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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과 증오를 떨어내는 길

화엄행 2009. 4. 2.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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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과 증오를 떨어내는 길

향 산 nagapura@paran.com

 

첫 번째 이야기 -

오랜 동안 애정을 갖고, 또 열정을 기울여 일을 하던 곳에서 타의로 떠나게 되었을 때 저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고 웃음을 보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까지 상처가 깊어져 혼자 술을 마시고 기억이 끊긴 적도 자주 있었습니다 .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가, 2003년 6월 어느 날 “이렇게는 안 되겠다. 강원도에 가서 한 열흘 쉬면서 마음을 다스리자!”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평창의 스님께 전화를 드리고 속옷 몇 벌과 책 몇 권만 차에 싣고 장평으로 내려갔습니다. 그 날이 2003년 6월 10일이었습니다.

열흘이 지나자 “내 마음이 안정되기에는 아직도 멀었다.”고 돌아보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마음이 안정을 되찾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자신이 생길 때까지’ 강원도에 머물며 마음을 편하게 쉬게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강원도 장평에서의 2년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물어볼 때면 ‘스스로 자청한 유배’라고 하면서, 나름대로 생활 일정 계획을 잡아 책을 읽고 경전과 불교 책을 번역하고 편하게 산책을 하며 지냈습니다. 가끔 찾아오는 도반들이 있으면 경치 좋은 곳과 맛있는 음식점으로 안내를 하고, 저녁이면 어울려 음주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몇 달이 지난 10월 말부터는 관세음보살님 전에서 아침 저녁으로 예불을 드리고 108배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조금씩 마음이 안정을 찾아가는 듯 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면서 수십 년 동안 써오지 않았던 일기를 쓰기 시작하였고, 매일 아침 제 거처에서 2.5km 떨어진 용평우체국으로 가서 바깥 세상의 지인들에게 이 일기를 이 메일로 보내 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이 메일 일기는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중요한 도구였고 2004년 7월부터 12월까지 <불교정보센터>에 연재되기도 하였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

솔직히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어릴 적 어머님을 따라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절에 다니던 때를 빼고는 기도를 그리 열심히 드렸던 적이 없었습니다. 혹 기도에 동참을 하더라도 어머님이 보여주시는 그 깊은 신심과 정성은 없이 ‘하는 시늉’만 하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제 마음의 안정을 찾지 않으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든 절실한 상황이 되어 홀로 시작했기 때문인지 이번 기도는 달랐습니다.
그 추운 강원도 평창, 다기 물이 얼어붙는 차가운 관음전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두 차례 예불을 올리고 108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느낌이 올 수 있었던 데에는, 마침 이미령 선생이 전해주고 간 『행복의 발견』이라는 책 덕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 책 읽기를 마치던 2003년 12월 31일에는, 정말로 오랜 동안 가슴 속에 끌어안고 끙끙대던 어느 분을 마음에서 떠나보냈습니다. 다른 분들이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로서는 기도의 큰 효험을 입은 셈입니다.

그 날의 일기 중 일부입니다.

 

연말이 되면 늘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라는 생각이 들지만, 특히 올해는 내게 어려움이 많았던 한 해였다. 비참한 배신감을 맛보고, 그것이 오래도록 마음에 상처로 남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어려움을 너무 오래 끌지 않고 평정심을 많이 찾았다. 아직도 “관세음보살!...”을 소리 높여 부르고, 부처님 앞에 엎드려 절을 드릴 때에도 문득문득 ‘미운 얼굴’, ‘보기 싫었던 이름들’이 떠오르지만 그 횟수가 점차로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미워하지 말아야지!”라고 억지로 집착하는 것도 문제라는 게, 히로 사치야가 『행복의 발견』에서 계속 되풀이하는 말이다. 그래서 혹 증오스러울 정도로 미운 얼굴을 억지로 지우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스쳐가게 하려고 노력한다.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지나쳐버리는 TV 화면처럼... “저 장면을 보지 말아야지!”하고 다짐을 하다가는 오히려 더 오래 매달리고 말 것이다.

