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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唐)나라 이후 시대의 중국 불교(中國 佛敎)>
오조 법연(五祖 法演 : 1024~1104) 선사(禪師)
① 생애(生涯)
호남성(湖南省) 면주(綿州) 출신(出身)으로 속성(俗姓)이 등씨(鄧氏)인 법연(法演)은 촉(蜀)의 성도(成都)에 살았으며 초기(初期)에는 유식(唯識) 공부에 몰두하다가 35세에 출가(出家)한 뒤에는 개봉(開封)의 원조 종본(圓照 宗本 : 1014~1099) 문하(門下)에 투신(投身)하여 깨달음을 얻은 후, 임제 의현(臨濟 義玄 : ?~866) 문하(門下)의 양기파(楊岐派) 2대조(二代祖)인 백운 수단(白雲 守端 : 1025~1072)을 찾아가라는 스승의 권유에 의한 기연(奇緣)으로 임제(臨濟)의 대맥(大脈)을 이어 오조산(五祖山)의 새로운 주인(主人)이 되었는데, 이 산(山)은 원래는 황매산(黃梅山)이었으나 육조 혜능(六祖 慧能 : 638~713) 대사(大師)의 스승인 오조 홍인(五祖 弘忍 : 601~674) 조사(祖師)가 머물렀다고 하여 ‘오조산(五祖山)’이라 했고, 법연(法演)이 이곳과 인연(因緣)을 맺었기에 ‘오조 법연(五祖 法演)’이라는 애칭(愛稱)이 생겨나게 된 것임
② 법연 삼걸(法演 三傑)
법연(法演)의 문하(門下)에서 나온 가장 뛰어난 제자(弟子) 3명을 ‘법연 삼걸(法演 三傑)’ 혹은 ‘삼불(三佛)’이라 하여 극근 불과(克勤 佛果)․혜근 불감(惠勤 佛鑑)․청원 불안(淸遠 佛眼)을 꼽는데, 이는 모두 법명(法名)에 ‘부처 불(佛)’자(字)가 들어 있기 때문이며, 그 가운데 극근 불과(克勤 佛果)가 법연(法演)의 법(法)을 이은 사법 제자(嗣法 弟子)로 손꼽히고 있음
한편 법연(法演)과 세 제자(弟子) 사이에 다음과 같은 일화(逸話)가 전해오고 있는데, “어느 날 세 제자(弟子)가 스승과 함께 정자(亭子)에서 두런두런 법담(法談)을 나누다가 돌아가려고 할 즈음에 기름이 떨어져 등불이 불현듯 꺼져 버렸다.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스승은 세 제자(弟子)에게 한 마디씩 해보라고 일렀다. 먼저 불감(佛鑑)은 ‘채봉(彩鳳)이 붉은 싸락눈이 되어 춤추네.’라고 했고, 불안(佛眼)은 ‘철사(鐵蛇)가 고로(古路)에 누웠구나.’라 했으며, 불과(佛果)는 ‘다리 아래를 보노라.’고 말했다. 법연(法演)은 이때 ‘나를 이을 사람은 극근 불과(克勤 佛果)로구나.’라고 말하였다”는 것임
이 일화(逸話)가 의미(意味)하는 내용(內容)은 앞의 두 제자(弟子)는 밝았던 빛이 사라지고 어둠에 묻히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하는 자기 모순(自己 矛盾)에 빠진, 즉 무심(無心)에서 오히려 유심(有心)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채봉(彩鳳)이니 철사(鐵蛇)니 하는 어려운 말을 만들어 냈지만, 극근(克勤)은 그들과는 달리 오히려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디지 말고 조심해서 내려오라”는 평범한 말을 함으로써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動搖)되지 않고 정확히 사태를 파악해내는 이른바 ‘무심(無心) 속의 명언(名言)’이었던 것임
또한 법연(法演)은 극근(克勤)에게 앞날을 염려하여 다음과 같은 경계(警戒)의 글을 내리기도 하였는데, 그 의(意)는 ‘만일 힘을 다 쓰면 반드시 화(禍)가 생기고, 만일 복(福)을 다 받으면 반드시 궁(窮)하게 된다’는 것임
勢不可使盡 주어진 힘을 다 쓰지 말라
(세불가사진)
福不可受盡 하늘이 내린 복을 다 받지 말라.
