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의 향기 ♣>/♧ 역사의 향기 ♧

★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 ★ <조선왕조실록 동영상해설>

화엄행 2009. 4. 1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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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朝鮮王朝實錄
지정번호
:
국보 제151호
지정연월일
:
1973년 12월 31일
시 대
:
조선시대
  종 별
:
활자본
  수 량
:
2,077책
  크 기
:
정족산본 55×30㎝, 태백산본 43×32㎝
  재 료
:
저지
  소 유 자
: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 재 지
:

서울 신림동 산56-1 서울대학교 규장각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조 태조에서 철종에 이르기까지 약 470여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별로 총 1,893권 888책으로 편찬·기록한 편년체 역사서이다.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기 시작한 것은 태조가 태종 8년(1408)에 죽자, 이듬해 8월에 태종이 하륜(河崙)에게 ≪태조실록(太祖實錄)≫의 편찬을 명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이어 ≪정종실록(定宗實錄)≫과 ≪태종실록(太宗實錄)≫은 세종 5년(1423) 11월부터 편찬이 시작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 초기의 태조·정종·태종의 3대 실록은 처음 각각 2부씩 등사하여 1부는 서울의 춘추관(春秋館), 1부는 고려시대부터 실록을 보관했던 충주사고(忠州史庫)에 간직했다. 세종 27년(1445)에 다시 2부를 등사하여 전주(全州)와 성주(星州)에 새로운 사고를 설치하여 1부씩 분장하였다. ≪세종실록≫ 이후는 각 왕의 실록을 편찬할 때마다 활자로 인쇄하여 춘추관·충주·전주·성주의 네 사고에 보관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춘추관 충주 성주사고가 불에 타서 소실되고 전주사고본만이 남게 되었다. 이 전주사고본(태조∼명종까지의 13대 실록)은 전주유생인 안의(安義)·손홍록(孫弘錄) 등이 정읍의 내장산으로 옮겨 병화를 면한 것이며, 그것을 이듬해인 선조 26년(1593) 7월에 정부가 인계 받아 해주(海州)로 운반했다가, 선조 29년(1596)에 강화도(江華島), 다시 선조 32년(1599)에 묘향산(妙香山)으로 이장하면서 보관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선조 36년(1603) 7월부터 선조 38년(1606) 3월까지 13대 실록을 다시 3부씩 출판하고, 최종 교정본과 병화를 면한 전주사고의 원본 실록을 합쳐 5부를 만들었다. 이들 실록은 다시 춘추관을 비롯하여 강화도의 마니산, 경북의 태백산, 평북의 묘향산, 강원도의 오대산에 각각 1부씩 보관시켰다. 즉 춘추관·태백산·묘향산에는 선조대에 출판된 신인본, 마니산에는 원본인 전주사고의 실록, 오대산에는 교정본을 보관시켰다. 광해군 9년(1617)에 편찬된 선조실록도 이와 같이 하였다.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으로 춘추관에 소장되었던 실록은 소실되었다. 또한 인조 11년(1633)에는 후금(後金)과의 관계가 악화됨으로 인해 묘향산사고를 적상산으로 이전하였다. 한편 마니산 실록은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으로 크게 파손되었으나 현종 때 다시 보수하였다. 마니산 사고는 숙종 4년(1678)에 강화도의 정족산에 신설한 사고로 이전되었다. 인조 이후의 실록은 4부를 인쇄하여, 정족산(鼎足山)·태백산(太白山)·적상산(赤裳山)·오대산(五臺山)의 사고에 간직하고 조선조 말기까지 보관하여 왔다. 1910년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규장각도서와 함께 조선총독부로 이관되어 종친부 건물에 보관되었다. 적상산본은 창덕궁 장서각에 보관되었다. 오대산본은 동경제국대학으로 이전되었으나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소실되었고, 이 가운데 27책이 서울대 도서관에 이전 보관되어 있다. 조선총독부에 이관되었던 정족산본과 태백산본은 1929년 규장각도서와 함께 경성제국대 도서관에 이관되어 보관되었다. 적상산본은 1946년의 도난사건과 6.25전쟁으로 인해 대부분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에 평양의 김일성종합대학도서관에 소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규장각에 현존하는 ≪조선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당시 병화를 모면한 전주사고본이다. 이는 그 후 강화의 마니산사고를 거쳐 정족산사고에 간직되어온 원본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이후 전주사고본에 의거하여 새로 찍은 3본 중 봉화 태백산사고에 간직되어 온 신인본, 그리고 그때의 교정본으로서 오대산사고에 간직되어 온 것의 잔존분과 파지로 존치되어 온 것을 장책한 잔여분에 해당한 것으로 그 개요는 다음과 같다.
1) 국보 제151-1호. 정족산본 1181책으로 ≪문종실록≫ 권11과 ≪성종실록≫ 권70, 71, 80, 132, 133이 결락되었다.
2) 국보 제151-2호. 태백산본 848책으로 문종실록의 권11만을 제외하고 거의 완전하게 전해지고 있다. 1985년 3월 22일 정부기록보존소로 이관되었다.
3) 국보 제151-3호. 오대산본의 잔여본 27책이다. 잔여본 27책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경제국대에 이관되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었던 가운데 일부가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중종실록≫ 중종 2년 5월에서 17년까지의 20책과 ≪선조실록≫ 선조 16년 1월에서 26년까지의 7책분이다.
4) 국보 제151-4호. 잔존분 21책이다. 이 책은 유래를 밝힐 수 없는 실록의 낱장으로 정종부터 광해군 때까지의 총 558엽의 낱장이 오랫동안 규장각에 파지상태로 남아 있다가 1972년 6월 21책으로 장책된 것이다.
이상과 같이 규장각에 소장된 ≪조선왕조실록≫의 총 책수는 2,077책이다. 이 원본은 1997년 10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가운데 실록의 출판은 1929년에서 1932년까지 경성제국대학에서 태백산본을 저본으로 하여 사진판으로 영인하여 선장본으로 30부를 출판한 바 있으며, 대부분 일본에 있고 7∼8부가 국내에 전존한다고 한다. 한편 1955년 11월부터 1958년 5월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에서 태백산본을 저본으로 하여 1/8로 축쇄, 국배판(菊倍版) 양장본 48책으로 영인하여 국내외에 보급하였다. 또한 일본 학습원(學習院) 동방문화연구소(東方文化硏究所)에서는 1953년이래 영인본으로 축쇄 간행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