『행복의 발견』을 다 읽었다. 읽기가 쉽다. 그래서 참 편안하고 좋다.

몇 년을 끌어안고 끙끙대던 이름을 떠나보냈다. 행복을 발견하는 발걸음 중 하나...

 

세 번째 이야기 -

그 이후로도 물론 문득 문득 화가 나서 전화에 대고 누군가에게 욕설을 퍼부은 적도 있었고, 혼자서 술을 마신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화가 나는 빈도가 줄어들고, 그 분노가 내 자신에게 주는 상처가 작아지는 것은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것은 실상 자신에게 분노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편안해질 수 있어야 남들과도 편안해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경제적인 문제와 이런 저런 사정들이 겹쳐, 남들이 ‘신선 놀음’ 한다며 부러워하던 강원도의 생활도 순탄하고 편안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2005년 3월에는 또 ‘견디기 힘든 세월’을 맞았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심하였습니다.
“외부와 소통되던 두 통로, 이 메일로 보내는 일기와 휴대전화를 모두 끊고 하루 한 끼 식사만 하고 ‘마음이 제 자리를 찾을 때까지’ 무기한 정진 기도를 계속한다.”
그렇게 기도를 시작한 지 이틀째와 사흘째 되는 날에는 꿈속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고 심지어 기도 중에 Mara(악마)를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엿새 째 되는 날에는 기이한 일을 겪었습니다.
그 날(2005년 3월 24일)의 일기 중 일부입니다.

 

 

108배: 제 848회 [금일 10회]

정진 기도를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은 나아진다는 생각이지만, 아직도 때 없이 찾아드는 ‘분노(忿怒)’가 남아있다.
오늘 낮에 예불을 드리고 ‘관세음보살’ 명호(名號)를 크게 부르며 108배를 올리는데, 느닷없이 오랜 동안 잊고 있었고 별로 ‘밉다’는 생각조차 갖지 않았던 “○○堂을 찾아가 ‘내게 미안하게 생각하십니까?’ 물어보고, ‘그런 생각이 없다’고 하면 미리 준비해간 칼로 목을 베고, 경찰에 자수를 하라. 그리고 재판에 변호사를 선임하지도 말고, ‘남의 살 길을 막아서 곤경에 처하게 하고서도 큰 스님인 체 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어서 이렇게 했다. 하지만 내가 지은 죄 값은 치르겠다’며 단식으로 삶을 마감하라”며 Mara가 한참을 설득하였다.

다행히 이런 잘못된 생각을 바로 끊어버리고 Mara를 쫓아버려 다행이다. 지난 2년 동안 그를 애써 무시해오긴 했어도, 크게 미워하거나 그런 적은 없었는데 이러는 것을 보면, 내 마음 한 구석에 ○○이라는 인물에 대한 분심(忿心)이 남아있기에 이렇게 나타났을 것이다.

어제 사경을 한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에 보면, “꿈에서조차 그런 일이 없어진다”는 구절이 있는데, 꿈이 아니라 기도 중에 이런 못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내 기도는 아직 목표 지점이 멀기만 하다.

 

 

일기에도 기록했듯이, 처음에는 이런 일을 겪는 것이 ‘아직 내 마음이 불안정한 모양’이라며 기도 강도를 더욱 높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서 생각이 바뀌면서 크게 안도하였습니다.
“그 동안 ○○스님에 대해서는 크게 밉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는데도 내 가슴 깊은 곳에 이 스님에 대한 분노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숨어 있었다니!
만약 이번에 정진 기도를 하지 않았으면 ○○스님에 대해 갖고 있던 그 분노가 숨어 있다가 어느 순간 어떤 식으로 폭발하였을지도 모른다.
기도의 효험을 참으로 크게 보았구나!”

이 일을 겪고 나서 두 달 뒤에 은둔 생활을 접고 열흘간 전국을 돌며 만행(萬行)을 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이제는 다시 세상과 화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다르고, 기대치도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제 경우에는 ‘기도는 미움과 증오를 떨어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입력 : 2006년 04월 18일 11:02:01 / 수정 : 2006년 04월 18일 11: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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