(복불가수진)
임제종의 중흥조라고 하는 오조 법연(五祖法演) 선사는
오조산(五祖山)에 살았다고 해서 오조 법연 선사라 불렸습니다. 이 스님 밑에 불감(佛鑑), 불안(佛眼), 불과(佛果)의 세분 스님이 있었는데, 이 분들을 삼불(三佛)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 분의 스님의 자손이 천하에 널리 퍼져 그 뒤로 불교는 선종 일색이 되었고, 또 선은 오조 법연 선사의 법손 일색이 되었습니다.
그 오조 법연스님이 오조산에 처음 들어가면서 오조 홍인(弘忍)선사의 탑인 조탑(祖塔)에 예배하였습니다. 오조 홍인선사가 돌아가신 지 이미 오륙백년이 지났지만 육신이 그대로 탑에 모셔져 보존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조탑에 예배를 드리면서 오조 법연 선사가 이렇게 법문을 하였습니다.
옛날 이렇게 온 몸으로 갔다가
오늘에 다시 오니 기억하는가
무엇으로 증거 삼는고
이로써 증거삼노라
昔日與麽全身去 今日重來得否
以何爲驗 以此爲驗
이것은 오조 홍인 선사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곧 그전의 오조 홍인 선사가 돌아가셨다가 다시 오조 법연 선사가 되어 돌아왔는데 알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다시 돌아왔다고 하는 이것이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조홍인선사는 사조 도신(道信)선사의 제자입니다. 도신선사는 나이가 많도록 제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에 산에 소나무를 많이 심은 사람[栽松道者]이 있었는데, 나이 많은 노인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노인이 도신 선사에게 와서 “스님께서 연세가 많은데 법(法)제자가 없으니 제가스님의 제자가 되면 어떻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도신선사가 “당신도 나이가 많아 나와 같이 죽을 터인데 제자가 되어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고 대답했더니, 그 노인은 “그럼 몸을 바꾸어 오면 어떻겠습니까?”하고는 사라졌읍니다.
그 노인이 산 밑에 있는 마을의 주(周)씨의 집의 아들로 태어나 사조 도신 선사를 찾아와서 그의 제자가 되었으니, 그가 바로 오조 홍인 선사입니다. 이렇게 보면 오조 홍인선사는 재송도자(栽松道者)의 후신이고, 오조 법연선사는 오조 홍인선사의 후신인 것입니다. 이 삼대(三代). 곧, 재송도자에서 홍인 선사로 이어지는 삼대의 전생은 모두 밝혀져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영겁불망하는 열반묘심을 성취한 증거인 것입니다.
열반묘심을 성취하면 정신적으로만 어떤 작용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육체적으로도 뛰어난 작용이 있어 분신하고 또 부사의한 (不思議)한 행동을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성상불이(性相不二)’라 하며 성과 상이 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 ‘심신일여(心身一如)’라고 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라 합니다. 그러므로 정신적으로 열반묘심을 성취하면 육체적으로도 그만큼 자유자재한 활동이 자연히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신일여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영원한 생명 속에 들어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개발하면, 물질적인 것에 자유자재한 색자재(色自在)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에 대해 자재를 얻게 되면 여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영원한 진여위에서 자유자재하게 분신(分身)도 하고 화신)化身)도 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자유자재, 영겁불망의 크고 작은 마음은 누구든 열심히 수도하여 자기 자성(自性)을 확철히 깨침으로써 성취하게 됩니다. 이런 마음을 성취하면 자재해탈 곧 색자재 ‧ 심자재 ‧ 법자재는 자연히 따라오기 마련인데, 이것이 불교의 근본 목표이며 또 부사의해탈경계(不思議解脫境界)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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