 현실적인 차원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하되 출세간적인 것에까지 일관되고 있음을 밝히려는 것으로, 이것 역시 중국의 지성사적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음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성사적 맥락에서 볼 때, 유·불의 이론은 사조를 뛰어넘어 견제와 비판 속에서 심화·발전되었으며, 송대 이학까지를 의식한다면 당대 후기의 원숙한 형태의 기론적 사유가 天에 대한 유학의 자기 논변을 통한 발전과 유·불의 상호 비판 속에서 한편으로는 윤리적·인식론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이기론적 사유로 발전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놓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參 考 文 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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