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절에다나면서 제일먼저 알고 있는 경전은 바로 반야심경일 것입니다. 반야심경은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모든 불자들은 모두가 수지 독송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법회,행사등에도 빠짐없이 반야심경을 독송을하고 있으며 반야심경을 모르면 불자가 아니라는 생각도 모두가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귀한 경전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자로 260자로 된 이경전의 의미나 깊은 뚯을 알고 있는 불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런지 의심스럽습니다.왜냐하면 우리들 모두는 반야심경을 독송하지만 독송하는 글이 한자이기 때문에 그냥 한자를 그대로 우리말로 같이 따라 읽고 외고 쓰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절에있는 법회예불문등에 한글로 번역은 되있으나 그냥 한자를 번역한 내용이어서 그 경의 참뚯은 알수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역시도 10년전만하드라도 반야심경을 제대로 외웁기는 커녕 그 뚯도 모르면서 같이 따라 독송만 한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참선이후 지금은 반야심경을 정확히 암송하며 한자로 된 반야심경을 매일아침 침대에서 일어나서 외워서 쓰기를 하고 한글로 그뚯을 상기하면서 암송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아침 외우면서 마음속으로 실제 쓰고나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침착해지며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수행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그러면서 이 육신의 껍데기를 하나하나 벗어던지면서 깨닭음의 세계로 한발한발 닥아감을 느낍니다.
이제 반야심경의 깊으뚯,비밀를 같이 생각해보도록하겠습니다.그런다음 반야심경을 독송을 한다면 더욱더 내자신을 알고 불교의 참뚯을 알면서 절에 다닐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째 반야심경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약어입니다.
마하는 우주보다도 크다는 의미가 있고 상상할수 없을정도의 많은 수를 가리키기도 합니다.또한 마하는 일체를 초월한 절대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하는 인간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한 대단히 가치있고 깂있는 최고의 경지를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야는 지혜의 뚯을 나타납니다.여기서 뚯하는 지혜는 이세상의 모든 만물의 이치를 깨닭는
그런 지혜를 가리킵니다. 마치 어두운 방에 훤한 불빛이 들어오면서 어두운 상태에서 볼수 없었던 모든 방안의 가구들,텔레비젼,시계,콤퓨터,전화기,책,방안의 형태등을 훤히 볼수있는 그런 경지입니다.또한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모든일의 진실를 알수있는 지혜이며 나자신 또는 모든 외부 경계를 뚜렸하게 보며 알수있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바라밀다는 산스크리스트어로서 "파라밋다"로 바라는 저언덕이고 밀다는 건너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 언덕을 넘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곳은 어디이고 저 언덕은 어디일까요.
이곳은 사바세계이고 저언덕은 부처님 세계입니다.
이곳은 고통의 세계이고 저언덕은 환희의 세계입니다.
이곳은 지옥의 세계이고 저언덕은 극락의 세계입니다.
이곳은 이곳은 어둠의 세계이고 저언덕은 밝음의 세계입니다.
이곳은 무명의 세계이고 저언덕은 지혜의 세계입니다.
이곳은 윤회의 세계이고 저언덕은 해탈열반의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은 지혜의 언덕으로 넘어가게하는 가장 최상의 경전이라 할수있습니다. 즉 깨닭음의 세계인 부처의 경지로 갈수있는 최상의 경전이라 불릴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부처님의 수기를 받은 관세음보살께서 부처님의 제자중에 지혜제일인 사리불에게 공의 도리를 자세히 설명을 하시는것입니다. 이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을 관자재보살로 표현합니다. 관세음보살을 관자재보살, 준제보살,십일면관세음보살로도 부르고 있기때문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어떤분이 십니까? 관세음보살은 이 사바세계 중생들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모두 들어주시고 모두 없애주시는 자비보살이 아니곘습니까? 그리고 고통받는 중생들이 있는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서 그들을 고통과 괴로움을 모두 없애 줍니다..그래서 우리들은 옛부터 어려운일이나 힘든일이 있을적마다 "관세음보살" 명호를 자주부르곤 합니다..
