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술자료 ♣>/기타 관련자료 모음

숭야척불(崇耶斥佛)의 나라 <홍사성 / 불교평론 편집위원>

화엄행 2009. 4. 2. 23:27
이름: 홍사성
2002/7/30(화) 15:45

http://www.budreview.com/cgi/technote/main.cgi?board=column&number=38&view=2&howmanytext=
숭야척불(崇耶斥佛)의 나라  
15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조선왕조 5백년 동안 한국불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숭유억불에 시달려야 했다. 조선왕조의 지배세력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불교를 탄압하고 배척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아무 데나 펼쳐보아도 성리학으로 무장한 유교적 지식인들이 불교를 탄압하고 승려를 배척하는 상소가 산을 이루고 있다.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불교탄압은 사찰재산의 몰수였다. 정부는 관료들의 건의를 받아 불교의 물적 기반인 토지를 모조리 빼앗아갔다. 사찰 수를 제한하기 위해 제종통폐합을 단행하고 나중에는 호패제도를 강화해서 승려가 되려는 사람에게 세금을 물리기까지 했다. 사찰을 기방으로 만들고 불상은 부수어 무기를 만든 왕도 있었다.

조선왕조의 이 같은 불교탄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원인분석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은 불교내부의 부패설이다. 고려불교가 사찰과 승려들이 왕실의 보호아래 재산을 증식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함으로써 조선조에 이르러 억불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려불교가 아무리 타락했다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나라 전체가 억불로 돌아서는 원인이 됐다고 말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보다는 사회지도층의 종교관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조선왕조의 건국에 관여했으며 유명한 배불론인 〈불씨잡변〉을 쓴 정도전과 같은 유학자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들 유교지식인들은 새로운 나라에서 그들의 정치적 이상을 펴기 위해 불교를 허탄한 종교라고 매도하며 적극적으로 숭유억불을 주장했다. 숭유도 억불도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불교적 소양과 지식을 갖춘 인물이 부족했던 불교로서는 불가항력의 상황을 맞게된 것이었다. 역사학자 이상백이 쓴 〈유불양교의 교체기연에 관한 일고〉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 탁월한 논문이다.

조선왕조가 숭유억불의 시대였다면 현대 한국사회는 불교를 배척하고 야소교(기독교)를 숭상하는 숭야척불(崇耶斥佛)의 시대라 이름할 만하다. 물론 현대 한국사회가 과거의 전제왕조처럼 의도를 가진 정책이나 제도로 불교를 탄압하는 일은 없다. 표면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권력자들이 불교를 배척해온 증거 또한 수없이 많다.

해방이후 한국정부는 미국의 영향 아래 국정을 운영하면서 기독교에 독점적 특혜를 수없이 베풀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기독교의 성탄절을 공휴일로 제정하고, 군대에 군종장교를 임관시킨 것이다. 또 1954년부터는 기독방송을 허가해서 방송선교를 하도록 했으며, 각종 복지시설의 운영을 위탁시킨 것도 대표적 편향사례들이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속사정을 알게된 불교계의 강력한 반발과 시정요구로 어느 정도 형평성을 맞추기는 했다. 하지만 일단 기득권을 선점 당한 형편에서 뒤늦게 경쟁해야 하는 불교의 처지에서 보면 여간 불공정한 게임이 아니었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현대 한국사회의 많은 지식인들의 성향이 기독교적이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그 동안 정부의 중요정책을 결정하거나 집행하는 과정에 기독교를 신앙하는 지식인들이 독점적으로 참여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들이 종교적 이해관계에 관련된 일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 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이는 유교적 지식과 이념으로 무장한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척불을 주도했던 것과 비교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종교편향 사례가 날이 갈수록 더욱 교묘하게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국무총리에 신학자이자 여성목사인 사람이 지명되고 종교와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문화부장관마저 목사가 임명되었다. 만약 스님이 총리나 장관에 임명되었다면 저들이 과연 현대 한국사회를 종교편향 없는 평등한 민주사회라고 하겠는가. 이 모든 결과가 사람을 기르지 못한 불교계에 책임이 있다면 할말은 없다. 하지만 때는 바야흐로 숭유억불의 시대를 넘어 숭야척불의 시대를 치닫는 것 같아 불자들의 속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엿먹고 체한 것처럼 뻑뻑할 뿐이다.

불교신문 <수미산정>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