그러므로 이경은 부처님의 공의 도리를 관세음보살과 사리불과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세째 이경을 지니고 읽고 쓰며 외우고 그 뜻을 완전히 숙지하며 자기체질화하고 자기것으로 만들어 생활한다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수 있으며 모든 괴로움,번뇌에서 완전히 벗어 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그리고 늙고 병들고 죽음에서 완전히 해탈할수 있다고 합니다.저는 이 경을 읽으면서 이 구절의 매력에 빠져서 본격적으로 불교 경전공부를 했다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이 사바세계를 살면서 우리들의 고통은 얼마나 많습니까? 돈 못버는 괴로움,이별의 괴로움,돈 없는 괴로움,사랑의 괴로움,만족할줄 모르는 괴로움, 마음대로 안되는 괴로움,시기 질투의 괴로움,성나고 화나는 괴로움,자존심상하는 괴로움,정상인이 못된 괴로움,
싫은 사람과 같이사는 괴로움,병들고 늙고 있다는 괴로움,죽는다는 괴로움등등등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백팔번뇌라고도 하고 팔만육천 번뇌라고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괴로움과 고통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물론 살다보면 좋은일도 있고 즐거운일도 기뿐일도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런일들은 모두가 일시적이고 임시로 일어나는것입니다. 긍극적으로 결국 인간은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커다란 괴로움이 있는것은 진리이자 사실인 괴로움인것입니다.
그런데 이경에서는 이러한 고통과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경을 완전히 이해하고 자기것으로 만들고 수행하면서 깨닭음을 체득한다면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움도 사라지고 걱정근심도 사라지고 지혜도 생기고 재화도 생기고 마음대로 자유자재로 괴로움없이 살아갈수 있다니 정말 이 경을 읽는 우리들은 얼마나 복받은 사람이곘습니까?
우리 모두가 열심히 불교공부를 하고 수행을하여 깨닭음을 얻고 행복한 나날이 되도록 하여야 하곘습니다.
넷째 이경에서 가장 핵심부분인 공의 도리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우선 이해를 돕기위하여 색과 공의 의미를 살펴볼까합니다. 왜 옛중국인들은 물질 또는 육신 또는 현상세계를 색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우리가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면 색깔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색깔이 없다면 모두가 무색이며 우리가 말하는 공의 세계지요. 그래서 이세상만물은 모두가 색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이 그렇고 바다가 그렇고 들과산,아파트,자동차,모든가구들.전자제품들 우리주위에 있는 것들은 어느것하나 색이 없는게 하나도 없습니다.우리가 먹는 물까지도 색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색을 볼수없는 색맹인들은 과연 어떠할까요? 그들은 흑백만을 구분한다고 합니다.색을 볼수가 없기에 물체의 형상만을 볼수가 있으나 만약 흑백의 색깔도 구분할수 없다면 보이는 세계는 무의 세계일 것입니다.
즉 눈을 가지고 있지만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맹인과 다를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우리는 색 즉 현상세계,물질,육신이라는것도 의식이 없다면 볼수가 없는 공의 세계임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옛중국인들은 총체적인 의미로 현상세계,물질,육신을 통털어서 "색"이라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공의 세계입니다. 깨닭음의 세계에서는 공의 세계도 없습니다. 깨닭음의 세계를 표현하다보니 공이라는 이름을 부르고 설명하였던 것입니다. 깨닭음의 세계는 영원하며 텅 비어 있고 청정하며 밝고 맑고 티하나 없는 그런세계입니다.그러나 이러한 표현도 적절하지 못합니다.그것은 깨닭은 자만이 알수있는 경지니까요. 그래서 옛중국인들은 적당한 표현 방법이 없어서 "공"이라 이름지은 것입니다.이것을 우리는 이해하고 공의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공이란 텅비어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공이 텅비어 있지 않다면 어떤세계도 들어 갈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깨꿋하고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넣으면 그다음에 그림을 그려넣울수 없듯이 말입니다.공의 세계를 거울과 비유하기도 합니다. 거울은 어떠한 물건이라도 비추면 그속에 똑같은 상이 생김니다.이와 같이 허공의 세계는 이 우주를 감쌀수 있으며 태양,지구,만물,인간들를 감쌀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우주나 태양,지구,만물,인간들은 인연이 다하고 그 생명이 다했을 적에는 사라지게됩니다.그러나 이 허공은 그들이 생기거나 사라지거나 전연 개의치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마치 거울이 사람의 형상을 비추웠을때 거울에 형상이 나타나거나 사라지거나 전연 개의치 않는 것과 같은 그런 이치입니다.
그 공성이 바로 불성,법성,자성이라고도 합니다. 공성은 원래있는 그 상태 그대롭니다.
이제 공에 대하여 조금 이해가 가셨는지요.
이 세상은 현상세계와 물질세계, "가상의 나"의세계로 구분됩니다.
현상세계와 물질세계는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며 느끼는 그런 대상물입니다. 이 현상과 물질은 내가 존재할때만 나타나는 것으로서 내가 사라지면 현상과 물질도 사라집니다.약간 머리가 아프다고요?
즉 현상은 내가보는 세계인 하늘도 될수 있고 바다도 될수 있고 산도 될수있으며 강물도 될수 있고 꽃도 될수 있고 돌맹이,바위등이 될수도 있습니다.
또한 건물,전자제품,자동차,가전제품,동식물,풀포기 또한 인간자체일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세계는 물질이라는 원소로 이루워 졌기 때문에 물질이라고도 하죠. 그러나 이러한 물질들은 자기 혼자힘으로는 존재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연기에의하여 인연에의하여 서로 합치고 서로 조합이되고 모든 조건이 맞았을때만이 그 존재의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우주가 그렇고 태양이 그렇고 지구가 그렇고 자연이 그렇고 동식물이 그렇고 인간이 그렇습니다.
예를들면 태양이 없다면 이 지구는 존재하지 못할것이며 또한 흙이 없다면 동식물도 존재하지 못할것입니다. 인간의 예를 들면 인간도 해가 있고 공기가 있고 땅이있고 물이 있고 동식물이 있고 등등 여러가지 환경이 적절했을때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입니다.해가 없다고 상상해보십시요,물이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요,인간이 얼마나 오래살수 있을까요.그러므로 이 물질현상들은 서로 잘조합이되고 조건들이 맞았을때에는 존재하나 또한 그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물질현상들은 고정된 상이 하나도 없습니다.변하고 있는 것입니다.바위덩어리가 고정된것같이 보이지만 이마저 바위내부에는 계속 풍화작용을 하고 있으며 수백,수천년 아니 수억년후에는 흙으로 변하고 또한 공기중으로 사라질것입니다. 우리가 하루 식사를 하면서 밥상에 올려진 음식을 볼수 있습니다. 쌀,채소,과일,삼겹살,불고기등등 입니다. 그러나 이것들도 예전에는 이세상에서 싱싱하게 날보라는듯이 한동안 활개치며 살아 있었던 것들입니다.
허나 인연이 다하여 이제는 우리들 밥상에 올라왔으며 또한 우리들 배속에 들어가서 계속 변하게 될것입니다. 뜰앞 담장에 피어있는 장미를 보십시요.한달전만하드라도 자취도 안보이던 장미꽃이 꽃망울이 맺이면서 이제는 그 아름다운 자턔를 뽑내고 있는것이 아닙니까?그러나 앞으로 계속 변하여 20-30일후에는 자취도 없이 흔적도 없이 꽃이 형태는 사라지게되는 것입니다.
하루살이를 보십시요.알에서 태어나서 하룻동안 계속자라고 커서 결국하룻만에
그들의 생애를 마치고 마는 것입니다.그리고는 자연의 일부가 되겠지요.이 뿐이겠습니까? 인간들도 마찬가지지요.어머님 태속에 들어있기전에는 무엇이였겠습니까?
태속에서 자라서 신생아,소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늙고 병들고 죽음에 이르고 또 흙이되고 계속 변하는것이 아니곗습니까? 그리고는 태어나기전과 같은 형태로 돌아가는것이지요. 그래서 고정된상이 없습니다.
고정된상이 없기때문에 인연이 있을때에는 존재하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고 그래서 인연이 있을때는 잠시 나투었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허상이나 꿈으로 표현하는것이며 인연이 다하여 사라지면 바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며 그 원래의 위치가 바로 공의세계이며 본성이며 불성인것입니다.
현대과학자들도 물질이 원자로 되었으며 분자.중성자,양성자,소립자로 구성되어있으며 결국 소립자도 "쿼크"라는 몇개의 빛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결국 물질도 공이 성분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물질이 하나인 이 육신도 이와다른것은 하나도 없습니다.이 육신도 수조개의 세포로 이루워 졌으며 계속 생멸을 반복한다고 현대생명학에서는 주장합니다.
또한 자동차가 수만개의 부속품이 잘조립되어 자동차로 둔갑이되고 기름을넣고 달릴때는 자동차의 기능을 발휘하지만 어느 몇가지 부속품이 없거나 기름이 없을때는 제기능을 하지못하고 폐처리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동차는 원래 있었던 것이아닙니다. 폐처리되면서 원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이와같이 현상세계와 물질세계는 공과 다르지 않다고 관세음보살께서 수보리불에게 가르치는 것이며 또한 공이라하지만 인연이 있고 서로가 잘조합하고 조건이 부합될때는 공의세계도 현상이 보이고 물질로 나타나게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와 같이 인연과 연기법으로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는 것이 부처님이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가상의 나"에 대하여 공부해보겠습니다.
이 "가상의 나"는 앞서말했듯이 육체와 정신의 모임이며 또한 눈,귀,코,혀,몸뚱이 그리고 의식의 집합체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만 있어도 "나"라 할수없으며 육체가 없이 정신만 있다해도 "나"라 할수없는 것입니다. 또한 눈만 있어도 "나"가 될수 없고 귀만 있다해서 "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그리고 다른것없이 의식만있다해도 "나"란 존재할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기관과 의식활동이 확실히 같이 조합이되고 그 기능을 다할때 바로 "나" 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은 처음부터 "나"는 아니였습니다. 어머님의 태속에서 나와서 차츰 "나"라는 의식을 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나"라고 생각하는것이지 본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나"는 "가상의 나"인것입니다. 그리고 존재하는것이 아닌 없는 것이며 공인 것입니다. 예를들면 우리는 길거리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과 건물들 그리고 간판들,자동차들 등등 보고다니지만 막상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면 본것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많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바로 우리는 길거리를 다닐때 어떠한 사물을 보면서도 의식을 하지않고 걸어다니기 때문에 만약에 의식을 하고 바라본다면 집에 돌아와서도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보면서도 보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보는것도 보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눈이 있어야 하고 보는 뇌가 있어야 하고 의식을 하여야 하고 또한 밝음이 있어야 비로서 보게되는 것입니다. 눈만 있어도 보이지 않고 뇌만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아닙니다.
모든 인연들이 모두가 잘 가추워 작동할때만이 보이는 것입니다. 들리는 것이나 맛보는것 냄새맡는것 감촉을 느끼는 것등도 모두가 같습니다.
들린다는 것을 보십시요,들릴려면 소리내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귀가 있어야 하고 들리는 청각이 있어야 하고 의식이 있어야 하며 또한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어느것 하나 한가지만 있다하여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보이는것 들리는 것 냄새 맛 감촉등은 모든 인연들이 모두가 잘조합되고 잘구비되고 조건이 잘 맞았을 때 작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들은 있다고 할수 있을까요. 하나의 환에 불과합니다.공이지요.
그래서 작동할때는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작동하지 않을때는 없는 것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지요.
정신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낌이나 생각하는것 행위작용 의식활동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느끼는 대상이 있어야하고 눈,귀,코,혀,몸뚱이가 있어야 하고 뇌가 있어야하며그리고 의식을 하여야 비로서 뜨겁다,차다,이쁘다,못생겻다,깨끗하다,더럽다,맵다,싱겁다,쓰다,달다,슬프다,기쁘다 등등을 느끼게되는 것입니다.
어느것하나 혼자서 고정되어 나오는곳이 없으므로 바로 없는 것이라 하고 공이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느낌,감정들은 우리들 마음이 작용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우리들 마음 역시 찾을래야 찾을수 없기에 우리가 평소느끼는 일들,생각,감정들은 모두가 환의 세계,꿈의 세계로 생각한다면 마음에 상처를 입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있을수 없으며 슬품,괴로움,성냄,시기,자존심,욕심도 있을수 없습니다.또한 생사까지도 초월한 생활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공에대하여 약간 이해가 되시는지요.반야심경을 읽다보면 "무"자가 21번 임을 알수 있습니다. 모든것이 "무"입니다. "무"는 없다라고 표현되지만 이 "무"라는 것은 유무의 "무"가아닙니다.
공의 "무"이며 중도의 "무"인것입니다.우리는 이것을 잘이해해야 됩니다.이 "무"자를 타파하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하며 참선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공의"무", 깨닭음의 "무"를 표현하다보니 적당한 말귀가 없어서 "무"라고 표현한것 뿐이지요.
없다,공이다라는 꼬임에 빠져서 허무주의로 세상을 살아가고 무기공에 빠지고 무질서하게 살고 될때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닌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들의 실상을 똑바로 보고 알고 느껴서 올바르고 욕심없이 이웃과 더불어 보시하면서 지혜롭게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다섯째 모든 부처님들이나 보살님들께서 최상의 깨닭음을 성취할때 바로 이 경을 근간으로 하여 수행하셨고 의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이 반야심경이야 말로 말로서는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대단히 귀중하고 값있고 생명처럼 중요한 경전입니다.그래서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이경은 가장 신비로운 주문이며 가장 훌륭한 주문이며 이세상 어느것과도 견줄 수없는 최상의 주문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반야심경에 내포된 내용과 비밀의 말씀을 간단하게 설명드렸습니다.
반야심경의 참뚯을 이해하시고 반야심경을 많이 읽고 외워서 깨닭음을 이루시고 성불하시길 기원합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아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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